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은 2011년의 가장 극적인 이름이다. 뭇사람들의 관심이 아니었다면 그는 그저 사유재산을 불법점거한 ‘범법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혹은 같은 곳에서 몸을 던진 김주익처럼 비극이 연출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일어난 자발적인 연대에 힘입어 김진숙은 꺾이지 않는 희망의 상징이 됐다. 무엇보다 외환위기 이후 습관처럼 굳어진 정리해고 남발이라는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제2의 ‘김진숙’이 제3의 ‘한진중공업’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농성 5년째를 맞는 콜트콜텍과 재능교육, 민주노조 와해 공작의 희생양이 된 유성기업과 발레오, 전북고속, 그리고 19명의 사망자를 내며 동시대인들의 양심에 깊은 생채기를 남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 이들이 온몸으로 부딪치고 있는 지옥 같은 사태의 기원은 한진중의 그것과 뿌리를 공유한다.
새 희망버스가 향해야 할 제2의 김진숙, 제3의 한진중에 <한겨레> 기자들이 다녀왔다. 1박2일 동안 길바닥에서 노숙농성을 함께하며, 땅에 처박힌 노동3권이 헌법상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했다.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70년대의 해묵은 구호가 2012년의 세밑을 울린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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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김진숙, 제3의 한진중
1회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한 싸움, 재능교육의 4년 2회 무책임한 공장 이전의 희생양, 콜트콜텍의 4년10개월 3회 “밤엔 잠 좀 잡시다” 외치다 짓밟힌 유성기업 노조 4회 처참한 노노갈등의 현장, 전북고속의 파업 1년 5회 버림받은 민주노조, 발레오전장 6회 끝나지 않는 절망, 쌍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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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농성 4주년 맞은 재능교육 노조에서 박수진 기자가 함께 한 1박2일
젊은 용역들 “나랑 잘까?” 겁줘…타이어에 구멍 내 고속도로서 죽을 뻔도
통장 압류, 집에는 빨간 딱지…“하루도 이렇게 춥고 괴로운데 1500일을..”
천막에서 밤샘 농성을 마친 여민희(38·여)씨가 오후 1시 수원 집으로 가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었다.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해 얼마쯤 갔을까, 핸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 왼쪽으로 꺾어도 차는 제자리였다. 속력도 나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났다. 여씨는 가장 먼저 보이는 만남의 광장으로 진입했다. 서 있던 사람들이 모두 여씨의 차를 놀란 눈으로 지켜봤다. ‘무슨 일이지?’ 차에서 내린 여씨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왼쪽 앞뒤 타이어 두 개가 완전히 주저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타이어에 촘촘하게 구멍을 뚫어 놓았다. 2010년 6월, 지독한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여씨는 구멍나서 푹 꺼진 타이어를 본 순간 바닥에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며 여씨의 등을 두드렸다. “‘야, 이 X아, 그러고 왜 사냐, 그냥 죽어”라고 외치던 용역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진심으로 내가 죽기를 바랐구나, 그냥 겁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에 소름이 돋았어요.” 지난 20일 재능교육 노동조합의 농성 4년을 맞아 열린 집회에서 여씨가 말했다. 여민희씨는 1998년 스물다섯살 때부터 재능교육 학습지 선생님 일을 시작해, 2010년 12월 해고될 때까지 이곳에서 청춘을 보냈다.
“그들은 진심으로 내가 죽기를 바랐구나”
여씨에게 ‘죽어’라고 말했던 용역들은 한여름 ‘CJ 씨큐리티’라고 쓰여 있는 검정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향해 질주하던 차량 운전자도,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노동자들과 지겹게 몸싸움을 벌였던 상대방도, 경주 발레오전장에서 노동조합을 저지하던 덩치들도 모두 ‘씨제이 씨큐리티’ 소속 용역이었다.
재능교육 학습지 선생님들의 농성장에 이들 용역이 나타난 것은 지난 2010년 3월이었다. 선생님들은 지난 2007년 12월21일부터 서울 종로구 혜화동 본사 앞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이 요구한 것은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해고된 선생님들의 복직, 노조를 인정할 것, 단체협약을 회복할 것 등이었다. 이들은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도록 ‘밤샘 농성’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2005년 대법원이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리자, 회사 쪽에서 이미 체결한 단체협약 등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5년 대법원 판결 이후 회사는 선생님들의 급여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노동조합과 협의 없이 대폭 깎았고, 학습지를 그만두는 학생의 수만큼 급여에서 일정액을 공제하고, 유령 회원의 회비를 교사가 대납하는 관행 등으로 선생님들의 삶의 질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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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재능교육에서 해고된 여민희씨. 여씨는 12년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습지 선생님으로 일하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박수진기자jin21@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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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행위 연상케하는 손동작으로 수치심 주기도
이런 부당함을 개선하고자 2007년 재능교육노동조합 지부장에 당선된 유명자 지부장, 오수영 사무국장 등이 거리 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이 싸움은 용역이 등장하는 2010년 새 국면을 맞았다. 새로 펼쳐진 장의 이름은 ‘악몽’이었다.
