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대로라면 "빈집의 노동" 3편을 쓸 차례인데, 메모를 해보니 분량이 많아서
아예 독립된 장으로 나갑니다.
빈집이론 2장 - 빈집의 소통
역시 먼저 1장. "빈집의 노동" 1편과 2편을 안 읽으신 분은 먼저 읽어주세요.
1편 : http://binzib.net/xe/?mid=free&document_srl=51245
2편 : http://binzib.net/xe/?mid=free&document_srl=51460
전편에 이어..
저번에 공동생활을 하며 서로 교환/협력할 수 있는 부분인 A 노동과, 공동생활일때만 발생하는 추가 노동 C 부문에 대한 개념을 제안해봤습니다. 시간이 흘러 함께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 차츰 A 노동 감소효과는 약해지고 C 노동 부담은 가파르게 늘어나서, 공동생활을 통한 협동노동의 경제적 효과가 사라지는 "부정적 안정화" 현상이 나타난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2편에는 부정적 안정화 현상을 극복하고 활기찬 안정 상태 - "긍정적 안정화" 상태를 복원하기 위해 A 노동 분담 효과를 높이자고 얘기했고, 이번에는 C 노동을 혁신해서 부담을 낮추는 것에 대해 얘기할 차례입니다.
C 노동 중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코 "소통 노동"입니다. 소통 노동이 활발하게 잘 이루어지면 세 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1. 함께 사는 사람들 간의 문화적 교류, 상호 이해가 늘어나서 B 노동 부문이 감소하고 A 노동부문이 늘어납니다. B 노동부문은 온전히 개인이 수행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협동노동의 효과를 볼 수 없는 부분이지만 A 노동부문은 협동노동을 통해 개인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모두에게 이로워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2. A 노동을 서로 잘 분배하고 진행상황을 조율할 수 있어서 협동노동의 효율이 늘어납니다. 개인 노동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를 현실화합니다.
3. C 노동 부문을 최적화해서 개인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둔화시킵니다. 결과적으로 A > C 를 유지해서 빈집에 여러 사람이 지속적으로 살 수 있고, 사람이 더 늘어나는 것도 가능하게 합니다.
소통 노동을 얘기하는 것은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풀리지 않는 빈마을의 질문 :
- 왜 이리 회의가 많은가?
- 왜 회의는 길어질까
- 왜 회의는 따분할까 / 어려울까
이 질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질문을 바꿔보면 : 회의는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적절한 빈도와 형식은 무얼까?
역시나 이 글이 답을 낼 순 없지만, 논의에 자극이 될만한 관점을 제시해봅니다.
소통의 모델
소통 노동을 얘기하기 위해, 1편에 썼던 그림을 다시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합시다. 이제 높임말 그만~
1편에서 소개한 그림이다. 원을 노드, 원과 원을 잇는 선을 링크라고 부르고, 노드는 빈집 투숙객 한 명 한 명, 링크는 그들간의 소통 양상으로 비유했다. 빈집에서는 위계가 없고, 대리가 없고 모두 직접 소통한다고 해서 모든 노드는 같은 모양의 원으로 표시하고, 모든 노드를 서로 있는 선을 다 그렸다. 노드가 하나 늘어날때 링크가 하나가 아니라 이전 노드 갯수 만큼 증가하기에, "사람이 많아지면 소통 노동의 부담은 가파르게 증가한다"고 했다.
사람이 많아지면 소통 때문에 피곤해하는 것은 굳이 증명이 필요없을 만큼 분명한 사실이나, 위의 그림은 상황을 너무 단순화시킨 감이 있다. 조금 더 현실을 반영해보자.
* 사람과 사람간에는 잘 맞고 잘 안맞는 경향이 있다.
* 가끔 사이가 틀어지면 서로간의 직접적 소통은 현저히 어려워진다.
* 모든 사람이 동시에 서로 소통하는 것은 회의와 같은 특수한 상황뿐이고, 대체로는 인접한 노드 (가까운 사람) 위주로 소통하며 서로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받기도 한다.
위의 세가지 상황을 대강 반영하면 이런 그림이 된다.
그림에서 빨간선은 서로 반목하는 사이, 직접적 소통은 거의 막혀 있는 상태이다. 두 줄의 녹색 선은 서로 신뢰하거나, 궁합이 잘 맞아 소통이 아주 잘 되는 상황. 점선은 소통이 되긴 하나 조금 껄끄러워 생각보다 잘 안되는 것이고, 서로간의 두 화살표가 색이 다른 것은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는 전달이 잘 되는 것 같으나 그 반대방향으로는 잘 안되는 것 같은 상황이다.
