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아나키스트 영화제 포스터를 보다가... 

아나키즘이 뭔가, 궁금하긴한데, 

책을 읽으며 파악하기에는 책과 거리가 멀고... 요약된 자료를 봤는데

읽다보면 빈집, 빈고-에서 지향하는 '자치' '공유' '환대' 정신-는 아나키스트들이 만들었구나 싶다. 

물론 사는 사람들이 제대로 실천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특정 장치들이 그렇게 살도록 자연스럽게 이끌거나,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말하게 만드는 걸 보면,  

빈집은 참.. 거시기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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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은 어떤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가?

 

 

2014.06.02 하승우

 

 

I. 아나키즘의 정치관

 

□ 인민의 자유와 자율성에 대한 믿음. 스스로 삶을 결정할 조건이 갖춰진다면, 아직은 억압을 경험하며 노예의 삶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적절한 상황이 마련되면 인민은 올바른 사회구조를 만들어갈 것이다. 인민의 자치역량에 대한 믿음. 어떤 완성된 개념이나 이론을 습득하는 것보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수련(修鍊)’의 의미가 강조된다.

 


□ 자율적인 개인과 연합하는 공동체. 각 개인의 자율적인 힘과 그렇게 드러나는 힘이 서로를 돕고, 이런 상호부조의 관계망이 개인과 공동체의 힘 모두를 강화시킬 것이라고 바라본다. 고립된 개인은 존재할 수 없고, 스스로 선택하고 약속할 수 있는 개인은 공동체 속에서도 자아를 잃지 않는다. 위계질서의 구성보다는 자유로운 협약, 관습의 힘을 믿는다. 자유로운 개인이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든다.

 

□ 직접민주주의와 대리인 정치. 아나키즘은 정치를 특정한 사람이나 세력이 전담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사실 마을마다 전통적인 의사결정기구나 관습들이 있다. 없던 조직을 새로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일상적인 조직들을 활성화시키는 것, 그것이 아나키즘의 정치이다. 아나키즘의 반(反)정치노선은 근대국가의 등장이라는 상황에서만 이해될 수 있고, 그 대안으로 대리인 정치, 즉 권한이 제한되고 소환되는 대리인의 정치가 등장하기도 했다.

 

□ 국가와 정부의 구분. 국가는 중앙집권화된 체제이고, 정부는 일종의 통치형태이다. 아나키스트들은 국가에 절대적으로 저항하고 정부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태도를 보였다. 하나의 공동체가 아나키즘을 완성할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공동체들이 필요하고 이런 공동체들은 또 자기 나름의 협약을 맺을 수 있다. 아나키즘에서 연방주의가 가능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II. 아나키즘의 경제관

 

□ 아나키즘의 경제관은 기본적으로 자급(自給)이다. 작은 공동체를 지향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생산과 소비가 연계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아울러 도시와 농촌이 연계되고 다양한 농촌들, 다양한 도시들이 등장해야 한다. 전원도시, 소공업도시 등은 이런 이상을 반영한다.

 

□ 아나키즘이 제기하는 가장 근본적인 비판은 사적 소유권의 부정이다. 점유는 가능하지만 소유는 불가능하고, 설령 한 세대의 소유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상속될 수는 없다고 봤다. 사유(私有)는 홀로 가지기 때문에 나쁜 것만이 아니라 공통의 기반을 파괴하기 때문에 나쁘다. 사실 사회의 약자들에게 공유지는 살아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채울 수 있는 발판이었다. 사회주의는 이를 국유화로 대체하려 했지만, 국유화는 민중을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며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지만 민중이 스스로 그 권리를 지키고 권리를 확장시킬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리고 국유화가 되면 사람들이 모여 회의하며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기회나 그럴 이유도 줄어든다. 따라서 배타적인 사적 소유권에 대한 저항은 국유보다 공동의 소유(共有)와 공적인 소유(公有)를 지향해야 한다. 이미 기본적인 연대감과 자유가 인간 속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그 연대감과 자유를 끌어내는 다양한 실천들이 중요하다.이런 형태의 협동운동들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자존감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힘을 준다.

