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을 하루 앞두고... 알게되어서... 어쩔 수 없이 급히 청주에 다녀왔던 얘기를 바탕으로 다시 썼습니다. ㅠㅠ
다음번 글은 누가 쓸 수 있을지 얘기해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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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있어요?" "이따!"
* 청주의 생활교육공동체 공룡(http://blog.jinbo.net/com)의 공간 오픈 행사에서 있었던 다큐멘터리 <방 있어요?> 수다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작성한 글입니다.
20대의 주거문제에 관한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20대가 돈이 없다. 권력이 없다"로 정리한다면 분명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누구보다도 20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고시원’에서 홀로 공부한다. 스스로 ‘대기소’라고 부르는 그곳에서 돈과 권력을 욕망하며 그것을 얻기 위한 경쟁과 투쟁에 기꺼이 스스로를 내 몬다. 그리고 언젠가 돈과 권력을 획득하는 순간, 그에 맞는 주거형태로 이동할 것이다.
주거문제를 단지 더 저렴한 가격에 더 좋은 집을 제공하는 문제로 축소시킨다면 선택지는 극히 제한되고 만다. 가장 직접적인 방법,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고 있는 방법은 스스로 돈을 더 갖는 것, 권력을 더 갖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극소수만이 성공할 수 있을 뿐이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방법을 추구한다는 사실, 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구조가 주거문제의 근원이라는 점에서 좋은 방법은 아니다.
좀 더 복잡한 다른 방법은 저렴한 가격에 집을 구할 수 있도록 주택시장에서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좀 더 자신의 권리를 더 잘 보장해줄 것이라고 기대되는 정당과 정치인에 투표하는 것이다. 감독들은 20대가 서로 연대하여 자신들의 주거문제에 대해서 발언하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는 국민의 쾌적한 주거생활을 보장한다'는 헌법의 구절을 인용한다. 20대의 주거를 사회가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 기성세대가 20대의 요구를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불평이 터져 나온다. “20대의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러나 누가 들으라는 것인가? 기성세대? 국가? 국회? 건축회사?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국회의 돔과 돔형 텐트가 겹쳐진다. 한편 “시위는 어렵고, 들어주지도 않으니... 내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는 내 힘을 키우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그 힘이 커졌을 무렵에는 그/녀는 아마도 20대가 아닐 것이고, 고시원과 월세방에 살지도 않을 것이고, 전세계약자 또는 집주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 그/녀는 어떤 목소리를 낼까?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은 그들도 느끼고 있다. 고시원에 사는 친구는 “진짜 내 방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고시원 방은 누가 뭐래도 그가 정당한 가격을 지불한 그의 방이다. 처음에는 화장실이 있는 집에 들어가게 된 것만으로 “진짜 너무 행복”해하던 친구는 이제는 자기방도 있는 집에 살고 있지만 “별 느낌이 없어”라고 말한다. 그 집은 "사회에 아무런 것도 기대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아서 구한 그녀의 소중한 집이다. 원룸형 오피스텔에 살고 있는 친구는 "왜 이렇게 좋지도 않고 비싼 집에 많은 사람들이 사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집에서 살고 있다. 집을 단지 소유/점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좀 더 넓은 집으로 간다면, "진짜 내 방이라는 느낌"이 들까? 또 한단계 더 좋은 집을 구하면 다시 "진짜 너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더 싸고 좋은 집이 시골에 있다면 도시의 비싼 오피스텔을 떠날 수 있을까?