현실은 아직 좀 더 복잡하다.
실제로 인접한 사람들끼리 많이 소통하고 약간이라도 물리적/심리적 거리가 있는 사람들과는 소통이 적은 것은 시간이 지나면 점차 심해져서 "그룹"을 형성한다.
그 그룹 내에는 소통이 대체로 원활하나 다른 그룹간에는 다리 역할을 해주는 몇 사람에 의해 간접적으로 소통하곤 한다. 한 빈집에서도 성별이나, 같은 방을 쓰는 그룹, ~주의 등에 따라 나눠지는 경향은 필연적으로 생긴다.
한 가지 더 현실을 반영해 보자. 사람은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오면서 습득하고 있는 지식, 스스로 선택/재구성한 사상체계, 경험이 쌓이고 훈련된 정도에 따른 이해력과 표현력의 차이를 갖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 모든 노드는 사실상 균일하지 않다. 균일하지 않다는 것이 우/열이 갈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언어로 소통하며, 한국에서는 한국어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국어를 잘 못한다는 것이 열등한 것은 아니며, 언어가 아닌 비언어로 감각하고 표현하는 것이 열등한 것이 아니니까.)
이 사실을 반영한 그림을 그리기 전에, 한 가지 개념을 또 제안하고 싶다.
소통의 정도
A 노동 얘기로 돌아가서, 소통이 얼마나 잘 되느냐에 따라 A 노동의 총량이 달라지고, 실제 분배된 노동이 수행되는 효율이 달라진다. 서로 팀웍이 맞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서로 신호를 주고 받아야 하며, 한 사람의 뜻이 다른 사람에게 잘 전달되어야 한다. 서로 사인이 안 맞거나 뜻이 잘못 전달되면 협동노동의 효율은 떨어지며, 심각하면 혼자 하는 것만 못하다고 여길 만큼 편차가 크다. 이렇게 "소통이 잘 되는 정도"는 아주 다양한 부분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것을 다음과 같이 정의해보자.
"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한 사람에게 얼마나 있는 그대로 전달되는가"
소통이 잘되는 정도를 측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누구나 경험적으로 내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때는 조금씩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좋고 나쁜 의도에 의해서 변하기도 하지만, 언어나 다른 비언어적 표현 방식들이 갖는 그 자체의 한계가 있다. 또 말하는 순간의 자신을 둘러싼 여러 배경, 역사, 관계 등 맥락이 있고 그것을 얼마나 상대방이 이해하는가에 따라 역시 차이가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의 인생에 걸친 경험과 사상체계로 인한 "해석"에 의해 최초와 최종 단계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이렇게 다양한 층위에 의해 원래의 메시지는 전달 과정에서 안팎으로 변형되는데 이것을 "굴절"된다고 표현하고, 그 정도를 "굴절도"라고 해보자.
(빛이 물에서 "굴절"되는 것은 나쁜 의도가 전혀 아니라는.. 굴절은 자연스러운, 필연적인 현상)
소통의 "굴절도"는 완벽히 원형 그대로 내용과 맥락까지 전달될 때 1, 완전히 사라진채 전달될 때를 0으로 하자.
이해/수용하는 것과 구성/표현하는 능력은 서로 차이가 있지만 일단 그것이 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같다고 단순화하고
위의 다이어그램에 접목시켜 보면 아래 그림과 같다.
굴절은 크게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문장/표현 자체의 뜻만 해독하는 단계에서 1차적으로 굴절이 이뤄진다. 깊은 속뜻이 아닌, 너무 어려운 개념과 흔하지 않은 용어를 썼다거나, 빠르기, 목소리 톤 등의 문제로 잘 못 들었다거나 하는 "겉"부분에서의 굴절이다. 2차적 굴절은 문장/표현의 뜻을 해독한 다음, 맥락과 의도를 파악하고 그것을 내 생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표현 방식이 다채롭거나(예: 말+글+이미지) 대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맞춤식 표현을 사용할때 1차 굴절도는 줄어들 수 있고, 만남의 기간이 늘어나 상호 이해가 깊어지고 공유하는 경험과 철학이 많아질수록 2차 굴절도는 줄어든다. 위의 그림에서는 1,2차 굴절을 합친 종합 굴절도를 표시했다.
