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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진행한 <정의로운 전환> 강연회+토론회 관련 자료입니다.
참석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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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25 정의로운 전환 출간 기념 김현우 강연 & 토론회
저자/강사: 김현우
토론자: 김소연(기륭전자 분회) 김은희(녹색당)
사회자: 지음(공동체은행 빈고)
기록: 정민
사회: 안녕하세요 저는 빈고 감사 역할을 맡고 있는 지음입니다. 이번 행사는 저 뒤에서 정의로운 전환 책을 판매하고 있는데, 저 책이 나온 기념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부터 김현우 선생님을 모시고 싶었는데 책 나온 김에 핑계로 (모셨습니다). 청주에 마을카페 이따라는 카페가 있는데, 빈가게와 같이 한 번씩 모셔보면 좋겠다 해서 강의를 준비하게 되었구요. 공동체은행 빈고는 해방촌에서, 처음에 주거공동체 빈집에서 출발했어요. 7년쯤 되었고, 지금 해방촌에 대여섯 집이 4-50명 정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빈고가 만들어졌고, 여기 빈가게를 중심으로 해서 빈마을이라 부르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강사료를 지원하기 위해 문화진흥교육원에서 지원금을 조금 받아왔습니다.
강사분과 토론자 두 분 모셨거든요. 제목이 녹색과 적색의 씨앗들에게 보내는 말걸기입니다. 말을 걸어주시면, 여기 다들 씨앗들이 계시니까 서로 말씀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일동 박수)
김현우: 편하게 얘기할테니까 편하게 들어주세요. 제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라는 작은 민간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있고, 서대문 근처에 레드북스라는 책방의 공동대표로 있어요. 낮에는 글 쓰고 밤에는 책방 청소하고 그러는데, 저희도 이렇게 저자를 모셔와서 토론회를 열기도 해요. 지음이 책을 쓰면 부르려했는데 제가 먼저 왔네요. 지음은 옛날부터 남들이 안 하는 변태짓을 많이 벌여서 제가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여기 빈가게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오기는 처음입니다.
그리고 초대 손님 두 분은 미리 말씀드리면, 책을 내면서 적색 씨앗과 녹색 씨앗이 서로 얘기할 수 있는 자리였으면 좋겠다 했는데, 대표적으로 몇 분이 떠올랐습니다. 그 중 초대손님으로 누굴 모시면 좋겠나 물어서 김소연 김은희 두 분을 모시면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바쁘셔서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다음날 바로 두 분 다 괜찮다고 하더라고 연락을 주더라고요. 저를 구실로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제 얘기는 줄이고 두 분이 말씀 많이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독자로 생각하고 쓴 분들은 노동활동가들과 4대강도 갔다가 핵발전소도 갔다가 동물권 운동도 하는 환경 활동가분들을 염두에 두고 썼기 때문에 여기 오신 분들에게는 잘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세계도 있다 하고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책 내용과 비슷한 얘기를 먼저 여러 군데서 하고 그러다가 이걸 책으로 묶어서 내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강연으로는 모자란 부분을 책으로 내며 진도를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고. 책 속지를 보면 그림이 있어요. 노동 해방에 대한 그림인데, 이게 아마도 우리가 바라는 노동 해방 세상이란 무엇일까 토론하고, 결과물을 마인드맵으로 붙여둔 것 같은데 이걸 딱 보니까 되게 재밌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근데 새로운 얘기가 있는 건 아니거든요. 노동운동 자체에서도 노동해방이라는 말 자체를 거의 안 쓰거든요. 노래 가사에나 들어있지. 그렇게 오는 노동해방이란 뭘까? 아무도 묻지 않죠. 이건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나침판을 잃어버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노동해방이란 게 7,8,90년대 초중반만 해도 그 자체로 행복과, 많은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저 나쁜 자본가 정권만 때려부수면 다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노동해방을 말하는 이 그림만 해도 굉장히 복잡한 거예요. 게다가 여기에 보면 생태환경이라 해서 자원과 에너지 순환도 챙겨야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얘기가 꼬리를 물다보니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왜 만들어쓰는지에 대한 얘기가 부족하단 생각을 하게 됐어요. 특별히 독창적인 생각은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해둔 이야기를 모아보니 조각 맞추듯이 맞춰지더라구요.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건 노동 자체가 분배상으로도 공정하고, 좋은 과정을 통해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생산을 말하는 겁니다. 그 와중에 온실가스나 핵쓰레기를 배출 안하는 그런 노동으로의 전환인 거죠.
이 앞에선 사례 세 가지만 말씀드릴텐데, 첫째로 토니 마조찌란 사람이에요. 2차대전에 참전했다가 그때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죠. 뉴욕으로 돌아와 일자리를 처음 얻은 데가 화장품 공장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노조활동을 했는데, 그 사람 생각이 거기서 계속 일하다보니, 독극물 많이 쓰고 더러워서 제조 환경이 참 안 좋은 공장인데, 그렇게해서 소비자한테도 좋을 것 같지가 않았다는 거죠. 그러니 누가 써도 괜찮을 생산으로 전환되어야하는데, 자본가들은 그렇게 해줄 리가 없잖아요. 사람이 100명 200명 죽어가는데도 우리는 상관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자본가들이죠. 개별 자본가들이 나빠서 그렇다기보다는 그렇게 해야만 자본가 개인도 살아남는 게 자본주의의 논리죠. 그러니 그러지 말고 노동자들이 요구를 하자. 그랬던 거죠.
화장품은 제조 공정을 바꾸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만 사업 자체가 아예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업이 있을 수 있죠. (놓침) 그러면 노동자를 위한 슈퍼펀드를 하자고 이야기가 됐어요. 유럽 전선에 참전한 수십만, 이백만인가 하는 군인들이 돌아왔죠. 이 사람들이 당장 일자리가 없잖아요. 기술도 없고. 그러니까 정부가 2-3년 동안 월급을 주고 직업훈련을 시킨 거죠. 그랬더니 부드럽게 취업이 된 거예요.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고.
