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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실에서의 대부업 현황과 대안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들이 있는 글이
월간 사람에 올라왔길래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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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대금의 늪에 가려 실종된 서민금융
송태경 | 민생연대 사무처장. 『대출천국의 비밀』 저자
역사 전체를 통틀어 사회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종교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종종 ‘인류의 공적’이라고까지 비난 받았던 고리대금이 21세기 대한민국을 홀연히 장악하고 있다.
드러난 숫자만으로도 약 4~5만 개(등록 대부업체 1만5723개와 기타 무등록 대부업자, 2009년 3월 기준)에 이르는 고리 대부업체가 팽창 난립하고 있는데다, 동업·고용·전주·대부중개·대출모집인·채권추심 등 갖가지 형태의 종사자 수는 2010년 현재까지 추정치조차 가늠해볼 수 없는 시장. 여기에 덧붙여 대부업을 부업으로 선택한 검사·경찰, 공무원, 심지어 정치인까지 가세했고, 휴대전화 대출사기처럼 온갖 유형의 수많은 대출사기꾼까지 기생하는 시장.
고리대금기관으로 완전히 변질된 상호저축은행, 할부금융사 등이 이미 가세해 있고, 일본계 대부업자를 필두로 메릴린치·스탠다드차드 같은 외국계 대형 투자금융기관들까지 앞 다퉈 진출했고, 앞으로도 진출할 것이 예상되는 시장. 정부가 직접 나서 국내 은행까지 진출을 독려하기 시작한 시장.
금액 기준으로도 최소 18조 원(2006년 정부 추정치)에서 30조 원(금융감독원 및 필자의 추정치) 정도의 시장규모로 예상되나, 매년 발생하는 이자규모만 따진다면 가계대출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담보 대출시장 규모보다 더 큰 시장(2011년 3월 기준 주택담보 대출시장 규모는 292조 3천억 원이고 이 시장에서 매년 발생하는 이자규모는 약 15조원 수준인 반면에, 대부업 시장에서 매년 발생하는 이자규모는 2011년 기준 법령 최고이자율 연44%만 적용해도 13조 2천억 원에 이르며, 이 시장에서 적용되는 평균금리 연160%대를 적용하면 약 50조원에 이른다!).
신용카드사의 연20~30%대 견고한 고리대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고, 연40%대의 지독한 고리대가 통상적인 수준이며, 연100%에서 수천%를 넘어 무한대의 금리까지 보여줄 수 있는 시장. 심지어 가혹한 빚 독촉과 온갖 형태의 사기와 속임수가 흘러넘치고, 자고 일어나면 집 뺏기고 냉장고며 가재도구까지 다 뺏기고 야반도주에 자살 얘기까지 흘러넘치는 시장.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와 같이 “황당무계한” 시장을 일상적으로 마주하고 있다. 물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고리대금(고리 대부업) 시장은 도무지 피해갈 수 없는 ‘대출광고’를 제외하면, 어쩌면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시장일 수도 있다. 그저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 금융적·법률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에 국한된 얘기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가 ‘무이자송’을 따라부르는 사이
그러나 사태가 심상치 않다. 적어도 328만 명(2006년 말 정부 추정치)이 이미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시장에 노출되어 있다. 이는 전체인구 4700만 명의 약 7.44%, 20세 이상 성인인구 3520만 명의 약 10%에 해당한다. 성인인구 10명당 1명꼴로 고리대금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고리대금기관으로 변질된 저축은행·할부금융사 등의 고리대금에 노출된 사람들, 보증채무에 발목 잡힌 사람들, 대출을 빙자한 각종 유형의 대출사기꾼들에게 희생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엄청나게 늘어난다.
더구나 외부로 알려지길 꺼리는 ‘채무의 특성’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라는 사실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특성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은 자신의 아내가, 자신의 남편이, 자신의 부모나 자식이 고리대금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쓰나미 수준의 대출 광고 홍수 속에서 자연스럽게 ‘무이자 송’을 따라 부르며 “믿으니까 걱정 마세요”하는 소리에 알게 모르게 세뇌된 수많은 사람들이 고리대금의 희생양이 되고 있음에도!
그렇다면 도대체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일까?
직접적인 해답은 자명하다. 정부와 국회가 “대부업 양성화”나 “자원배분의 효율성 도모”라는 미명하에 고리대금(대부업) 시장을 육성 조장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특히 대부업법 시행)를 정비하고, 경제정책을 펴왔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특히 다음의 사정들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법령 최고이자율의 역사에서 세계신기록이라 할 수 있는 연66%나 되는 지독한 초 고리대를 합법적으로 보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자제한법(법령 최고이자율제도) 자체가 폐지된 경우를 제외하면 이전까지 역사에서 법령 최고이자율이 가장 높았던 나라는 중국의 당(唐, 618~907년)나라였다. 당나라의 최고이자율은 월5%(연60%)로, 이 기록은 세계사를 통틀어 그동안 한 번도 깨진 적이 없었는데 무려 천백여년 만에 역사적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또한 여론의 압박에 밀려 낮아졌다고는 하나, 2011년 6월 27일 이후의 신규계약부터 적용되는 법령 최고이자율도 연39%로 OECD 국가 중에서는 여전히 세계 최고수준이다! 참고로, 사정이 이와 같음에도 한나라당 박종근 의원은 대부업법 제정 논의과정에서 연60%의 이자율은 "과격하게(!)" 낮은 수준으로 연100%는 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그것도 매우 집요하게 주장하기도 했었다(이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은 16대 국회 제225회-재경소위 제10차 회의록 등을 보라. 회의록은 국회회의록시스템에서 검색할 수 있다).
