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폭력 내규를 위한 수다회 제안을 했는데

밑에 각생이 몇 가지 이야기를 적어주어서요.

간단히 댓글을 달려다가 너무 길어져서 따로 올립니다.

긴 글이니, 시간 넉넉하실 때 하나 하나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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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갖던 생각을 하나 이야기해볼게요.

최근에도 이 문제를 다루면서 자꾸 걸리는 게...

우리는 성폭력을 다루는 언어 자체에 어떤 혐오와 불안, 금기를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거에요.

저도 그렇지만 종종 우리는 성폭력 사건에 대해 앞 부분은 생략하고 '사건'이라고 표현하죠.

우리 스스로 '성폭력'이라는 말 자체에도 금기를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중요한 건, 왜 우리가 성폭력을 성폭력이라고 말하지 못하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그리고

주변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그'성폭력'이란 단어는 특정 사건 이상의 어떤 뉘앙스를 가지죠. '치욕'이나 '불명예' 같은.

내가 피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그 자체를 자각하는 순간부터(여럿에게 알리는 건 차치하고도)

스스로  치욕과 불명예를 의식하게 된단 말이죠.

성적 자유에 대한 담론이 아무리 많다 해도,

결국 현실에서의 성희롱이나 성폭력에 대한 자유로운 담론은 그마만큼 이루어지지 않는 걸 보면

분명 뭔가 이상하죠.

 

제일 어려운 것은 주변에 피해자가 생길 때

그 사건에 대한 발화로 인해 성폭력이라는 말이 갖는 치욕과 불명예의 이미지가 가해자가 아니라, 혹은 가해자를 포함해서

피해자에게 되돌아갈까봐 생기는 곤란이 아닌가 싶어요.

실제로 성폭력 피해는 피해자에겐 때로 감당하기 힘든 충격과 고통을 줄 수 있으므로

사건 자체를 건조하게 논의하기조차 무척 꺼려진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건 성폭력 피해가 갖는 특수성이기도 할 거에요.

피해자 자신이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깊은 상처 속에서 헤매고 있다면 더더욱

그 사건 자체를 암시하는 어떤 말도 2차 가해에 해당할 수 있는 거니까요.

 

동시에 어떤 액션도 취하지 못하고 쉽게 방관자가 되는 것도 좋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 같은데,

저도 그 부분은 동의해요.

오히려

성희롱이나 성폭력 사건을 목격했다면, 혹은 알게 되었다면 젤 필요한 건 스피드!

알게된 순간 즉각적으로 피해자에게 충분히 호의와 연대심을 가지고 자신의 포지션을 드러내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건 발생 이후 시간이 흐르도록 아무도 그 문제를 거론하거나 관심조차 없다면 피해자가

고립감을 느끼거나, 자칫 피해의 원인을 자신으로 돌리면서 자책하거나, 사건을 부인하게도 되기까지 합니다.

즉,

왜 아무도 관심이 없지? 내가 문제가 있었던 것일 수도 있어.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나?

이런 식으로요.

실은 누군가는 같이 얘기했으면 좋겠고, 가해자가 잘못한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자신의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는 것을 알고 있고

사실을 명확하게 확인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 조용하게 방관하고 있다면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 게 수순이거든요. 억지로 기억에서 지우려고 하면서
더 깊은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는 거에요.
해결은 요원해지고요.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실례가 되거나 2차가해가 될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일차적으로 즉시 조용한 곳에서, 무심한 듯 진실되게 "괜찮아? ""혹시 불편한 것 없었나요?" 하면서 말을 걸고

분위기를 봐서 그 자리에서 바로 이야기를 하는 게 더 나을 때도 있죠.

가해자에게 "너 지금 무슨 행동을 한 거야?"하고 물을 수도 있고요. 일단은 곧바로

그 사건에 대해 피해자의 편임을 간접적으로나마 표현해주는 게 좋지 않나...

그런게 큰 힘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자 입장에선 이미 그런 지원과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혼란스럽고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자기 느낌을 믿고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도 있고요.
한마디로 
자책이나 불명예가 아니라 문제 해결, 혹은 치유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단, 제3자로서 사건을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 피해자에게 함부로

방금 있던 사건이 무엇이었고,  너는  어떻게 해야한다고 지정해주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이 들고요.

사실 피해자는 스스로 이 부분을 가장 첨예하게 느끼고 고민할 사람이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잘 풀어낼 시간과 여유, 적절한 상대가 필요할 뿐이죠.