이런 것처럼 정부와 자본가들이 돈을 내고 협약하면 되지 않냐 제안을 했던 거죠. 이게 이어져서 미국/캐나다의 노조들에도 채택이 돼서 내게 됐죠. 그러니 다른 나라 조합들에도 많이 퍼져있는 거고.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냐 환경이냐, 또는 단기적인 이해냐 장기적인 이해냐의 구분에서 하나의 힌트를 제공해주는 것 같아요.
그 예로 하나는 그린밴이에요. 호주에 유서깊은 환경이 있는데, 회사가 그곳에서 재개발을 하려 한 거죠. 그랬더니 지역에서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이 회사 노조를 찾아갔어요. 이걸 막았으면 좋겠는데 당신들이 막아줄 수 없겠냐 했더니, 건설 노조 책임자가 타당하다고 판단하고 힘을 합쳐보자 했던 거죠. 물론 그 전에 좌파들끼리 통한 무언가가 있었겠죠. 그 사람들이 이야기한 게 그겁니다. 우리한테 필요한 건설, 우리는 정의로운 건설을 하기를 원하고 이 개발에 반대한다 이러고 재개발하는 데 안 가겠다 선언을 한 거죠.
그게 그린 밴이라고 불려요. 노동자들이 녹색을 위해 하는 금기활동을 그린 밴이다 한 거죠. 자본가들은 당연히 대체인력을 투입하려고 했겠죠. 근데 그 회사 본사 건설을 또 그 노조가 맡고 있었던 거예요. 이 사람들이 그러면 본사 건설을 거부하겠다 했더니 결국 회사가 졌죠. 물론 회사들은 가만있지 않고 결국 이 운동을 이끈 지도부를 내려버렸죠. 그걸 알고서도 이 사람들은 운동을 한 거에요. 이 노동자들이 단기적인 것만 생각했으면, 혼자만 산다 했으면 그러지 않았겠죠.
그래도 이게 많은 사람들에게 파급력 있는 일이었죠. 특히 독일에 있었던 운동가 한 명이 이것을 보고 녹색당을 만들겠다는 결정을 굳히겠다고 했었어요. 잭 먼디라는 분은 아직 살아있는데 지난번 용산 투쟁때 자필로 지지서를 보내줬었죠.
또 하나 소개드릴 사례는 영국의 로카스 항공사 사례예요. 항공기 부품을 만드는 첨단 공장이죠. 그러니 과학기술 노동자들이 많은 회사였어요. 70년대 초반이었는데, 나토 협약에 따라 군수사업 비율을 조종하는데,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온 거예요. 그뿐만이 아니라 노조를 흔들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겠죠. 당시가 노동활동이 매우 강할 때였어요. 그때 노조 활동가들이 한 게, 투쟁을 준비하면서도(그 전에 비슷한 투쟁들이 많이 있었어요) 파업만 해갖고서는 안 되더라, 그래서 이 사람들이 앙케이트 조사를 한 거죠. 뭐냐면 군수항공기를 계속 만들어서 될 건가 이런 생각을 한 거예요. 그렇다고 민간 항공기를 만드는 것으로도 안 되죠 시장이 충분히 크지 않으니까. 근데 마침 첨단 기술 노동자들이 많으니 이들의 기술과 공장 설비를 갖고서 대체해서 만들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고 노동자들과 정부 연구기관들에 앙케이트를 보낸 거예요. 그래서 천 페이지가 넘는 제안서들을 모아서 제시를 했어요. 그때 나왔던 게 휴대용 신장 투석기, 장애인용 동작 보조기, 그런 것들이 있었죠. 모아보니 공통점이 있는 거예요. 굉장히 필요한데, 이윤이 안 되니 안 만들었던 거죠.
그래서 이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 운동을 제창하게 되었어요. 그러니 이 사람들은 경영자측에 이걸 제시했던 거예요. 그런데 경영자는 새 상품 개발하고 어떤 생산을 할 지를 결정하는 건 당연히 내 일이다 이야기하고, 그걸 주도했던 사람을 해고했어요. 작업이 아니라 사회적인 활동에 너무 힘을 쏟았다고. 그런데 운동이 영국 바깥으로까지 굉장히 호응을 얻었던 거예요. 자동차 공장 노조에서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만들자고 하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8,90년대로 이어지며 여러 사례를 만들었던 거 같아요.
한국의 비슷한 사례 두 가지를 말씀드리면.
태백 정선에 카지노 있잖아요. 도박 중독자들 많이 생기고. 이 사람들이 가서 빚 내고 어쩌고 하다가 그런 게 있대요. 재기하는 방법이, 상습적으로 돈 많은 내국인들을 대상으로 자리를 맡아주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부업하다 동남아 원정까지 가이드해주는, 그걸로 판돈을 만들어서 재기하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데. 하지만 지역사회에서는 그런 거죠. 청소년 범죄율 올라가고. 카지노가 있다고 해도 지역 고용율은 그렇게 높지 않고.
당시 그곳 87년에 민주노조가 생겼죠. 그 전에도 탄광노조는 컸는데 대표적인 어용노조였습니다.
이후로 탄광이 많아지고 석탄 소비는 줄어들고 하니, 정부가 부실탄광을 정리하려는 정책을 내세웠죠. 근데 그러다보니 폐광이 너무 빨리 진척이 된 거예요. 탄광 노동자들도 반대가 크지 않았는데 뜨내기들이 많았거든요. 게다가 업주들도 메이저 탄광 말고는 빨리 정리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렇게 급속도로 폐광되다보니 그쪽 광산 도시들이 완전히 무너진 거예요. 도시는 유령도시가 되고.
그러다 어떻게 할까 해서 탄광 노조가 활동했던 건데, 대안을 강구하다 생각해낸 게, 친환경 리조트 같은 걸 만들자 생각을 했었죠. 카지노 만들자 얘기는 안 했었고. 근데 당시 법으로는 허용이 안 됐어요. 도로를 내는 게 안됐으니까. 환경단체도 반대를 했었죠. 그래도 이 사람들이 고민을 하다 특별볍 제안을 합니다. 제한적인 개발을 조건으로 특별법을 제정해달라 하고. 그러다 카지노가 생겼었던 거죠.
