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은

조회 수 1349 추천 수 0 2019.06.15 07:09:37
어느 날부터 내일을 살지 않기 위해 죽음을 기다리는 때가 많아졌다. 오늘은 지독하리만큼 버거웠고, 이보다 더 무거운 것들이 나를 덮칠까봐 앞날의 존재를 밀어내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얻은 건 어떠한 시도도 아닌 손톱 물어뜯기였다. 그것은 내가 습관적으로 무언가를 바랄 때마다 튀어나오곤 했다. 물러서 희멀겋게 변하기 직전까지 물어 뜯었고 뒤늦게 정신을 차리면 손톱 밑이 훤히 드러날 만큼 짧아져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니?

k는 뭉툭한 손끝으로 맥주 캔을 땄다. 단단한 굳은 살이 벤 그의 손톱은 손가락으로 한 번 쓸어보고 싶을 만큼 둥그스름했다. 글쎄, 나는 목 언저리를 날아다니는 모기를 쫓기 위해 손을 휘저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의 무의식은 이미 손톱을 헤치고 있었기 때문에.
구멍 같은 달이 밤을 밝히고 있었다. 노을은 검게 타올라 바스라졌고 그 잿더미 아래에 앉은 우리는 맥주로 목을 축이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지. 매일매일이 소멸하는 걸 수도 있겠다. 비슷한 것들을 건축하다가도 밤이 되면 모든 것이 리셋되는 걸지도. 뭔가를 만들고 죽이는 일의 반복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생각, 어쩌면 시간이 나를 쫓는 게 아니라 내가 시간을 의식하듯이 손톱이 내 무의식을 쫓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k는 빈 캔을 구겼다. 나는 그의 모습을 잠시 쳐다봤다.

굳이, 는 아니야.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이제는 k가 나를 바라봤다. 나는 평상에 앉은 채로 변하는 건지 죽어가는 건지 모를 하늘을 눈에 담았다.

그냥 그렇게 사는 거지.

짧은 순간이었다. 내일은 내 발뒤꿈치까지 따라와 있었고, 나는 가만히 멈춰 앉아 손톱을 물어뜯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수
공지 20210225 빈집 게시판&공통장&폰 정리 회의 [1] 사씨 2021-02-26 12951
공지 '2014 겨울 사건의 가해자 A'의 게시글에 대한 빈마을 사람들의 입장 [19] 정민 2016-05-19 154608
40 제 3회 빈2분영화제~ 사씨 2020-02-12 8679
39 이번주 단기 투숙 문의 [3] 휘영 2020-02-13 33991
38 금요일 8시 차 마시는 밤 사씨 2020-02-14 1316
37 2020년 3월 회계모임 회의록 [1] 회계모임 2020-03-03 1210
36 오늘 밤! 차 마시는 밤 차밤 2020-03-03 1316
35 장투 문의드려요! [7] 문쨩 2020-03-05 3871
34 장투 관련 문의드립니다 시트러스 2020-03-12 4997
33 혹시 부산 지역에 빈집과 같은 주거 공동체가 있을까요? [2] 바분 2020-04-03 1444
32 2020년 4월 회계모임 회의록 회계모임 2020-04-12 1212
31 새 빈집폰이 생겼습니다. 사씨 2020-05-05 915
30 이번 일요일! 만들기 모임 하자~~ [1] 사씨 2020-05-16 1067
29 2020.6.14 빈마을회의 사씨 2020-06-17 1993
28 이번 주 일요일 저녁 평집에서 피자피자! [2] 사씨 2020-06-17 6912
27 7/11 제 4회 빈 2분 영화제 사씨 2020-07-04 946
26 빈집 게시판을 점검했습니다. [1] 사씨 2020-08-13 4183
25 빈집 내 따돌림과 소외에 대한 문제 제기의 건(P,S,I의 입장/사과문) [2] P,S,I 2020-08-15 1703
24 장기투숙 문의드립니다. [1] EXIT 2020-08-22 14190
23 2020년 8월 21일 마을회의~ 말회의 2020-08-22 1505
22 새 빈집 만들기 모임! 9월 4일! 새집만들자 2020-08-28 1011
21 장기투숙 문의드립니다! [1] 승아 2020-08-30 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