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인가 티비에서 로또당첨자들의 그 후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었다. 
가족들끼리 재산분쟁이 나거나 돈 때문에 갈등이 생겨 불행해진 사람들이 나왔다. 
그래,그래. 너무 많은 돈은 역시 재앙을 불러와. 움화홧.
나는 왠지 안심이 됐다. 
그 다음날 친구에게 로또 당첨은 불행을 몰고 온다며 티비 본 이야기를 하니 
친구는 코웃음을 치며 이렇게 말했다. 
“티비에 나오는 불행사례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야. 대부분은 잘 산다고! 잘 사는 얘기는 안나오는 거야!”
 
그래, 그런 거구나. 난 역시 너무 순진해. 이 세상은 음모로 뒤덮혀 있어.
더러운 세상. 
나는 신에게 열심히 기도했다. 
“제발 로또에 당첨되게 해주세요” 
나의 열렬한 기도에 신이 화답했다. “로또나 사고 기도해! 이것아!!”

빈자의 재무설계 1편 나는 왜 불안한가? http://goo.gl/6t2QWu

빈자의 재무설계 2편 나는 왜 촌스러운가? http://goo.gl/Vd6MSU

빈자의 재무설계 3편 나는 인기인이 되고 싶었다. http://goo.gl/eLin2L

빈자의 재무설계 4편 어느 쾌락주의자의 가계부 고찰기 http://goo.gl/zGBLQ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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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글에서 나는 돈에 대한 ‘불안’을 얘기했고 
(너무 오래 돼서 생각이 안나시죠?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그에 대해 글을 쓰기로 했다. 

원래 계획은 내 주변에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하고 
‘역시 돈이 많은 사람들도 돈 때문에 불안해하는군요. 
인생 뭐 있어요? 다 그런 거지 그러니 우리는 솰라솰라~’  얘기를 풀어내려 했다. 
근데 내 주변에 인터뷰할 부자가 한 명도 없었다. (오잉?) 

그래서 그나마 고액 연봉자인 내 동생에게 슬쩍 질문을 던져보았다. 
근데 별로 불안해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재무상담 공부를 할 때 제일 많이 접했던 부분이 
사례를 보고 상담솔루션을 내리는 것이다. 사례에는  빚이 많고 사정이 안좋은 사람들의 
사례도 많았지만 한달에 천만원을 넘게 버는 사람들의 사례도 종종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건 돈을 많이 벌어도 
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품위유지비가 많이 든다는 것이었다. 
강남에 있는 아파트 대출상환에, 외제차에, 자녀유학비에 등등. 
근데 그런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를 못하니 부자는 아니지만 
내 기준에선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버는 동생의 불안감을 들어보려 했거늘
별로 불안감이 없다고?
왜왜 너는 불안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냐. 
지금이야 돈을 많이 버니까 그렇게 살 수 있다고 해도 평생 돈을 벌지는 못할 테고 
그만큼 씀씀이도 많을텐데... 혹시 나에게 불안을 숨기는 거니? 응? 

얼마전에 우석훈의 ‘불황 10년’이란 책을 보니까 
거기서 우석훈이 자기 지인들 얘기를 풀어놓던데 연봉 1억정도고 부모가 도와주지 않으면 
하우스 푸어가 되기 쉽다. 많이 벌어도 그 품위유지를 하기위해 대출원금은 갚지 못하고 
이자만 갚는 세월이 반복된다 운운 하길래 ‘우석훈은 연봉 1억버는 지인이 이렇게 많다니’..
하며 책을 덮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연봉 1억은 커녕 좀 버는 사람이 동생 하나인데
뭐가 이리 안되냐!

어쨌든 결론은 글쓰기는 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보고 불안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후 글을 써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많이는 아니어도 종종 만나고 다녔다. 
하지만 이걸 정리해서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빈자의 재무설계 글을 그동안 못썼다고 하면.... 변명이 될 수는 없겠지. 킁.
 