 

□ 아나키즘의 또 다른 본질적인 비판은 임금제도이다. 임금제도는 노동을 유일한 생존방식으로 만들었다. 자본가들이 만든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은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는 논리를 노동자들이 스스로 각인하게 만들었다.허나 일하지 않는 자는 정녕 먹지도 말아야 하나? 그렇다면 일하지 않는 아이, 노인, 전업주부는 먹지 말아야 하나?이런 물음을 피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가족임금제도를 마련했다. 남성이 생계임금을 버는 동안 여성은 가족과 가계를 부양한다. 그러면서 국가와 자본은 생계를 지탱해왔던 다른 사회적 관계들을, 자립경제의 기반들을 하나씩 파괴했다. 그런 면에서 임금제도는 정치적인 것이기도 하다. 정치적인 시민권을 보장받은 사람이라도 공장에서 굴욕적인 노예노동을 한다면 자신의 주체성을 온전히 실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체적인 시민이 일터의 굴욕을 감당해야 한다면 그의 주체성도 수그러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안은 뭔가? 크로포트킨은 『빵의 쟁취(The Conquest of Bread)』에서 이 유쾌하고 자유로운 노동에 한 가지 중요성을 더하는데, 그것은 이런 노동들이 서로 자유로이 협약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공동으로 일하고 공동으로 즐기는 관계 속에서 노동은 자유로이 서로 협동하고 그것에 관한 협약을 맺는다. 최근의 기본소득 논의도 이와 결합될 수 있다.

 

□ 아나키즘은 농민의 사상이다. 이런 생각을 모아 크로포트킨은 『전원, 공장, 작업장』(형설출판사, 1983년)에서 경제학이 어떻게 이윤을 늘릴 것인가보다 무엇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크로포트킨은 그 물음에 “농업이 공업을 성립시키고, 공업이 농업을 지지”하는 통합된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점에 따르면, 땅과 인간의 다양성에 발맞춰 공업은 분산되어야 하고 “재배하고, 생산하는 사람들 자신이 사용하기 위하여 곡식이 재배되고 공업제품이 만들어지는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크로포트킨은 인류의 진보가 자급(producing for home use)을 전제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III. 아나키즘의 문화관

 

□ 자치조직을 통한 다양한 의식. 크로포트킨은 촌락공동체가 “공유지에서 공정한 배당을 각인에게 보증하기 위한 동맹”이었고 “공통의 문화, 가능한 한에서의 상호지지, 폭력으로부터의 방위, 보다 일층의 지적 발달, 민족적 결속,도덕관념을 위한 동맹”이었다고 지적한다. 바로 이런 것에서 민회가 필요했고 자치조직이 활성화되었다. 시민들은 공유지를 통해 민주주의를 몸에 익히고 공동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 대안문화 형성을 통한 지금 현실을 살기. 미국으로 이주한 이탈리아인과 유대인들은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을 만들어 자본주의 속에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사회를, 국가 속에 또 다른 공동체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들은 빵집과 버스회사, 채석장, 공장 등에서 노동자협동조합을 만들었고 공동주택을 세우려는 주택협동조합도 만들었다. 그리고 실업여성들은 일공동체를 만들고 석공들은 공동보험을 만들었다. 이렇게 같은 작업장과 마을에서 일하고 사는 주민들이 함께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교육시켰다. 이런 활동을 통해 아나키스트들은 대항문화를 만들어 전통적인 대중활동에 새로운 혁명적인 내용을 덧붙이며 다른 삶을 꿈꿨다. 이들의 직접행동은 폭력이나 파괴보다 자치공동체, 대안경제, 대안교육, 대안문화를 만들며 다른 사회를 구성하는 걸 의미했다.

