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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만 들여다보는 날들이다.

국가가 언제 날 살해할지도 모르는데 이 와중에 빈자의 재무설계같은 글을 써서 무엇하리 하며

넋놓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이 와중에 글을 안쓰는 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에

예정했던 글을 쓰기로 했다.


저번 빈자의 재무설계를 보고 많은 분들이 칭찬을 해주셨다.

 ‘앗 기대 안했는데 웬일이지?’하면서 막 속으로 좋아하고 있었는데

빈집 게시판 덧글에 올라온 글 중 이런 글이 있었다.


 ‘곰자의 재무상담은, 여타의 것과 좀 다를 것 같네요.

소위 상담사로써 몇몇 가지 대안들을(일률적인) 제시하거나, 꾸짖기보다

일단 돈, 소비습관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다 보면 스스로 그 해결책들을

찾을 수 있게 될 것만 같은.

대화를 통해 스스로 답을 얻게 되는 편안한 상담.

돈에 대한 자가치유력을 높여주는 약발 오래가는 제대로 된 상담이랄까?’


망했다. 나는 몇몇 가지 대안들을 일률적으로 제시하거나 왜 그렇게 돈을 쓰냐고

꾸짖는 방향으로 가보려했는데 저런 칭찬의 글이 달리다니.

 아아아. 앞으로 쓸 글의 방향성을 다시 생각해보면서 이번 주에 하려던 소비습관얘기를 해보려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 분들은 어떤 소비습관을 갖고 있는가.

아니 소비습관이라는 말이 포괄적이라면,

주로 어디에 돈을 쓰고 어디에는 돈을 쓰지 않는가를 생각해보시라.


어떤 사람은 은행 수수료 700원은 무지 아까워 못쓰면서도

사람들의 술자리에 쓰는 돈은 아깝지 않아 펑펑 쓸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밥은 싼 거 먹어도 옷은 비싼 옷을 입어야

혹은 가방만큼은 비싼 걸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르신 세대에서는 다른 건 몰라도 내 집 만큼은 장만해야 한다는 생각에

안입고 안먹고 안쓰면서 집 하나에 모든 걸 건 경우도 있다.

내가 돈을 어디에다 쓰는가에 나의 욕망이 집약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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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어디에다 쓰느냐보다 얼마나 계획적으로,

혹은 얼마나 현명하게(?) 돈을 쓰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가끔 이런 기사도 올라온다. 얼마전 이데일리에 이런 http://goo.gl/sdcI8W 기사가 올라왔었다.

누리꾼들의 입에 하도 오르내리길래 찾아서 읽어봤다.

링크를 눌러보기 귀찮으신 분들을 위해 기사내용을 얘기하자면

한달 월급이 160만원인(연봉 2천만원)28세 청년이 1억을 모았다는 것이다.

기사는 앞부분에서 사람들이 돈을 모으지 못하는 것은 패배주의의 덫때문이라고 말한다.


참 문학적인 표현이 아닌가? ‘패배주의의 덫이라니. 또다른 문학적 표현도 나온다

결핍의 승화’. 어렸을 때 집안이 기초수급가정이었는데 아버지는 부자를 미워했지만

그는 제도안에서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해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대기업 계열사에 들어간 그가 왜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며 주식투자같은 건 하지 않는다더니

회사채를 사고 팔았다는 얘기는 뭔지 차치하기로 하자.


누리꾼들의 비아냥을 샀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생활비는 거의 쓰지 않는다. 친척 집에 신세를 지고 있어 월세 지출이 없다.

하루 교통비는 2000원 정도다. 식비와 커피는 회사에서 해결한다.

옷은 거의 사지 않고 이발도 가장 저렴한 이발소를 찾는다.

운동도 한달에 1만원 정도인 대학교 피트니스를 활용한다


누리꾼들은 월세를 내지 않고 식비도 커피도 회사에서 해결한다면

한달에 최소 60~70만원을 아끼는 셈이고 20살때부터 신세를 진 것이라면

일년에 800만원. 8년간 최소 6천만원을 친척과 회사에게 지원받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회건 개인이건 이런 식의 쥐어짜기식 소비패턴을 칭송하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부모 자본을 이용하든 친척자본을 이용하든 절약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패배주의의 덫에 빠지지 말라고 충고한다.