둘째, 정부의 인·허가 없이도(특히 금융업에서의 인가 또는 허가는 아무나 받을 수 없고, 심지어 법률적 조건을 충족해도 정책적 이유 등으로 보류될 수도 있다!) 단순한 서류조건만 충족하면 누구나 쉽게 대부업자 등으로 등록하여 합법적으로 영업할 수 있게 한 반면에, 관리감독 등 반드시 필요한 조치는 방치되었다.
셋째, 심지어 정부가 무슨 대책이라고 내놓을 때조차도 거의 대부분 사채·대부업·고리대금 시장을 육성 조장하는 방향을 전제로 대책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대책으로는 금융감독원이 마치 자신들의 치적인 양 자랑하고 권유하는 ‘환승론’과,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햇살론’을 꼽을 수 있다. 예컨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금융”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햇살론은, 비록 환승론에 비해서는 더욱 저렴한 대출금리(연10%~15%)가 적용된다고는 하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부업 시장에서 볼 수 있는 금리수준에 비해 낮다는 것일 뿐, “햇살” 또는 “따뜻한 금융”이라고 치장하기에는 문제가 너무나 많다. 대학생 학자금 대출에서 보듯, 연4~5%대도 저소득층 학생들에게는 뒷감당이 안 되는 수준인데, 어쩌면 이들 이상으로 더욱 열악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급전 수요와 관련된 자금을 연10%~15%대에서 공급하면서 “햇살”이란 이름으로 치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서민금융 문제 또는 대부업 시장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 중에서 ‘사회연대은행’이나 ‘신나는 조합’ 등 모범적인 대안은행을 모방한 ‘미소금융’(더구나 이것은 일자리 창출에만 한정된 대출재원으로 생계비, 병원비, 자녀양육비, 장례비 등 서민들의 일상적이고 주요한 급전수요와는 거의 무관하다!)을 제외하면, 딱히 정당하게 평가할만한 서민금융 대책은 없다시피 하다.
어쨌든 이상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연66%, 연49%, 연44%, 연39% 등의 엄청난 고리대를 합법적으로 보장해준 법과 제도 등 정부정책의 필연적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황당무계한 시장, 즉 사채·대부업·고리대금 시장인 것이며, 그리고 바로 이런 조건에서 진정한 서민금융은 실종된 채 거꾸로 고리대금업자들이 마치 서민들의 금융편의를 도모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약탈적 대출, 이 탐욕을 어떻게 멈추게 할 것인가
다른 한편 문제의 일반적인 원인들이 자명한 것처럼 우리가 조금만 지혜롭다면 해답 역시 자명하게 얘기할 수 있다. 즉 대부업자(사채업자)나 고리대금 기관으로 변질된 금융기관들, 그리고 이들의 얘기를 마치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고리대금을 옹호하는 정부관계자들의 허구적인 얘기에 현혹되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쉽게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첫째, 무엇보다 외국의 입법례처럼 법령최고이자율을 합리적인 수준(연15~20%대 수준)으로 인하해야 한다. “약탈적인 대출”(predatory lending)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채·대부업·고리대금 시장은 극단적 황금물신, 무궁무진한 탐욕, 주체할 수 없는 치부 욕망이 꿈틀거리는 영역이며, 따라서 이에 대한 합리적이고 실효성 있는 제한을 하지 않는 한 사회 구조적으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법령 최고이자율을 연15~20%대로 내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럴 경우 대부업자뿐만 아니라 현금서비스 등의 시장에서 연20~30%대의 견고한 고리대를 유지하고 있는 신용카드업자들에게도 상당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고, 연체했다는 핑계로 연19% 등의 과도한 연체이자율을 부과하여 이득을 얻는 은행 등도 반대하고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금융업자 대다수의 직접적인 반발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며, 더욱 불행한 것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적정 수준에서 법령 최고이자율을 정하기 위해 노력할 영향력 있는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25%를 이자의 최고 한도로 했던 1990년대 이자제한법 시기의 시장평균이자율이 연13~15%대였다는 사실, 1990년대에 비해 시장평균이자율은 최고 10%가량 하락했다는 사실 등에 비추어볼 때 법령 최고이자율을 연10%대 중후반까지 인하하는 게 마냥 비현실적인 일만은 아니다. 의지만 있다면, 우선 과거에 이미 경험한 바 있는 연25%의 이자율을 복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런 뒤, 단계적 인하과정을 거친다면 법령 최고이자율 연15% 내지 연18%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라 얼마든지 우리나라 얘기가 될 수 있다.
