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지금은 울산입니다.
살구는 오늘 차타고 올라갔지만, 저는 자전거 타고 올라갑니다.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요.
지난 번 글은 간략하게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다소 단정적인 어투로 쓰여졌는데 그게 다시 문제가 되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1. 오해...
쿠우, 오해라는 말이 기분나빴다면 미안합니다.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오해는 늘 쌍방의 책임이지요. 저도 그런 의미에서 문제는 오해였다고 한 거구요. 당연히 빈고, 그 중에서도 실무를 담당했던 저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원인을 '오해'로 파악한 것은... 그것이 제일 이해나 해결이 쉽고 깔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설명 못해서 미안하다. 잘 못 알아서 미안하다. 이렇게 하면 끝나는 거니까요. 그게 아니고 근본적인 철학과 입장의 차이라면 긴 논쟁 또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구요. 서로간의 불신과 미움의 문제라면... 흠...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솔직히 저는 서로의 책임으로 생긴 '오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는 제가 신뢰를 못 받고 있다는 쪽으로 자꾸 생각이 되는데... 그게 정말 힘듭니다. 그게 사실 지난 겨울부터 시작된 제 멘붕의 큰 원인 중 하나입니다. 재정 담당자,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 신뢰받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은 정말 참기 어려운 것입니다.
2. 소통...
잔잔, 출산을 앞두고 신경쓰게 해서 미안합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사실을 명확하게 알리려고 했을 뿐, 모임이 필요없다거나 문제제기가 의미없다거나, 소통하지 않겠다는 건 전혀 아닙니다. 제가 서울에 없고, 또 힘이 없어서 같이 참여할 수가 없어서 아쉬울 뿐 저도 올라가는 대로 같이 하겠습니다. 그 전까지 어떤 방법으로든 얘기하고... 잔잔은 그냥 쉬시고... ^^ 다른 운영위원분들과 다른 조합원분들이 제 몫까지 열심히 소통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3. 빈집/빈고
사람들은 물론 빈집을 위해서 빈고에 출자합니다. 빈고는 그 돈을 빈집에 주는 건 아니지만, 보증금으로 대출하는 것으로서 그 목적과 기능을 다 하는 것이구요, 그게 꽤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랴가 얘기한 것처럼, 지금 우리가 소모성으로 쓰는 것 보다는 이후에 있을 더 큰 위기나 다음 사람들을 위해서 남겨두자는 것이 빈고의 방법입니다. 그렇게 출자금과 차입금과 그리고 빈고적립금까지 모두 포함해서 빈집들에 대출합니다. 그렇게 빈고는 분명 빈집과 분리되어 있지만 빈집에 대출함으로써 '빈집의 유지와 확장'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빈고에 출자하면 빈집이 유지 확장될 것이라는 믿음'을 빈고가 저버린 적은 없지 않나요? 빈고가 '빈집'이 아닌 곳에도 대출하면 빈집의 유지 확장에 기여하는 게 아닌가요? 빈고가 '빈집'과는 구분되어 있지만, 빈집과 유사빈집 공동체에 대출함으로써 빈집의 유지와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하면 그게 정말 오해를 조장한 건가요?
4. 채권/채무
채권자, 채무자라고 하니까 좀 어색하고 무거운 느낌이 들어서 저도 싫습니다만... 기본적인 구조는 그렇다는 얘기를 강조하기 위해서 썼습니다. 빈고의 목적은 채권자와 채무자가 동등한 조합원으로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채권도 채무도 그냥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아예 관계자체가 성립을 안합니다. 누가 돈을 빌려주겠어요. 단지 입장을 바꿔볼 수 있을 뿐입니다. 채권자도 채무자의 입장에 서고, 채무자도 채권자의 입장에 설 수 있어야 단순한 채무자-채권자 관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A라는 사람이 B집 보증금에 100만원을 넣었습니다. A는 B집 구성원 중 하나 일 수도 있고, 옛날에
B집에 살았던 사람일 수도 있고, B집을 지지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A도 돈이 남아도는 게 아니어서 나중에는 원금을
돌려받고자 합니다. B집 사람들은 고마워하며 돌려주겠다고 함께 약속합니다. 그럼 A는 채권자가 되고 B집은 채무자가 되죠.
