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계'

 

2011.10.31. 빈 가게에서. 쐐기벌레.

해방 이후 의 형성

 

해방 이전부터도 계가 존재했고, 그 목적에 따라 이름과 운영 방식이 다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체로 서민들이 많이 이용을 했고, 그 목적은 보통 자녀의 혼인 혹은 상에 대비함이었고, 그 외에도 친목도모와, 다양한 기능적 목적(소를 산다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술계등등)을 갖고 있었다.

해방 직후에도 다양한 계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이 때부터 등장하는 계들은 과거의 계와 약간은 성격을 달리한다고 한다. 특히 목돈 마련이라는 목적이 가장 특징적이다. 해방 이후에 서민은 돈을 구할 수 있는 곳이 고리대 아니면 은행이었는데, 은행은 문턱이 높은 관계로 고리대를 이용하거나 계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서 결국 목돈 마련을 위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상호협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 서민의 목돈 마련 이유를 추측해보면 1. 자녀 혼인 2. 3. 교육 4. 주택 마련이었을 것으로 보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때까지도 통용되었던 노동력이나 물건보다는 화폐로 점점 계의 보상이 단일화되게 된다. 이 당시 유행하던 계는 돈계였는데, ‘돈계는 은행 적금보다 높은 이자율을 보장했고 경제 성장에 투자되는 재원으로 활용되었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고이율로 인한 인플레이션 조장, 운영의 무질서함 등의 문제, 그리고 곗돈 자체 액수가 적어서 경제성장에 투자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부터 현재까지 유행하는 계의 유형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꼽는데, 번호계와 낙찰계가 대표적이다. 번호계는 윤번제로 돈을 타면서 자체에 대부 기능이 결합된 형태로 이자를 만들어내는 구조이다. 다시 말해서 내부 계원끼리 사채 이자보다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형식인 것으로, 목돈을 타갈 수가 있고, 예측 가능한 부분이 있어서 인플레를 넘기 위한 수단과 투기 목적으로서 가정주부들과 사업 자금으로서 중소상인들에게 많이 이용이 되었다. 특히 목돈을 탄 사람은 이를 이용하여 대부업(전후에는 사금융 이자가 높아서 4~5부정도 함)을 할 수도 있었고, 계원들도 계 내에서 대부업이 진행되므로 이익을 얻었으며, 참여인원도 작고 방식도 간단하여 은행보다 인기가 높았다.

이러한 계의 형성은 이촌향도로 인한 도시 생활에서 외로운 인생끼리 만나서 조금만 마음이 맞으면 조직하기도 하였고, 70년대 들어서는 관광계가 유행하기도 하고, 90년대 들어서는 여가활동과 함께 계가 형성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계는 그 자체의 관리 운영상의 문제로인해서 해방 이후의 광주 계모임 사건을 비롯하여 수많은 계 관련 사건으로 불신이 높아지게 되었다.

와 달리 은행의 적금과 보험은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측면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권위를 갖고 있는데, ‘가 직접 은행이나 보험으로 전환되지는 않았고, 처음부터 은행과 보험은 그 스스로의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보험은 전후의 1960년대에는 경제개발추진계획의 확정과 함께 생명보험회사가 국민저축기관으로 지정되면서 단체보험이 성장하였고, 1977년은 정부가 정한 보험의 해이며, 1980년대 보험회사가 기관투자가로 역할하고, 1990년대 보험시장 개방, 금융 자율화 시행이 되면서 본격적인 경쟁체제로 돌입, IMF 이후 4개 생보사 허가 취소 및 합병 등 일어난다. 2000년 넘어서면서 거대 외국계 보험회사와 경쟁하고 있는게 현재 보험의 상황인데, 한 보험회사 영업직원 블로거에 의하면 보험업은 1955년 총 자산 200만원에서 시작하여 IMF 시기를 제외하고 매년 10%-550%의 성장을 이룩했다고 한다. 반면 은행의 경우는 계와 끊임없이 경쟁하였고, 그 신뢰성에도 불구하고 높은 이자율에서 뒤처지다가 728.3조치 이후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으로 보인다.

 

궁금한 점..

 

오늘날 사채가 또 다시 판치는 사회에서 계를 조직하는 것이 어쩌면 좋은 대안이 되지 싶다. 그런데 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필요한데, 인적 신뢰 이전에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할만한 수단은 없을까? 또 대면 횟수가 낮아도 신뢰를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계의 현대 역사를 보면, 높은 금리와 간단한 운용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후 아파트 투자, 땅 투자, 주식 투자, 펀드 투자 등도 역시 고이율과 연결된다.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높은 금리의 돈인가? 안전하게 살기를 바라는 최소한의 요구인가?

 

보험상품을 만든다고 하면, ‘보상을 얼마나 해줄 것인가? 보험상품을 끊임없이 해지시키고 다시 가입시킴으로서 이윤을 창출하는 보험회사와 다른 형태의 보험회사 운영이 가능할까? 보험회사는 자본을 유지하기 위해 인플레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 여기서 또 인플레에 걸리는군요. T.T 개인이든 가정이든 조직이든.... 인플레...z.z...

