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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선생님이 강의 관련 자료를 두 개 보내주셨습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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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망하지 않은 비결, 한밭레츠 이야기
김성훈
공부하는 사람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가 아니라 공부하기 위해 어떤 종류의 사물과 사람들을 접촉하기를 원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반 일리히
지역화폐운동의 역설
우리 스스로 새로워지지 않고서는, 달라지지 않고서는 새로운 세계, 다른 세계를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식과 정보를 찾아다니고 높은 학교를 다니며, 그 이후에도 여러 교육기관을 찾아 학습한다. 그런데 정작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관계, 다른 관계를 맺고자 하는 것에 정성을 들이고 있을까? 다른 관계를 맺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없고, 다른 사람이 되지 않으면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없지 않은가?
한밭레츠의 LETS는 지역교환거래체계(Local Exchange & Trading System)의 약자이다. 이 시스템은 지역민이 스스로 발행하는 화폐를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다양한 “지역화폐”운동의 하나로 소개된다. 민주적이어야 할 국가가 실제로는 지배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듯이 현행화폐가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발행되고 있으며, 나아가 이자에 기반하여 유통됨으로써 우리의 살림살이와 그 관계를 승자독식의 자기파괴적 경쟁관계로 몰고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지역화폐를 상상하게 된다. 그래서 여기저기 새로운 개념의 화폐를 만들어보지만 실제 이것이 잘 되는 경우는 드물다. 문제는 화폐 그 자체가 아니라 화폐가 교환되는 ‘관계’가 더 본질적이기 때문이다. 지역화폐를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방식이 사고 팔기의 상품-화폐-경쟁관계가 아니라 주고 받고 되돌려주는 호혜와 재분배의 관계가 아니고서는 지역화폐시스템은 작동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역화폐를 통해 공동체를 복원하고자 하지만 공동체가 복원되지 않고서는 지역화폐는 돌지 않는 역설, 새로운 대안의 시작은 항상 이렇게 자기가 극복하려는 문제를 정면돌파할 것을 요구받는다.
13살의 한밭레츠는 망하지 않은 사례일 뿐, 성공사례라고 하기 어렵다. 돈이 없어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지만 현재의 한밭레츠 역시 가난한 사람들은 접근하기에 많은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 지역화폐를 시도했던 수많은 단체가 명멸을 거듭할 때, 유독 한밭레츠만은 망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점은 분명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실천의 핵심으로 다른경제를 모색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시사점이 있을 것이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망하지 않기,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지금도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도움닫기의 발판일 것이다.
다른 관계, 어떻게 만들 것인가?
1999년 한밭레츠를 시작하였다. 레츠시스템과 "두루"라는 화폐명을 지은 것으로 인간의 얼굴을 한 돈이 발행된 것일까? 당시 전국 20여개의 지역화폐 단체가 출발했지만 한밭레츠를 제외하고 모두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은 시스템을 만들고 화폐명을 지었지만 화폐를 발행하는 것에는 실패한 것이다. 화폐를 발행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70여명의 회원이 거래를 시작하자고 모였지만 거래는 잘 일어나지 않았다. 거래품목의 제한, 불편한 계정관리 시스템 등이 지적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치명적이었던 것은 사람들이 서로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지역화폐는 지역주민이 스스로 화폐를 발행함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화폐를 발행한다는 것은 어느 한 개인의 사적인 행위일 수 없다. 교환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물 교환이 아닌 가치의 표현으로서의 화폐는 약속을 전제로 한다.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이것이 신용이다. 너에게 노동이나 재화를 제공한 댓가로 얻은 화폐는 장차 나의 필요와 욕구를 해결하는데 같은 가치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화폐는 유통될 수 없으며 유통되지 않는 화폐는 화폐가 아니다.
즉, 화폐를 발행한다는 것은 유예된 가치 이전에 대한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사회적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행위이다. 또한 그 화폐를 사용할 수 있는 시장이 매력적이어야 한다. 좋은 재화와 서비스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2012년 1월 현재 한국에는 약 40여개의 단체들이 지역화폐를 발행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화폐발행의 본질에 대한 이해 없이 기술적 시스템의 도입만 하면 저절로 지역화폐가 유통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역시 만연해 있다.