이상한가요? 아주 좋은 채권자-채무자 관계죠. 보증금이 없으면 집이 계약될 수가 없는데 선뜻 보증금을 빌려주는 사람, 이런 관계는
사실 가족말고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이런 관계에서도 지켜져야 할 것은 있습니다. 채권-채무 관계... 그러니까 이 돈은 분명 A 소유의 돈이고, 그래서 반드시 A에게 돌려준다는 겁니다. 이건 단지 채권자를 위한 것 만은 아닙니다. 채무자에게도 이건 단지 종속된 것이 아니고 채권자에 대한 예의이자 그저 도움받은 게 아니라는 자존심이자 앞으로도 계속 대출받기 위한 전략입니다.
자 그런데 B집에 일시적인 문제가 생겨서 돈이 부족합니다. 이 때 B집 사람들은 A가
계단집을 위해 쓰라고 준 돈이니, A의 돈을 일부 꺼내 지출해도 좋은 걸까요? A는 언제든 필요할 때 돌려받을 수 있어야 하고, 또 B집은 이제 보증금이 남아서 자기 돈까지는 필요없다고 생각되면 다른 새로운 집에 빌려줄 수도 있겠지요. B가 A의 선택에 대해서 뭐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닙니다.
그렇게 다수가 된 A들의 조합이 빈고죠. B집 사람은 조합원이 됨으로써 A의 한사람으로 참여합니다. 그래서 공동이 돈이 된 조합의 자산에 대해서 어떻게 쓸지에 대해 처음의 A와 동등한 자격으로 논의할 수 있습니다. A는 조합 자체를 탈퇴할 수는 있지만, 그 전까지는 전체의 의사에 따라야 합니다. B집 사람은 채무자로서 A와 만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조합원으로서 A와 만날 때 A의 돈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수 있습니다. 그때 B집 사람들은 당연히 조합의 목적에 동의하고 조합의 유지에 힘을 합치는 것이 전제입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조합원들은 동일한 입장에서 다같이 조합에 출자하고 같이 운영하며, 돈이 필요한 사람이 당당히 대출받고 또 당당히 상환하는 관계가 될 것입니다.
5. 저리/고리
저리와 고리는 물론 둘 다 이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다만 양적인 차이일 뿐이지만 전혀 다릅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정부가 전세자금대출을 4.5%에 대출하는 것은 대출이라기보다는 '주택정책'이고 영세민에게 2%에 대출하는 것은 '지원'이고, 무이자 대출은 '특혜'입니다. 은행이자보다 높아서 출자하는 사람과 은행이자보다 낮지만 출자하는 사람은 그게 단지 1%의 차이라 할지라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고 완전히 다른 움직임입니다.
또한 빈고든 각각의 출자자든 대출은 하고, 형식상 채권자이기는 하지만, 대금업자는 아닙니다. 이윤이 목적이 아닐 뿐더러, 업으로 하지도 않고, 그나마 남은 잉여금도 원칙에 따라 비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분배되니까요. 이윤을 목적으로 고리에 대출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저리에 대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행동입니다. 그걸 부정하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6. 반자본주의
'빈집'에 대출하는 것이 반자본주의입니까? 그건 '빈집'이 반자본주의적인 활동을 충분히 할 때 성립하는 말입니다. '빈집'은 알겠지만 항상 변합니다. '빈집'에 대출하는 것만으로 반자본주의를 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빈집'의 돈을 '빈집'에서 쓰는 것은 그다지 반자본주의적일 것이 없습니다. '빈집' 역시 빈고에서 대출받은 돈을 집주인에게 보증금으로 다시 대출(!)해주고 이자를 받는 "저리대금업자"입니다. 우리가 가진 돈이 자본의 흐름 속에 있는 한 돈이 돈을 낳는다는 사실은 피할 수 없습니다.
빈집의 반자본주의는 '빈집'의 돈과 그 돈에서 나온 수익을 '빈집' 사람이 아니었던 사람, '빈집'이 아니었던 집에게까지 공유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어차피 다 공유해서 나한테 별 이득도 안되는 자본, 그 까짓거 수익을 못내도 괜찮고, 없어져도 별 상관없다는 입장이 빈고의 반자본주의입니다. 다만 속도를 조절해서 공동의 공간과 공동의 관계를 만들면서 서서히 사라지게 하자는 것이 빈고의 방법입니다.