굴절은 또한 시간에 따라 단기 굴절과 장기 굴절로 나눌 수 있다. 단기 굴절은 짧은 시간 동안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굴절이며, 장기 굴절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거쳐 자체적으로 메시지를 재해석하고, 좀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굴절도를 줄이거나 늘이는 과정이다. 말을 단기 굴절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 표현 방식(미디어)이며, 글은 상대적으로 좀 더 장기 굴절도에 영향을 받는다. 장기 굴절은 대체로 단기 굴절도보다는 낮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신뢰, 평판, 편견 등으로 인해 더욱 심해지기도 한다. 대체로 선순환 혹은 악순환의 흐름의 영향을 받는다.
소통의 가능성
굴절도 개념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받는 경우 얼마나 원형 그대로의 메시지가 전달될 가능성이 있는지 대강 따져보자. 대부분의 사람은 0 에서 1 사이에서 계속 변하는 굴절도를 갖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텔레파시가 아니고서는 1의 굴절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위의 그림에서 A, B, C, D, E 다섯명이 평소에 소통할때, 빈집이라는 상황, 한국에서 한국어로 말로만 소통하는 상황을 가정한다.
A에서 B를 통해 C에게 메시지가 전달될때와 D를 통해 E에게 메시지를 전달할때를 보자.
아래 그림에서 각 노드에 부여된 숫자는 단기/1차 굴절도이다.
1) A - B - C
- A가 말을 한다.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해보려고 애쓰지만 표현력의 한계로 인해 0.9의 굴절도로 문장이 만들어졌다.
- B가 A의 말을 듣는다. 이해력의 한계로 인해 0.8의 굴절도로 받아들인다 ( 0.9 X 0.8 = 0.72 )
- B가 C에게 말한다. 표현력의 한계로 인해 다시 0.8로 굴절된다 ( 0.9 X 0.8 X 0.8 = 0.576 )
- C가 B의 말을 듣는다. 자신의 이해력으로 0.6으로 굴절된다 ( 0.9 X 0.8 X 0.8 X 0.6 = 0.3456 )
아주 지극히 단순한 계산에 의해, A가 한 말이 C에게 전달될때는 1에서 0.35 정도로 메시지가 변조되어 전달될 가능성이 있다.
2) A - D - E
같은 식으로 계산하면 0.9 X 0.7 X 0.7 X 0.9 = 0.3969 이다.
A -> D -> E ====> 1 -> 0.63 -> 0.40
누구나 경험을 통해, 현실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말을 사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때가 많을 것이다. 보통 내가 하는 말의 반 만이라도 저에게 다가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경험들이 있지 않을까? 사실 이 다이어그램에서처럼 0.9의 굴절도를 가진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싶지만, 그 정도의 사람들끼리도 소통은 힘들고, 특히 간접적으로 여러 사람을 통해 메시지가 전달될 때는 단계를 거칠때마다 굴절의 가능성은 굉장히 높아질 것이다. 물론 위의 계산은 원래의 메시지에서 계속 멀어지는 방향으로만 변한다고 단순하게 가정한 것이라 이것보다는 덜 굴절되겠지만, 언제나 "내 표현이 다른 사람에게 오해될 가능성"이 아주 높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이렇게 굴절의 가능성이 높아 서로의 생각이 잘 전해지지 않는다면, 이 글 첫부분에 얘기한 "세 가지 효과를 가져오는 원활한 소통"은 불가능할까? 당연히 사람들은 굴절을 줄이는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회의"도 그 중 하나이다. 회의는 모든 사람들이 1:1로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행위로서 대리인을 통할때의 굴절도를 사라지게 하는 기본적인 이점이 있다.
위의 그림은 회의 때의 모습. 서로 반목하던 B와 D도 회의때는 최소한이나마 소통이 가능하며 모두가 1:1로 직접 소통하기에
서로가 주고받는 메시지의 굴절도는 최소 0.42, 최대 0.81 에 이른다. (단기 굴절, 1차 굴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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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2시 반을 넘어가고 있는데, 사실 "빈집의 소통"편에서는 이제 본론으로 막 들어갈라는 찰라.. 또 새벽 5시에 잠들어서는 내일 중요한 일정에 지장이 있을 듯하여 여기서 끊습니다.
