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얘기했던, 언어-통신-DNA의 잉여성에 관한 (듯 보이지만 실은 돈 달라는) 칼럼...입니다. ㅋ
아침책읽기 조회 수 2123 추천 수 0 2015.02.12 02:16:33카이스트 교수가 아니라 부산대 교수였군요. 헷갈렸네요.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50203.22030185607
링크가 번거로울 분들을 위해 ctl+v하면,
"if u cn rd ths, u cn gt a gd jb w hi pa!"이게 무슨 말일까? 영어를 조금 아는 사람이면 다음 문장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if you can read this, you can get a good job with high pay!" 이것은 1970년대 뉴욕 지하철 포스터에 있었던 것이다. 철자를 몇 개 없애도 이해하는 데 문제없다. 이는 원래 문장이 최적화되어 있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실제 영어는 50% 이상 잉여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주어진 문장에서 철자를 절반 정도 빼더라도 이해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는 뜻이다.
언어에 잉여성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초인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군대에서 주고받는 메시지는 일부러 추가적인 잉여성을 준다. 미군은 알파벳 '에이, 비 씨, 디'를 '알파, 브라보, 찰리, 델타'라고 한다. 포격 좌표를 전달하다가 '비'를 '브이'로 착각하면 아군 진영에 포탄이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통신에도 잉여성이 있다. 전기를 이용한 통신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말을 타고 달리는 전령보다 빨리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크림전쟁의 전황을 실시간으로 런던에서 알 수 있었을 때, 인류는 최초로 시차를 경험하게 된다. 현지시간 오후 4시, 런던시간 오후 2시. 이런 표현이 필요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통신비용이 비쌌기 때문에, 보낼 메시지를 최대한 짧은 형태로 만들어야 했다.
1880년대 영국의 일부 중개상은 다섯 글자로 된 'bought(샀다)'는 세 글자 'bay'로 나타냈다. 1887년 6월 16일 필라델피아의 양모 상인 프랭크 프림로즈는 캔자스에 있는 중개인에게 50만 파운드의 양모를 샀다(!)고 전신을 보냈다. 그러나 메시지가 도착했을 때 핵심 단어인 'bay'가 'b u y(사다)'로 바뀌고 말았다. 사라는 지시로 오해한 중개인은 양모를 사들였다. 프림로즈가 웨스턴 전신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따르면 이 오류로 2만 달러의 손해가 생겼다고 한다. 메시지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DNA야말로 잉여성의 종결자다. 인간게놈 분석이 끝났을 때,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의미 있는 유전자의 개수가 너무 적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우리는 DNA의 90% 가량이 정크 DNA라 불리는 의미 없는 쓰레기 정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반전이랄까. 최근 이 쓰레기도 재활용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자연은 생명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DNA에 엄청난 잉여성을 두었지만, 진화 속에서 다시 이것을 일부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는 극악무도한 경쟁사회의 폐해를 목격하고 있다. 효율을 위해서 사람을 무더기로 해고하는 것은 예삿일이 되었다. 이 때문에 얼마나 많은 쌍용차 직원이 세상을 떠나야 했는가? 복지차원에서 만들어진 비영리병원이 하루아침에 없어지기도 한다. 돈을 아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선박의 무분별한 구조변경은 세월호 참사 원인의 하나다. 지난달 28일 미래부는 정부의 R&D 연구비도 경제적 성과가 나오는 주제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모든 것들의 근간에는 효율 지상주의, 잉여는 필요 없는 것이란 생각이 깔려있다.
어느 집단이든 1등이 있으면 꼴등이 있다. 정규분포는 상위 10%가 있으면 하위 10%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모든 것이 완벽히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잉여는 말 그대로 남는다, 필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잉여인 것과 잉여가 아닌 것을 나누려면 그 기준이 옳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한다. 기준이 영원불멸이 아니라면 오늘의 잉여가 내일의 필수가 될 수도 있고, 오늘의 필수가 내일의 잉여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잉여를 판단하는 '가치'라는 것이 대개 근거 없는 경우도 많다. 특허청 직원 아인슈타인의 잉여 연구가 상대론을, 고장 난 기계를 고치던 스티브 잡스의 잉여짓이 애플을 낳지 않았는가.
언어와 통신에서의 잉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DNA는 완벽을 위해 스스로 엄청난 잉여를 창출한다. 자연에서 잉여는 그 자체로 필수불가결하다.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사회란 잉여를 인정하는 사회다. 사실 우리의 삶을 살 만하게 만들어주는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운동, 오락 등은 모두 잉여가 아니었던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잉여의 가치를 잊어버린 것 같다.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