일단 내가 만난 사람들은 자본이 자본을 낳는 걸 당연시 하는 시대에 
6년 전 해방촌에 처음 주거공동체를 연 사람들, 제주도에서 혼자 3년간 농사짓고 있는 친구,
전국을 다니며 커피를 팔고 글을 쓰는 친구, 다른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사람들과의 접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공간을 열고 커뮤니티 활성화를 꿈꾸는 두 그룹의 사람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제 2의 이모작 인생을 꿈꾸는 한 친구 등등이었다.
 
이런 삶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처음 듣거나 신기할테지만 
빈자의 재무설계같은 글이나 찾아읽는 당신에게는 이런 삶이 익숙할테니 
저 친구들의 삶 자체에 대해 설명하지는 않겠다. 
나는 저 친구들을 만나면서도 그저 다짜고짜 글에 쓸 내용을 찾아낼 생각에 
“불안을 어떻게 해소해”라고 막 묻기도 하고 뭔가 그럴듯한 결말을 
이끌어낼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찾아 소위 '그림'을 만들어낼 생각만 했다.
대안적 삶이 주는 풍요로움 만족감 이런거 있잖아.
힐링적 삶의 메세지를 던져주는 사람들이 잘 하는 거. 나도 막 그런 걸 던져주고 싶었다.
 
                                  (이 그림은 김나훔 작가님의 그림입니다) 
 
 
주거공동체를 연 사람들 중 한 명이 ‘돈도 공유하는 느슨한 경제 공동체’얘길 하면 
‘아 이걸 어떻게 풀어서 글에 쓰지?’이러고 제주도에서 혼자 3년동안 농사짓고 사는 친구를 만났을 때는
‘땅의 정직함. 뭐 이런 걸 써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정작 내 불안과 외로움을 다스리지 못해 불면증에 징징 스스로 한탄이나 하고 있었다. 
사실 밖에 보이는 반짝이거나 낭만적인 삶 뒤에서 그들은 평범하고 꿋꿋한 
일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 사실은 시시하다고 외면했다. 
그 고단한 일상의 삶 말고 다른 건 없나 눈을 희번덕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저 그 낭만만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대안적 삶과 나눔이라는 낭만적 가치 뒤에는 같이 사는(일하는) 사람들과의 