정부 내에서 의견이 많이 갈렸는데, 주민들은 지지를 했었죠. 환경단체와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런데 카지노를 한 군데 만든다고 하니 서로 자기네 동네서 들고가겠다 하는 거예요. 그러다 타협이 이루어진 게 스몰 카지노를 태백에서 개장하고 메인 카지노를 정선하는 걸로 특별법이 통과됐었죠. 당시 시민들 주식회사며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런 게 잘 안 되고 카지노만 달랑 남은 겁니다.
그 사례를 정의로운 전환과 연결시킨 건 순전히 제 생각이긴 한데, 개화하지 못한 정의로운 전환이라 생각을 해요. 그런데 당시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게 다른 나라에 사례가 있었고, 그런 사례를 염두에 두는 지혜로움이 있었더라면 성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사례로 하나만 더 말씀드리자면 밀양 사례인데요.
밀양에서 굉장히 재미난-아픈 일도 많고 슬픈 일도 많았지만- 장면을 봤는데, 여러 곳에서 찾아온 활동가 운동가 분들이 많이 만났던 거예요. 다른 동네 송전탑에서 농성하던 분들이 찾아온 일이 있었는데 쉽게 볼 수 없는 일이었죠. 그 분들이 와서 마지막까지 같이 싸우고 그러더라구요.
이렇게 우연히 만난 노동자들이 있지만, 밀양에는 다른 노동자들도 있어요. 한전, 하청업체, 송전탑 공사하러 올라온 건설노동자들이 있었던 거예요. 그런 걸 보다보면 자동차고 전기고 간에 이게 처음은 어디고 끝은 어디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전기가 만들어지고 그게 자동차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이뤄지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 노동자들과 밀양 주민들과 수도권에서 전기를 쓰는 사람들이 한 번 모여서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기까지 이 수많은 과정들이 과연 최선인가?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거죠. 그때 이야기를 했으면 최선도 차선도 아니란 결론이 났을 거란 겁니다. 근데 당연히 제도적으로 만날 수 있을 방법은 없죠. 자본가들에게도 좋을 것 없으니까.
그래서 저희 연구소에서 이 사람들이 만나는 자리를 만드는 게 저희 일이 될 수 있겠다 생각을 했었죠. 전반적인 산업 구조가, 지금 최선의 방법과 결과를 내는 것으로 이뤄지고 있는가 질문하는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화두가 말을 건넬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던 거죠.
그렇게 만든 게 이 자리고, 이렇게 화두를 꺼냈으니 녹색의 씨앗과 적색의 씨앗이 이야기할 계기가 오늘 잘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사회: 녹색당 김은희 선생님하고 기륭노조 김소연 선생님 나오셨습니다. 각자 활동 소개나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은희: 저는 김은희라고 하고요 지금 녹색당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김소연 선생님은 대선후보였기 때문에 유명하지만 저는 그렇게 유명한 사람은 아니구요. 녹색당 당원들이 좀 계시죠. 처음 창당할 때부터 참여했었구요, 그 전엔 여성 정치참여 확대 운동하는 단체에서 일을 했습니다.
최근엔 당에서 정책위원장을 맡게 되었는데, 전문가도 아닌 제가 왜 맡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녹색당이)우리가 가고자 하는 사회에 대한 동의와 지향점만 만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정당이다 이런 게 있었던 거죠. 그중 수도권 살고 3,40대 여성인, 녹색당에서 제일 많은 수의 당원들을 대표하기 위해 제가 이 자리를 맡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빈가게엔 처음 만들어졌을 때 한 번 왔던 적이 있어요. 저는 이런 공간에 오면 궁금한 게, 이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가치나 지향에 동감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공간들과는 어떻게 만나고 있나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근처의 과일가게에 물어보니 잘 모르시더라구요. 녹색당도 빈가게도 사람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시절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소연: 기륭전자에서 10년 가까이 싸우고 있습니다. 제조업에는 파견노동자를 고용하면 안 되는데 고용되었고, 마찬가지로 불법인 문자해고를 당하는 노동자들이었구요, 노동조합을 만들었는데 전부 해고를 당하고 그 뒤 하고싶진 않았지만 계속 싸우게 됐습니다. 근데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보장을 받지 못했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소송에서 이긴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 그렇게 싸우면서 노동자들만의 연대만이 아니고 시민들의 도움을 얻어서, 국회에서 합의가 통과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회사는 또 거짓말해서 나몰라라 하고 잇죠.
저는 원래 민주노동당 당원이었어요. 분당과 합당 과정에서 탈당하고, 완전히 무너졌죠. 저희 조합원들도,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마음이 많이 떠났어요. 다 똑같구나 너네도 하고. 그런데 이건 정말 안 되겠다, 적어도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고 법과 제도를 넘어서서 진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생각이 출발이 됐었죠. 그러다보니 대선까지 가게 되고 제가 후보를 했는데, 제가 후보가 된 이유는 딱 하나예요. 저 빼곤 다 집행유예인 거예요. 보통 조합원들이 투쟁하면서 생긴 범죄경력이 네 개 다섯 개 이렇게 돼요. 근데 저는 운 좋게 좋은 재판관을 만나 벌금까지만 받았고, (후보로 출마한)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 많은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사회: 이제 편하게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면 될 것 같습니다. 강연 들으며 하시고 싶었던 말이나 질문 해주세요.
김은희: 저는 왜 저를 불렀는지 이유를 듣고 싶었어요. 아까 말씀은 하셨지만. 요즘 그런 생각 많이 해요, 녹색당은 요즘 나오는 합당 논의들이 불편하고 멀리하려 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환경적인 삶이 노동과 분리될 수 있는가 생각하면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이 되거든요. 예를 들면 후쿠시마에서 떠나는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분들은 후쿠시마 원전이 재가동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곳이 그 분들 일자리였기 때문에. 핵발전소가 터지는 위험을 겪고도 그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절박감이 있는 거고, 그걸 같이 풀지 않으면 그 다음 이야기를 어떻게 풀 수 있는가 싶은 거죠.
