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밟고 있었다면

조회 수 4235 추천 수 0 2009.12.16 11:12:34

공놀이 경기장, 폐허를 짓느라고

산을 뒤집고 계곡을 메워, 황무지를 조성하느라고

무너뜨리고 자르고 뒤집는 공법으로, 녹색사막을 건설하느라고

흙먼지 바위 나뒹구는 곳에 꼬리치레도롱뇽 한 분

고비사막보다 거친 땅 위에 탈진한 그놈 한 분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자니 하,

절로 탄식이 나오네

 

뭉툭한 입엔 변변한 이빨 하나 없고

퉁방울눈은 겁을 먹도록 진화한 기관 같고

적은 보아서 어쩌랴 시력도 형편없고

날을 세운 발톱도 날카로운 귀도 없고

튀어 달아날 뒷다리도 몸 색깔을 바꾸거나

죽는 시늉을 하거나 털을 곧추 세우거나

냄새를 피우거나 혐오감을 주거나 아부를 하거나

혹은 노래를 잘 부르거나 예쁜 귀를 가졌거나

그런 힘도 잔꾀도 배짱도 노리개도 못되는 것이

 

어떻게 대대손손 대를 이어왔을가

습지에는, 초일급수에는 저들만이 누리는

상생의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땅 위의 생명들을 떠받치고 있느라

저리 납작하게 엎드린 것일까

 

그래, 저리 생긴 사람들 있었지

볕이 드는 곳 번듯한 곳은 그를 외면해도

그늘진 뒷일 도맡아 말이 없고

있는 둥 없는 둥 궂은 일 묵묵 눈 맑은 사람들 있지

기죽지 마시게, 그대들이 내일의 사람이네

미래는 늘 오늘의 발바닥에 있다네

길과 맞닿아 길과 한몸인 사람이라야

희망을 말할 수 있다네

만약 그러지 못했거든 발바닥을 보시게

그대들이

다시 누군가를 밟고 있었거나

 

- 백무산, <누군가를 밟고 있었다면>, <<거대한 일상>>, 창비

 

 

 

어제 닷닷닷에서 같이 읽고 싶었던 글이 있어 올립니다.


지각생

2009.12.16 20:45:01

고마웠삼. 오늘 새벽에... 간만에 밤샘 작업하느라 힘들었는데.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공지 20210225 빈집 게시판&공통장&폰 정리 회의 [1] 사씨 2021-02-26 12958
공지 '2014 겨울 사건의 가해자 A'의 게시글에 대한 빈마을 사람들의 입장 [19] 정민 2016-05-19 154611
2260 2020년 12월 5일 마을회의 사씨 2020-12-06 264
2259 9월 26일 빈마을 회의 빈마을회의 2020-10-01 266
2258 빈마을 회의를 합니당 피자요정 2020-12-04 306
2257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네요 이루다 2020-11-19 367
2256 장기투숙 문의드립니다! [1] 승아 2020-08-30 394
2255 빈집 회의일정 공지 및 근황공유 ㅇㅈ 2021-02-17 676
2254 새 빈집폰이 생겼습니다. 사씨 2020-05-05 916
2253 7/11 제 4회 빈 2분 영화제 사씨 2020-07-04 947
2252 새 빈집 만들기 모임! 9월 4일! 새집만들자 2020-08-28 1012
2251 이번 일요일! 만들기 모임 하자~~ [1] 사씨 2020-05-16 1073
2250 2020년 3월 회계모임 회의록 [1] 회계모임 2020-03-03 1211
2249 2020년 4월 회계모임 회의록 회계모임 2020-04-12 1213
2248 가사 미분담,과중에 대한 단편집 공개회의 해요 [2] 단편집 2020-12-26 1225
2247 인생은 무엇일까 손님 2019-03-21 1240
2246 단투 신청합니다 [2] 팬더 2020-02-01 1275
2245 단투 문의드립니다. [2] 손님 2018-12-17 1283
2244 금요일 8시 차 마시는 밤 사씨 2020-02-14 1317
2243 오늘 밤! 차 마시는 밤 차밤 2020-03-03 1318
2242 손톱은 2019-06-15 1349
2241 레디 플레이어 원 / 3D 로 다시 볼 수 있는 방법 없을까요? 아기삼형제 2019-02-12 1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