그들 말대로 그들은 "옆방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큰 사회를 얘기하기에는 내가 너무 폐쇄된 곳에 있다." 그들이 옆방에 누가 사는 지 모는 이유는 그들이 자기만의 방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너무 폐쇄된 곳, 즉 자기 소유의 방에 고립되어있기 때문에 큰 사회를 얘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좋은) 방이 없기 때문에 문제이지만, 문제는 방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이 정말 방이 없다면, 그들은 거리로 나올 것이고, 혁명이 시작될 것이다. 그들은 자유의 공간으로서 자기만의 방을 욕망하지만, 한편 그곳은 감옥이기도 한 것이다. 자기만의 방에서 무엇을 하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을 자유는, 무엇을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만의 방에서 그들은 무엇을 하는가? 어떻게 사는가? "자고, 쉬고, 공부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집 밖의 피로를 풀거나, 나중에 더 넓은 집에 살기 위한 궁리, 즉 (고시)공부를 한다. 저가의 1인 거주시설의 이름이 다름아닌 '고시원'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과거의 노동으로 인해 죽은 듯이 있고, 미래의 자본을 위해 죽어 지낸다. 그 방에는 노동도 없고, 놀이도 없고, 만남도 없고, 사건도 없고 오직 죽은 듯한 침묵뿐이다. 그 방엔 삶이 없다. 결국 그들은 그 방에 살지 않는다. 살지 못한다. 살 방을 원하지만 정작 그 방에서 살지는 못하는 역설. 이 역설이 더 좋은 집으로 이동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집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집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집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인지에 대한 얘기는 빠져있다. 모두가 살 집, 살 공간, 살 상품을 욕망한다. 하지만 집이 상품이 되었다는 것의 비극은 단지 집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집을 구매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품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집이 우리와 분리될 수 있는 무엇이 되었다는 것, 우리는 집을 지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여전히 집을 욕망하지만 동시에 언제든지 더 비싼 상품을 욕망하며 그것을 얻을 수 있을 때 살던 집을 쉽게 떠날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삶이 집과 분리되어 버렸다는 것, 집은 집 외부의 삶을 위해서 잠시 머무르는 곳, 화폐를 획득하는 능력에 따라 얻어지는 계급장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집은 욕망의 대상, 자유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혐오의 대상, 지긋지긋한 구속의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집을 소유한 자는 소유하자마자 집을 떠날 궁리를 한다. 소비자는 쉽게 식상해진다. 그들은 항상 집을 떠나기를 욕망한다. 더 좋은 집에 대한 욕망, 여행에의 욕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한 욕망이 반영된 여행은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는가의 문제라기보다는 그저 집에서 멀리 떠나가는 것이다. 집이 요구하는 책임과 능력에서조차 면제된 순수한 소비의 시간으로서의 자유로운 여행. 그 자유는 물론 군림할 수 있는 자유, 지배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여기에도 역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여행은 끝이 정해져있고, 여행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진정한 떠남도 아니다.
그들이 자기만의 방에 갇혀 있는 한, 사회적으로도 그들은 죽어 있다. 자기만의 방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활동을 하던 간에, 그것은 사회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고, 사회가 그것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전혀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자기에게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자기만의 방이 주는 자유는 곧 흥미를 잃고만다.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은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방이 감옥이 되지 않으려면 그 방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강조되지 않으면 안된다. 또 가끔은 그 방에 누군가를 초대하고, 방문을 받아들이고, 만나고 환대하고 자기의 방을 자랑하기도 해야한다. 공룡의 영길쌤(http://blog.jinbo.net/com/?pid=361)이 정확히 지적한 것처럼, "바로 방을 넘어 나오게 되는 문턱의 문제, 방 밖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오히려 방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방에서 이루고자 하는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 이것이 방의 소유문제 보다는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인 것이다.
<이반 일리치 강독회> (http://blog.jinbo.net/com/?pid=360)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집짓기(Housing)'는 활동이라기 보다 상품이다." "언어가 동사에서 명사로의 변화를 겪은 사회에서, 술어는 상품을 뜻하는 용어로 진술되고, 희소한 자원을 경쟁하여 따내고자 하는 주장으로 서술된다. "나는 배우고 싶다"는 말은, "나는 교육을 받고 싶다"라는 말로 번역되어 버린다.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결정, 학교화라는 게임에서 한 몫 차지하고 싶다는 요구로 바뀐 것이다. "걷고 싶다"라는 말은 "수송이 필요하다"라는 말로 바뀌어 진술된다. 위의 예에서 전자의 문장은 화자를 행위자로 두지만, 후자의 문장은 화자를 소비자로 표현한다."