둘째, 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실효성 있게 관리감독이 되어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우선은 간단한 서류조건만 충족되면 누구나 쉽게 대부업자로 등록해서 영업할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지 못할 경우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바와 같이 대부업자 등의 팽창·난립은 불가피하며, 그만큼 실효성 있는 관리감독도 어렵게 된다. 왜냐하면 자금을 조달하고 자금을 대출·회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부작용들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제3자가 금융거래 내역을 상세히 그것도 일상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는데 제한된 인력과 예산만으로 이처럼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관리감독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대부업자의 팽창·난립을 차단하는 가장 효과적인 대책은 금융거래업의 특성에 맞게 인·허가 제도를 복구하는 것이다(즉 유럽의 여러 나라들처럼 대부업 제도 자체가 없어야 한다). 물론 즉시 복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그럴 경우 이미 합법화된 대부업자 대다수를 불법화시켜야 하는데 우리의 대통령이나 국회가 나서서 이런 유형의 적극적 조치를 취할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계적으로 인·허가 제도를 복구할 수는 있다. 그 첫 단계로 등록 또는 변경등록 요건을 합리적으로 강화(일본처럼 순자산액 기준을 정해 예컨대 순자산액 5억 원 미만의 자는 등록할 수 없게 하거나 사소한 불법 행위에 대해서도 등록취소 및 재등록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하고, 둘째 단계로 대부업체가 여타 금융기관처럼 자금 조달의 편의를 누리거나 이런저런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으로 정식 인·허가를 받아 영업하지 않을 수 없도록 제도를 꾸준히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끝으로 둘째 단계 또는 그 다음 단계에서 인·허가 제도를 복구하면 된다. 즉 적정 조건을 갖추어 인·허가받지 않은 자는 금융업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강력히 처벌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면 되는 것이다.
셋째, 법령 최고이자율을 위반한 자를 적절히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 사채·대부업·고리대금 시장은 극단적인 이익 추구가 이뤄지는 영역답게 법이 있어도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다면 이를 지키지 않는다.
일본의 ‘그레이존 금리’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의 대부업자들은 금액기준으로 연15%, 18%, 20%를 최고이자율로 정한 이자제한법이 있었음에도, 이자제한법에는 위반되나 형사처벌은 받지 않는 금리로 영업하면서 법령 최고이자율을 유린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연 수백, 수천%의 이자를 반복적으로 챙기면서 채무자와 그의 가족을 파탄에 이르게 했음에도 재수 없게 걸려야 소액의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끝내는 경우가 다반사며, 심지어 “징역형과 벌금형은 병과할 수 있다”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징역도 살고 벌금도 내도록 판결한 사례는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없다. 따라서 처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검찰과 법원의 태도변화가 절실하며, 징역형과 벌금형을 병과할 수 있는 사유를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반드시 징역도 살고 벌금도 내도록 하는 등 법률 등의 미비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고리 대부업이 뒤집어쓴 서민금융의 탈을 벗기는 일부터
넷째, 약탈적 대출행위에 노출된 서민들을 적절히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적절한 수준에서 법령 최고이자율을 정하더라도 수수료나 지연손해금 등 이자 이외의 다른 명목으로 채무자에게 돈을 뜯어낼 수 있다면 법령 최고이자율 제도는 있으나마나 한 것일 뿐이며, 따라서 법령의 허점들은 세심하게 정비되어야 한다. 또한 약탈적 대출행위에 노출된 이들의 경우 금융적 법률적으로 무지한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이들은 약탈적 대출행위에 노출되더라도 문제의 지혜로운 해법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약탈적 대출행위에 대항하여 스스로와 가족을 지혜롭게 보호할 수 있도록 필요한 홍보와 구체적인 정보의 제공, 상담교육, 광범위한 무료 법률구조 등 채무자와 그이들의 가족을 보호하는데 충분한 정도의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다섯째, 부당한 채무독촉 행위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정도의 실효성 있는 법 제도 등의 정비가 절실하다.
“빚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빚 독촉 때문에 죽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혹한 채무독촉은 채무자와 그 가족을 극단으로 내몰고 심각한 사회적 병폐를 불러온다. 시시때때로 전화해서 괴롭히기, 집이나 직장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거나 찾아오기, 배우자나 가족에게 채무 사실 알리기, 빚 독촉 통지문 대문에 꼽아두기, “딸자식 아들자식 밤길 조심하라”거나 “이쁜데 몸이라도 팔라”며 노골적으로 협박하기, “민형사상 조치 취한다”며 은근히 겁주기, 추가 각서 강요하기, 돌려막기나 가족·지인에게 대리변제 강요하기, 변호사 사칭하기 등등. 1997년까지만 해도 지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지금은 우리 사회의 일상적 풍경이 되었다. OECD 국가 가운데 인구 10만 명당 자살사망률 연속 1위, 자살증가율 1위, 20대 30대 자살 세계 1위라는 참으로 기가 막힌 기록을 가진 대한민국답게!
