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고 수다회>를 준비하면서,

문제제기 용으로 썼던 글인데...

어투가 별로여서... 버렸다가...

그래도 좀 아까워서 그냥 올려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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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살고 있다.

빈집에 함께 살면서 빙고를 통해 보증금을 모으고, 집세와 공과금을 나누어 내고, 물건들을 나눠 쓴다.

덕분에 우리는 주거비를 낮추는 데 성공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왜 주거비를 아끼고 있는 것일까?

 

주거비를 줄이고 다른 곳에 소비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소비를 위해서 우리의 삶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더 많은 돈을 자본가에게 가져다주기 위해 우리의 집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우리가 힘들게 번 돈을 함께 사는 식구들보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쓰려고 하는 것이지 않나?

우리는 그저 극단적인 소비자일뿐인가?

 

주거비를 줄이고 저축을 해서 더 좋은 집에 살기 위해서?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를 희생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래의 가족을 위해서 현재의 식구들을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그냥 자신의 현재 삶마저도 희생할 수 있는 자린고비이거나 냉혹한 투자자일뿐일까?

 

주거비를 줄이고 노동을 줄이기 위해서?

그렇다면 우리는노동을 줄이고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사회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그저 다른 사람 생각 안하고,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일뿐인가?

 

주거비를 더 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면 우리의 주거비는 쪽방촌 노인들이나 최저가 고시원보다도 낮은 수준인데,

우리는 이들보다 능력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인가?

우리가 이들보다 더 나은 조건에서 더 적은 비용을 치를 수 있는 이유는? 그래도 괜찮은 근거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그저 처절한 무능력자일뿐인가?

 

주거비가 줄어서 당장은 어쨌든 살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근시안적인 것은 아닐까?

우리는 당장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앞으로도 쭉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앞으로 닥칠 문제들, 앞으로 필요한 돈에 대해서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아직 세상 모르는 철부지일 뿐인가?

 

극단적 소비자, 냉혹한 투자자, 게으름뱅이, 무능력자, 철부지 모두에게 주거비를 낮출 이유는 충분하다.

당연히 우리는 이들 모두를 거부한다.

우리는 지혜롭고, 정의롭고, 우애롭고, 아름답고, 성장하며, 유쾌하게 살아가는 빈집사람들이다.

그래서 주거비를 어떻게 낮추고, 얼마나 공평하게 분담할 것인가를 얘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주거비 외에도,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고,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를 얘기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각자는 어떻게 살고, 함께는 어떻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