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고 연구모임에서 다룰 책 라파르그 <게으를 수 있는 권리>에 관한 서평입니다. 라파르그는  이책에서 '우리, 게을러지자! 노동은 결코 숭고하지 않다! 적게 일하고, 대신 우리들의 창조적인 삶을 위해 기쁘게 시간을 보내자!'라고 말하며 게으르다는 것이야말로 ‘길들임’에 대한 강한 반발 행위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7272024215&code=9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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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행하라, 생산적인 게으름을

170여일간 이어져온 MBC 파업이 드디어 끝나고,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이 지난주 다시 일터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DJ가 사라지면서 잠정 중단된 라디오 프로그램들도 돌아왔고, 파업 기간 내내 궁금증을 증폭시켰던 ‘하하 vs 홍철’의 결말도 드디어 알게 되었다. 노조원들의 요구 조건들이 잘 받아들여진 뒤 기쁘게 입성했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알다시피 그렇진 않다. 이후부터는 출근 투쟁을 벌이겠다는 게 노조 측 입장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노동자들의 파업이 예전만큼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진 못하는 게 현실이다. 나름 열심히 만들었을 소식지도, 확성기에 대고 부르짖는 요구사항도 그들 안에서만 맴돌다 그치는 게 태반이다. MBC 파업 당시에도 공정 보도, 김재철 사장 퇴진 등 노조 측 요구사항보다는 무한 연기된 무한도전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을 정도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아주 근본적인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왜 노동자가 ‘노동하지 않는 것’을 비난하는가. 노동이 권리라면, 우리에게는 ‘노동하지 않을 권리’ 또한 있지 않을까? 

19세기 프랑스의 사회주의 운동가 폴 라파르그(1842~1911)의 대표 저서 <게으를 수 있는 권리>의 요지는 이렇다. “노동은 금지되어야지 강제되어서는 안 된다.” 

프롤레타리아는 기독교 윤리, 경제 윤리와 자유사상가들의 윤리에 내포되어 있는 온갖 편견을 짓밟아 뭉개야 한다. 프롤레타리아들은 자연의 본능으로 돌아가야 한다. 프롤레타리아들은 매우 형이상학적인 법률가들이 꾸며낸 부르주아 혁명기의 인권선언보다 천 배는 더 고귀하고 신성한 이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선언해야만 한다. 하루에 세 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낮과 밤 시간은 한가로움과 축제를 위해 남겨두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라파르그가 책 전반에 걸쳐 외치는 건 한결같다. 우리, 게을러지자! 노동은 결코 숭고하지 않다! 적게 일하고, 대신 우리들의 창조적인 삶을 위해 기쁘게 시간을 보내자! 그는 게으르다는 것이야말로 ‘길들임’에 대한 강한 반발 행위라고 역설하고 있다. 사회가 원하는 대로, 회사와 학교가 하라는 대로 착실하게 따라갔을 때 우리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라파르그의 표현에 따르면 ‘노예의 삶’이다. 그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오히려 일 좀 달라고, 쟤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노예. 그러나 열심히 일하면 할수록 점점 더 궁핍해지는 삶! 

라파르그가 말하는 ‘게으름’이란 축처져서 되는 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권리로서 선언해야 할 게으름이란 나와 우리의 고양된 삶을 위해 우리 스스로 보다 활발발(活潑潑)해지는 것을 뜻한다. 독일 작가 레싱은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던가. “모든 일을 게을리하세, 사랑하고 한 잔 하는 일만 빼고, 그리고 정말 게을리해야 하는 일만 빼고.” 라파르그의 논리대로라면 노동자들의 파업은 임무 방기가 아니다. 그들은 이 기간 동안 어느 때보다도 팽팽한 긴장감을 안고서 바쁘고 활기차게 뜀으로써 ‘게으를 권리’를 맘껏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게으를 권리’는 노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들, 길들임에서 벗어나고 싶고, 베짱이가 되어 신나게 바이올린을 켜고 싶고, 학교나 집이 아닌 다른 삶의 공간을 원하는 모든 이들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게으름을 ‘부지런하게’ 실천할 수 있다. 


명상
하기, 천천히 산보하기, 사람들과 교제하기, 내 근육을 움직여 운동하기…. 즉, 이전과는 다른 생활, 처음으로 사람들과 진한 관계를 맺고, 인생과 사회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는 생활을 기획하고 실천하기. 그래서 다른 이들이 이토록 게으르고 이상한 삶을 눈여겨보게 하기. 라파르그가 일평생 꿈꾼 ‘코뮌 사회’도 이런 삶이 가능한 공동체가 아니었을까? “미래의 코뮌 사회에서는 인간의 온갖 충동이 자유롭게 분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선언해야 한다.” 

나 역시 현재 한창 게으르게 사는 중이다. 머리 터지는 책을 읽고, 힘들여 글을 써나가면서. 혹시 이런 삶, 같이 하고 싶지는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