그리고 이와 같은 현실 때문에 부당한 빚 독촉 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법률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졌고, 여야 합의로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아래 ‘채권추심법’)이 만들어져 2009년 3월 7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채권추심법은 부당한 빚 독촉 행위로부터 채무자와 그이의 가족을 적절히 보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며, 심지어 법제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독소적인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다. “반복적으로”라는 문구를 집어넣은 부분이 바로 그 독소적인 내용이다. 예전의 법률에서는 정당한 사유 없이 집이나 사무실로 찾아가 빚 독촉을 하거나 채무와 상관없는 가족이나 지인에게 대신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행위 등은 모두 불법이었고 처벌 대상이었다. 그런데 법률이 채권추심법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라는 문구가 슬며시 삽입된 것이다. 이걸 대수롭지 않게 여길는지도 모르겠지만, 예전 법률과 달리 법이 정하는 야간(오후 9시 이후부터 오전 8시까지)이 아닌 때에 집이나 직장으로 한 번쯤 찾아와서 빚 독촉을 하는 행위는 불법이 아니게 되고 따라서 처벌할 수도 없게 된다. 가족이나 지인에게 한 번쯤 대신해서 갚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처벌대상이 아니게 된다. 왜냐하면 ‘한 번쯤’ 찾아오는 행위는 명백히 반복적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사전적 의미로 ‘반복’이란 같은 일을 자꾸 되풀이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부당한 빚 독촉을 가끔 또는 일주일에 한두 번 불규칙적으로 하는 행위조차도 반복적인 행위가 아니라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결국 채권추심법은 오히려 예전 법률에서는 명백히 불법이자 처벌대상이 되는 행위들을 합법화시켰고, 처벌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따라서 부당한 빚 독촉의 문제와 관련해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현행 독소조항을 시급히 삭제해야 하며, 또한 동시에 채무자를 어떻게든 쥐어짜서 빚을 갚도록 강요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엄격히 제한할 수 있도록 법률을 정비해야 한다. 최소한 채무자의 인권 정도는 살아 숨 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서민들의 급전수요 대부분을 정부의 공적금융으로 해결해야 한다.
시장을 통해서는 재산도 신용도 소득도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당장 다급한 생계비나 병원비 또는 자녀를 위한 양육비나 학자금 같은 것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조달할 수 없다. 이들은 분명 자신을 동정하고 도와줄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다면 가망이 없다. 사적 이해관계가 작동하는 시장은 참으로 냉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선과 기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들 가난한 사람들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상대를 속이는 행위 등을 통해 금품을 빼앗는 길이며(이 경우 그이들은 범죄자가 된다!), 다른 하나는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듯이 고리대금의 희생양이 된다.
따라서 고리대의 폐해 등은 막기 위해서는 시장이외의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이 급전 수요를 발생시키는 사회적 환경의 문제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대책을 별개로 하면 이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수단은 사회보장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회보장은 우리의 서민금융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특히 아이들의 밥값 가지고도 소란스러운 한국 사회에서 합리적인 조세·재정제도를 전제로 하는 사회보장제도의 확충을 지금 당장 기대하는 것은 공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민금융에 대한 대안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이들에게 필요한 자금을 무이자 또는 낮은 이자로 국가가 빌려주는 공적금융이 바로 사회보장의 미비점을 완충할 수 있는 적극적인 대안일 수 있다. 사실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국가(정부)가 제공하는 공적금융은 지금 당장이라도 서민들의 급전수요와 관련된 진정한 서민금융이자 대체 공급원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다. 정부의 대표적 공적금융인 국민주택기금을 활용한 저소득층 전세자금 대출제도를 보자. 이 제도를 이용할 경우,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저소득층 연4.5%, 영세민 연2%, 소년소녀 가정 0%)으로 자금을 조달해 장기간 사용(저소득층 최장 6년, 영세민 15년, 소년소녀 가정 만20세까지)할 수 있고, 저소득층 전세자금 대출수요의 상당부분이 이 제도를 통해 흡수되고 있다.
어쨌든 서민금융 문제에 대한 현명한 대안을 고민할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노동부가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공급하는 저소득층 근로자 등에 대한 생활안정자금(의료비, 혼례비, 장례비, 노부모요양비, 생계비 등) 대출제도다. 비록 광범위한 수요에 비해 마련된 자금은 지극히 열악한 수준(2010년 자금공급계획: 근로자 생활안정자금 대출 288억 원 등)이지만, 연3%, 1년 거치 3년 분할상환 등 시장을 통해서는 도무지 불가능한 조건으로 저소득층 노동자 등에게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따라서 바로 이 제도를 저소득층 일반의 생계비 등의 대출로까지 확대하고 상환기간을 연장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면 저소득층의 생활에 필요한 급전수요 대부분을 충족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공적금융으로 저소득층의 생활에 필요한 급전수요를 충족시키고자 할 때, 세부적으로 보완해야 할 문제도 여럿 있다. 예를 들면 대출받은 자금을 빚 돌려막기에 사용하지 않고 생활비나 병원비 등 용도에 맞게 사용되도록 보완해야 한다. 생활비나 병원비 등의 특정 용도에 맞을 때만 일정한도에서 결제가 가능한 특수카드를 발급하는 방식으로 대출한다든지, 자금 사용에 대한 구체적인 사후점검 시스템을 마련한다든지 하는 해법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 원인과 해답 등이 이와 같다면 결국 남는 문제는 하나다. 문제의 구체적 해결을 위한 행동이 바로 그것이다. 즉 서민금융의 탈을 쓴 고리 대부업을 걷어내고 진정한 서민금융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그리고 특히 정부와 국회의 태도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드러난 숫자만으로도 약 4~5만 개(등록 대부업체 1만5723개와 기타 무등록 대부업자, 2009년 3월 기준)에 이르는 고리 대부업체가 팽창 난립하고 있는데다, 동업·고용·전주·대부중개·대출모집인·채권추심 등 갖가지 형태의 종사자 수는 2010년 현재까지 추정치조차 가늠해볼 수 없는 시장. 여기에 덧붙여 대부업을 부업으로 선택한 검사·경찰, 공무원, 심지어 정치인까지 가세했고, 휴대전화 대출사기처럼 온갖 유형의 수많은 대출사기꾼까지 기생하는 시장.