어렵게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하는 게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실제 살고 있는 상황에서 같이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정의로운 전환이 아닐까 생각을 하기 때문에, 같이 논의해야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 전체적인 정치 지형이 진보진영에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에 서로 조심하는 상황이 안타깝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럴 수는 없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있어야죠.
김소연: 발전노조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전에 노조 간담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탈핵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었던 거예요. 그 사람이 연단에 나가서 발언을 하니 그럼 지금 우리 일터를 없애자는 거야? 그렇게 이해가 돼서 당시에 굉장히 반감을 샀다고 해요. 일터를 잃는 문제가 직결되어 있으니까.
아까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유럽이니까 그런 것도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고. 밀양 희방버스 갔을 때 그런 문제에서 많이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 전엔 노동 영역 외에는 폭넓게 연대하지 못했었어요. 하지만 밀양에는 환경운동 활동가들만이 아니라 장애인 활동가들이며 성소수자 활동가들까지 만나며 생각의 폭이 많이 넓어졌었죠. 결국 함께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고 같이 해결하기 위해서. 활동하는 노동자들부터라도 이렇게 함께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게하는 것. 그런 부분으로 나가야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밀양 현장에서의 경험이 우리같이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에게 크게 생각하게 된 거예요. 그 이후로는 우리 조합원들이 불만 몇 개 켜 있어도 꺼요. 우리 작은 삶 속에서도 이런 걸 실천해야하지 않겠냐 하고, 가장 나이 많은 조합원분이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풍력발전소 이야기를 들으면 그 주변에서 풀이 안 자란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것은 환경친화적인 거냐. 싶은 거죠. 그러니 제일 근본적인 것은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발전방식을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책도 읽었는데 감동이 컸습니다.
김현우: 그런데 제가 그렇게 책을 어렵게 썼나요?
김은희: 나름 좌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쓴 책이라고 하면,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쓰지는 않죠. 이 책에도 여전히 그런 지점들이 남아 있는 것 같더라구요. 저는 녹색이라는 게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지속가능한 삶 자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노동이라고 하면 제 생각뿐일수도 있겠지만 너무 제한되어있고 협소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십여 년 전에 노동운동에 참여할까 고민을 했을 때, 내가 공감이 되고 동의 되는 일원이라는 생각이 잘 안 들더라구요. 거리감이 있으니 내 발로 잘 찾아가지지도 않고, 저 같은 사람이 당원으로 참가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다 하고 체감되는 게 있었어요.
그런 것은 쉽게 달라지지 않더라구요. 얼마 전에도 민주노총 선거 직전에 정치위원회 토론자리에 갔는데, 전국에서 오신 위원장 이런 분들이 여자는 아무더 없더라구요. 사람 구성만이 그랬던 건 아니에요. 민주노총 전체 행사에서 민주노총 여성국이 안에서 활동을 하지 않고 밖에서 활동을 하는 거예요. 집행부한테 말이 씨알도 안 먹힌다고. 민주노총 높은 분들에게 물어도 ‘우리가 좀 그렇죠’이렇게 웃고 대답은 않는.
문제 상황은 이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소연: 정말 공감이 되는데요.
김현우: 이런 이야기를 하자고 모셨던 거죠.
김소연: 저렇게 따지면 제가 비정규직이죠, 여성이죠, 그 시각으로 보면 민주노총 내에서는 완전히 배제된 거예요. 실제로 80년대 이후에는 남성 위주로 흘러갔었죠. (놓침)
예전엔 한 사업장의 투쟁 결과가 주변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요즘은 사업장들 밖으로 영향을 미치는 게 훨씬 줄었어요. 회사측에서 다 그런 걸 차단하는 거예요. (놓침: 대기업 노조에 대한 비판)
(대기업 노조들의)활동이 공장에 갇혀버린 거죠. 매년 임금인상 투쟁 아니면 수행할 게 없는, 안정된 노조들은 그런 상황인 거예요. 일단 내 일터가 안전했으면 좋겠고 임금만 올라서 우리 가족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상황인 거죠. 근본적인 책임은 활동가들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좀 욕을 먹더라도 그런 것을 과감히 해결해나갔어야하는데 그러지 않고 조합원의 눈에 맞춘다는 이유로 하향평준화를 시켜버린 거죠. 물론 그 와중에 고군분투하는 사람들도 많이 계시죠.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조직화되기도 하고.
기륭전자는 특이한 케이스죠. 이렇게 크지 않은 사업장에서 조직되는 건.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되고 있는데, 앞으로도 이런 활동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민주노총에 불만이 굉장히 많은 사람 중 하난데, 그렇다고 해도 민주노총을 완전히 없애자고 할 수도 없고 여길 중심으로 뭔가를 해봐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어요.
고정화된 틀에 대해서도 저도 생각이 많죠. (놓침) 하지만 한 번 결정이 되면 추진력이 있는 것도 (놓침)
(민주노총에 문제가 있다. 하지만 대중에의 접근성과 조직력, 추진력을 갖춘 데가 민주노총만한 데가 없으니 처음부터 시작하기 보다 민주노총을 바꾸려 노력해야한다는 맥락)
김현우: 말씀하신대로 각 노조들이 그런 점은 있지만 근데 개별 활동가들은 만나면 각자 고민이 많거든요. 그런데 그거 너무 열심히하면 다음 선거에서 조합원들이 안 뽑아준다는 거예요. 그럼 저는 말문이 막혔죠. 자본가들은 끊임 없이 노동자들을 분산을 시키는 거죠. 지역 사업장 공정마다 분할을 시키고, 현재의 노동자와 미래의 노동자를 대립을 시키는 것이고. 그런 것들을 넘어서지 않으면 계속 챗바퀴, 방어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때 우리는 더 정의로운 생산과 결과물을 바란다, 이야기가 되어야하는데 그 부분이 막막한 건 사실이어서, 두 씨앗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은희: 제가 지금 양천구에 사는데, 얼마 전에 민중의 집이 생겼어요. 그런데 다른 곳과 다른 게 처음 공간을 마련할 때 지역의 다른 사업장에서 많은 도움을 주더라구요. 그런 것도 작은 변화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씩 관심과 관계와 지역에서의 역할을 찾아가다보면 만날 수 있는 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당장 어떻게 해야할지는 잘 모르겠는 부분인데.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하는 것과 조금 더 근본적인 생태주의를 이야기하시는 분들은, 정의롭게 생산하는 게 아니라 생산하지 않는 지향을 가진 분들이 있는데, 그 분들과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김현우: 그런 걸 모르시면...
