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 너머 위클리에 실린 고병권씨의 글입니다.


빈집에 대한 언급도 나오고, 

공간에 대한 재밌는 관점이 있네요. 

뉴욕에 있는 공간도 재미있구요.


빈집은...

'부모님을 모셔오고 싶은' 공간인가?

'어린아이가 뒹굴 수' 있는 공간인가?


시간이 난다면 같이 읽어보면서 얘기해봐도 좋을 것 같군요.



뉴욕의 활동가 co.opt와의 인터뷰-우리는 공간을 끊임없이 코뮨화한다

- 고병권(수유너머R)

- 인터뷰어 고병권(수유너머R), 통역 및 정리 Beilang, 선재(이상 Yvonne’s Attic)


뉴욕은 참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뉴욕을 찾는다. 언뜻 차이와 뒤섞임의 다양체를 생각할 수 있으나 여기만큼 그런 구성이 어려운 곳도 드물 것 같다. 계급과 인종, 민족 등의 선이 구역별로 정확히 나뉘고, 다양한 사람들은 사실상 고립된 개인들 -개별화된 채 무척 닮아 있는 개인들-처럼 보일 때가 많다. 개인과 개인, 인종과 인종, 문화와 문화의 전선들이 이 한 도시에 응집되어 있는 것 같다. 뉴욕에 처음 와서 나와 동료들은 코뮨을 찾아다니려 했다. 몇몇 매력적인 서점도 있었고 재밌는 예술가들의 작업장에 대해서도 들었다. 맨하튼에서 이루어진 예전의 스쾃들도 들었다. 그러나 그런 공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아니 아직 많이 찾지 못했다. 내가 아직 정보가 어둡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고소 이와사부로씨(<뉴욕열전>의 저자)의 소개로 브룩클린에 있는 어떤 공간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공간은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낡은 창고 건물의 일부를 빌린 것인데 그곳을 참 깨끗하고 세련된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거기서 우리는 ‘co.opt’라고 하는, 무척 아이디어가 많은 젊은 ‘이론/활동가’를 만났다. 그는 최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시위에 대해 흥미로운 입장을 개진하고 있는 소위 ‘봉기파(insurrection)’의 입장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2천 년대 이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점거 시위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1. 시애틀 이후

마드리드 광장을 장기 점거한 채 ‘참된 민주주의(democracia real)’를 요구하고 있는 스페인 대중들

마드리드 광장을 장기 점거한 채 ‘참된 민주주의 (democracia real)’를 요구하고 있는 스페인 대중들


“2005년 이전까지 폭력/비폭력, 합법/비합법, 봉기/혁명의 경향은 큰 분리 없이 함께 움직였습니다. 그것을 구분하려는 태도가 부각되지 않았지요. 그런데 그것이 이후에 두 개의 극처럼 분리되었습니다. 폭력과 비폭력을 구분하면서 심각한 문제들이 생겨났습니다.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밖으로 밀려나버렸습니다(outcast). 하지만 비폭력적인 사람들만 남았다고 좋아진 건 아닙니다. 그들은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존재들이 되었지요.” 그때 고소씨가 덧붙였다. “그것이 중요 이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면화되면서 우리가 무엇을 이룰 것인가의 문제가 부차화되어 버렸습니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평화적이기도 했고 때로는 다소 전투적이기도 했던, 말 그대로 다양성과 유연성을 갖춘 시위대의 성격이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순간 2008년, 5월 시위대와 7월 시위대를 떠올렸다. 2008년 5월 시위대에서 폭력과 비폭력 문제는 그다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5월 시위를 나중의 시각에서 보자면 비폭력 시위였지만 통상적인 비폭력 시위와 달리 매우 공격적 양상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7월 시위는 확연히 두 그룹으로 분리되었다. 장기적 점거가 아무런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판단한 이들은 쇠파이프를 들고 청와대를 향해갔고, 그런 시위가 무모한 것이라고 생각한 이들은 합법적 틀 안에서 경찰이 허용한 틀을 넘지 않은 채 문화제를 열었다. 지나치게 단순한 비유가 되겠지만 시애틀 이후 세계의 운동가들 사이에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co.opt가 말을 이었다. “이러한 구분이 전면화되자 폭력 사용을 불사하던 많은 그룹들이 언더그라운드로 잠적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비폭력 그룹들만이 이어져오고 있었지요.” 꽤 많은 그룹들이 이름만을 남긴 채 지하로 잠적했고 그 안에서 치열한 토론과 고민을 해 온 모양이다. 그들이 곧 부상할 거라고 하는데, 마치 80년대 한국의 언더서클 같은 느낌도 나고 여하튼 내 귀에는 참 신비한 이야기처럼 들렸다.

