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리즘 선언

조회 수 2452 추천 수 0 2010.10.23 16:44:52

우리한테는 그냥 만화가 최규석 씨의 친구로 방문해서... 알려진.... ㅋㅋ

영화평론가 허지웅씨 블로그에서 보고 퍼와요.

이래서 유명하다 그랬나 싶군요. ㅎㅎ

그러고 보니 또 한명의 친구였던 연상호 감독의 '사랑의 단백질' 상영회 하기로 했던 건 어떻게 됐지? ㅋㅋ

더 유명해지기 전에 모셔야 하는데. ㅋㅋ

 

암튼.

예전... '선언 읽기' 생각도 나고... 뭐 요새 이래저래 생각나는 것도 있고 해서...

천천히 읽어보시길.

 

노골리즘 선언

노골파 최규석에게 핀잔을 듣고 조금 늦게 쓰는 노골리즘 선언.
절반을 넘긴 2008년은 내게 있어 9.11과 같았다.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연달아 터졌다. 예상할 수 없었다는 건 감당하기 힘들다는 말과도 같다. 대부분 신뢰에 관한 일이었다. 신뢰가 깨지는 순간 그와 관련된 세계 하나씩이 철저하게 파괴돼 무너졌다.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그 몇 개월 동안 죽으려고 두 번 해봤고 남이 내 앞에서 죽으려는 걸 한 번 이상 봤으며 이 모든 걸 이겨내려면 잔인해져야 한다며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사람을 세 번 이상 연기해봤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사람이 제 앞에 닥친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자기연민과 증오로 얼룩진 피해망상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역설적으로 빠지기 가장 쉬운 것이다.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나누었다고 착각하기 쉬운, 바로 그 추억이란 무섭게 감정적이고 기만적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세상이 원래 그렇다며 태연스레 지구의 원리를 내려다보는 가장된 원숙함이다. 요컨대 도사가 되는 것이다. 부조리까지 기꺼이 안아 감쌀 만큼 비겁할 수 있어야 한다. 아마도 이 세계에서 ‘어른스럽다’고 일컫는 태도에 가장 가까운 모습일 테다. 세 번째는 철저한 객관화의 태도다. 당신의 삶과 세계의 풍경, 더불어 그 자신마저 철저히 객관화시키는 것이다. 도사가 되는 것과는 다르다. 도사는 모든 걸 꿰뚫고 있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되레 주관적이다. 이를테면 이렇다. 내 전부였던 그녀와 헤어졌어. 도사는 잘난 척 한다. 세상이 사람이 사랑이 원래 그래. 정직하게 객관화된 자는 그 처음과 끝의 아름다움과 더러움까지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더불어 반성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 번째는 어렵다. 세계의 균질하지 않은 풍경 앞에 지나치게 처연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오만한 순간, 덜컥 도사의 길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나는 그 가운데 첫 번째 방식에 길들여져 있었다. 누군가를 미친 듯이 사랑하거나 증오하지 않고선 도무지 견딜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세 번째 방식을 알고 받아들여 노력하면서 내 삶은 조금 나아졌다. 어찌해도 어찌할 수 없이 늘 되풀이되는 실수나 감정의 과잉을 거듭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뿌옇게 뭉뚱그려진 수사적 표현으로 나와 너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매우 적확하게 객관화된 구체적 언어들로 설명하고 끝내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부조리를 삶의 원리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빤한 잘못 그 자체로 인식하고 분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생각을 하자. 생각을 하자. 고민해야 한다. 조금 더 고민해야 한다. 늘 솔직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솔직해야 한다. 결국에는 행복해질 것이다. 이것이 나의 노골리즘이다. 노골리즘은 건강에 좋다.

노골리즘 선언 (2)

뭐가 되고 싶으냐. 누군가 묻는다. 당신을 파악하기 위해 흔히 동원되는 질문이다. 이 때 나의 정체성이란 지금의 내가 아닌 미래의 확률로서 규정되는 것이다. 우리는 평생에 걸쳐 지금의 나와 다른 무언가가 되고자 노력한다. 개발되고 개선되려 노력한다. 허공 위 어딘가에 닿아 미치려 노력한다. 교육과 종교와 정치가 제공한 이미지에 끼워 맞추어 지고자 팔을 자르고 다리를 자르고 지각을 줄이고 척추를 접어 넣는다. 마침내 꼭 들어맞았을 때 두 손을 번쩍 들어 외친다. 나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 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다. 결국 (당신이 되고 싶었던 ‘무엇’이 평생을 바칠 만큼 가치 있는 것이라 착각하게 만든) 누군가의 사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봉사하다 죽어 고꾸라지는 꼴이다.
무엇이 될 것이냐에 관한 문제는 중요한 게 아니다. 아니, 애초 정직하지 못한 화두다. 정작 천착해야 할 문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온전히 파악해내는 일이다. 질문이 필요하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것은 다시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여기에는 어떤 사상도 당위도 끼어들 여지가 없다. ‘타자로부터 강요된 나‘를 가장하길 거부하고 진짜 나를 찾아 충실해지는 순간, 모든 게 명확해질 수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를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성인을 연기하고 흉내 낼 이유 따윈 없다. 그저 나 자신과 솔직하게, 노골적으로 관계 맺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훨씬 좋아질 것이다. 그것은 결코 실패할리 없는 혁명이다.


손님

2010.10.23 21:44:21

간지좌파, 노골리즘 등으로 원래 유명한 허지웅. 연상호감독도 원래 유명함. 그때 다들 최규석밖에 몰라서 재밌었는데.

손님

2010.10.24 01:15:26

세번째 여야 한다고 배웠다고 해야 하나? 경험이 쌓이면서 그게 뭔지는 알겠는데 그래서 해보려 노력은 하는데 순간 첫번째가 확하고 올라오더라. 무섭지만 사실이어서 그냥 받아들이고 잠시 먹먹히 서 있었지. - 슈아

글고 우리 '사랑은 단백질'하면 안되나? 연락처 어디 없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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