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조와 상조, 다시 협동조합의 가치를 생각한다.

 

                              김홍일(사회투자지원재단 이사, 성공회 사제)

 

1990년대 초 달동네를 중심으로 생산자협동운동을 진행하던 시절, 가장 빈번하게 진행되었던 교육주제는 협동조합의 가치와 철학 그리고 원칙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지금은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달동네 주민들 사이에서 문맹자들을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은 시절이었다. 학교를 다녔다면 학급회의라도 경험을 하였겠지만 그같은 민주적 의사소통의 기초훈련 기회조차 상실한 채 거칠은 인생을 살아 온 주민들이 많았다. 때문에 협동조합이라는 민주적 노동과 경영을 위한 의사소통 훈련은 당시 중요한 교육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그 보다 중요한 주제는 자조와 상조라는 협동운동의 기본가치와 철학이었다. 공동체에 참여하는 주민들의 의지와 꿈을 의식화하고 조직화하지 못한다면 협동조합은 그 출발 자체가 모래 위에 집을 짓듯이 허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자조(自助)란 모든 조합원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노력하여야 한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상조(相助)란 개인의 발전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자조와 상조라는 기본가치를 근간으로 하던 90년 대 초 달동네 생산공동체 운동이 '자활센터'라는 정부보조를 받아들이게 된 배경에는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하는 상조의 좁은 범위를 확대시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18세기 노동자협동운동이 태동하던 산업화시기와 달리 20세기말 자본의 독점화가 고도로 진전된 상황에서 가난한 도시빈민들을 중심으로 하는 상조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출구전략의 한 가능성으로 정부의 지원을 유도하였던 것이다.

자조의 토대와 상조의 전통이 주체들 사이에서조차 더 깊이 뿌리내지 못한 탓이었을까.... 정부의 지원이 본격화되면서 협동경제 주체들의 생명력이 되는 자조와 상조의 철학은 점차 퇴색되고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정부의 지원으로 '자활지원센터'를 통해 사업의 영역이 확장되고, 노동자협동운동에 대한 관심도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확장되었고 이후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 다양한 이름으로 사회적경제의 영역이 확장되어 왔지만 '생명력 있는 공동체 모델'을 찾기가 쉽지 않다. 통계적 숫자로서의 사회적 경제조직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거품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놀랄만큼 많은 지원기관들이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힘입어 생겨났고, 지금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지원기관들을 통하여 생겨난 공동체들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나는 그 이유와 원인에 대한 연구에 참여한 적도, 관련된 논문이나 글을 곰곰이 읽은 적도 없다. 그래서 나의 불안이 기우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불안을 지울 수가 없다. 생산공동체에서 자활로, 사회적기업으로, 커뮤니티 비즈니스와 마을기업으로, 그리고 이제는 사회적경제라는 이름으로 관념과 논의들은 화려하게 옷을 갈아입으며 발전해 왔는데 공동체의 실상들을 떠올리면 무언가 허전함을 지울 수 없다.

 

그 허전함이 어디에서 오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회적경제라는 담론은 있어도 '자조와 상조'라는 사회적경제의 기본가치와 철학이 사람들의 마음과 현장에서 실종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서로 돕는 상조의 지평은 공공부분과에 대한 의존을 넘어, 파트너십으로 그리고 지역사회와 시민들의 참여로 이어지지 못한 채 정체되었고, 스스로 돕는 자조의 철학은 인건비 지원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더 깊은 대지의 생명수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90년대 초 생산공동체 운동을 하며 들었던 불안함이 자꾸 떠오른다. 자조와 상조라는 가치와 철학을 조합원들과 공유할 수 없다면, 그 가치와 철학으로 조합원들의 꿈과 의지를 의식화하고 조직화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조합원들의 꿈과 의지가 지역사회의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어지고 이어질 질 수 없다면, 그 모든 노력들이 모래 위에 집을 짓든 허사일 것만 같았던 불안감이 지금 사회적경제를 생각하며 다시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자조와 상조, 스스로 돕고 서로 도와 자신과 공동체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협동운동의 가치와 철학을 다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