반자본주의적 실천을 하는 공동체라면, 빈집과는 좀 다르더라도, 빈집보다 더 잘 할 수도 있고 좀 못 할 수도 있지만, 대출하고 공유하는 것이 곧 빈집의 방식, 빈고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7. 빈집?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빈고는 처음부터, '빈집'이 아닌 곳에 대출했습니다. 처음 시작한 아랫집이야 그렇다 치고,윗집, 가파른집, 옆집, 빈가게, 하늘집, 광대집, 공부집, 앞집, 낭만집, 만행행간, 까페해방촌, 해방채, 계단집... 어느 집이 '빈집'입니까? 어느 집이 처음부터 '빈집'이어서 빈고가 대출을 했습니까? (빈)마을에 새로들어오는 이웃 '집'이니까... 대출한거고... 같이 지내게 되니까 '빈집'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이지요.
빈고는 '빈집'을 정의한 적이 없습니다. '공유, 환대, 자치의 공동체'라는 식으로 대출신청서를 작성해보기도 했지만... 저렇게 그냥 두리무실한 정의로는 사실상 웬만한 공동체는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말그대로 그냥 '빈마을'이지요. 어떤 공동체도 함께할 수 있는 비어있는 마을. 만행이 문제가 되나요? 숙박? 숙박합니다. 손님? 받습니다. 공유? 잘 합니다. 마을활동? 잘 합니다.
빈가게, 까페 해방촌이 문제가 되나요? 공유? 환대? 자치? 빈집이 못한 것을 많이 하지 않았나요?
빈고는 그동안 빈집들에 대출했던 것과 똑같은 절차와 취지로 빈가게와 공부집과 만행과 해방채, 계단집에 대출했습니다. 빈고 운영회의의 결정에 절차와 형식 상에 어떤 문제가 있었습니까? 뭔가 심대한 변화가 있었습니까? 빈집에 대출하다가 공동체에 대출한다? 이건 사실 변화도 아닙니다. 원래도 다양한 공동체들이었을 뿐인 빈집들 중에서... '빈집'이라는 이름을 불편하는 곳이 있으니... '빈집' 아니고 그냥 공동체여도 괜찮다고 했을 뿐입니다. '빈집'이라는 이름이 생겨버렸으니, 그 이름을 넘어서자는 것이지 빈집하지 말자는 것 아닙니다.
가파른집이 독방 쓰고 손님 안받을 때도 그냥 대출했어요. 빈가게도 마찬가지로 그냥 대출했어요.
공부집이 재정 분리를 얘기하고 빈집과의 차별성을 얘기할 때, 빈고는 그냥 대출했습니다.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만행에 대출해서 빈고에 무슨 변화가 생겼나요? '빈집'에 문제가 생겼나요? 그냥 더 풍부해진 것 뿐이지 않나요?
수유너머R의 경우도 적지 않은 돈을 빈고를 통해서 빈집에 출자/대출해줬는데, 나중에 수유너머R이 공간을 구할 때 빈고가 여유가 있다면 당연히 더 많은 돈이라도 대출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자 지금 또 새로운 대출 신청서가 올라왔습니다. 양군과 자주의 '빈집43'. 이 집이 '빈집'입니까? 빈고가 대출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저는 '빈집'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대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면 '빈집'이 될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겠지요. 대출하지 않으면? 아무 사건도 벌어지지 않겠지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제 생각에는 이렇게 '빈집'이 아닌 집에 대출하는 것... 그게 빈고가 '빈집의 유지와 확장'에 기여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여기저기 대출하는 것 때문에 기존 빈집들에 문제가 생긴다면 얘기가 다르겠지요. 하지만, 빈고가 새로운 대출을 함으로써 기존 '빈집'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방기한 것이 있습니까? 빈고가 빈집에 대출할 돈을 다른 곳에 써서 정작 빈집에 쓰지 못했습니까? 아직도 빈고의 전체 출자금은 빈집 보증금에 못 미칩니다. 나머지는 차입금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빈고의 입장에서는 이쪽에서 빌린 차입금으로 다른 공동체에 빌려주는 것이지, 빈집의 출자금이나 빈고적립금을 밖으로 돌리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빈집이 먼저냐 빈고가 먼저냐는 논의는 뭐 그닥 필요한 것 같지는 않은데요... 굳이 따지자면... 빈고는 나중에 생겼을지 몰라도, 빈집에 출자하고 대출한 사람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빈집이 생겼지요. 그런 사람들의 관계가 계속 생겨나고 확장되다가 빈고라는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구요.