2. 우리는 혁명 개념을 거부한다

최근 많은 운동가들이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면서 ‘봉기(insurrection)’ 개념을 전면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co.opt 자신이 생각을 그렇게 정리한 듯 했다. 사실 ‘봉기’는 단순히 개념 차원에서가 아니라 최근 세계 운동의 한 흐름을 대변하는 개념이다.

내가 ‘봉기’와 ‘혁명’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단적으로 물었다. 그가 답했다. “우리는 혁명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거부합니다. 우리는 봉기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혁명 개념은 예컨대 국가 권력 장악에 너무 매몰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장악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운동 진영이 폭력과 비폭력의 두 극으로 분화되면서 가운데 영역, 아니 뭐라고 할까, 그냥 가운데라고 하기보다 그 둘로 환원되지 않는 중요한 영역을 잃어버렸습니다.”

사실 이 자리에서 봉기 개념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일본잡지 vol 4호에는 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워낙 짧은 아포리즘으로 되어 있어 이해가 쉽지 않다. 인용하자면 이렇다. “봉기란 혁명과도 반혁명과도 혼동되지 않는다. 그것은 무장투쟁도 시민불복종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존재하고 복수화할 수 있는 ‘참된 물질적 힘’인 것이다. 봉기는 그 효과성의 차원에 따라 -참가, 재생산가능성, 특수화, 확장성, 스펙타클화 등 이러저러한- ‘차이화’를 가능케 한다. 그 성공은 다양한 영토성을 관통하며 공명하게 된다.”

참고로 말하자면 내가 최근 일부 세계 운동가들이 ‘봉기’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접한 것은 하트(m. hardt)와 네그리(a. negri)의 <<커먼웰즈(common wealth)>> 마지막 부분, 그리고 우리 <위클리 수유너머>가 번역 소개하던 <<다가오는 봉기>>(판권을 가진 한국 출판사의 요청으로 연재를 중간에 중단했다)를 통해서였다. 작년에는 지구 기후협약 문제로 코펜하겐 회의에서 시위를 벌였던 일본의 활동가들도 내게 ‘봉기’ 개념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갔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죄송하게도 나는 아직 ‘봉기’ 개념을 선명히 이해하고 있지 않다. 내가 만난 co.opt은 <<다가오는 봉기>>의 저자들과 생각이 조금 다르다고 했다. 그가 더 권한 책은 티쿤(tiqqun)의 <<this is not a program>>(영역본, semiotext, 2011) 그리고 <<inroduction to civil war>>였다.(궁금한 독자들은 이상의 책자들을 참고하면 좋을 듯싶다.)



어 떻든 폭력과 비폭력 문제 논의가 길어지자 내가 ‘폭력성’과 ‘공격성’을 혼동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비폭력 시위도 매우 강한 공격성을 취할 때가 있고, 폭력 시위도 매우 방어적이고 도피적인 성격을 띨 수 있다고 했다. 오히려 이상한 말처럼 들리지만 ‘정서, 내가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어떤 <진정성>’ 같은 게 요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정서노동이라는 말이 최근 강하게 떠오르지만, 정서의 중요성은 이윤 창출을 위한 노동이나 광고 같은 데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운동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폭력과 비폭력을 통합한 ‘militancy’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옆에 있던 고소씨는 약간의 이견을 표했다. “우리가 미국 군대와 싸울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강렬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병권씨가 그점을 지적하고 있다고 봅니다.”

3. 공간의 코뮨화

우리들이 대화를 나눈 공간은 앞서 말한 것처럼 낡은 창고 건물인데 그 내부를 너무 멋지게 꾸며 놓았다. 대단한 예술적 역량이 발휘된 것이다. 대여섯 명이 평소에는 작업공간으로 사용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친구들, 활동가들에게도 개방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세미-프라이빗’ 공간이었다. 이 공간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그는 정체성이 부여될 때 그것은 확정되어 버릴 위험이 있다고 했다. 특히 공적(public) 공간으로 만들면 사람들은 거기 기대를 갖게 되고, 그럼 그 정체성이 하나의 울타리가 되어 공간 성격을 확정지어 버릴 위험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이 공간을 아주 유연하게(flexible)하게 운영합니다. 이 공간은 공적(public)인 게 아니지만 거기에도 연계를 유지하는 아주 유연한 공간입니다. 정체성도 없고 이름도 없지요. 지금 두 개의 공간을 더 만들려고 합니다. 하나는 더 사적으로 살 수 있는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공적인 성격을 더 갖는 공간이지요. 중요한 것은 공간 자체의 정체성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공간을 증식시킬 수 있느냐 여부입니다. 공간의 운영에는 경제 문제가 따릅니다. 현재 약 25명의 사람들이 함께 월세를 지불해서 좀 더 넓은 공간을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여럿이 모여서 공간을 공유해가는 것, 그러면서도 사적이지도 공적이지도 않는 유연한 공간을 만드는 것, 그것은 매우 흥미로운 실험이면서, 동시에 집세가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에서 필요불가결한 것이기도 했다. 가난한 이들의 도시 공간 전유에 대한 물음을 계속 던지자 그는 스쾃에 대한 흥미로운 의견을 들려주었다. “스쾃은 체제와 끊임없이 싸우기는 하는데, 체제 안에서 자신을 증식시키지는 못합니다. 지속성도 없고 싸우는 기간만 유지될 수 있지요. 현실적으로 자기화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공간도 너무 지저분하고요. 부모님을 모셔오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질 않아요.(웃음)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삶이 될 수 있겠습니까.”