고리대금기관으로 완전히 변질된 상호저축은행, 할부금융사 등이 이미 가세해 있고, 일본계 대부업자를 필두로 메릴린치·스탠다드차드 같은 외국계 대형 투자금융기관들까지 앞 다퉈 진출했고, 앞으로도 진출할 것이 예상되는 시장. 정부가 직접 나서 국내 은행까지 진출을 독려하기 시작한 시장.
금액 기준으로도 최소 18조 원(2006년 정부 추정치)에서 30조 원(금융감독원 및 필자의 추정치) 정도의 시장규모로 예상되나, 매년 발생하는 이자규모만 따진다면 가계대출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담보 대출시장 규모보다 더 큰 시장(2011년 3월 기준 주택담보 대출시장 규모는 292조 3천억 원이고 이 시장에서 매년 발생하는 이자규모는 약 15조원 수준인 반면에, 대부업 시장에서 매년 발생하는 이자규모는 2011년 기준 법령 최고이자율 연44%만 적용해도 13조 2천억 원에 이르며, 이 시장에서 적용되는 평균금리 연160%대를 적용하면 약 50조원에 이른다!).
신용카드사의 연20~30%대 견고한 고리대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고, 연40%대의 지독한 고리대가 통상적인 수준이며, 연100%에서 수천%를 넘어 무한대의 금리까지 보여줄 수 있는 시장. 심지어 가혹한 빚 독촉과 온갖 형태의 사기와 속임수가 흘러넘치고, 자고 일어나면 집 뺏기고 냉장고며 가재도구까지 다 뺏기고 야반도주에 자살 얘기까지 흘러넘치는 시장.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와 같이 “황당무계한” 시장을 일상적으로 마주하고 있다. 물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고리대금(고리 대부업) 시장은 도무지 피해갈 수 없는 ‘대출광고’를 제외하면, 어쩌면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시장일 수도 있다. 그저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 금융적·법률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에 국한된 얘기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가 ‘무이자송’을 따라부르는 사이
그러나 사태가 심상치 않다. 적어도 328만 명(2006년 말 정부 추정치)이 이미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시장에 노출되어 있다. 이는 전체인구 4700만 명의 약 7.44%, 20세 이상 성인인구 3520만 명의 약 10%에 해당한다. 성인인구 10명당 1명꼴로 고리대금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고리대금기관으로 변질된 저축은행·할부금융사 등의 고리대금에 노출된 사람들, 보증채무에 발목 잡힌 사람들, 대출을 빙자한 각종 유형의 대출사기꾼들에게 희생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엄청나게 늘어난다.
더구나 외부로 알려지길 꺼리는 ‘채무의 특성’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라는 사실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특성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은 자신의 아내가, 자신의 남편이, 자신의 부모나 자식이 고리대금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쓰나미 수준의 대출 광고 홍수 속에서 자연스럽게 ‘무이자 송’을 따라 부르며 “믿으니까 걱정 마세요”하는 소리에 알게 모르게 세뇌된 수많은 사람들이 고리대금의 희생양이 되고 있음에도!
그렇다면 도대체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일까?
직접적인 해답은 자명하다. 정부와 국회가 “대부업 양성화”나 “자원배분의 효율성 도모”라는 미명하에 고리대금(대부업) 시장을 육성 조장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특히 대부업법 시행)를 정비하고, 경제정책을 펴왔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특히 다음의 사정들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법령 최고이자율의 역사에서 세계신기록이라 할 수 있는 연66%나 되는 지독한 초 고리대를 합법적으로 보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자제한법(법령 최고이자율제도) 자체가 폐지된 경우를 제외하면 이전까지 역사에서 법령 최고이자율이 가장 높았던 나라는 중국의 당(唐, 618~907년)나라였다. 당나라의 최고이자율은 월5%(연60%)로, 이 기록은 세계사를 통틀어 그동안 한 번도 깨진 적이 없었는데 무려 천백여년 만에 역사적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또한 여론의 압박에 밀려 낮아졌다고는 하나, 2011년 6월 27일 이후의 신규계약부터 적용되는 법령 최고이자율도 연39%로 OECD 국가 중에서는 여전히 세계 최고수준이다! 참고로, 사정이 이와 같음에도 한나라당 박종근 의원은 대부업법 제정 논의과정에서 연60%의 이자율은 "과격하게(!)" 낮은 수준으로 연100%는 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그것도 매우 집요하게 주장하기도 했었다(이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은 16대 국회 제225회-재경소위 제10차 회의록 등을 보라. 회의록은 국회회의록시스템에서 검색할 수 있다).