그리고 빈집은 빈고가 체계화되기 전부터 있었던 것이지만, 빈집회계는 최근에 생긴 것이고 그건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구성원과 새로운 형태의 조직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무엇이 목적이고 어떻게 운영될 것인지가 불분명한 이제 만들어지고 있는 조직입니다. 빈고 입장에서는 이 신생의 조직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새로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지요. 저는 기대와 함께 우려도 갖고 있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반대하거나 비판할 것까지는 없고, 단지 저의 질문이 응원이 되길 바랍니다.
빈집회계는 어떤 돈을 어떻게 쓸 것입니까? 안정적인 운영이 어렵지는 않을까요? 빈고와의 차별성은 무엇입니까? 상호부조를 어떻게 빈고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거죠? 빈집의 유지와 확장에 어떻게 기여할 거죠? 빈집이 되려면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입니까? 공동체가 '빈집'이 되면 무엇이 좋아지죠?
이 질문들에 대해서 개략적이라도 답하지 않으면... 아마도 빈집회계는 유명무실해지거나, 아니면 지금의 빈고와 거의 유사한 형태가 되지 않을까요?
9. 마을활동비
집사회의는 이미 충분한 잔액이 있습니다. 쓰지 못해서 문제가 될 정도였던 마을활동비죠. 일단 이것부터 잘 활용해봅시다.
정말 상호부조 잘 하고 마을활동 잘 하고, 빈집 유지와 확대에 기여한다면... 그런데도 잔액이 부족해서 문제라면...
그 때 이 문제는 빈고 운영회의에서 논의해서 결정해도 늦지 않겠지요.
빈고적립금을 '빈집'에 사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물론 '빈집'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건 아니고, 빈고에 목적과 취지에 맞게 타당한 근거와 절차를 갖춰야겠지요.
그런데, 그건 빈고가 '빈집'만의 것이 아니게 되어서 그렇게 된 게 아니고, 원래부터 그랬던 겁니다.
그걸 설득하면 쓰는 거고, 못하면 못 쓰는 겁니다.
설득이 쉽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이 정당성과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쿠우가 빈고적립금의 일부라도 빈집회계로 옮겨야 된다는 주장은...
이미 지난 번 글에서 불가능할 것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다만 그 근거와 선물한 사람과 금액, 그렇게 했을 때의 장점을 명확히 해보세요.
저는 여기에 반대하기도 하지만, 계산할 도리가 없고, 누가 그걸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장점도 알 수가 없거든요.
10. 상호부조
작년에 낭만집 수도 수리비와 장투 감소로 인한 분담금 지원. 공부집 장투 감소로 인한 분담금 지원. 앞집 보일러 수리비 지원.
빈고가 지원한 내용입니다. 이게 상호부조가 아니라 선물이어서 문제라면... 상호부조 하면 되지 않습니까?
쿠우 말대로 저도 시혜성 선물은 수동성과 종속을 낳아서 문제라고 봅니다.
그래도 일단 필요해서 받았다면, 복수를 하면 되지요. 그것도 더 많은 선물로.아니면 받지 말고, 별도의 상호부조 시스템을 운영하던가요.
집사회의가 마을활동비가 남아 돌아도 그걸 상호부조에 쓰지 않은 것이 빈고 때문에 못 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위의 사례들이 대부분 빈집적립금/빈고적립금으로 한 건데...
원래는 빈고도 상호부조였는데, 빈고가 만행에 대출했기 때문에 '빈집'에 대해서 선물이 된 겁니까?
빈고가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것이 아니고... 그걸 정확히 하지 않으면 어차피 나중에 와서 집사회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집사회의가 주는 것도 상호부조가 아니라 시혜로 느껴질 겁니다.
선물이 쌍방향으로 이뤄지면 상호부조 아닙니까? 상호부조도 일방적이되면 시혜 아닙니까?
'빈집' 사람들이 집사회의에 대해서 당당할 수 있다면... 그건 그만큼 마을활동비 등으로 선물 한 게 있기 때문 아닐까요?