갈등과 반목이 있고 자연과 함께 하는 자급자족의 삶에는 노동의 고단함이 맞물려 있다. 
이번에 만나지는 못했지만 익히 알고 있는 지인 중 하나는 시골에서 전기를 쓰지 않고 
화학적 섬유 옷도 입지 않고 살고 있다.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대단해한다.
어떻게 그렇게 사냐고 놀라워하기도 하고 지지를 보내기도 한다. 
누구는 부럽기는 하지만 절대 그렇게 살 용기도 자신도 없어서 환호로 그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니 누구가 아니라 내가 그렇다. 그런데 그가 토옹장에 돈이 떨어져서 과일을 사먹으려다가 말았다던가, 
서울에 올 일이 있을 때 차비걱정이라도 할라치면 나는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진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의 평범함을 외면하고, 
누구처럼 일확천금을 꿈꾸는 건 천박하다고 경멸하면서 나는 경계선상에 서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나에게 물었다. 불안한 이유가 과연 ‘돈’이 없어서인가를. 
우석훈씨 책을 보면 연봉 5억정도는 되야 하우스푸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물론 돈을 함부로 쓰지는 못한단다. 
노후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 그정도 위치에 오를 수 없어서 불안한 것은 아니다. 
저번 글에서 저축하지 못하는 삶에 대해 불안하다고 했는데 
그 내면에는 돈 이전에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고 
그걸 찾기 위해 나아가는 지난한 과정이 지루하고 고달파 건너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적 많이 읽은 동화속 세계에서 못벗어나고 순간이동능력을 꿈꾸거나 
마법사나 요정이 나타나 마술로 나를 도와주는 상상만 하며
뭔가 인간으로서 갖는 물리적 육체적 한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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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생일을 맞은 한 친구가 자신의 생일을 맞이해 
‘당신들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들어보는 자리를 기획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그 친구보다 나이많은 사람들이 “그때는 다 불안하지만 살다보면 자기가 원하는 걸 알게 돼”라는 
얘기를 해대길래 ‘아 나는 왜 이 나이가 되도록 그것도 여태 모르나’하고 자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명이 “내가 잘하는 걸 찾기 힘들면 못하는 걸 하나씩 버려라. 
그러고도 남는 것. 그걸 그냥 하면 된다”고 얘기해줬다. 그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쟤는 그림을 잘 그리는데 나는 그림도 못그려, 쟤는 손재주가 좋은데 나는 손이 둔해, 
쟤는 언변이 좋은데 나는 연단공포증이야. 이러면서 나는 주구장창 내가 잘해내지 못하는 걸 한탄하며 
부러워만 했는데 내가 못하는 걸 인정하고 그건 남에게 부탁하고 도움을 청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2011년 독립영화 중에 ‘파수꾼’이라는 영화가 있다. 
당시 이 영화를 보고 엉엉 울었는데 같이 본 친구가 이 영화가 대체 어느 장면에서 울 영화냐고 
이해안된다는 듯 물었었다. 
지금은 너무 유명한 배우 이제훈이 주인공인데 친구와 친해지고 싶지만 
그걸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엇나가며 표현하는 걸 보고 내 학창시절이 떠올라 눈물이 많이 났다.
나는 극중 주인공과는 반대로 오히려 친구들이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속에 
학창시절을 보냈고 그래서 반대급부적으로 먼저 다가가서 성격좋게 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무의식속에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그 영화를 보고 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다가가고 먼저 배려하려고 무지 애쓰긴 하지만 도움을 요청한다든지, 
남에게 일을 나누자고 하는 걸 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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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공동체 속에 있으면서도 누군가와 같이 하는 걸 어색해하니 
내가 잘하는 뭔가를 빨리 발견해내서 그걸로 우뚝 서야한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안보이고 찾아지지 않으니 불안할 수 밖에.
 
이 불안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같이 공동체를 이루며 어쩌구 하는 소리는 뻔질나게 해왔다. 
대안적 삶과 그 속에서 이뤄낼 수 있는 힘은 무수히 떠들고 다녔다. 
그러나 정작 일상을 살아내는 그 꾸준한 한 발 한 발은 하고 싶지 않았다. 
같이 돕고 나누자면서도 나 혼자만의 튀는 능력을 갖고 싶었다. 
그리고 불안이 하나도 없는 그 ‘순수한(?)’ 경지를 꿈꾸었다.
하지만 요정은 없고 나의 불안감은 평생 안고 가야하며 
한 발 한 발 내딛지 않고 하늘을 나는 방법은 없다. 
그동안 재무상담하면서 “진짜 돈이 없어서 불안한건지 
다른 욕망 때문에 불안한건지 얘기해보자”라고 그럴듯하게 말은 해대면서 정작
나는 나의 욕망을 들여다보며 그걸 하나씩 실현시킬 방법같은 건 생각해보기 두려워했던 것이다
귀찮아 했던 것이다
그러니 자꾸 뭘 잘해낼 생각보다는 못하는 건 창피해하지 말고 도움을 청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생각하며 매일매일 운동을 거르지 말고 하자. 
그래서 밤마다 절운동을 한지 이제 겨우 2주차가 되었다.
일단 하나라도 꾸준히 해나갈 수 있게 되길 바라며.

다음 글은 대체  재무상담이 뭔지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재무상담을 대처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묻는 글이 많아서 그에 대해 얘기해볼까한다.
 
P.S ? 무료 재무상담은 010 3508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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