김은희: 제가 그걸 지금 다 알 수는 없고 차차 풀어나가야할 부분이죠.
김소연: 노동 부분에도 굉장히 큰 문제죠. (놓침: 각각의 노조가 노조원들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고, 자연스럽게 노동운동 외에는 관심이 없어짐. 그게 운동을 점점 갇히게 한다는 것을 지적)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거냐, 결국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얼마 전 어떤 분이 말하시길 생명과 생명이 아닌 것의 싸움이다, 라고 해요. 돈과 집과 기계들 대 사람들과 환경의 싸움이라고. 그런 반자본주의(의 맥락)에서 노동과 생태가 만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구요.
금천에서는 일터와 지역이 조금 만나져요. 하지만 서울에서는 일터와 주거지가 아예 다르기 때문에 자꾸 나뉘어요. 금천에서도 이런 카페를 만들어보자 하는 이야기들이 조금씩 나오거든요. 하지만 노동운동하시는 분들은 많이 어려운 게, 요즘 현장이 많이 힘들거든요. 사측이 너무 힘들게 하며 파업하고 농성하고 그러는 동안 다른 부분은 생각지도 못하게 만드는 거죠.
결국 뭘로 극복할 거냐 물으면 연대인 것 같아요. 연대의 끈을 잡는 거. 밀양 갔을 때도 처음엔 환경 문제에 동참하는 게 아니라 어르신들이 오랫동안 싸우는 것에 함께한다고 생각했던 거거든요. 이런 연대가 사람들의 생각도 바꾸게 하고 근본적인 의식 변화에 참여하기도 하고. 해법도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닌가 하고. 결국 해결은 사람이 해야하는 게 아닌가 하고요. 함께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나가는 거.
그런데 말로만 해서는 되지 않으니까. 정의로운 전환, 내용 자체는 좋았는데 이곳에서 실현할 수 있느냐 하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근데 아예 불가능한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유럽에서는 이런 것도 한다더라, 하는 인식의 전환을 하는 게 되게 중요한 계기거든요.
이건 좀 다른 얘긴데 건설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들을 굉장히 싫어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내 일을 빼앗는다고. 실제로 임금이 계속 하향평준화가 되고 있고. 당장에 내 어려움이 있으니까 (기업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이주노동자들을 비판하는) 그런 분위기가 퍼지는 거예요. 이런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서는 (놓침) 생태문제도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에 있는 문제기 때문에, 그래도 조직된 분들이 가장 접근성이 높고 속도가 빠르니까, 그리고 밀도 있게 갈 수 있는 분들이 민주노총에 있는 사람들이니 거기에 제안도 하면서 일을 진행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김은희: 구체적으로 정책적인 대안을 찾기는 어려울 거고, 이런 식으로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게 조금씩 풀어가는 방법이 아닌가 싶어요. 밀양에서 할머니들 올라오셨을 때 여러 투쟁현장에 찾아다니셨었거든요. 그런 게 구체적인 투쟁의 경과를 잘 알아서는 아닐 거예요. 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공감대, 서로를 지지해야한다는 연대의 감정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와 저편을 나누지 않는 게 어떤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서로가 만나는 길을 넓혀 나가는 것. 사실 안면을 트면 나쁜 짓 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렇게 서로 동료가 되게 만드는 것, 그런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게 먼저 해야하는 일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김현우: 그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인 것 같아요. 각자의 작업장이나 고용관계에 내팽개쳐져 있으면 대립이 될 수도 있는 노동자들을 서로 동료로 만드는 거, 그런 게 운동의 역할인 것 같고. 저는 책의 마지막 대담에선 환경단체와 노조가 서로 인턴 교환이라도 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서로 뭔가 일을 시키면서 교류가 되는 부분이 있을 거거든요.
저는 조금 더 연대, 투쟁, 서로 알아가는 것 이외에도 중장기적인 계획이 있어야할 것 같아요. 투쟁하는 노동자분들 만나보면 물론 비정규직의 전환도 중요한 사안이지만, 앞으로 5년 전후로 순차적으로 정년을 하시는 분들이 있댑니다. 이 분들이 어떻게 할 건가. 그런데 이 분들이 함께할 수 있는 일들, 친환경 주택이라든지를 모색하시더라구요. 이 사람들을 개별 경쟁으로 내몰리게 하지 않고 어떻게 1세대와 뒷 세대를 만나서 (놓침) 그리고 인구가 줄어나가는 충격은 어떻게 순차적으로 받아갈 건가. 그건 노동의식이 시대의식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머잖은 시대기 때문에 서로 연구도 토론도 필요하고요. 우리가 누구랑 어떻게 노동해방을 할 건가의 이야기인 거죠.
김은희: 비슷한 이야길텐데 이게 시민운동, 노조와 환경단체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요. 요즘 노동당하고 녹색당하고 서울 지역에 젊은 당원들이 모여서, 서로 같은 정책을 어떻게 다른 관점으로 보고 있나 그런 과정을 살펴보는 작은 포럼을 시작했는데 그런 거에서 정책 공조랄지 할 수 있는 부분도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 해요.
다른 걸 알면서 서로 같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찾아질 것 같은 거죠.
사회: 논의가 달아오르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좌중)도 씨앗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편하게 이야기해주셨으면.