빈고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면... 그건 빈고에 대해서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요?
빈고 어려워요. 출자도 계속 줄고 있고, 일하는 사람 힘들고,
선물하고, 대출하고, 교육하고, 상담해도, 심지어 칭찬도 애정도 못받아요.
출자도 하고, 선물도 하고, 회의도 참석하고, 조합원 교육도 하고, 실무도 보고, 다른 공동체도 돕고, 자기 주장도 하고...그러면 안됩니까?
비서나 운영회의가 문제면 그냥 바꾸죠.
무슨 대단한 권한이 있고, 무슨 대단한 이익이 있고, 미련이 있어서 하는 거 아닙니다.
재정상태 더 투명하고 친절하게 공유하고...상호부조 프로그램을 더 잘 만들고 운영하고...
대출심사도 더 민주적으로 하고...
출자도 더 적극적으로 이끌어내고...
선물도 더 받고
돈도 더 잘 쓰고, 더 잘 공유하는 방법들을 개발하고...
제발 그렇게 해주세요.
서로 같은 조합원으로 비판하는 거면, 좀 도와줄 건 도와주고, 직접 할 거는 직접 합시다.
어려운 거 알면... 못 해도 좀 이해해주고...
어차피 누구도 못하는 거면... 그것 때문에 괜히 서로 상처주지는 말자구요.
11.
결국 빈고의 위상 변화나, 빈집적립금의 명칭 변경은... 제가 보기에는 사실상 아무런 큰 변화가 아닙니다. 그냥 하던대로 한 겁니다. 물론 하던대로 한 게 문제일 수는 있지만 그거야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니 천천히 수정해도 되는 것이구요. 그래서 운영위원회
수준에서 논의해서 처리한 것이구요. 충분히 민주적이지 않았다는 비판은 항상 옳은 말이지만, 그렇다고 또 소수의 사람이 결정했다고 하면 섭섭하죠. 미리 공지하고, 정해진 날짜에 진행하고, 정식으로 위임받은 운영위원들이 나름 열심히 얘기한 건데요. 빈고 운영위원 그냥 하겠다고만 하면 돼요. 대표도 마찬가지구요. 오라해도 않오고 자꾸 얘기하면 귀찮을 것 같고 나도 귀찮으니 적당히 얘기하고 마는 거죠. 더 많은 사람이 논의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솔직히... 참 구차합니다만... 이게 정말 큰 변화라면 제가 좀 더 얘기하지 않았겠습니까? 제가 그거 날치기 통과시켜서 뭘 하겠어요. 유용을 하겠어요, 변절을 하겠어요. 오해 조장하고 빈집 착취해서 돈 끌어다가, 빈고로 가져가서 뭘하겠어요. 빈집 아닌데다 빼돌립니까? 여기에 대해서 의혹이 있다면... 참... 제가 그만 둬야죠.
12.
뭐 쓰다보니 길어지고... 감정도 오르락 내리락 하고... 해서 또 다른 감정과 오해를 낳을 수도 있겠다 싶어 한참 고민했지만... 그냥 올립니다. 저도 이제 단어 하나 뉘앙스 하나에 상처받고 고민하지 않을랍니다. 이제 좀 다같이 편해지자구요. ^^ 힘들게 얘기 꺼내준 쿠우, 들깨, 이스트, 켄짱, 잔잔, 말랴를 비롯해서 관심가져주신 모든 조합원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빨리 정신차리고 올라가겠습니다.
손님
윗 글을 빈고의 생각으로, 빈고의 선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빈고조합원 중 한사람인 지음이 빈고와 빈집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는 '팩트'이며, 그가 생각하고 있는 '논리'이며 그의 '속내(감정)'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중간에 운영위원이나 재정위원, (전)비서로서의 것들이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만, 저는 빈고조합원의 글이라고 생각하고 읽었고 여러분도 그랬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그의 글이 빈고를 대표하지도 않으며 그래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지음의 첫번째 글과 두번째 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의 글보다는 다른 운영위원이나 다른 조합원의 글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저도 조합원의 한 사람으로서 짧은 글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제밤 지음의 글이 올라와 시원섭섭하였습니다. 비슷한 내용이었지만 생각지못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만큼 잘 쓸 수 없기에 시원하였고, 다른 조합원들의 글을 볼 수 없어서 섭섭했습니다.