 

□ 자유학교(fre@e school)와 도서관운동. 스페인의 아나키스트 프란시스코 페레(F. Ferrer)의 ‘모던스쿨(modern school)’은 그런 생각을 잘 보여준다. 페레는 학교의 설립선언문에서 학교의 목표가 “학교에 다니는 소년소녀들이 진실하며, 정의롭고, 그리고 편견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아동들의 자연적 능력을 자극하고, 발달시키고, 지도하여,충분한 개인적 가치를 지닌 쓸모 있는 사회 구성원이 되게 함으로써 전체 공동체의 발전에 헌신하게 할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아이들만이 아니라 학부모들도 일요일 아침마다 함께 출석해서 수업을 받도록 했다. 그리고 학교 수업 때는 상벌이나 시험을 폐지하고 아이들의 자율성을 키우려 노력했다. 학교만이 아니라 도서관도 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인류의 지혜를 저장하고 있는 도서관이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개방되고 이들이 실제로 그 지혜를 활용한다면 민중의 성장은 불가능한 얘기일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유대인 아나키스트들은 도서관과 독서실을 세우고 문학모임을 조직해서 사람들이 다른 사회를 꿈꿀 수 있게 했다. 이런 도서관에서는 다양한 강좌들이 개최되어 시사적인 이슈와 인문학적인 관점을 갖게 했다. 그리고 호주의 아나키스트 플레밍(J. W. Fleming)은 협동조합의 설립을 도왔을 뿐 아니라 멜버른 공공도서관의 일요일 개관을 위해 싸우기도 했다.




원문: http://grasslog.net/index.php?mid=archive&category=8117&document_srl=309095





손님

2016.03.13 05:54:49

수많은 사람들이 수백년 동안 각자 다르게 피워낸 아나키즘이란 사상을 한 사람이 한두 페이지로 요약한 글만으로 아나키즘에 대해 파악했다고 생각하다니, 거기다 사는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해석하고 주장하는 빈집이라는 장소를 아나키즘이 끌고가는 곳이라고 손쉽게 단정짓다니, 그 오만함이 꼭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반갑네요.

아무튼 빈집의 가치와 아나키즘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게 돼서 기쁩니다. 아나키즘을 한 번 찾아보기라도 하는 게 어디에요.


아나키즘에 대해서는 하승우씨 글 보다는 아래의 소책자들이 더 재미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초보자를위한아나키즘.pdf (293.99 KB) 다운받기]

[아나키즘-불가능에대한요구.pdf (295.24 KB) 다운받기]

[여성주의아나키즘.pdf (628.29 KB) 다운받기]

[한국의아나키.pdf (303.79 KB) 다운받기]

[폭력론노트.pdf (1.43 MB) 다운받기]

[오늘의아나키즘.pdf (1.92 MB) 다운받기]


빈집이 지향하는 가치는...아직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_-;

그걸 찾아보려고 오랜만에 옛날 게시판을 둘러보다가 재미있는 글들을 좀 찾았네요. 빈집 게시판은 꼭 버려진 감자밭처럼 한번 찍으면 재밌는 글들이 줄줄이 딸려와요.


빈집이 지향하는 가치?

는 애초에 빈집이 자치, 공유, 환대를 빈집의 정신으로 내세우진 않았음을 시사합니다. 어떻게 이 중에 자치 공유 환대를 고르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에서는 좀 애매하긴 하지만 환대가 곧 주인이 되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군요.

공유에 관해서 와닿는 글.

자치에 관해서는..예전에 인상 깊어서 따로 모셔뒀던 달군의 글인데 원래 어디 있던 건지 못 찾겠어서 그대로 붙입니다.;
자치가 아니라 자취...긴 한데.

--달군
--2008년 12월 어느날 생각나서 어딘가에 써두었던글,

그러니까 하고 싶은게 뭐냐면, 모든 사람이 자취하면서 살아야 자치 할 수 있다 뭐 이런 정신으로다가.. 자취 생활의 긍지를 고취하여 자취인들을 각성시키고 서로 연결하여 도우며 일깨우며 정신적 문화적 자족으로까지 나아가는 ... 그런 선각자로서 네트워커 역할을 하고 싶다 이거지. 사실 공상 단계로서 .. 매우 추상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으나 생활속에서 구체화 되겠지.