강단이 센 유명자(43) 지부장은 용역과 부딪치기 시작한 ‘그해 여름’의 기억이 지금도 스물스물 올라온다. “회사가 제기한 업무방해금지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지고 회사가 적극적으로 천막을 철거하기 시작하면서 회사 주변에서 천막농성을 할 수 없게 됐어요. 할 수 없이 낮에는 등산용 방석을 깔고 길바닥 농성을 하고 밤에는 봉고차에서 잠을 자는 ‘봉고농성’을 했어요. 그런데 용역들이 고용된 뒤부터 봉고농성이 지옥이 됐어요.”
용역들은 밤이 되면 봉고차를 마구 흔들었다. 20~30분에 한 번씩 봉고차를 흔들면서 ‘놀자’ ‘뭐해?’ ‘같이 잘까’ 등의 말을 욕설을 섞어서 했다.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손동작으로 수치심을 주기도 했다.
유 지부장은 “수치심과 두려움이 똑같은 크기였다”고 말했다. 어리지만 힘세고 젊은 남자들이었다. 재능교육 본사 뒤 주차장, 봉고를 세울 수 있는 곳은 깜깜한 골목이다.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벌일 수 있다는 두려움은 지금 떠올려도 끔찍하다.
18년간 재능교육 학습지 선생님으로 일해온 유득규(45·여)씨는 지난해 7월 재능교육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여자 용역에게 목덜미를 잡힌 채 회사 앞을 질질 끌려다니기도 했다. 유득규씨는“한때 함께 일했던 사람들인데 누구도 말리지 않고, 말없이 회사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절망했다”고 말했다. 그런 절망을 안겨주는 ‘용역의 방식’에 치를 떨었다.
칼바람 속의 비닐천막, 2년만의 만남
재능교육 학습지 선생님들은 2007년 12월21일부터 1461일 동안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하루도 빠짐없이 조합원들이 돌아가면서 길거리에서 잠을 잤다. 이들이 거리 농성을 시작한 지 정확히 4년이 되는 지난 12월21일 자정, 재능교육 학습지 선생님들이 잠을 청하고 있는 서울 시청광장 앞 천막을 찾아갔다. ‘4년의 싸움을 끝내야 한다’고 재능교육 선생님들이 마련한 릴레이 시위·투쟁결의대회·송년문화제 등 모든 행사가 끝난 다음이었다. 영하 5℃의 기온. 칼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10℃로 느껴졌다. 바람을 이기는 천막의 무기는 휘휘 둘러친 반투명 비닐이 전부였다. 바람 한 점 들어올세라, 입구도 알 수 없을 만큼 농성장은 비닐로 꽁꽁 싸여 있었다.
입구를 찾아 천막 비닐문을 열자, 안에는 유득규씨가 옷을 여섯 겹 껴입고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11명의 재능교육 해고자들이 송년문화제 등을 진행하는 동안 유씨는 천막 농성장을 지키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그를 보는 순간 기억이 떠올랐다. 유씨는 2년여 전인 지난 2009년 6월4일 기자가 혜화동 농성장을 찾았을 때도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 기자는 재능교육 학습지 선생님들의 ‘500일 농성’을 취재하기 위해 재능교육 본사 앞에 있던 농성장을 찾았었다.
유씨는 당시 오후 2시부터 9시까지 20여 집을 돌아다니며 수학, 영어, 한자 등을 가르친 뒤 노숙 농성 당번이 돼 재능교육 본사에 있는 농성장으로 온 참이었다. 당시 농성장은 지금의 천막농성장보다 열악했다. 구사대, 종로구청 등에 의해 12차례 천막 철거를 당한 뒤 다시 천막 설치를 할 수 없어 돗자리와 우산과 파라솔로 대충 엮었다. 사람 한 명 간신히 누울 수 있는 크기였다. 지금은 그래도 0.5평쯤 되는 넓이에 지붕도 있고, 비닐로 만든 문도 있는 셈이다. 당시 유씨는 수업을 마치고 길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오후 3시30분부터 다시 수업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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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광장 앞 재능교육 천막농성장. 박수진기자jin21@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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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 가압류에 빨간딱지...7명에 20억원 손배청구
농성을 시작한 지 4년, 기자가 다시 만난 지 2년. 그렇게 500일이 1500일이 되고, 2년이 4년이 되는 동안, 유씨의 삶은 더 나빠져 있었다. 그때는 해고자가 아니었지만 지난해 8월 해고된 것이다. 이제 직업도 없이 투쟁만 하게 됐다. 희망버스를 주도했다는 죄로 구속된 송경동 시인이 말했듯, 재능교육 선생님이었던 그에게 지난 4년은 그저 ‘야만의 시간’이었다.