해씨: 저는 빈가게 마스터 해씨라고 합니다. 어제 이 자리에서 해방화폐를 한 3주간 사용해보고 보고하는 그런 자리가 있었어요. 저는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 자리에서 해방화폐 체험단으로 발표를 한 게 서원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동네에 살면서 지역화폐나 다른 마을활동을 해온 서원 얘기 들어보고 싶고. 저 분들은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분들이지만, 우리는 마을에 사는 사람으로 이렇게도 되더라 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그래도 될까요?
서원: 어우 깜짝이야.(좌중 웃음)
곰자: 제가 첫째로 해보도록 하죠. 토론자들이 여러가지 이야기 많이 해주셨는데, 저는 사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건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해야한다 생각했었는데, 최근에 드는 생각은 동어반복만 하자. 이런 생각이 들어요. 최근에 많이 어려움을 겪었었거든요. 부모님과 이야기하는 것도 어렵더라구요. TV조선 보시면서 국가보안법이 약화됐다고 분노하는 아버지하고 최저임금을 이야기하는 것도 어렵고요. 그래서 포기를 하게 되고 그냥 이 안에서 잘 살면 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그냥 이 안에서만 이렇게 하고 있는데, 가끔 (오늘 강연 같은)이런 얘기들을 하시면 그래 하긴 해야지 근데 나는 못하겠네 이렇게 되는데, 이렇게 오신 분들은 소위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하고 어떻게 대화를 하고 (그러면서 그 사람들을)안고 계신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소연: 이건 쫌 다른 이야기긴 한데, 외가가 여주에요. 근데 가보니 동네에 자보가 많이 붙어 있는 거예요. 송전탑 반대한다는. 동네가 굉장히 보수적이고 그동안 탈핵 이런 것도 이야기 안 하던 분들인데, 자보를 붙이시는 게 ‘전자파에 죽느니 투쟁하다 죽겠다’이런 것들을 만드신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떤 계기가 왔을 때 연결될 수 있는 고리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노조 만들어질 때, 현장이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옆 사람 말도 안 시키고, 쉬는 시간에도 일을 해요. 일을 시작하면 일하는 사람 양 옆에 있는 사람이 관리자에게 욕을 먹는 거예요. 너는 뭐했냐 하고. 그런데 첫 노조를 만들겠다고 할 때, 저 혼자라고 하겠다고 생각했는데도 30명이 모여든 거예요. 이 과정을 보면서 저는 일상의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당장 어렵고 힘들지만, 당장 생각이라는 게 변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얘기 하고 하다보면 가슴 한 언저리에 그 내용이 남아있지 않나,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었을 때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것을 느꼈거든요.
모르겠어요 어렵고 힘든 길이긴 하지만 한 얘기 또하고 또하고 하는 게 지금 시대를 사는 방법이 아닌가 싶어요.
김은희: 당장 사회를 변혁하는 동지가 될 수는 없겠죠. 그런데 지금 사회에서 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잖아요. 그러다보니 어디에선가는 만나는 부분이 있다고 믿어요.
저는 워낙에 여성운동하는 사람이거든요. 결혼을 일찍 했어요. 남편네는 청주인데, 그 중에서도 매우 고풍적인 가풍을 가진 집안이에요. 아버지가 물 한 잔도 떠다주지 않으면 안 드시는 이런 분이었거든요. 저런 분하고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었죠. 그러다가도 그렇게만 살아온 저 사람에게 그런 게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건 폭력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포기하고 사는 게 편하다고.
하지만 지금 이제 20년 정도가 흘렀는데, 아버지가 많이 바뀌셨어요. 어머니가 거동이 불편해지셨는데, 살아가려니까 어쩔 수 없는 거예요. 밥도 해 먹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하고. 요즘에는 가면 본인의 요리솜씨를 자랑해요. 그게 자기 삶에 닥치면 누구든 바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앞으로의 우리 삶에는 누구에게나 그런 게 닥쳐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생각하거든요. 결국 누구든지 변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 아닌가 생각해요.
신비: 저는 작년에 알바노조에 잠깐 있었어요. 평범한 사람은 자기만의 싸이클에 갖혀서 다른 세계에서 떨어져있게 되는데, 그런 걸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꼭 닥쳐야만 움직일 수 있나. 그게 좀 아쉬운 것 같아요. 최저임금에 대해서 아무도 말이 없으면 그게 당연시되는데, 어떻게하면 이게 나와 모든 사람들의 문제라는 생각이 나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드네요.
김현우: 예전엔 노동자들이 각성하는 과정이 파업이었죠. 하지만 그런 기회가 다수의 노동자에게 제공되기 어렵고, 파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인식도 제한적이죠. 그게 아닌 게 총파업인데, 그것도 너무 이따금의 사건이거나 그거 자체로 해결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러니까 앙드레고르 이런 사람은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아울러서는 노동자들이 많은 관계를 맺는 게 필요하겠죠. 동료 뿐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연대체든 간에. 그러려면 개별 노동자들로는 힘들거나 제한적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쉽게 하도록 제도를 요구하거나 운동으로 만들거나. 운동이라는 건 제도가 막고 있어도 그래도 우리는 할 거야 이런 거죠. 그런 여러가지 시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신비: 하나 더 질문이 있는데, 보면 자기 문제가 다가와서야...
김소연: 근데 문제는 그렇게 자기 문제로 다가와도 못 싸우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밀양이라고 하는 그 씨앗이 영향을 미쳤던 거죠. 또 절박할 때 그게 튀어나오는 거구요. 예전에는 한전이 뭐 지어도 몰랐고 짓지 말라고도 안 했었거든요. 이런 게 변화라고 생각하고.
(놓침)
가장 큰 전선은 노사 간에서 펼쳐져요. 분쟁도 굉장히 많고 타락도 많이 벌어지고. 이런 생각을 해야되는데, 현대노조가 예전에 정리해고를 당한 적이 있어요. (놓침: 투쟁을 하다가 복직하는 대신 식당인력의 비정규직화에 합의했다는 내용) 그 이후로 (노조가) 비정규직을 늘리며 내 이익을 위해서 안전판으로 삼았던 거예요. 그게 아주 이기적이어서가 아니고 자기보호본능인 거죠. 우리가 그 자본의 전략을 넘어서지 못하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런 조건이 된 건데, 이걸 뛰어넘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해요. 현장과 밖이 함께해야한다는 고민이 있는 거죠.