빈고는 여러사람이 모여있는만큼 그만큼의 생각이 존재할 겁니다. 모든 생각을 다 담아서 갈 수는 없을테지만, 최대한 많이 담기 위해서 노력은 해야겠지요. 논의하고, 합의하고, 결정하고, 때론 위임하기도 하고, 문제제기하고, 번복할 수도 있고, 방관하기도 하고... 아무튼 쉽지않은 과정일 겁니다.
쿠우 조합원의 문제제기가 있었고, 지음 조합원의 해명 내지는 반박(뭐라고 부르던)이 있었습니다. 또 많은 분들이 게시판에 글을 올리셨구요. 게시판이 충분히 풍성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제 한번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직 미진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게시판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시고, 급하지않게 일정을 잡아보는 건 어떨까요? 빈고 확대운영위원회던 빈고 수다회던. 그리고 빈집내부에서도 필요하다면 이번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말랴-
손님
빈고는 빈집 위에 서 있고, 빈집은 '집'이자, '개인'이고, '마을'이며 '단체'라고 생각했어요. 빈고의 확장이란, 신뢰를 가진 또 다른 관계가 늘어난다는 것이고, 그건 곧 또 다른 빈집(개인이든 단체든 집이든 ..)이 생기는 것이라고...빈고의 조합원은 현재의 조합원과 잠재적인 조합원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 빈고는 '현재의 조합원'들이 먼저 하는 선물의 성격이 있다고 봤어요. 그건 일종의 희생이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게 또 빈집스러운 생각이라고... 사실 이런 추상-관념-적인 내용과 현실의 돈의 오고감이라는 민감한 문제가 결합되어 무리없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빈고/빈집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게으른 조합원이기는 한데...정말 많이 게을렀는지.....이렇게까지 심각한 분위기의 문제가 발생하는 거였나 싶은 것이.. 내가 너무 단순한가 하는 자괴감이 드네요.
여튼 요것이 저의 조합원으로서의 생각이었음다. ㅋ
아 조금은 빈집의 틀에 대의제적(?) 운영위원 제도가 맞지 않은 것일수도 있었겠다 싶긴 하구요. ㅎㅎ
게름
8번에 현재 빈집회계를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생각을 적자면
사실 빈집 회계라는 건 '빈집'이라는 어떤 단체나 공동체의 재정을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마을활동비 혹은 마을 사업비라는게 있었죠. 마을잔치나 집사회의 간식비 고양이 사료비 등등을 처리하는 비용이었고 작년부터 빈집 장투들이 낸 마을활동비였죠. 그걸 관리하는 사람이 어떤 형식으로든 필요하고 그걸 빈고 비서가 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집사회의에서 하는 마을 회계 혹은 주장이 처리하는 거죠. 그 형식은 아직 명확하지 않고 그래서 실험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것이 새로운 구성원이나 새로운 형태라면 그것은 주장이라는 게 생길 때부터, 혹은 집사회의란게 생길 때 부터, 혹은 집사들에게 의결권을 주기로 '결정'한 작년 몇월인가의 마을잔치때부터 혹은 장투들에게 마을 활동비를 걷자고 한 그 때부터, 혹은 언제부터인지는.....모르겠네요.
저는 그래서 이것이 새로운 형태의 새로운 조직원의 무엇인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각집에서 회계가 장부를 정리하고 돈을 관리한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확정된 형태의 조직이 아닌 것이잖아요? 난 소위 빈집회계에 별다른 의미부여를 크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내가 둔감해서인가요?
어떤 돈을 쓰고 있냐면, 현재 빈마을(하지만 빈집의 장기투숙객들이 회비처럼 냈던 돈)의 활동비를 쓰고 있고 각집에서 내는 돈에서 빈고이자분을 제외한 돈이 모이고 있지요(이것도 기존의 빈집세에 포함됐던 '마을사업비'와 다를바 없죠. 기존과 같은 돈을 같은 주체들로부터 받아서 같은 곳에 쓰고 있고 이것을 빈고 비서가 했다면 이제는 집사회의에서 하는 것이죠. 굳이 회계가 생기지 않고 집사들이 번갈아 해도 됩니다. 그것은 주장도 마찬가지죠. 어쨌든 누군가 주장을 만들었고 그 주장을 제가 했고 그래서 전 존재하고 역할을 하려고 할 뿐입니다. 주장은 사실 없어도 되는 자리죠.