순간 수유너머의 청결 윤리가 생각이 나서 한참 웃었다. 나도 맞장구를 쳤다. “어린아이가 뒹굴 수 없다면 그 공간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삶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을 이었다. “전 세계 인구의 30%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스쾃 중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특별한 실천이 될 수 없습니다.” 정말로 가난한 이들, 가령 ‘철거민들’은 오래 전부터 스쾃 투쟁을 해온 사람들이다. 예술가들이 특별한 예술적 실천으로서 그것을 내놓기 전부터 말이다.

“운동에 사회적 공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도 국제적으로 말이지요. 우리 자신을, 우리 신체를 국제적으로 순환시키는 것, 그것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도 이런 공간은 무척 필요해요. 이름없는 이런 공간들이 많이 생겨나면 나중에 굉장한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을 겁니다.”

코뮨들이 많이 생기면 그런 순환들이 훨씬 쉬워질 것이라고 했더니, 그는 ‘코뮨’이라는 개념 자체는 거부한다고 했다. 그때 고소씨가 덧붙였다. “코뮨을 사람들은 뭔가 평화롭고 아름다운 어떤 이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운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co.opt도 강하게 동의를 하며 자신들은 ‘코뮨’이 아니라 ‘코뮨화’, 즉 ‘코뮤니제이션(communization)’을 주장한다고 했다. 코뮨이라는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프로세스라는 것이다. 내가 ‘코뮨’이라는 말을 했지만 별다른 이견을 표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코뮨을 찍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코뮨으로 계속해서 전화시키기 때문이다. 수유너머가 그랬고, 서울 해방촌에 있는 빈집 사람들이 그렇듯이,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공간에 들어가, 그것을 코뮨화해가는 것이다. 공간도, 지식도, 정보도, 에너지도 끊임없이 코뮨화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사실 ‘봉기파’의 중요한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그들은 소위 ‘제국’의 신체를 조성하는 다양한 통제기구를 균열내고 파괴하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함과 동시에 그것을 끊임없이 ‘코뮨화’함으로써 삶을 재편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국가권력보다 ‘일상생활’, 즉 “씻고 움직이고 쉬고 책을 읽고 사랑하고 걷고 먹고 자고 말하고 꿈꾸는 것 등등에 지불된 정서가 상품 유통과 자본 축적을 동반하지만 또한 (들뢰즈 용어로 말하자면) 전쟁기계의 실현 토양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현재는 그는 ‘액시오맵(axio-maps)’을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공간을 물리적이고 지리적인 실체가 아닌 순환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어떻게 한 점이 다른 점들과 연결되고 순환하는지, ‘지도그리기’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 서로에게 일어난 일을 엮어 그려보는 것이다(가타리가 ‘지도제작술’을 통해 시도하려 했던 것이 이것이었던가). 그는 지도 그리기 자체가 연대이고 커뮤니케이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관공서에서 나누어주는 지도는 사실상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것입니다. 각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연결하고, 여기저기서 일어난 일들을 서로에게 연결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내게 물었다, 웃으면서. “자, 한국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제 무슨 일을 함께 해볼 수 있을까요?”


손님

2011.10.05 02:42:38

전에 지음이랑 살구랑 잠깐 얘기했던...<해방촌사람들> 말이에요.

첫번째 프로젝트로

위에 마지막 단락에서 언급되고 있는 "액시오맵"작업하는 거 어때요?

^^

<각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연결하고, 여기저기서 일어난 일들을 서로에게 연결해주>는 해방촌지도!

갑자기 생각나서 적어봅니다.

 

 

-잔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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