따라서 이런 부분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런 부분은 피해자 본인이 스스로 고민하고 먼저 말을 꺼내면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

피해자가 자기를 배려하고 스스로 용기를 내는 어떤 때 자연스레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물론 그러려면 일상에서 이와 같은 이야기들이 이루어지고,
피해자에 대한 지지가 당연히 이루어질 것 같은 어떤 분위기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2차 가해의 부분은...

이 부분을 다루기 전에 떠오르는 말이 '피해자 중심주의'입니다.

피해자가 사건에 대해 어떻게 말을 하든 안하든,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타인에게 전달할 때는 한 번 더 생각해야 할 거에요.

사건을 공론화하는 게 피해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정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고싶다면, 지금 피해자가 어떻게 느낄 것이냐 하는 부분을 마음에 담아두고

피해자가 은근 이 문제가 사람들 사이에 오르내리길 원하는지, 어떤 형식으로 얘기되길 바라는지

아니면 침묵하길 원하는지를 차분히 피해자에게 확인하고

자신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역시 확답해주는 것이 먼저 필요할 거에요. (너도 나도 가서 묻는 게 아니라, 그럴만한 사람이어야겠죠)
그리고 어떤 확답을 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하고요.

다만, 피해자와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면 그런 사람들은 일단은 침묵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제일 어려운 게...  '루머'의 형태로 이야기가 퍼지면

사실 관계도 어그러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원치 않는 압박감 내지는 수치심을 느끼는 게 당연하겠죠.
피해자로 하여금 지나친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사건을 오히려 묻어두고 싶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즉, 피해 자체를 드러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일순위가 아니라

피해자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지가 일순위라는 뜻입니다.

그밖의 문제는, 피해자의 욕구보다는 관찰자 자신의 욕구가 넘치기 때문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뭔가 알고 있고, 큰 문제인데 아무 말 못한다면 답답하고 불편하겠죠.
그렇지만 피해자에 대해서는 어떤 강요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강요가 될만한 어떤 언행도 자제했으면 하고요

(관계에 따라 어떻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접어둡시다. 피해자는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원하는 사람에게 요청할 거에요)
가해자에 대해서는 다이다이로 해결해야한다는 것.

그것이 저의 원칙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성폭력은 대개, 성 자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무슨 말이냐면, 그 외에 모든 위계가 겹쳐질 뿐 아니라

심지어 위계 불문하고 작동하는 힘이 있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피해자의 욕구나 생존과 관계된 어떤 공간에서는
피해사실이 밝혀지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게 불이익이나 불명예를 불러올 것이라는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는 거죠.
가해자가 나이가 많고 자신보다 그 공간에서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듯이 보이는 경우는 대부분 사건 공개를 꺼리게 되고
심지어 가해자가 어리고, 자신보다 서열상 낮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에도
사건을 묻어두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그 공간이 피해자에게 필요하면 필요할수록 말입니다.
그 공간에서 활동하고 생존하는 것과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맞물려 있을 땐
어떤 위치에 있는 누구든지간에 피해를 당하고도 말하지 못하고 회피/부인하게 되는 건 너무도 많이 있는 일이라서요.
이런 경우, 그 공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관계들과 상관없이
성폭력 사건을 그 자체로 다룰 수 있다는 사회적 약속 같은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일단
반성폭력 내규를 제안드렸던 것이고요.
더 나아가, 빈마을 사업으로 꾸려서 정기적으로 전문기관으로부터 교육을 받도록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내부의 성평등위원회 등을 상설 운영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전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나 일단 좀 열심히 해보구요-

 

아까 서두에서,
성폭력이라는 말 자체를 잘 못한다는 문제에 대해 돌아가 말하자면,
우리는 어쩌면 성폭력이라는 말 자체가 갖는 그런 뉘앙스가 피해자에게 덧씌워질 것을 걱정하기 때문에
밖으로 잘 꺼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그런 표상 때문에, 피해자는 더더욱 자신의 상황을 발화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어요.

한마디로 요즘 드는 생각은,
강요된 '치욕'과 '불명예'의 표상이 오히려 피해자가 스스로 자기의 피해사실을 공론화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폭력, 성희롱이라는 단어에 대해 스스로 혐오감이나 금기를 갖지 않고 말하자는 주의고요.
다만 피해사실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사실이나 느낌이나 판단은 피해자가 자기 중심을 갖고 말할 수 있도록 전심전력으로 지지하자는 주읩니다.

 

긴 글 읽어주어 고맙습니다.

뭐 저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제가 지금껏 이런 저런 경우를 겪으면서 내린 결론입니다.

다른 의견이나 제안이나 혹은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 있으면 자유롭게 이야기를 덧붙여주심 좋겠습니다.

저도 많이 배우고 싶어요-

 

그럼... 또 생각날 때 하고싶은 말 마구 쓰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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