빈고와의 차별성은 어쨌거나 스스로를 '빈집'이라고 생각하는 집들의 '집사'들이 들어오는 회의에서 돈을 관리하고 돈의 쓰임을 결정하는 것이죠. 만행이든 양군이든 잔잔이든 그 누구든 스스로를 빈집이라고 생각하고 빈마을 식구라고 생각하면 누구든 들어와서 같이 재밌는 일을 벌여봐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안정적인 운영은 집사회의에 들어오는 집들이 집을 유지하는 월세와 빈고이자분을 제외한 여윳돈을 모으는것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고 얼마나 서로 함께 즐거울수 있는 일들을 벌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선물이나 잉여금을 주지 않는다면, 즉 '마을활동'이나 '상호부조'에 공감대를 얻는데 실패한다면 안정적인 운영은 어렵겠지요. 그때가서 없애면 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집사회의에서 몇달간의 회의를 거쳐 아직은 '마을활동'이 있었으면 좋겠고 '빈집'간의 상호부조를 집사들이 머리맞대고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상태입니다. 빈고는 운영위원들이나 스스로를 빈고의 '조합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들어오겠지요. 해방촌이라는 공간적 구속도 없겠지요. 빈고와 빈집의 재정의 차별성은 스스로를 조합원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빈집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의 차이, 혹은 물리적인 공간의 차이만큼 있겠지요.
상호부조를 빈고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여전히 '빈고적립금'이 빈집의 유지나 확장에 쓰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은 상호부조의 성격도 띠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빈집에 속해있든 빈고에 속해있든.
하지만 난방비라든가, 장투 숫자의 감소라든가, 살아가며 겪는 이런 저런 소소한 위기를 집사람들이 해결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함께 마을에 살고 있고 집사회의라는 일종의 (반상회같은것이라고 생각해도 되겠군요) 논의자리에서 얘기하고 도와줄수 있는 그런정도의 거리가 아닐까 싶어요. 상호부조도 상호부조지만 집사회의는 마을잔치를 기획하거나 마을소풍 등 그리고 우리가 예전에 하려고 했던 마을 내의 동아리나 여러가지 재미있는 일을 벌일때 같이 논의할 수 있겠지요. 빈집의 유지와 확장은 그래서 빈고에게서 획득해 오는 기능이 아닌 빈고와 함께 서로 보완하는 역할을 하게 되겠죠. 잘 된다면?
빈집이 되려면 갖춰야 할 조건은 함께 논의해야겠지요. 그 명확한 기준을 정할 수는 없겠지요. 제가 빈집에 들어온 이후로 자기 소개들을 할때 어떤 사람은 같은 마을에 살아도 저는 빈집에 살지는 않지만, 혹은 저는 빈집의 친구인, 누구누구로 소개하곤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전 빈집중 무슨집인 누구, 또 빈집장투인 누구로 소개하곤 합니다. 지음의 생각속에선 만행도 빈마을이고 까페 해방촌도 빈마을이고 이음집도 빈마을이지만 만행의 생각에선, 해방촌까페에서 일하거나 드나드는 사람들의 생각에선 또 빈집 혹은 빈마을에 살아가는 누군가들의 생각에선 여러가지 차이들이 있겠지요.
제게 묻는다면 저는 스스로를 빈집사람이라고 빈마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빈집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번 글에서도 썼듯이 빈집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저는 아무도 주인이 없는, 혹은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보겠지요.
아마도 지금의 빈고와 초창기 생각에서 다르지 않겠지요. 어쩌면 빈집이라는 것은 끊임없는 반복일지도 몰라요. 저도 초창기의 빈집사람들이 상호부조나 여러가지 재밌는 일들을 벌일려고 빈고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어요. 빈고게시판에 있는 초기 글들에도 그런 것들이 나타나더군요. 물론 그것이 다른 형태로 외화됐었고 그 외화의 형태도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는 크게 다르지 않고 바라는 이상도 많이 다르지 않아요.
다르다, 새롭다라고 하지 않고 어떤점에서 같고 어떤점에서 달라지는지 차분하게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이상 8번에 대한 주절주절이었어요.
애 쓰셨소...행복한 라이딩해서 복귀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