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의 약속

해문동 조회 수 4702 추천 수 1 2011.12.19 08:30:51

 

 

빈집의 약속

  


문태준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

볕이 보고 싶은 날에는 개심사 심검당 볕 내리는 고운 마루가 들어와 살기도 하였다
어느 날에는 늦눈보라가 몰아쳐 마음이 서럽기도 하였다
겨울 방이 방 한 켠에 묵은 메주를 매달아 두듯 마음에 봄가을 없이 풍경들이 들어와 살았다

그러나 하릴없이 전나무 숲이 들어와 머무르는 때가 나에게는 행복하였다
수십 년 혹은 백 년 전부터 살아온 나무들, 천둥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나무들
뭉긋이 앉은 그 나무들의 울울창창한 고요를 나는 미륵들의 미소라 불렀다
한 걸음의 말도 내놓지 않고 오롯하게 큰 침묵인 그 미륵들이 잔혹한 말들의 세월을 견디게 하였다
그러나 전나무 숲이 들어앉았다 나가면 그뿐, 마음은 늘 빈집이어서
마음 안의 그 둥그런 고요가 다른 것으로 메워졌다
대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듯 마음이란 그냥 풍경을 들어앉히는 착한 사진사 같은 것
그것이 빈집의 약속 같은 것이었다
 
─ 문태준 시집『가재미』에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3 보드게임 놀이놀이연구연구소 2번째 모임(보드게임모임)이 내일(6/26) 8시반, 빈가게 에서 있어요. [2] 화니짱 2012-06-26 5381
212 아모르파티 3월 23일 아모르파티 연극공연 <안티고네, 묻다> 후기 Che 2012-03-27 10143
211 건강팀 몸살림 잠시 방학하기로 해요. 살구 2012-02-10 7026
210 해문동 최근 모임까지 후기!일까?(~1/17) 유선 2012-01-23 6479
209 해문동 해문동 동화책 완성! <수박과 케이크와 별> file [7] 유선 2012-01-21 12256
208 아모르파티 1월 15일 [1] 탱탱 2012-01-21 7387
207 아모르파티 1/13 금요일 평택 희망텐트촌에 다녀왔습니다. file [4] 하루 2012-01-16 8040
206 아모르파티 아모르파티 또 해요. [1] 탱탱 2012-01-05 7907
205 주류팀 부활 빈맥 제조 -2탄 file 케이트 2011-12-31 6250
204 주류팀 부활 빈맥 제조 - 1탄 file 케이트 2011-12-31 8294
203 아모르파티 12월 24일 아모르파티 공연 file [3] 케이트 2011-12-30 5434
202 아모르파티 아모르파티! 맹연습 file [3] 케이트 2011-12-30 8011
» 해문동 빈집의 약속 손님 2011-12-19 4702
200 아모르파티 세번째 모임 나루네 책방에서.. 탱탱 2011-12-10 4487
199 아모르파티 두번째 모임에서.. 탱탱 2011-12-10 4098
198 아모르파티 아모르파티 첫째날. 탱탱 2011-12-10 4827
197 아모르파티 아모르파티 세번째모임후기 잔잔 2011-12-07 4223
196 해문동 12월 해문동:그림동화 만들기 스토리 [2] 손님 2011-12-07 4077
195 주류팀 [부활] 빈맥 워크샵 - 11일(일) 아랫집 - 날짜변경 [6] 케이트 2011-12-06 7061
194 아모르파티 아모르파티, 세번째모임은.. 탱탱 2011-12-04 4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