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나 사무실을 구하고 이사를 다니면서 알게된 건, 거기에 들어가있는 전세금/보증금을 돌려받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 옆집을 계약할 때도, 주인은 계약서를 갱신할 뿐 실제로 돈은 우리 주머니에서 전에 살던 세입자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일 뿐이었다. 윗집을 뺄때도 그러했지만 집주인이란 작자들은 생각보다 무능력자들이다. 자기가 빌린 돈 제 때에 값을 줄도 모르는.


그렇게 모인 전세금들이 2008년 말 기준으로 233조원에 달한다. 2008년 우리나라 예산 전체가 239조원이라고 하니까, 이 나라를 굴릴만한 규모의 돈이 부동산에 묶여있는 것이다. 결국 집이 없는 민초들을 세금을 두 번 내는 셈. 한 번은 국가에, 한 번은 집주인에게. 두 번째 세금으로 땅을 사건, 집을 사건, 펀드를 사건, 우리의 삶을 갉아먹는데 사용되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그 돈이 땅과 집으로 가면 우리의 주거비용이 올라가고, 그 돈으로 원자재를 사면 물가가 올라가고, 기업에 투자되면 구조조정이 뒤따른다. 그리고 빠지기.


또 최근에 안 사실인데, 전세제도라는 것은 한국에만 있다고 한다. 가끔 외국친구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집을 소유한다는 것(소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놀라는데, 그것보다 더 이해못하는 것은 전세제도라고. 물론, 어느나라에나 보증금이라는 것을 있겠지만, 그것은 세입자가 월세를 밀리거나 안 낼 수도있기에 월세의 1~2배 정도 되는 금액을 미리 받아두는 것 ─말 그대로 정말 보증금─ 이지, 우리나라의 전세개념과는 다르다. 지구인들에게 주거는 매월 조금씩 지출하면서 해결해나가는 것. 그렇게 해도 앞 날이 불안하지 않기에 가능한 것이겠지. 물론, 더 깊이 생각해보면 도대체 땅을 누군가 소유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왜 땅값을 누군가에게 내야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부동산 계급사회>를 쓴 손낙구에 따르면, 한국에서 전세제도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집값과 전셋값이 꾸준히 오르기 때문이다. (참고: 전세방은 왜 한국에만 있을까) 집값이 떨어진다면, 또 이 거품이 무너지고 부동산 시장이 붕괴된다면 전세값을 온전히 돌려줄 수 있는 집주인을 없을 것이다. (혁명의 진행과 우리의 전세금/출자금은 반비례 관계 T.T) 그들은 망하고, 우리도 고통스럽다. 그런데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려면 그 고통스러운 길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집값은 좀 떨어질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집을 투자대상이 아니라 삶의 장소로 바꾸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주거운동의 기본적인 고민이면서 또 이 시대 한국의 자본주의에 저항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일 것이다. 지방선거에 '진보'라는 이름으로 출마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산가치 하락!"이라는 공약을 내세워야하지 않을까?


빈집이 하나의 주거운동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집값과 시대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혼자서는 당연히 내년에 전세금이 또 오를테지, 오를거야,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겠지만, 우리가 모였을 때는 좀 더 공격적인 고민을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는 나약하지만 모여서는 강하기 때문에─ 모이는 것이고. 만약에 우리가 모여서까지 지금의 현실(집값의 상승)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상정하고 그것에 적응하려고만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슬픈 일일 것이다. 아무튼 모였을 때 실천의 결들은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의 사례들과 역사 전체를 참조할 수 있다.



좀 더 빈집의 현실적은 문제에서 다시 이야기를 출발해보면, 이번주에 말랴/달군 등과 얘기하면서 빈마을금고를 통해 새로운 출자금을 모으는 것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약간은 자가증식되는 금고의 모델이 가능하다. 지금 빈집에 출자된 모든 돈을 금고에 넣고, 다시 집별로 대출을 받고, 이자를 부담하고, 그 중에 일부는 금고에 쌓이고. 그렇게 한달에 30~40만원은 쌓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저것 추가수입이 있을 수 있다고 치면 1년에 500만원?!


아무튼 이런 고민을 하는 우리의 상황은 매우 긍정적이다. 빈집은 확장이 필요해. 그 말은 현실은 되게 엄혹하고, 빈집은 그 현실을 누수시킬 수 있는 하나의 구멍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고. 그리고 우리는 그 방법을 찾고 있다. 근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자'라는 개념이 맘에 걸린다. 누군가 이 운동에 함께 하고, 빈집에 함께 살고자 할 때, 출자에 대해서, 또 이렇게 사는 것에 대해서, 이것의 효과들에 대해서, 더 많은 얘기들이 오갔으면 좋겠는데. '이자'라는 개념은 그 모든 이야기를 자기 안으로 환원할 수도 있는 강력한 개념, 시대의 적자이다. 사실 아무런 설명이 필요없을 수 있다. "누군가 출자를 했고, 그 돈에 대해서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설명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것이 하나의 블랙홀이 될 것만 같다.


'이자'는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도 긴 이야기를 필요로 하겠지만, 간략하게 말해서 그것은 경제성장이 지속되기 때문에 가능하다. 전세제도가 집값의 지속적인 상승에 의해서 가능하듯이. 그런데 우리가 '이자'라는 개념을 빌려올 필요가 있는가?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이 빈집의 확장이고, 그 자체로 주거운동이라면, 또 살아가는데 분담금 만큼이나 출자도 당연히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하고 필요한 출자를 하면 될 일이다. 무엇보다도 미래를 위한 출자이고, 도래할 동거인을 위한 출자이다. 특히 출자금액의 정확한 사용처가 미리 정해져있으면 좋을 것 같다. 예컨대, 매년 2월 21일 빈집을 하나씩 더 만든다던지 등의. 또 이 금고를 살찌우고, 이러한 주거형태를 확산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을 것 같다. 예컨대, 어쩌다보니 집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 진보친구들의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집을 늘린다던지. (뭔가 저들의 기반을 허약하게 만드는 속임수?) 그러자면 그들에게 급작스럽게 돈이 필요할 때(아플 때 등) 금고에서 융통할 수 있는 여유분 등도 필요한 것 같고. 이런 것들은 '이자'라는 합리적인 설명이 없어도 '자산가치 하락'이라는 우리의 운동 속에서 진행될 수 있지 않을까? '이자'로 설명되었을 적에, 이렇게 합리적인 비용으로 살 수 있는 곳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많아도, 이 주거실험과 시대에 대한 똥침을 함게 하기 위한 주인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고? 아니, 혹은 그럴지도. 그러나 빈집은 사는 곳이 아니라 하는 것이라고!



헥헥, 이번주에 말랴/달군 등과 이야기하면서 조금 진전시켜본 생각입니다. 윽, 뭔가 길어졌네.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당신 정말 고마워요. 다른 이들도 고민을 나누어주었으면 :) (ㅅ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