사전을 찾아봤어.
자취自炊 - 손수 밥을 지어먹으며 생활함 .
역시 내 느낌으로 이 단어는 정말 이상한 단어야. 이 자본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의 문제를 함축하면서도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 단어 아닐까? (그리고 아마도 이나라에만 저런 뜻의 노골적인 단어가 있는게 아닌가 의심도 든다)
스스로 밥을 지어먹으며 생활한다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 하나의 특정 단어가 되어있다는것은 손수 밥을 짓는다는 것은 아주 예외적인 "생활방식"이라는 배경이 있는거 아니겠어?

나는 자취인이 되기전까지 누가 밥을 지어줬는가? 당근 집에있을때는 우리 엄마 밖에 있을때는 돈주고 다른 사람이 지어주는 밥을 먹었지. 울엄마한테는 돈이라는 등가물?도 주지 않았어. 그런데 채식을 하게 되면서, 또 독립해서 자취인이 되어서야 깨달은것인데 밥을 해먹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얼마나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데 있어서 타인의 삶을 착취해 왔는지, 그리고 그에대해서 얼마나 무지했는지 모르고 살게 된다는거야. 그렇게되면 맛만 생각하면서 그 과정에서 어떤 삶들이 파괴되고 착취되는지도 모른채 그 음식을 "취향"이라는 고상한 단어를 붙여서 소비하고 그로인해 그것들을 생산하게 하는데 일조하는지 모르게 되지. 모르는게 죄는 아니잖냐고? 모르는건 어떤때는 문제야. 그러니까 어떤 부분은 모르려고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 자본주의 사회는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과정들을 모두 가려버리는데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상품의 교환,더 많은 상품을 교환할 수 있는 등가물로서 화폐만 욕망하게 만들어 버리는것. 눈앞에 있는 상품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생산되었는가는 아무도 몰라. 중요하지도 않고. 더 싸면서 더 사용가치가 있으면 되는거지. 더싸게 더싸게. 노동을 착취하고, 지구를 착취하고.
더 편리하게 더 맛있게 더 예쁘게 ...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그것들을 쫓게 만들고, 그 이외의 여러가치들을 탈락시키고..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그 상품들, 가치들이 나오는 과정에 대해서는 무지, 공백 상태. 엔드유저(최종사용자)는 실제 프로그램이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 아무것도 몰라도 작동할 수 있게 직관적으로 만드는게 좋은 유저인터페이스라는 말을 개발하거나 디자인할때 많이 듣던 말이 생각나네.

이런 사정을 생각해보면 자취라는것은 생활의 기초인 밥을 스스로 지어먹으며 생활을 해나간다는것이니 그것을 시작하게되었다면 당연한 일이면서도 훌륭한 일이잖아. 그런데 왜 우리는 자취 생활에 그렇게 진저리나고 냄새나고 구질맞,고 고생스러운 이미지를 부여하는거야? 손수 밥을 지어먹는다는 것이 그렇게 서글픈 일이란 말인가? 사실 나도 때로는 혼자 들어온 불꺼진 방에 쌓여있는 빨래, 설거지를 보면 우울해 질때가 많아. 특히 아픈데다 배고파 죽겠는데 밥을 해야 하면 인생이 꿀꿀하지. 엄마가 그리워지는 대목이야. 전업주부는 꼭 필요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나도 전업주부가 되고 싶다는 망상도 한다..쿨럭.
사실 힘들다. 밥먹고 사는일은 힘들다. 먹을거리를 조달하기 위해 돈을 벌지만, 먹을 거리를 만들 힘이 없고 여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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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정의는 빈집을 '여행자들의 공산주의'라고 부르는 것이었죠.


이렇게 빈집이라는 장소는 계속해서 다르게 해석되고, 의미부여되고, 각자 다른 해석이 경합합니다.
누군가는 빈집을 참.. 거시기한 곳이라고 부르며 타율적인 공간이라 해석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예전과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그 의미를 잃었다고 하기도 하고(게시판을 둘러보다보니 2012년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더군요ㅋㅋㅋ)
누군가는 새롭게 해석하며 움직임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여러가지 면에서.. 여전히 재미있는 동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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