(놓침)
꼭 절박해야만 그런 거냐고 말씀하셨지만, 일단 절박한 사람들이라도 움직이게 하자. 이런 거죠. 작은 사업이라도 전체가 함께 할 수 있는 조그만 것들을 함께 하면서.
이름: 그 앞에 이주노동자 말씀하신 걸 듣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각각 지역운동, 환경 운동, 이런 식으로 이름은 나뉘어있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 건데 그 자연스러운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전략들이 당연히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기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건설노동자들간의 박탈감이 생겼던 것도 사실 외주가 가능하게 되는 특별법이 생기면서였거든요. 하지만 현장의 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들이 내 일자리를 뺏아간다는 게 더 쉬운 생각이고, 또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전략들이 있었던 거잖아요. 이것을 넘어서는 기획은 어떤 게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구요.
좀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놓침: 운동하는 사람들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 더 큰 단위에서의 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포기하고 있다고 해야할까, 절망하고 있다고 이야기할까 그것을 넘어서는 (놓침)
친구들과 투쟁과 밥이라고 농성장에 음식을 보급하는 활동을 했었어요. 노동운동하는 분들이라고 매일 인스턴트만 먹어야하는 건 아니니까. 그 과정에서 더 괜찮은 음식들을 먹을 수 있게 하자고 생각했고. 하지만 그런 건 그 분들에게 당장 안 와닿잖아요. 우리밀 빵, 공정무역 커피를 준비를 해 가도 이게 뭔가 하고. 그때 그 분들과 순간순간 소통하는 게 굉장히 힘든 것 같더라구요. 그 분들에게는 당장의 생존이 와닿는 얘기고, 내일의 생존은 더 멀리 있는 거죠.
김소연: 사실 저희 농성장은 일회용품 굉장히 많이 쓰거든요. 죽어서 지옥 갈거라고도 이야기해요. 그러면서 쓰레기가 어마어마하게 나오죠. 근데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쓰게 되기도 하거든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쓰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시간이 필요한데, 쌍차에는 가보니까 다들 자기 컵에 이름 써놓고 매달아놓더라구요. 아 그래서 변화가 있구나. 노동자들이 싸우다보면 변하더라구요.
그 생각도 했어요. 옛날에 한살림 이야기가 나왔을 때. 유기농 그런 게 굉장히 비싸잖아요. 근데 그런 건 돈 많은 사람들이 먹는 거야, 있는 사람들이 먹는 거라고 믿어졌었어요. (놓침: 인식이 조금씩 바뀌더라는 요지)
김은희: 이어서 이야기하자면 처음에 공정무역을 시작할 때 다들 가치는 굉장히 멋지다고, 근데 결국에는 부잣집 딸내미들이 배부른 소리 한다고 그러더라구요. 상품이 굉장히 비싸지거든요. 더 좋은 품질의 물건을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데도 그렇게 팔게 되니까 활동가들도 선뜻 사기도 힘든 거예요. 그래도 조금씩은 변해가는 것 같아요. 왜 생협도 바뀌고 있거든요. 최근에 한살림에서 두부를 만드는 콩 가격이 많이 폭락한 거예요. 그래서 조합원들이 모여서 토론을 했는데, 그래서 두부 값을 내리게 됐어요. 근데 그 전에 한살림에서 그런 경우는 없었거든요. 언제 다시 가격이 올라갈지 모르고, 이후를 준비하는 개념도 있기 때문에.
이런 것처럼 조금씩 조금씩 변하고 있는 과정이니까.(놓침)
김현우: 그러니까 반복적 노력 속에서 답이 있다는 건 기본이고. 처음 이야기는 노동시간을 줄일 경우 수입 삭감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이런 거잖아요. 그런데 이미 소비 수준이라는 건 올라 있는 거고. 그런데 그건 결국 노동시간을 줄여도 그것을 벌충이 가능하도록, 사회적으로 노력과 투쟁이 있어야하는데 그것도 어려운 거죠. 그조차 잘 안 하게 되고.
그런데 일회용품 쓰는 건 농성장 처음 차려져서 버텨낼 때야 어쩔 수 없지만(놓침: 점진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내용)
1하고 0 사이에 답을 만들어가는 게 운동이라고 보거든요. 동료들끼리 하기 어렵다면 생협과 손을 잡고 뭔가 이벤트를 기획하며,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일들을 자꾸 해야될 거고. 저는 이런 생각 많이 하는데 민주노총 위원장과 전여농 위원장 이런 분들이 만나는 일이 있거든요. 연단에서 만나요. 그럴 때 민주노총 사람들 식사에 나오는 것을 생협 물품으로 한다든지 하면 농업 기반을 넓히는 것도 되면서 그런식으로 만나 나가면 보편적 연관을 계속 인지하게 되는 거죠.
이름: 먼저 하신 말씀들에는 동의하구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건 녹색당에서 이야기할 때 지역복원뿐만이 아니라 산업복원적인 측면도 고려했으면 하는 게 (놓침: 일자리가 연관되면 당장의 생존이 얽혀서 이기적이 된다는 맥락) (전기를 아껴쓰고 다른 생산자를 존중하는 등의)나머지 사회적인 활동들을 사적으로 끌고가게 되잖아요. 소비자들이 소비할때는 소위 갑질을 한다는 게 그런 부분이 있지 않을까, 산업 복원화 측면에서 보고 같이 해결해나가야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은희: (놓침) 부족한 거고. 이게 대단히 혁명적인 것을 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첫 직장생활이 90년대였는데, 그땐 그냥 회사원이 아니라 여직원이었죠. 그때부터 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삶이 제 삶을 이렇게까지 끌어왔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여기 계신 분들은 그때의 저보다 더 많은 고민들을 하는 분들이라 생각해요. 여기 계신 분들이 (놓침: 저보다 더 잘 살거라 생각해요 정도의 맥락)
사회: 말씀 듣던 와중에 여러 생각이 드는데요. 빈마을, 이 동네를 생각해보면 여긴 실업자가 워낙 많아서 노동자를 보기가 힘들거든요. 대부분 알바를 하든가 이런 와중이기 때문에 좋은 노동을 하기가 어렵고 또 그렇지 않은 일들은 워낙 힘드니까 안 하게 되고, 그래서 대체로 실업상태거나 유예 상태로 살게 되는 거죠.