둘째, 정부의 인·허가 없이도(특히 금융업에서의 인가 또는 허가는 아무나 받을 수 없고, 심지어 법률적 조건을 충족해도 정책적 이유 등으로 보류될 수도 있다!) 단순한 서류조건만 충족하면 누구나 쉽게 대부업자 등으로 등록하여 합법적으로 영업할 수 있게 한 반면에, 관리감독 등 반드시 필요한 조치는 방치되었다.
셋째, 심지어 정부가 무슨 대책이라고 내놓을 때조차도 거의 대부분 사채·대부업·고리대금 시장을 육성 조장하는 방향을 전제로 대책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대책으로는 금융감독원이 마치 자신들의 치적인 양 자랑하고 권유하는 ‘환승론’과,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햇살론’을 꼽을 수 있다. 예컨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금융”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햇살론은, 비록 환승론에 비해서는 더욱 저렴한 대출금리(연10%~15%)가 적용된다고는 하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부업 시장에서 볼 수 있는 금리수준에 비해 낮다는 것일 뿐, “햇살” 또는 “따뜻한 금융”이라고 치장하기에는 문제가 너무나 많다. 대학생 학자금 대출에서 보듯, 연4~5%대도 저소득층 학생들에게는 뒷감당이 안 되는 수준인데, 어쩌면 이들 이상으로 더욱 열악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급전 수요와 관련된 자금을 연10%~15%대에서 공급하면서 “햇살”이란 이름으로 치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서민금융 문제 또는 대부업 시장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 중에서 ‘사회연대은행’이나 ‘신나는 조합’ 등 모범적인 대안은행을 모방한 ‘미소금융’(더구나 이것은 일자리 창출에만 한정된 대출재원으로 생계비, 병원비, 자녀양육비, 장례비 등 서민들의 일상적이고 주요한 급전수요와는 거의 무관하다!)을 제외하면, 딱히 정당하게 평가할만한 서민금융 대책은 없다시피 하다.
어쨌든 이상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연66%, 연49%, 연44%, 연39% 등의 엄청난 고리대를 합법적으로 보장해준 법과 제도 등 정부정책의 필연적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황당무계한 시장, 즉 사채·대부업·고리대금 시장인 것이며, 그리고 바로 이런 조건에서 진정한 서민금융은 실종된 채 거꾸로 고리대금업자들이 마치 서민들의 금융편의를 도모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약탈적 대출, 이 탐욕을 어떻게 멈추게 할 것인가
다른 한편 문제의 일반적인 원인들이 자명한 것처럼 우리가 조금만 지혜롭다면 해답 역시 자명하게 얘기할 수 있다. 즉 대부업자(사채업자)나 고리대금 기관으로 변질된 금융기관들, 그리고 이들의 얘기를 마치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고리대금을 옹호하는 정부관계자들의 허구적인 얘기에 현혹되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쉽게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첫째, 무엇보다 외국의 입법례처럼 법령최고이자율을 합리적인 수준(연15~20%대 수준)으로 인하해야 한다. “약탈적인 대출”(predatory lending)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채·대부업·고리대금 시장은 극단적 황금물신, 무궁무진한 탐욕, 주체할 수 없는 치부 욕망이 꿈틀거리는 영역이며, 따라서 이에 대한 합리적이고 실효성 있는 제한을 하지 않는 한 사회 구조적으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법령 최고이자율을 연15~20%대로 내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럴 경우 대부업자뿐만 아니라 현금서비스 등의 시장에서 연20~30%대의 견고한 고리대를 유지하고 있는 신용카드업자들에게도 상당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고, 연체했다는 핑계로 연19% 등의 과도한 연체이자율을 부과하여 이득을 얻는 은행 등도 반대하고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금융업자 대다수의 직접적인 반발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며, 더욱 불행한 것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적정 수준에서 법령 최고이자율을 정하기 위해 노력할 영향력 있는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25%를 이자의 최고 한도로 했던 1990년대 이자제한법 시기의 시장평균이자율이 연13~15%대였다는 사실, 1990년대에 비해 시장평균이자율은 최고 10%가량 하락했다는 사실 등에 비추어볼 때 법령 최고이자율을 연10%대 중후반까지 인하하는 게 마냥 비현실적인 일만은 아니다. 의지만 있다면, 우선 과거에 이미 경험한 바 있는 연25%의 이자율을 복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런 뒤, 단계적 인하과정을 거친다면 법령 최고이자율 연15% 내지 연18%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라 얼마든지 우리나라 얘기가 될 수 있다.
