여러분들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빈고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분명 존재하는듯 싶습니다. 하지만, 오해도 일종의 이해인 한에야, 그러한 인식이 형성되기 위한 인식의 재료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오해가 단지 제가 빈고를 이해하는 능력이나 노력이 떨어져서 그러한 점도 있겠지만, 그러한 오해를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이용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에게 ‘네가 오해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사태에 이르게 된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대방에게로 돌리는 말입니다. 저는 여러 분들께서 저더러 ‘네가 오해했다.’라고 말하는 것이, 이러한 논란의 원인이 ‘저의 오해’이며, 저만 제대로 이해하면 이러한 논란이 불필요하다는 뜻처럼 읽혀져 불쾌하기도 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빈고나 빈마을에 대해 말하는 추상적 단어들에 그렇게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단어들에는 냉소하는 편입니다. 다만 그러한 단어들이 우리의 현실에 있어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보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가치를 내세워 활동들을 합니다. 종종 같은 가치를 내세워 활동을 하지만 그들이 현실화하는 활동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관찰할 때 본질은 그 가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활동에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빈집이나 빈고에 대한 이해를 키워가는 것은, 빈집 홈페이지나 위키에 적혀 있는 이미 오래되어 버린 글자도 있겠지만, 그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입니다. 다른 공동체에 빈고나 빈마을이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지 자료화 된 것들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다니고 있는 수유너머R 에서는 매주 화요일 발표회를 합니다. 그 ‘화토회’에 지음을 초대한 적이 있습니다. 이 발표회 이후 수유너머R 에서는 빈고에 출자를 했습니다.
죠스, “3월 12일 월 저녁 7시 빈마을의 대안금융 ‘빈고’ 설명회합니다!”, 수유너머R, 2012.03.09.
http://commune-r.net/xe/index.php?document_srl=495000
지음, “수유+빈고 수다회 자료”, 수유너머R, 2012.03.13.
http://commune-r.net/xe/index.php?document_srl=504705
빈고 수다회인데 빈마을 이야기가 잔뜩 있습니다. 빈고의 돈 움직이기 부분이 빈고에 관한 적극적인 부분인 듯한데, 그 부분도 주거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잔뜩 채워집니다.
무엇보다 빈고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말들을 봅시다.
11. 지금 빈고는
빈집을 위한 빈고. 빈집이란 무엇인가? 빈집을 넘어서기.
공동체 공간 대출의 확장
전세에서 월세로
빈집에서 해방촌으로
공동체 주거공간과 모임공간 보증금을 공유하는 주거협동조합으로
공동체들의 연대와 상호부조를 위한 공동체은행으로
신뢰할 수 있고 안정적인 조직으로 체계화하기.
교육 프로그램 만들기.
홍보 방안 만들기.
출자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인센티브 제공하기.
정관 규약 등 정비하기.
조합원 활동을 활성화하기.
일꾼 키우기.
빈고에서 확장된 형태로 개편 / 개명
지음이 만든 자료에서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빈고의 성격이 어떻게든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동체 공간 대출의 확장을 기획하고 있으며, ‘빈집’에서 해방촌으로 중점이 옮아가고 있습니다. 이건 기존의 빈고가 ‘빈집’에 중점이 있었으며 이제 그것을 해방촌으로 넓게 확장해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더해서 빈고에서 확장된 형태로 개편 / 개명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빈고’는 켄짱이나 잔잔이 말하는 것처럼 확장된 ‘빈고’개념인가요? 그런 개념이라면 새로이 확장할 필요가 무엇에 있는가요? 정말로 여러분들이 말하는 빈고의 애초 취지와 정신처럼 빈고는 고정불변의 무엇으로 우리 앞에 서 있는 것인가요? 그것의 추상적 단어들과는 별도로 실재로 작동하는 것들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닥쳐진 사건에 우리가 새로이 반응한 것이지, 애초부터 상상력이 현재 그리는 그것만큼 뻗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빈고 취지문의 첫 주어가 왜 집인지 의아합니다. 빈고와 빈집의 관계가 단순한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라면, 채권자가 자신의 활동을 홍보함에 있어서 채무자의 활동을 가져다 들어 쓰는 것은 일종의 착취일 뿐입니다. 지음이 발표한 수다회 자료를 일일이 열거할 것도 없습니다. 구체적 내용들은 전부 빈집에 관한 이야기들 뿐입니다. 사람들은 빈집이 빈고가 없으면 만들어 질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이건 일면 맞기도 하고 일면 틀리기도 합니다. 빈집이 지불하는 이자가 사실상 빈고의 주 수입원이고, 빈집이 빈고에게 대출받지 않았다면 빈고의 성격은 단순한 저리의 금융기관과 다를 바 없어지게 됩니다. 빈고는 빈고가 아니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반자본적 성격 또한 사라져 버립니다. 고리대금업자나 저리대금업자나 돈이 돈을 낳는다는 의미에서 자본주의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은 역사적 사실로도 맞지 않습니다. 빈고는 빈집에 의해 배태되었고, 빈고와 빈집은 서로 얽혀 있습니다.