이렇게 살면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돈이 없으니까 쓰지 말자고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물에 대해서 쓰지 않는다. 집에서 전기 안 쓰고 물 안 쓰고 이런 실천은 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아요.
일하는 것에 있어서도 노동시간 단축을 노조에서 주창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게 잘 안되니까 자체적으로 반 실업상태에서, 안 좋다고 생각되는 일들은 안 하고 돈이 안 되더라도 그래도 괜찮은 일을 찾아보자 이런 식으로 고민이 돌아가는 것 같아요.
노동조합 활동가가 되기 싫다면. 어쨌든 지역을 기반으로 살 수밖에없는 거죠. 아는 사람들, 친구들과 같이 살면서 되록 공동구매 같은 걸 해서 아껴보려고 하고. 어쨌든 저렴하게, 되도록 좋은 물건을 사려고 하거든요. 그런 식의 실천들은 진행이 되고,
뭔가를 만드는 것도 예를 들면 빈가게 같은 것도 협동조합으로 살아보자 하지만 이게 되게 어려운 거죠. 사장이 있고 사장이 돈을 벌려고 운영을 하는 카페와는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긴 한데. 예를 들면 일 하는 사람에 따라서 커피 맛이 왔다갔다한다든지.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노동이란 건 아직은 되게 기초적인 것에 불과한 상황인데, 그렇게 시도된다는 거죠. 예를 들면 맥주를 먹다가 맛이 별로니까 우리가 직접 만들어볼까? 이러기도 하고.
이렇게 생산이 되는데, 그런 건 고민이 되는 거죠. 이런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 불안정한 노동자들이라고 하면 지역에서 조그만한 시도들을 계속 하려고 하는데, 이게 어떻게 좀더. 지금은 소꿈장난 정도로 여전히 씨앗으로 남아있는 상태긴 하죠. 정의로운 전환 되게 좋잖아요. 기존의 생산 시스템을 확 바꿀 수 있는 이런 계기들이 어떻게 좀 결합이 되거나. 아니면 씨앗이 커지는 데 너무 오래 걸리고, 이런 어려움도 있는 거 같애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좀 얘기를 부탁드립니다.
김현우: 여기 노동해방의 그림에서, (주된 흐름이) 이렇게 우르르 웅성웅성 몰려가는 사람들이라고 치면 요기 언덕에서 딴짓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거든요. 쉬어가는 사람들도 있고. 근데 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0하고 1 사이에 점들을 무수히 만들어나가는 게 반자본주의의 외연을 넓혀가는 거고. 이런 조직들이 많아야 기존의 생산자들이나 조직가들도 이렇게 할 수도 있지 않나 가능성을 알게 되는 거죠. 그러면 여기서도 더 편하게 놀 수 있는 거고. 요즘은 이런 영역을 탈환한다고 이야기를 하던데, 이러면서 서로 메세지를 계속 교환하고, 글도 쓰고 그러면 될 것 같은데요.
김은희: (놓침: 마을공동체가 정부 시책이 되고 보여주기 사업화 되는 것에 대한 우려)
그런 건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저는 노동자이지 못하다 그런 못마땅함 같은 게 있었거든요. 저는 사무직이었지만 울산은 공장이 있는 대기업이었고, 생산직에 있는 노동자만 조합에 가입할 수 있었지 사무직 여자들은 끼워주지 않았거든요. 그땐 그러니까 나는 근로자이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해요. 노동자라는 개념을 나 스스로 협소하게 봤던 게 아닌가 하고. 나의 일을 찾기 위해서 구직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노동자잖아요. 여기 있는 분들도 굳이 나는 노동자가 아니야라고 할 것도 없는 거죠. 그러니 대노조들에서 이런 분들도 만날 수 있는 단위를 만드는 노력을 한다면, 그러면서 해볼 수 있는 노력들이 많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지금 현장에서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만 노동자라고 보는 게 아니라 앞으로 노동자가 될 사람들도 포괄을 하는.
스스로도 노동자라고 생각하게 되면 노조에 요구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조영은: 질문은 아닌데요. 저는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에서 활동을 하고 있고, 다음주의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어요. 들으면서 저희가 반자본주의, 혹은 다양한 가치를 가지고 살아보자는 사람들인데 우리가지고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사회가 바뀌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활동을 많이 해요.
근데 저희 공간에서 노동운동 하시는 분들, 녹색당 분들 자주 오시는데 같이 술을 마시거나 같이 회의를 하시거나 이런 경우는 잘 없더라구요. 희망버스때 버스를 같이 타긴 했어요. 우리는 당연히 우리가 주라고 생각하는 가치로 연대를 하는데, 그러면서도 우리가 연결을 시키는 역할을 해야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해요. 공룡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게 좋을까요?
김은희: 구체적인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빈가게가 여기에 있다, 공룡이 거기에 있다, 그 자체가 만나는 지점이 될 거라고. 그럼 빈가게에 와서 각자 술을 마시다가 같이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하게 될 수도 있고.
사회: 그럼 결국 같이 술 마시는 이야기로 정리가 되는 것 같은데요. 이제 그럼 행사 마무리하고 자릴 넘기겠습니다. 동네에서 맥주 만드는 분에 수제맥주를 선물하셨는데 이건 한 잔씩 나눠먹으면 다 먹을 것 같고, 다 먹으면 가게에서 많이 사주세요.
(행사 종료)
중간에 이름의 질의에서 '지역복원 > 지역보건', '산업복원 > 산업보건' 입니다.
열심히 기록한 정민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