국가화폐는 국가의 권력으로 화폐의 신용을 창조하고 또 보증한다. 그로인해 그들은 세뇨리지, 즉 화폐발행권자의 이익을 얻어 권력을 강화한다. 국가권력의 성격이 특정한 사익추구집단의 이익을 대변할 경우, 화폐발행의 논리는 항상 사익추구집단의 이익을 반영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그 집단으로부터 배제된 다수의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물가상승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재산을 화폐발행권자와 그 무리들에게 빼앗기게 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예금보다 더 많은 돈을 대출하는 은행을 통해 그 어떤 노동과 자연에 대한 근거도 없이 이자수입을 목표로 화폐발행이 지속되는 시스템은 결국 자기파멸외에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지역화폐는 다르게 표현하면 사회화폐이다. 이때 사회란 특정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억압기구로서의 국가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사람과 사람이 관계 통해 살아가는 터전을 의미한다. 복지국가 이전에 복지사회를 만들자는 구호는 기본적으로 제도와 법률, 억압적 기구를 통한 강제적 방식 이전에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사람과 사람의 호혜적인 결사를 근본으로 삼고자하는 의지표현인 것이다. 물론 이 둘은 상호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역화폐를 사회화폐라고 이해할 때, 우리는 ‘지역’이란 말 속에, 호혜 관계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지역은 지역민과 지역사회를 위한 화폐가 발행되기에 충분할 만큼 호혜적일까? 그들의 자율성과 자발성은 지역화폐를 위해 충분한가?
여기에 지역화폐의 첫 번째 딜레마를 만난다. 지역화폐를 통해 호혜적인 지역사회, 자율성과 자발성의 결사체를 만들고자 하지만 그것이 지역화폐의 ‘결과’가 아니라 ‘전제’라는 것이다.
한국사회 LETS를 하는 거의 모든 단체는 한밭레츠에서 시작된 3가지 호혜 관계 형성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다. 우리가 이것을 처음 제안할 때, 이것은 거래를 촉진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우리 안에서 지속되고 타 지역으로 확장되어 적용되는 것을 보면서 어떤 보편적인 것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단지 어떤 단체가 우연적으로 시도한 프로그램의 한 형식이 아니라, 이해관계 대립의 관계를 상호연대의 관계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다음 세 가지 프로그램으로부터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품앗이 만찬>, <품앗이 학교>, <품앗이놀이>이다.
호혜시장으로서의 품앗이 만찬
시장경제체제가 사회를 시장화하는 것이었다면 호혜시장은 이를 뒤집어 시장을 사회화한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연대와 협동의 원리로 살림살이를 사회화하는 곳, 이것을 호혜시장이라고 부른다. 지역통화운동을 비롯한 협동조합 운동 등의 사회적경제조직의 운영전략의 핵심은 사회에 호소하고 협동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하고 호혜적 관계원리에 따라 각자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를 나눌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화폐 이전에 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관계로부터 서로의 살림살이를 나누어 더 풍부해지는 시장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시장을 어떻게 만들까?
우리는 우선 함께 밥을 먹기로 했다. 각자 준비한 음식을 가지고 모여 서로의 것을 나누어 먹는다. 이것은 포트럭파티이며 포트럭파티는 포틀래치로부터 연유한다. 포틀래치는 북미태평양 연안에 사는 인디언부족들이 사용하던 말로 ‘주다’, ‘베풀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부족의 우두머리가 베푸는 행사로 출산, 성인식, 결혼식, 장례식등에 열렸으며, 특별히 기념해야할 일이 있을 때 열렸다고 한다. 이 행사를 위해 행사 주최자는 모은 카누, 사발과 숟가락, 조각품, 도구, 담요 같은 물건들을 손님들에게 나눠줌으로써 자신의 부와 명성을 과시했다고 한다. 이러한 포틀래치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는 시도로 해석되고 있다. 한밭레츠는 이러한 행사를 품앗이 만찬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문화인류학적 지식을 가지고 시도된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경계심을 허물고 친해지지 않으면 호혜시장이 만들어지지 않고 지역화폐 거래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어떻게 서로 잘 만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그것이 함께 먹는 일이라고 생각되었기에 시작한 것이다. 서로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금새 친해졌고, 벽을 허물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으며, 춤이 있었고 노래가 있었다. 그리고 각자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 싶은 선물을 가지고 와서 지역화폐 ‘두루’로 나누었다. 처음 이 행사는 15가구 30명 정도가 참여하였는데, 이날 만남은 사람들에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지역화폐 시스템을 설명하기란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서로 어려웠고 자세히 설명하려 할수록 서로가 고통스러웠는데, 품앗이 만찬을 경험하면 그 어떤 설명보다 이 모임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 모임인지 잘 알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따뜻하고 편안했으며 즐거웠다. 2000년 287건의 거래는 대부분 2달에 한번씩 진행된 품앗이 만찬에서 이루어진 거래였다. 여기엔 경쟁 대신 호혜, 상품 대신 선물이 있었고 무엇보다 함께 먹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서로 식구(食口)가 되었다.