둘째, 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실효성 있게 관리감독이 되어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우선은 간단한 서류조건만 충족되면 누구나 쉽게 대부업자로 등록해서 영업할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지 못할 경우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바와 같이 대부업자 등의 팽창·난립은 불가피하며, 그만큼 실효성 있는 관리감독도 어렵게 된다. 왜냐하면 자금을 조달하고 자금을 대출·회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부작용들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제3자가 금융거래 내역을 상세히 그것도 일상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는데 제한된 인력과 예산만으로 이처럼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관리감독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대부업자의 팽창·난립을 차단하는 가장 효과적인 대책은 금융거래업의 특성에 맞게 인·허가 제도를 복구하는 것이다(즉 유럽의 여러 나라들처럼 대부업 제도 자체가 없어야 한다). 물론 즉시 복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그럴 경우 이미 합법화된 대부업자 대다수를 불법화시켜야 하는데 우리의 대통령이나 국회가 나서서 이런 유형의 적극적 조치를 취할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계적으로 인·허가 제도를 복구할 수는 있다. 그 첫 단계로 등록 또는 변경등록 요건을 합리적으로 강화(일본처럼 순자산액 기준을 정해 예컨대 순자산액 5억 원 미만의 자는 등록할 수 없게 하거나 사소한 불법 행위에 대해서도 등록취소 및 재등록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하고, 둘째 단계로 대부업체가 여타 금융기관처럼 자금 조달의 편의를 누리거나 이런저런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으로 정식 인·허가를 받아 영업하지 않을 수 없도록 제도를 꾸준히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끝으로 둘째 단계 또는 그 다음 단계에서 인·허가 제도를 복구하면 된다. 즉 적정 조건을 갖추어 인·허가받지 않은 자는 금융업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강력히 처벌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면 되는 것이다.
셋째, 법령 최고이자율을 위반한 자를 적절히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 사채·대부업·고리대금 시장은 극단적인 이익 추구가 이뤄지는 영역답게 법이 있어도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다면 이를 지키지 않는다.
일본의 ‘그레이존 금리’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의 대부업자들은 금액기준으로 연15%, 18%, 20%를 최고이자율로 정한 이자제한법이 있었음에도, 이자제한법에는 위반되나 형사처벌은 받지 않는 금리로 영업하면서 법령 최고이자율을 유린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연 수백, 수천%의 이자를 반복적으로 챙기면서 채무자와 그의 가족을 파탄에 이르게 했음에도 재수 없게 걸려야 소액의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끝내는 경우가 다반사며, 심지어 “징역형과 벌금형은 병과할 수 있다”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징역도 살고 벌금도 내도록 판결한 사례는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없다. 따라서 처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검찰과 법원의 태도변화가 절실하며, 징역형과 벌금형을 병과할 수 있는 사유를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반드시 징역도 살고 벌금도 내도록 하는 등 법률 등의 미비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고리 대부업이 뒤집어쓴 서민금융의 탈을 벗기는 일부터
넷째, 약탈적 대출행위에 노출된 서민들을 적절히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적절한 수준에서 법령 최고이자율을 정하더라도 수수료나 지연손해금 등 이자 이외의 다른 명목으로 채무자에게 돈을 뜯어낼 수 있다면 법령 최고이자율 제도는 있으나마나 한 것일 뿐이며, 따라서 법령의 허점들은 세심하게 정비되어야 한다. 또한 약탈적 대출행위에 노출된 이들의 경우 금융적 법률적으로 무지한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이들은 약탈적 대출행위에 노출되더라도 문제의 지혜로운 해법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약탈적 대출행위에 대항하여 스스로와 가족을 지혜롭게 보호할 수 있도록 필요한 홍보와 구체적인 정보의 제공, 상담교육, 광범위한 무료 법률구조 등 채무자와 그이들의 가족을 보호하는데 충분한 정도의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다섯째, 부당한 채무독촉 행위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정도의 실효성 있는 법 제도 등의 정비가 절실하다.
“빚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빚 독촉 때문에 죽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혹한 채무독촉은 채무자와 그 가족을 극단으로 내몰고 심각한 사회적 병폐를 불러온다. 시시때때로 전화해서 괴롭히기, 집이나 직장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거나 찾아오기, 배우자나 가족에게 채무 사실 알리기, 빚 독촉 통지문 대문에 꼽아두기, “딸자식 아들자식 밤길 조심하라”거나 “이쁜데 몸이라도 팔라”며 노골적으로 협박하기, “민형사상 조치 취한다”며 은근히 겁주기, 추가 각서 강요하기, 돌려막기나 가족·지인에게 대리변제 강요하기, 변호사 사칭하기 등등. 1997년까지만 해도 지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지금은 우리 사회의 일상적 풍경이 되었다. OECD 국가 가운데 인구 10만 명당 자살사망률 연속 1위, 자살증가율 1위, 20대 30대 자살 세계 1위라는 참으로 기가 막힌 기록을 가진 대한민국답게!