 

 

<참고 1>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130106&docId=48873510&qb=6rOE7J2YIOyXreyCrA==&enc=utf8&section=kin&rank=3&search_sort=0&spq=0&pid=gqHt9c5Y7tRssce7K1wssc239628&sid=Tq4JmFEFrk4AACjxD@w) 네이버 지식인

 

안녕하세요. 지금처럼 은행이 활성화되기전에 우리 어머님들의 유일한 목돈마련수단인 계에 대해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계는 돈은 내는방법이나 액수가 타는 순서에 따라서 달라지며 타는 액수도 순서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번호계를 설명하면, 11명이 100만원짜리 계를 한다면 처음에는 계주가 1번으로 탑니다. 나머지 10명이 10만원씩을 내어서 100만원을 만들어 태워주는 방법도 있고 아니면 번호대로 2번은 12만원 3번은 12만원 4번은 115천원 5번은 11만원 6번은 105천원 7번은 10만원 8번은 95천원 9번은 9만원 10번은 8만만원 11번은 75천원 이렇게 고정금액을 내며 일번은 타고나서 12만원씩을 내므로 맨끝사람은 타는액수가 더 많아지게되므로,자기가 타는달은 돈을 내지 않습니다.

변동식계는 1번계주를 10명이 10만원씩 100만원을 태워주고 그다음은 12만원을 냅니다. 2번은 102만원을 타게 되고요 3번은 104만원을 타게되지요 제일 끝번은 120만원을 타게 됩니다.

또 다른방법은 낙찰계라해서 낙찰을 보는 방식이 있습니다. 자기가 계를 타고 싶으면 계돈을 얼마를 낼거다라고 써내면 제일 많은 액수를 써낸 사람에게 그달의 계돈을 태워주는데 설명을 하면 내가 계를 탈려는 욕심에 20만원을 써 냈다면 20만원을 뺀 금액만큼을 타게 됩니다.

낙찰계 역시 돈을 타고나면 20퍼센트를 가산한 12만원씩을 냅니다. 더 설명을 하면 4번을 탈 사랍이 20만원을 써 냈다면 계돈 106만원에서(12만원씩 3:계를 타간3번까지) 10만원씩 7(계를 타지않은사람) 20만원을 뺀 86만원을 타게 되는데 이때 20만원은 계군들이 낼돈에서 균등하게 차감을 해서 냅니다.

 

<참고 2> 조선일보 20081112

가장 일반적인 '번호계'의 원리를 살펴보자. 20명이 매달 20만원씩 20개월을 붓고 월 이자를 0.5%로 정한 계라는 조건일 경우다. 실제 계의 운영에서는 사소한 규정이 다 다르지만, 단순화하면 월 이자는 곗돈의 0.5%2만원이다. 곗돈을 탈 번호는 1번부터 20번까지 정한다.

이때 급전이 필요한 사람은 1번을 받아 400만원을 받고, 그 다음 번 모임부터는 후()순위에게 줄 이자 2만원을 덧붙여 22만원을 낸다. 2번은 402만원을 받고, 그 다음 번 모임부터 후순위에게 줄 이자 2만원을 덧붙인 22만원을 낸다. 맨 마지막 20번은 438만원을 받는다.

이 계에서 20개월 동안 1번이 모두 낸 돈은 438만원이고, 20번이 낸 돈은 400만원이다. 많은 이자를 내더라도 선순위의 번호를 타는 사람은 급전을 받을 수 있고, 이자를 적게 내는 후순위 사람은 목돈을 받는 것이다. 결국 선순위의 사람이 후순위 사람의 이자를 책임지는 구조다.

'낙찰계'는 처음에 이자와 번호를 정하지 않고 계의 참가자와 기간 정도만 정한 뒤 타고 싶은 곗돈을 써내서 번호와 이자를 정하는 계다. 위의 예를 이용하면 돈이 급한 사람이 400만원을 써서 내 앞순위를 받고 20개월 뒤 목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438만원을 써서 맨 마지막에 돈을 받는 것이다.

원리는 앞순위가 뒷순위의 수익을 책임진다는 점에서 번호계와 똑같지만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낮은 곗돈을 써서 낼수록 뒷순위로 곗돈을 타는 사람들의 수익률이 높아진다는 점은 다르다.

 

<참고 3> 문화일보 2008-08-14

계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있었던 것은 1938년이었는데 그 조사에 의하면 계의 종류만 해도 480종이나 되고, 계의 수는 3만에 이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계는 조선시대의 보편적 생활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다. 계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는 농업생산과 관련된 것으로 농계(農契) 마을의 공공비용 마련을 목적으로 하는 동계(洞契) 조세를 공동납부하기 위한 군포계(軍布契) 관혼상제의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하는 혼상계(婚喪契) 조상의 제사 등을 중심으로 하는 문중의 종계(宗契)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학계(學契) 등이 있었다.

계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 주민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이며 일정한 규약을 만들고 운영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그러니까 계는 생활상의 요구를 상부상조에 의해서 해결하는 일종의 생활결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농민들이 봉건통치의 혹독한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생활의 버팀목으로서도 중요한 기능을 감당했다.

계는 일반적 조직이나 공동체와는 달리 대단히 유연한 수평적 네트워킹이라는 강점을 지닌다. 우리가 그점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계를 다시 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필자가 계를 다시 주목하는 것은, 지금의 우리도 생활결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절이 아닐까? 해서이다. 생존터전은 나날이 황폐해지고 약육강식의 시장논리는 더욱 횡포해지고 양극화는 그 극단을 향하고 있다. 어느 시절이나 그랬지만 권력이야 권력자신을 챙기기에도 급하다. 민생은 백성들이 스스로 알아서 챙기지 않을 수 없다.

 

 

경향 1954. 9. 12. ‘계의 실태는 이렇다

동아 1965. 10. 16.

경향 1976. 9.10.

 

 

  * 조금 더 글을 가다듬어봐도 좋을듯 하네요.. 계가 은행에 밀리는 시점과 관련한 이야기나... 주체.. 어떻게 계에 모이는지, 아직도 계가 남아 있는 까닭.. 등 좀 더 고민해보고 정리하면 좋을듯..

 

* 다음 모임은 다른 일정과 겹쳐서 늦을 것 같아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