2011년으로 접어들면서 회사는 재산압류를 하기 시작했다. 유씨도 지난 1월 경기도 김포 집을 압류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하루에도 몇 차례 경매 통지서가 날아왔다. 재능교육 회사는 지난 2008년 법원이 “본사 100m 반경 내 불법 집회 및 무단 천막 설치 등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1회당 100만원을 지급하라”며 내린 판결을 근거로 2010년 말부터 조합원 개인 재산을 압류하겠다고 나섰다. 청약저축통장과 급여통장은 이미 가압류당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오수영 사무국장 집 살림살이에는 빨간 딱지가 붙었다. 압류 외에도 해고자 7명에 대한 20억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2011년 들어 새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1년 같은 하루… “아~춥다”
긴 이야기를 마치고 천막 농성장 안 유씨 옆에서 잠을 청했다. ‘하루가 1년 같다’는 말이 그렇게 절실했던 적이 없었다. 비닐문 너머는 시청 광장이었다. 전경버스 한 대가 시동을 끄지 않아 엔진소리를 냈다. 귀에 거슬렸다. 차들도 쌩쌩 달렸다. 외투를 벗는다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한다. 다섯 겹쯤 껴입은 채로, 심지어 장갑, 목도리까지 그대로 낀 채로 몸을 뉘였다. 코끝이 알싸했다. 속으로‘아~ 춥다’를 백번쯤 되뇌였던 것 같다.
새벽 4시쯤 유명자 지부장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농성 4년 결의대회’를 마치고 사람들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인 뒤 농성장으로 들어왔다. 유명자 지부장과 유득규 선생님은 3시간 30분 뒤인 오전 7시35분 시청 앞 천막농성장에서 출발해 재능교육 본사로 향한다. 8시부터 1시간 동안 1인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이어 회사 쪽이 고발한 업무방해 건과 관련한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가야 한다.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이들의 일정을 떠올리며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고작 하루도 이렇게 춥고 괴로운데, 이들에게 4년이란 시간이 얼마나 길고 외롭고 추웠을지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매일을 이렇게 성실하게 고단하게 싸우고 있지만, 아무도 이들의 싸움을 주목하지 않는다. 전날 4년의 집회를 마무리하는 민중가수 연영석씨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유명자 지부장의 옆모습이 떠올랐다.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누구를 밟고 어디에 서는가 왜 같은 우리가 달라야 하는가 살아남기 위해 그렇다 하지만 그 모든 눈에는 고독한 눈물이…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내 마음만큼 일하는 세상 내 일한만큼 갖는 세상…” 노래를 읊조리는 유 지부장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천막에서 보낸 하룻밤 내내 그 모습이 떠올랐다.
법조차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현실
이곳 재능교육 천막 농성장은 여섯 번의 희망버스가 85호 크레인을 향해 달려갔던 출발 지점이었다. 35m 높이의 크레인 위에서의 309일 농성. 그 목숨 건 싸움은 많은 사람들의 심장을 건드렸다. 그들의 희망과 바람과 간절함이 김진숙 한진중공업 지도위원이 살아서 걸어내려오게 만들었다. 이루어질 것 같지 않던 94명의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의 복직도 순차적으로 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재능교육 학습지 선생님들도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있다. 이들은 법이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법으로도 보호받을 수 없는 더 열악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9명의 해고자들은 재능교육으로부터 해고된 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2005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노동자가 아니다’라며 각하됐다. 이에 선생님들은 지난 6월 행정법원에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조현주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학습지 선생님들을 회사는 ‘사업자’로 분류하고 있지만 실제로 선생님들은 회사가 정해준 구역에서 회사가 배당해준 학생들을 가르치며, 1주일에 세 번 지역 사무국으로 출근하고, 회사에서 정한 매뉴얼대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사업장에 종속된 노동자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며 “끝까지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 다툴 것”이라고 말했다.
2년 전, ‘재능교육 500일 농성’은 지면사정으로 기사를 쓰지 못했다. 나의 무관심, 우리의 무관심이 이들 해고자의 시간을 한정없이 늘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음날 아침, 웅크리고 잔 터라 뻐근한 어깨보다 더 뻐근한 건 가슴이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