"빈집의 소통" 2편 예고 :
* 단기 굴절도와 장기 굴절도는 어떻게 낮출 수 있을까
* 1차 굴절도와 2차 굴절도
* 소통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빈집의 "부정적 안정화" 상태를 극복하는 방법
* 문화적 교류, 교육의 필요성
가파른집 이사 등 이번 주 ~ 다음 주 초까지 정신없이 바쁠 것 같아 언제 2편이 올라올지는 장담 못하겠네요. 많이 자극/독촉/격려해주시면 조금은 더 빨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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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샷 : 한 집을 벗어난 마을 전체의 소통은 대강 이런 모습이라고 상상해봅시다.
나중엔 한 집안에서의 "미시"분석에서 이런 "거시"분석으로 갈 거라구요. 언젠가는.. 말이지. 기대되죵?
소통의 정도에서 굴절도라는 것이 좀 복잡하게 느껴지는데요, 각각의 사람이 서로 사이가 좋은가 그렇지 않은가의 정도와 굳이 별개로 설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음 굴절도라는 건, 의사소통 자체에서 이해/표현의 불완전함+ 상황적 맥락+화자와 청자의 관계 등등 고려할 수 있는 변수가 여러 개인 것 같아요... 또 A에서 출발해 E까지 가는 소통의 과정에서 굴절도에 따라 점점 정도가 낮아지는데, 산술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과연 그럴려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거는 없지만. ㅋㅋ 재미있었던 건, '회의'가 굴절도를 낮추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거, 그러니 회의는 빈집에서 아주 중요하다는 거. 근데 회의에서도 굴절도가 작용할 텐데요.. 음. 뭔가 점점 복잡해지는 것 같다는. TT 다음편에 이어질 "부정적 안정화" 극복 방법, 문화적 교류와 교육 부분 기대하고 있겠어요~^^/
아.. 요즘 정신이 없다보니 덧글 다신걸 이제 봤네요.
이미 이해하시는 것처럼 사이가 좋은가 않은가 말고도 서로의 소통 양상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굉장히 많죠. 그 중 어느 하나가 절대적이라고 생각지 않고 다만 상대적으로 "사이가 좋은가 않은가"외에 다른 요소들이 과소평가된다면 그것들을 조금 더 강조하고픈 마음이 있어요. 여기서 굴절도라고 표현한 것은 그런 온갖 요소가 다 작용하는 양상을 표현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지요
이후 편에서 언급하려 했던 것이지만 제가 가장 하고 싶은 말 중 하나는, 서로가 소통하는 것이 꼭 필요하지만 사실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서로가 인지한다면, 내 생각이 내게 익숙한 방식으로만 표현될 때 상대방이 그걸 잘 이해할 거라는 기대를 너무 높게 갖지 말자는 것입니다. 전달하는 사람, 받아들이는 사람 모두 에너지를 쏟아 서로 이해하고 맞추는 노력을 기울여야 그나마 원래 갖고 있는 뜻이 전달될 거라고 봐요. 나는 좋은 생각을 갖고 있고, 난 최선을 다 했는데 저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저 사람은 나를 안 좋게 생각한다 혹은 기본적인 고민이 없다 등등.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게 완전히 맞추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적어도 말하는 사람이 그 순간에서는 좀 더 적극적인 상태이므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좀 더 다가간, 맞춤식 표현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의 호흡에 맞추는 노력이 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A에서 E까지 점점 정도가 낮아지는 건, 최악의 경우를 그려 본 겁니다 ^^ 본문에서 살짝 말한대로 "원래 메시지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만" 굴절됐을때 얼마나 그럴 수 있는지. 의견과 기대 감사합니다. 다음 편은 감기와 마을 재배치 등으로 정신이 없어 이번 주에나 겨우 쓸 수 있겠네요
덧. "사이가 좋고 안 좋고가 소통에 미치는 영향"은 다음 혹은 다다음편에 나옵니다 ^^ 여기서는 굴절이 각 노드(개인)에서만 일어나고 링크(관계)에서 일어나는 굴절은 얘기하지 않았죠. (말씀하신대로 너무 복잡하니까 ㅋ) "빈집의 소통"은 전부 3편이 될 것 같은데 어떤 것을 먼저 다룰지에 대해 아직 고민중임다
역시 이론은 힘들어. 구체적 예를 들면 좋을텐데.. 암튼 대단하고 나름 재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