관계로서 배우는 품앗이학교
한밭레츠는 처음 회원가입할 때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것과 요청하고 싶은 것을 적는다. 이것은 하나의 거래목록으로 만들어져 배포되고, 홈페이지 ‘거래하고 싶어요’ 게시판에 게시된다. 이중 많은 거래요청이 무엇인가 배우고 싶다거나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요리, 홈패션, 영어, 일본어 등 외국어, 컴퓨터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다루기 등등.
그런데 막상 이러한 거래는 잘 성사되지 않는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왜 거래가 되지 않을까? 그것은 1:1거래가 주는 불편함 때문이다. 단둘이 가르치고 배운다고 할 때, 특별한 신뢰관계가 있지 않고서는 좀처럼 거래할 맘이 나지 않는 것이다. 더군다나 비용에 대한 부담, 그것을 상호 협의하는 과정도 불편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품앗이 학교였다. 처음 시작한 품앗이 학교는 컴퓨터 교실이었다. 당시 퍼스널 컴퓨터가 대세를 이루기 시작할 때 주부와 노인들은 당황하고 있었고 어디서 어떻게 배워야 할지 막막하고 낯설어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이런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곳이 많이 있지만 당시만 해도 마땅치 않았었다. 평소 회원들에게 컴퓨터 A/S를 하던 한 회원이 선생님이 되어 교실을 열자, 그를 신뢰하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컴퓨터 교실에 참여했다. 이 과정은 단지 컴퓨터를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교실에 함께 한 사람들을 묶어주었다. 어쩌면 컴퓨터보다 삶의 교류의 장으로서 이 모임의 가치가 빛을 발했다. 뒤이어 뜨개질 교실, 일본어교실, 친환경 세제 만들기 교실, 요리교실, 다도교실, 요가교실 등의 품앗이 학교는 지속되었고 이 모임은 관계의 깊이를 깊게 하였다. 누구나 배워야 하고 누구나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공부라는 것은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부터 온다는 것, 관계가 맺어지면 훨씬 잘 배울 수 있고, 특정한 과목 때문에 모이더라도 그 이상의 것을 항상 더 배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돈이 목적이지 않았을 때, 학습의 효과는 더욱 높아지며, 묻지 않은 것 까지 알려주기 위해 애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돈벌이가 아니라 살림살이를 위한 경제 만들기, 품앗이 놀이
쪽지를 2장씩 나누어준다. 그리고 각각 쪽지 상단에 ‘-(요청할 것)’, ‘+(제공할 것)’을 적는다. 그리고 참여한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앉아 각 쪽지에 5가지 이상의 것을 적는다.
-(요청할 것)
아무개
1.밑반찬
2.우리 아이 중2 수학과외
3. 집안 정리정돈
4. 편찮으신 어머니 병원 모셔다 주기
5. 함께 등산할 사람.
+(제공할 것)
아무개
1. 일본어 가르쳐주기
2. 문서편집
3. 자동차 운전 및 차 대여
4. 술 담그는 법
5. 주말에 아이 봐주기
막상 쪽지를 나누어주고 써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깊은 명상 상태에 빠진다. 의외로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적는 것에도 어려움을 느낀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하루에도 수많은 것들을 구매하고 소비하며 사는 현대인들이 자신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적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이. 어떤 사람들은 쉽게 써놓고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나중에 발표를 하도록 하면, “돈”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를 통해 알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삶에 필요한 것을 얻기위해 구체적인 재화, 그 재화를 만들어내는 노동, 그것이 나에게 오기까지의 관계를 생각할 필요 없이, 오직 돈만을 구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자나깨나 돈벌 궁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이것이 화폐 물신화였다는 것을.