또 만약에 단순한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였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것 처럼 적극적으로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출자할 이유도 없어집니다.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원금과 이자를 받아내는 그것 이상으로 받아낼 이유 없습니다.
사람들은 빈집이 유지되기 위한 물적 토대를 빈고에 쏟아 부었습니다. 자신의 집 보증금으로 쓸 바에야, 자신의 거주지를 빈집으로 옮겨오고, 빈고에 출자를 합니다. 애초부터 빈집과 빈고가 분리되어 있었는데도, 사람들은 빈고에 출자하면 빈집이 유지 확장되리라 믿었습니다. 신규 조합원이 유입되는 경로 또한, 빈고 자체의 활동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빈집을 거쳐 조합원이 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빈고의 성장은 빈고 혼자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의 주된 기여는 빈집에서 한 것입니다. 빈고를 외부에 소개할 때 빈집의 고민이야기를 빼고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오해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다른 많은 분들도 오해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오해에 기반한 믿음 또한 보호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합원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려는 과정에서 빈집과 얽어 홍보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러한 오해를 적극 조장한 이상 빈고에서는 그것에 대해 반성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빈집적립금’이라는 것에 ‘빈집의 유지와 확장’을 목적으로 선물된 돈들이 들어가 있는 이상, 빈고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성질의 자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빈집적립금’의 내용들이 대부분은 ‘빈집의 유지와 확장’의 이름으로 조성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조합원들의 이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오해하신 분들의 오해에 기반한 신뢰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그 일부라도 빈집회계로 넘어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이전처럼 지내는게 어려워졌을까요? 사실이것도 제느낌이라서 또 오해를 살수도있겟네요 (우리 여기서 얘기하면서 계속 서로를 오해하고 있지요 사람들이 쿠우만 오해하고 니탓이야하진 않을거같아요...어쨌든 얘기를 시작하게 한 지점이어서 주목되는듯 넘 괴로워 하지말라는 말을 하고파서..^^;)
회계독립이나 적립금관련문제제기나 하는 것들에 모두 날이 서있던거같아서요 빈집이나 빈고나 체계적, 효율적, 논리적 뭐 이런것들과는 조금 동떨어져 즉흥적으로 맘닿는대로 움직이는 활동이 많았잖아요 잉여금사용(지구분담금)도 그랬고... 빈집가치를 공유하고 거기서 확장된 활동을 꾸려왔었죠
그런데 빈고확장과정에서 빈집빈고 기존관계에 대한 문제들이 지적되면서 멀어지고만 있는것같아요 사실..적립금을 어디서 관리하든 함께할수있을것같은데 말이예요 내가 풀고 싶은건 사람들과의 관계에요 조합원들끼리 의견이 다를 수있지만 그렇다고 의견이 맞는 조합원들끼리의 다른 회계를 갖는다면 그 협동조합엔 문제가 있을것같아서요 빈고에 있는 다른 유대를 할수있는 조합원들도 있겠죠 그조합원들도 조합의 잉여금으로 다른 회계를 꾸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제 생각이에요.. 기우일수도 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