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겨울이 간다

조회 수 2419 추천 수 0 2013.03.13 20:5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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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겨울이 간다


- 주노정


지난해 3월부터 친구들이 세들어 살기 시작한 단독주택에, 늦은 봄인 5월 부터 제가 ‘쳐들어가’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해가 바뀌어 다시 3월이 되었고, 겨울을 막 벗어나고 있으니 나름 사계절을 다 지내본 셈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은 거실에 창도 크고, 방도 3개나 있을 정도로 작은 규모가 아니어서 그런지 살기에 부족함이 없고 참 좋았습니다. 적어도 가을까지는 말입니다. 그런데 올 겨울을 보내고 나니, 다음 겨울이 오는 것이 두려워졌습니다. ‘전세계약이 2년이니 한해만 더 살고 나가자’ 라는 생각도, 겨울 동파 등의 문제로 어려움이 닥친 매 순간마다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주거 활동의 대부분의 시간을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보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살기 전, 그러니까 아파트에 살 때에는 단독주택에서 사는 것의 어려움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뉴스에서 떠드는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지금, 서울에 사는 사람들 중 70% 이상은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까, 주택에서 살아보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처럼 단독주택에서 사는 것의 어려움을 ‘진정’ 헤아리기는 쉽지는 않겠지요. 여러 다른 문제도 그렇겠지만, 주거 문제는 특히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지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아파트라는 공간은 요즘 대두되는 층간 소음을 제외하면 정신적으로 크게 문제 생길 일도 없고, 물리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사는데에 불편함을 느끼긴 어렵습니다. ‘관리비’만 내면 알아서 다 해주니까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일도, 받을 일도 거의 없습니다. 그렇게 ‘태평성대’하며 살던 사람이 단독주택에 세들어 살며 느끼는 불편함은 이루말할 수 없겠지요.


지금 제가 사는 집은 지어진지 3, 40년 됐습니다. 집이 이정도로 오래되면, 예컨대 이렇습니다. 애시당초 제대로 건물을 짓지 않은 까닭도 크겠지만, 어찌됐든 벽에서 물이 뿜어져 나옵니다. 벽지는 다 젖어, 곰팡이의 천국이 됩니다. 눈이나 비가 올때면, 천장에 달린 형광등 이음새 구멍에서 폭포수처럼 물이 펑펑 쏟아져내려오는 것을 온 몸으로 맞을 각오해야 합니다. 부엌은 이미 물바다이고, 변기 물은 내려가지도 않습니다. 집안이 온통 ‘물’로 가득한데, 정작 쓸 수 있는 ‘물’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쓰다보니 저는 마치 아파트 예찬론자이고, 오래된 단독주택에 대해 비관적인 이야기들로 도배를 해놓은 것 같습니다. ‘편리함’을 위한다면 아파트에 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어쩌면 저와 같은 경제적 수준에 있는, 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아파트에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해도 크게 지나친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파트에 꽤 오래 살아봤던 제가 느끼기에 요즘 아파트는 ‘그것’말고는 아무것도 누릴 것이 없어보입니다. 마치 편리함으로 인해 생긴 ‘공동화현상’처럼 모든 것이 ‘황폐’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50cm 벽을 위아래로 두고 살며 물리적으로는 매우 가까워졌지만, 정작 누군가 이사를 와도 ‘떡’하나 돌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미 이웃간의 정서적 교류는 자기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희망사항’이 되어버렸습니다.


지난 겨울을 이제 떠나보낼 때가 되었습니다. 제가 보낸다고 해서 가는 것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나면 다시 겨울이 올것이고 힘든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수도관은 또 얼어서 막힐 것이고, 역류할 것입니다. 설거지를 할 수도, 밥을 지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소변이 마려워도 참을 것이며, 역류한 물로 바닥은 물바다가 될 것이고, 걸레질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겠지요.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을 받기 위해 집에서 쓰고 있는 양동이를 총동원하여 바닥에 늘어놓게 될 것이고, 집 안에서 걷기 조차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사는 집이 좋습니다.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어서, 친구들과 서로 들들 볶으며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가더라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여서 좋습니다. 지금처럼 오래되어 살기어렵고 볼품 없어보이는 집에서 살지라도, ‘우리’의 손으로, 망치로 볼트로 너트로 때리고 조이며 ‘같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번 위클리 수유너머 150호는 도시의 조그만 주거공간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여자들의 겨울나기 모습을 담았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홀로 살든 같이 살든, 사람 사는 모양은 다 똑같을까요?


손님

2013.03.15 05:53:08

아파트에 빈집이 생긴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ㅎㅎ

겨울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으면 좋겠는데.

2년 뒤에 재계약을 할지 고민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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