집이 상품이 되었을 때, 문제는 단지 집을 구매할 수 없다는 것만이 아니다. 그래서 더 저렴한 상품이 제시되거나, 정책적 지원을 통해 집을 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집과 관계하는 방식이 단지 소유관계로 협소화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집과 다른 방식으로 관계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집을 짓고 고치는 능력, 집을 깔끔하게 잘 간수하고 알차게 살림하는 능력, 집에서 놀고 일하는 능력, 집에서 다른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능력, 집에서 집없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감동을 주는 능력, 집 문턱을 넘어서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우리는 갖고 있는가? 우리에게는 화폐와 권력과 공간이 부족하지만, 그것이 좀 부족하더라도 삶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이미 과거의 사람들에 비해 그리고 제3세계의 사람들에 비해 충분히 풍족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은 단지 살 공간, 살 돈이 아니라 무엇보다 살 시간, 살 능력, 살 사람,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삶 자체가 아닐까? 우리의 삶을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면, 집은 그러한 우리의 삶을 담는 그릇, 삶이 지나간 흔적, 삶이 만들어낸 작품으로서 항상 이미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승욱이 <빈집과 주거운동> (http://blog.jinbo.net/house/?pid=357)에서 말한 것을 빌려 다시 표현하자면, 집은 사는 것이 아니고, 사는 곳도 아니고, 살면서 짓는 것, 지으면서 사는 것이다.
공룡의 집은 '월남파병전우회'가 쓰던 낡은 사무실에 불과했다. 사람이 살 만한 공간은 결코 아니었던 이 곳은 공룡들에 의해 완전히 새로 지어졌다. 3개월에 걸친 공사 기간 동안, 공룡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들의 집을 지은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지어지고 있는 집에서 먹고 자고 놀고 일하면서 누구보다도 즐겁게 살았다. 지으면서 살고, 살면서 지었다. 그렇게 스스로 지은 집에서 공룡들은 까페를 하고, 도서관을 하고, 작업을 하고, 교육을 하고, 무엇보다도 운동=삶을 함께 한다.
공룡의 집 1층 마을까페의 이름 '이따!'(http://blog.jinbo.net/cafecom)는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 '방, 있어요?'에 대한 분명한 대답이 된다. 공룡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 있고, 우리의 삶과 꿈이 여기에 있고, 다른 어떤 집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방, 우리의 집이 여기에 '이따!'.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이 곳에서 우리가 살고 싶은 대로 짓고, 지은 집에서 살아갈 것이다.
공룡의 집은 공사가 덜 끝났다고 하지만, 삶은 이미 시작되었고 집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 공사는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공룡의 집을 짓는 데 들어간 주재료는 거의가 줏거나 얻어온 나무들이며, 사실 대부분의 비용은 집을 짓는 도구를 장만하는 데 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그 도구를 들고 앞으로도 계속 짓고 살아갈 것이다. 공룡들은 심지어 온 마을의 집들을 고치고 지어나갈 것이라는 포부를 보여주고 있다. 왜 아니겠는가? 공룡의 삶이 닿는 곳, 그들이 살며 오가는 모든 곳이 그들의 집이다. 그들의 삶은 그 모든 집, 마을, 도시, 우주(宇宙, 집우 집주!)를 새로 지어나갈 것이다.
그렇게 공룡의 집과 마을은 계속 변화하고 생성될 것이다. 삶이 멈추지 않는 한. 물론 공룡도 언젠가는 삶을 멈출 것이고, 집도 스러져갈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수많은 아기 공룡들이 곳곳에서 자신들의 집을 지으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머지않아 지구 위에 지독한 고립과 침묵의 빙하기가 끝나고 공룡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 믿는다. 빈집도 언제나 공룡의 이웃집에서 함께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공룡의 공간 오픈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오ㅡ 짱 _mo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