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_100510

아랫집 조회 수 7673 추천 수 0 2010.05.11 03:10:36

사다리타기 이후 전면적인 재배치와 주말이사. 방옮긴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이사냐고 투덜투덜 거리기도 했었지만, 또 새로운 배치에서 새로운 우연들이 만들어질 것을 생각하니 조금씩 신나기도 하고. 무엇보다 페인트칠은 에너지를 주는 묘한 힘이 있는 듯. 단, 짐만 들었다 놨다 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우선은 새 주인들을 위하여 살던 집을 정리하고 칠한다. 저주받은 옥상과 폭설 때문에 벽마다 만개한 곰팡이꽃. 그들도 생명이지만 우린 공존하기 힘든 조합이라 왁스걸레로 박박 딱아내고, 그 위에 고운빛깔 페인트를 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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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드러내자 모습을 드러낸 곰팡이와

누가 골랐는지 참 예쁜 색으로 칠한 방>


마지막 거실 페인트를 칠하면서는 저마다의 예술혼을 불살라 전위예술 한바탕씩 해주고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드디어 발걸음한 다모토리에서 막걸리와 두부김치로 간단한 뒷풀이. 술을 먹는와중에 내려주신 보슬비 덕분에 막걸리 한병은 공짜로 먹었다. 요구르트같은 느낌이었던 금정산성 막걸리. 근데 이번에 칠한 페인트는 조금 싼 걸로 사서 그런지 냄새도 약간 나고, 밀폐되어 있으면 약간 어지럽기도 하다. 뭐,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토요일 오전에는 새로 살게된 방인 아랫집 남자방을 조금 정리했다. 정리하는 김에 여기도 페인트칠. 슈아가 골라놓은 깊은 파란색으로 칠했다. 첫붓은 몽애 롤러질은 아규와 승욱 마무리는 레옹. 마음 같아선 파도도 그리고 구름도 그리고 싶지만 물감도 없고 체력도 없고 시간관계상 패스. 정란은 마그리트의 눈을 크게 그려놓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아무튼 이 방의 벽들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캔버스이니 물감과 붓을 든 화공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페인트가 마른 뒤 2층침대도 배치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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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탄생한 아랫집 남자방>


한 쪽에는 행거와 서랍을 배치하고, 쓸만한 이불들도 골라서 장농 속에 배치해두었다. 물론, 이불들은 한 번 빨아야한다. 토요일은 어버이날이고 다들 일정이 있어서 여기까지. 내일을 기약하고 일찍 헤어졌다. 일요일 오전에는 다들 일정이 있어서 말랴, 달군과 함께 거실 책장 작업을 했다. 컴퓨터 책상을 들어내면서 고양이털과 수십년 쌓인 것처럼 보이는 먼지들이 나오면서 달군은 고통이 심해져서 일단 철수. 말랴와 책장 책들을 빼고 벽 쪽으로 책장 옮기는 작업을 했다. 다른 짐들은 일단 한 곳으로 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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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중인 말랴, 거실은 감당불가 상태이다>


책장은 무사히 옮겼으나, 옮기고 나서 대문이 열려있는 것을 발견. 고양이들을 찾기 시작한다. 아무리 불러봐도 동글이 모습은 보이지 않고, 아무래도 아래현관문도 열려 있었던 것 같아 양 옆 골목으로 동글이를 찾아나섰다. 그러나 찾을 수 없는 동글이. 어쩔 수 없이 일단 철수하고, 뒤에 오는 이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일단 문을 열어놔야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


이 날 아침에는 아랫집으로 옮겨갈 이불들을 빨았다. 주말내내 햇볕이 좋아서 빨래를 옥상에 올려놓기가 무섭고 다 말라주었다. 아침에 널어놓은 이불과 마지막 빨래들을 챙겨서 저녁 때 다시 아랫집으로 내려갔다. 내가 살게된 자리에 이불들을 설치하기가 무섭게 고양이들이 몰려와서 자리를 잡는다. 음, 새로 빨아온 이불에 고양이들이 오줌을 쌀까 걱정부터 된다. 뭔가 처음 같이 살게된 고양이들이다. 고양이 초보. 고양이 감수성 제로. 그래서 아침에 문도 열어놓고. 다행히 동글이는 옥상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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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 널어놓은 옷가지들과 이불, 금방 말랐다>


저녁 때 돌아오니 연세대 학생님들의 수고로 책장의 책들이 색깔별로 정리되어가고, 큰 짐의 정리도 어느정도는 진행된 것 같다. 그렇게 주말이사는 대충 마무리하고 디온과 연두가 봐온 장으로 잡채와 된장찌개를 맛나게 먹었다. 책장을 옮기니 보기에도 시원하고 바람도 사방에서 불어제껴서 시원하기 그지없다. 아랫집 원두막 다시 시작이다. 원두막 입주파티는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는. 파티를 정리하면서도 뭔가 정리가 어려움을 느낀다. 모든 것들의 자리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느낌이다. 그렇기에 정리는 끊임없이 미끄러지기만 하고. 만물은 다 자기자리가 있다고. 이제 슬슬 그 자리들을 정해주어야겠다.


_moya @hellomoya


ByungWoo

2010.05.11 05:52:34

도와드리지 못해 찔리기도 하고(짐도 치워야는데;) 너무 깔끔해져서 낯설기도 하고 암튼 결론은 좋군요!

수고 많으셨어요.

지각생

2010.05.11 12:41:17

아랫집 책장을 정리하며 그 책은 얼마나 선명한가? 를 논의했다고.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손님

2010.05.14 08:51:46

ㅋㅋ색깔별 분류가 길이길이 보존되길 빌어요! -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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