품앗이 놀이는 그 돈을 지우고 돈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권유한다. 그순간 사람들은 그동안 잊고 있던 사람과 그 관계, 자연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발표하고 그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 재능을 보기 시작한다. 만난지 10년이 지나도 알 수 없었던 서로의 살림살이, 현재의 욕구가 아주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해와 공감, 웃음과 울음이 어우러진다. 10명에서 15명 정도가 모여 두시간 정도 이렇게 만나면 이제 우리는 서로가 왜 필요한지, 우리 삶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또 이런 것도 모르고 각자 살기에 바빴다는 것을 자각한다. 품앗이 놀이는 탁월한 자기소개 방식이며 관계 방식이다. 이것은 비단 지역통화를 하고자 하지 않아도 공동체 관계형성을 위해서, 때로는 지역조사 방법론으로도 유효하다.
한밭레츠를 기반으로 다른 경제, 다른 마을 만들기 실험, 민들레의료생협
한밭레츠 초기, 의사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양한방 의사가 가입하고 지역공동체 운동에 뜻을 둔 레스토랑이 가입하였다. 연이어 친환경 농업을 하는 농부가 가입하면서 선순환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나누어 먹는 품앗이 만찬을 통해 더욱 가까워졌다.
2000년 의약분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는데 한밭레츠에서는 당시 가입한 의료인들과 ‘국민 건강권’을 화두로 자연스럽게 토론이 이루어졌다. 특히 새로 가입한 내과 전문의 나준식 회원은 당시 징병검사의사로 있으면서 의사로서가 아니라 아이 둘을 키우는 직장인이자 생활인으로서 회원들과 관계하였다. 그는 아이들 옷이나 장난감 등의 재활용품이나 농사일 돕기 등 노동력을 주고받으면서 회원들과 가까워졌다. 회원 중에서 밤늦게 갑자기 아이가 고열에 시달린다거나 본인이나 가족에게 심각한 질환이 발생하였을 경우 그를 찾아 상담하곤 하였다. 회원들은 믿을 수 있는 의료인들이 자신들의 공동체에 존재한다는 것이 큰 자부심이 되었다. 나준식씨가 징병검사의사를 마치게 되었을 때, 회원들은 그를 붙잡았다. 이제 상담만이 아니라 주사도 놓고, 약도 처해주는 진짜 의사, 우리 공동체의 주치의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나아가 국가 의료제도가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할 수 없다면, 우리는 레츠를 통해 만들어진 공동체의 힘으로 바른 의료를 만들자고 하였다. 이런 취지에 맞는 형식으로 개인 의료기관이 아닌 모두가 조합원이 되어 함께 출자․이용․운영하는 협동조합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2001년 한밭레츠에 의료생협 연구모임이 만들어지고 지역사회 뜻있는 시민들을 모아 설립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호혜적 관계망으로서의 한밭레츠라는 어머니는 의료인과 지역주민이 자신과 지역사회의 건강을 위해 협동하는 민들레의료생협이라는 옥동자를 낳았다. 현재 민들레의료생협은 조합원 2500세대를 주인으로 의원, 한의원, 치과가 두 곳의 마을에서 각각 운영되고 있으며, 건강검진센터, 노인복지센터, 가정간호 사업소, 심리상담센터 등이 운영되고 있다.
한밭레츠에서 의료생협이 만들어진 것은 품앗이에서 두레로의 진화과정이다. 품앗이를 통해 호혜의 관계를 1:1로 경험하다보면 두레라는 협동노동조직, 혹은 마을 공동작업장의 필요를 느끼게 된다. 최근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자활공동체 등의 사회적경제조직들이 늘어가고 있으나 많은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사회가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를 보지 않고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것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사회적경제조직이 그 조직답게 성장하려면 우선 사회를 보아야 하고 재건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