그리고 이와 같은 현실 때문에 부당한 빚 독촉 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법률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졌고, 여야 합의로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아래 ‘채권추심법’)이 만들어져 2009년 3월 7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채권추심법은 부당한 빚 독촉 행위로부터 채무자와 그이의 가족을 적절히 보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며, 심지어 법제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독소적인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다. “반복적으로”라는 문구를 집어넣은 부분이 바로 그 독소적인 내용이다. 예전의 법률에서는 정당한 사유 없이 집이나 사무실로 찾아가 빚 독촉을 하거나 채무와 상관없는 가족이나 지인에게 대신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행위 등은 모두 불법이었고 처벌 대상이었다. 그런데 법률이 채권추심법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라는 문구가 슬며시 삽입된 것이다. 이걸 대수롭지 않게 여길는지도 모르겠지만, 예전 법률과 달리 법이 정하는 야간(오후 9시 이후부터 오전 8시까지)이 아닌 때에 집이나 직장으로 한 번쯤 찾아와서 빚 독촉을 하는 행위는 불법이 아니게 되고 따라서 처벌할 수도 없게 된다. 가족이나 지인에게 한 번쯤 대신해서 갚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처벌대상이 아니게 된다. 왜냐하면 ‘한 번쯤’ 찾아오는 행위는 명백히 반복적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사전적 의미로 ‘반복’이란 같은 일을 자꾸 되풀이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부당한 빚 독촉을 가끔 또는 일주일에 한두 번 불규칙적으로 하는 행위조차도 반복적인 행위가 아니라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결국 채권추심법은 오히려 예전 법률에서는 명백히 불법이자 처벌대상이 되는 행위들을 합법화시켰고, 처벌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따라서 부당한 빚 독촉의 문제와 관련해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현행 독소조항을 시급히 삭제해야 하며, 또한 동시에 채무자를 어떻게든 쥐어짜서 빚을 갚도록 강요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엄격히 제한할 수 있도록 법률을 정비해야 한다. 최소한 채무자의 인권 정도는 살아 숨 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서민들의 급전수요 대부분을 정부의 공적금융으로 해결해야 한다.
시장을 통해서는 재산도 신용도 소득도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당장 다급한 생계비나 병원비 또는 자녀를 위한 양육비나 학자금 같은 것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조달할 수 없다. 이들은 분명 자신을 동정하고 도와줄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다면 가망이 없다. 사적 이해관계가 작동하는 시장은 참으로 냉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선과 기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들 가난한 사람들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상대를 속이는 행위 등을 통해 금품을 빼앗는 길이며(이 경우 그이들은 범죄자가 된다!), 다른 하나는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듯이 고리대금의 희생양이 된다.
따라서 고리대의 폐해 등은 막기 위해서는 시장이외의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이 급전 수요를 발생시키는 사회적 환경의 문제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대책을 별개로 하면 이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수단은 사회보장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회보장은 우리의 서민금융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특히 아이들의 밥값 가지고도 소란스러운 한국 사회에서 합리적인 조세·재정제도를 전제로 하는 사회보장제도의 확충을 지금 당장 기대하는 것은 공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민금융에 대한 대안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이들에게 필요한 자금을 무이자 또는 낮은 이자로 국가가 빌려주는 공적금융이 바로 사회보장의 미비점을 완충할 수 있는 적극적인 대안일 수 있다. 사실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국가(정부)가 제공하는 공적금융은 지금 당장이라도 서민들의 급전수요와 관련된 진정한 서민금융이자 대체 공급원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다. 정부의 대표적 공적금융인 국민주택기금을 활용한 저소득층 전세자금 대출제도를 보자. 이 제도를 이용할 경우,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저소득층 연4.5%, 영세민 연2%, 소년소녀 가정 0%)으로 자금을 조달해 장기간 사용(저소득층 최장 6년, 영세민 15년, 소년소녀 가정 만20세까지)할 수 있고, 저소득층 전세자금 대출수요의 상당부분이 이 제도를 통해 흡수되고 있다.
어쨌든 서민금융 문제에 대한 현명한 대안을 고민할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노동부가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공급하는 저소득층 근로자 등에 대한 생활안정자금(의료비, 혼례비, 장례비, 노부모요양비, 생계비 등) 대출제도다. 비록 광범위한 수요에 비해 마련된 자금은 지극히 열악한 수준(2010년 자금공급계획: 근로자 생활안정자금 대출 288억 원 등)이지만, 연3%, 1년 거치 3년 분할상환 등 시장을 통해서는 도무지 불가능한 조건으로 저소득층 노동자 등에게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따라서 바로 이 제도를 저소득층 일반의 생계비 등의 대출로까지 확대하고 상환기간을 연장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면 저소득층의 생활에 필요한 급전수요 대부분을 충족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공적금융으로 저소득층의 생활에 필요한 급전수요를 충족시키고자 할 때, 세부적으로 보완해야 할 문제도 여럿 있다. 예를 들면 대출받은 자금을 빚 돌려막기에 사용하지 않고 생활비나 병원비 등 용도에 맞게 사용되도록 보완해야 한다. 생활비나 병원비 등의 특정 용도에 맞을 때만 일정한도에서 결제가 가능한 특수카드를 발급하는 방식으로 대출한다든지, 자금 사용에 대한 구체적인 사후점검 시스템을 마련한다든지 하는 해법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 원인과 해답 등이 이와 같다면 결국 남는 문제는 하나다. 문제의 구체적 해결을 위한 행동이 바로 그것이다. 즉 서민금융의 탈을 쓴 고리 대부업을 걷어내고 진정한 서민금융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그리고 특히 정부와 국회의 태도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프린트 했어요 ^^ 잘 읽어볼게요 (늙었는지 화면으로는 긴 글을 못 읽겠네요;;) 며칠 뒤에 봐요~ - 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