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의 한적한 시간, 까페를 방문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버스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한참 딴짓 중에 버스가 도착하고 탑승하려는 때였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한 분이 내 앞에서 버스를 탑승하시고는, 이미 지불처리된 버스카드를 버스요금 카드리더기에 연신 다시 갖다 대고 계셨다. 기사 아저씨께서는 '처리 됐어요~' 라고 말했지만, 알아듣지 못하시고 카드를 계속 갖다 대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의 어깨에 손을 얹고, 고개를 위아래로 저으며 '돈 내셨대요.' 라고 나즈막히 이야기 하였다. 할머니는 그제서야 버스 안으로 들어가셨다.

버스가 출발하고, 할머니는 다른 어르신의 자리양보로 의자에 앉으셨다. 몸을 가누기도 힘드신데, 버스를 서서 타신다는 것은 상상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자리에 앉은 할머니 옆에 내가 서 있게 되었다. 할머니의 얼굴은 이미 겪어오신 세월만큼이나 힘을 잃고, 주름잡혀 있었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에서 내 어린시절 할머니의 모습이 겹쳤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스스럼없이 할머니에게 말을 붙여보았다.

"할머니, 눈은 잘 보이시오?"

나는 할머니들에게 물을 때 이런 표현을 쓴다. 구한말 말투라고 해야 할지, 어르신들은 이런 말투가 더 정감있으신지 모르겠지만, '~세요'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 '~시오'라는 말을 자주 쓰는듯 했었다. 자연스럽게 할머니들에게는 이렇게 말하는 게 편했다. 말하면서 눈을 가리키며, 목소리에 조금 더 힘을 주어서 이야기했다.

"눈? 아니, 잘 안보여."

할머니는 내 얼굴을 한 번 보시더니, 한숨 쉬듯 이야기 하신다. 늙어가는 몸을 탓할 사람도 없다지만, 그런 투정을 하실 생각도 없으신가보다.

"아휴, 무척 답답하시겠네. 힘드시겠구만."

"힘들어. 듣지도 못하고, 뵈지도 않고. 그래도 늙어가지고 어디 다니고 싶다고 이러고 다녀."

지루한 여행에 동무를 만난듯한 기분이신지, 이야기를 더 하시고 싶어하는 눈치시다. 이미 젊은 사람들의 눈치를 봐오시면서 살아오셨는지, 말을 아끼시면서도, 이야기에 여운은 남아있었다.

"할머니는 그럼 어디까지 가시오?"

알지 못하는 사람이 가는 곳을 물어보는 것이 무서운 요즘 세상이다. 그래도 한 번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충천, 충천."

처음에는 어디인지 잘 듣지 못했다. 듣기에 춘천이라고 말하시는 줄 알고 되물었다.

"춘천?"

"아니, 충전."

지읒 받침의 발음이 거세어 치읓으로 느껴졌기에, 비슷한 발음의 지명을 생각해보니, 죽전이라 생각되었다.

"죽전~!"

"으응. 맞아."

할머니의 발음을 제대로 못 알아들었던 것을 맞춰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그 다음으로 이야기가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해방촌에 살았었어. 자식들이 그리로 이사가서 살게 되어가지고, 아침에 밥 하고 나면 해방촌으로 놀러와. 여기에 친구들도 있고, 지내기도 편한데..."

말 끝이 희미해지며 무언가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들 키우기가 힘들어서 그리로 가셨나 보구만."

"응. 그래서 그런게지. 그래서 해방촌으로 놀러왔다 가. 아이, 그래도 이렇게 힘든데도, 왔다갔다 하니... 참..."

"남산자락에 있어서 살기도 좋고 하시니까."

"그렇지. 그래서 좋아. 거긴 답답하기만 하고... 정이 안가."

"그러니께. 건물만 크고, 걸어다니시기 멀기만 하고, 차도 많고... 건널목 건너시려면 힘들게 뛰셔야 하니께.."

평소 분당에서 지내면서, 너무 큰 건물들과 단지들의 블럭이 맘에 걸렸다. 겨우 2~3 블럭을 지나는 것이지만, 길게 뻗어있는 아파트 단지 담벼락을 걸으면, 마치 무한으로 펼쳐진 미로를 걷는 느낌이다. 거리감을 상실하게 할 만큼 반듯하고, 반복된 길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몇 분이나 걸렸으니, 그런 답답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 걸어야 하는 어르신들은 오죽할까.

"그럼 할머니, 강남역에서 내려서 갈아타시겠네?"

나는 토요일의 고속도로가 막혀서 오래 걸린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야기를 건냈다.

"아니, 순천향 앞에서 내려."

"아! 바로 버스 갈아타고 가실 수 있은께."

"응."

이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버스는 장충동 로터리를 지나 남산터널 고가도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내 순천향 대학교 병원 앞 버스정류장에 다다르고 있었고, 할머니는 빠른 속도로 주행하느라 흔들리지 않는 틈을 타서 몸을 일으켜 내리는 문을 향해 가고 가셨다. 행여라도 버스가 흔들리며 넘어지실까봐, 나는 할머니 뒤를 쫓아 같이 이동하고 있었다.

버스는 정차하고, 문이 열려 내리려 하실 때, 버스카드를 찍으며 뜨는 숫자를 확인하시고서야 내리기 위해 걸음을 옮기셨다. 그런 뒷모습에 대고 나는 인사를 하였다.

"할머니, 조심히 가시오."

"응. 그래."

버스를 타고 신논현역 정거장에 도착하여 내린 후,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섞여 걷는 동안, 스스로도 힘들게 몸을 움직이면서 할머니가 이런 길을 걷고 계실 것을 상상해보았다. 편리하게 지은 번화가는 노인들에게 친절하지 못한 곳이다. 그리고 나서야 해방촌이라는 공간이 왜 정감있는 곳인지 알 것 같았다. 차도 구분도 없어서 위험하게 통행해야 하는 골목들이어도, 숨고르기도 바쁜 가파른 언덕길이어도, 이러한 불편을 알고 서로를 배려하기에 친절하고 정감있는 동네. 빌딩이 머리를 덮어 해가 가리우질 염려도 없고, 한 칸, 한 칸 개성을 갖고 지어진 집들. 서로 이웃하고 알기에 옆집으로 오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곳. 이런 곳이기에 지친 몸을 이끌고 놀러오는 노인분들이 있는 것일거다.


손님

2013.09.10 06:47:05

재밌네. ㅋㅋㅋ

손님

2013.09.10 21:06:10

할매, 좋은 말벗이랑 다녀가시어 심심하지 않았겄소. 할매들이 분담금을 모아내긴 힘들겠지만 모여사는것도 나쁘지않을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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