주거정책이나 사회복지 등의 부재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서 간증(?)에 들어가자면

나도 무조건 돈을 쓰지 말아야한다는 소비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햄버거 체인점에 가자고 해서 콜라를 주문해 먹었는데

당시 나는 슈퍼에서 사 먹으면 싼 걸 왜 돈을 더 주고 이런 데 와서 먹어?”라고 얘기해서

친구를 경악하게 한 적이 있었다.

(이 얘기는 고등 동창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어 10여년 후 동창들과 레스토랑에 갔을 때

 애들이 니가 어떻게 이런 데를 다 왔냐며 놀러댔었다.)

 

20대 백수 시절에는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져서

밖에 나가면 배고파도 절대 뭐 하나 입에 넣지 못하고 굶고 다니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또 다른 의미의 돈에 대한 집착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매우 알뜰하고 경제적이며 현명한 소비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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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내가 돈을 유독 쓰는 곳이 있으니 그것은 옷 구입이었다.

이 부분에서 저를 알고 있는 분들은 옷에 돈을 쓰는데 입고 다니는 옷이 왜 그래?라고 생각할텐데

일단 사람 얘기를 끝까지 들어보시길.

 

내가 옷에 대한 얘길 처음 들었던 건 고 1 사춘기 무렵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촌스럽다는 얘길 처음 이성에게 들었던 시기였다.

옆 학교 남학생하고 어찌 어찌 알게 됐는데

걔가 소퐁갔을 때 너 처음 봤는데 옷 입은 게 되게 촌스러웠어라고 얘기한 것이다.


약간 충격이었지만 그런가보다 했다.

스무살 이후 대학에 갔을 때도 애들은 누누이 얘기했다.

너 좀만 더 꾸미면 예쁠 거 같아. 옷에 좀 더 신경 쓰면 어때?” 그때도 나는 무심히 넘겼다.

옷을 살래도 돈이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선 공부를 한답시고 백수였고

돈을 쓰는 것에 일종의 죄책감도 가지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데 3년 동안 하던 공부를 때려치고 학원강사로 일하게 됐을 때 동료강사에게마저 

옷 얘기를 들은 순간

아니 나보고 대체 어쩌라구!!”라는 반발심이 들었다.

보세옷도 간간히 사긴 했었으나 돈을 이제 좀 벌기 시작했으니

옷을 사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스스로 옷에 대한 감각이 없으니

옷을 사려 해도 스스로의 안목을 믿지 못해,

옷을 사면서도 돈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자신을 의심해야 하는 날들이 계속 됐다.


그러다가 알게 된 것이 브랜드 옷 중 이월된 옷을 싸게 파는 인터넷 사이트.

 스스로 믿지 못하는 안목을 소위 브랜드라는 자본주의 네이밍이 메워 주리라 생각했다.

나름 신중한 소비를 한다고 사이트를 매일 들여다보며 보물찾기 지도에서 보물 위치 찾듯

이것저것 비교해가며 옷을 샀다.


나름 막 내지르는 소비, 충동적 소비 피한다고 원래 내가 가지고 있는 옷을 생각하면서

겹치지 않게 구입하고 사고 싶은 것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구입하는 원칙은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사이트에서 옷을 계속 구매했다.

옷을 매번 사는데도 이상하게도 매 계절 옷은 입을 게 없었고

입어보고 사는 옷이 아니라 소비에 실패한 옷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기서 옷을 샀다.

돈에 벌벌 떨면서도.

 

그렇지만 한편으론 채워지지 않는 소비욕구 때문에 불타고 있었다.

사고 싶은 건 많은데 돈은 없고 매번 그놈의 현명하고 계획적인 소비를 한다고

한번 옷을 살 때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해야 하니 힘들었다.

충족되지 않는 나의 소비욕구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을 때

나는 욕구를 충족시켜줄 신세계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