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노바는 사람들에게 가난한 자들을 동정할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처럼 살아가라고 요구한다. 우리는 가난한 자들을 불행과 굶주림의 덫으로 밀어 넣으면서 자기 자신을 해쳐왔던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 또한 우리 인류의 한 가족이며, 우리의 일부이다. 만일 당신이 아들 다섯을 두었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여섯 번째 아들로 생각하고 당신이 소유한 것 중 6분의 1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도록 하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부패는 오늘날의 경제체제가 끌어안고 있는 해악들에서 기인한다. 사람들은 이런 외부의 해악에 휩쓸려 부패와 타락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경제생활의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인도 사람들은 세계에 독특한 모범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착취로부터 해방된 사회를 창출해 내는 일에 성공하게 되는 그 순간에, 지금은 묻혀 있지만 인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지적인 재능과 영적인 역량이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의 친구이자 모두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나는 부자가 가난한 자를 한 가족으로 존중하도록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진실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사명은 혁명을 피해 가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막고 싶어하는 것은 폭력적인 혁명일 뿐, 나는 비폭력적인 혁명을 이루어 내기를 원한다. 우리나라의 장래의 평화와 번영은 땅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데 따라 좌우될 것이다. 만일 땅을 소유한 사람들이 나누어주지 않는다면, 그리고 토지 개혁을 위한 올바른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다면, 대안은 피의 혁명밖에 없게 된다.


나의 목적은 삼중의 혁명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첫째, 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되기를 원한다. 둘째, 그들의 삶이 변화되기를 원한다. 셋째, 사회구조가 변화되기를 원한다. 억압과 강제로는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다. 


사람들이 땅을 나누어주기를 원하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나는 용기를 가지고 사람들을 찾아가서 땅을 내어 놓으라고 이야기 한다. 나는 안 가는 곳이 없다. 가난한 자의 오두막뿐만 아니라 부자들의 궁전도 찾아간다.


만일에 내가 지주의 친구로서 그에 대한 충만한 사랑을 가지고 그가 가지고 있는 100에이커 중에서 50에이커를 내어놓으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이 그를 해치는 일이란 말인가? 그것은 곧 그에 대한 나의 진실한 사랑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만일 그가 이전의 방식대로 그대로 살아가려고 한다면 비만한 친구에게는 몸무게를 줄이라고 충고하는 것이 그에 대한 선의와 우정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를 납득시킬 것이다. 이는 너무나 마르고 여윈 친구에게 몸무게를 늘이라고 설득하는 것이 또한 의무인 것과 같다. 비만한 사람은 몸집을 줄이기 위해서 종래의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나는 적선을 구걸하는 게 아니다. 만일 내가 땅 대신에 가난한 자들에게 조리된 음식을 준다면, 그 일은 분명히 그들을 비굴하게 만들 것이다. 목마른 사람은 당연스레 물을 요구하고, 물을 얻어도 비굴해지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땅을 받는 일은 사람을 비굴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헌납자는 기부를 받아주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땅을 받는 것이지 곡식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힘든 노동을 해야만 수확하게 된다. 그래서 땅을 받는 자는 어떤 열등감이나 콤플렉스를 느낄 이유가 없다. 


비노바 바베, <<버리고, 행복하라>>, 산해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