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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http://vanguardology.tistory.com/entry/20대-주거권과-플랏
가급적 위의 링크를 가서 보면 좋을 듯, 덧글도 달고, 경험도 남기고 토론도 하고.
그러나 귀차니즘으로 반시대를 실천하는 시대의 잉여들을 위하여
복사도 해옵니다.
_moya @hellomoya
20대 주거권, '이유는 모르겠는데 불편해요'와 빈집
20대, 이제 쓰기도 민망한 단어가 되었다. 이제 어디가서 20대가 어쩌고 이러면 사람들이 고개부터 젓는다.
20대 활동가라는 이름을 써도 좋을 사람들이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독립과 해방을 쟁취하려고 아주 치열하게 싸우는 20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없는 것을 가지려고 쟁취하는 것보다는 가진 것이나마 잃지 말자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어제 친구가 두리반에서 20대 주거권을 주제로 집담회를 열었다는데
이 리뷰를 보니 문제제기를 위주로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레디앙 기사는 클릭)
한 때, 서울 과밀 현상과 돈 없는 20대의 주거문제는
널리 퍼져있는 혼전순결 신화가 장애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질문이란,
어차피 하는 연애, 같이 살면서 하지 왜 비싸게 방을 두 개씩이나 얻어가면서 해? 이딴 것이었다.
68년 파리 낭떼르 학생들도 다 기숙사 개방 안해서 열받은 거거든.. 이런 부연설명과 함께.
그럼, 싸우거나 헤어지면 어째?
그럴 땐 잠깐 처지가 비슷한 사람끼리 지내면 되지, 위로도 할겸..
짐을 컴팩트하게 싸서 이사를 쉽게 다니면 괜찮지 않겠냐..
그럼 연애도 장려되고, 주거문제도 해결되고, 둘뿐이지만 공동생활도 배우고 좋지 않겠느냐
이런 설명도 이어졌던 것 같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그 20대들의 집세를 담당한 것이
그들의 부모였던 까닭에 저 대안은 퍼지지 못했다.
그 후로 몇 년 후에 1인주거를 하고 있는 대학생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1인주거가 도시계획이라는 외부요인 때문이고, 정작 살고 있는 학생들은 북적북적하고 사람냄새나는 공동생활을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가지고 나선 인터뷰였다.
내 인터뷰이들이 말하는 주거권은 결론적으로
"비싸고 열악한 건 싫다. 하지만 서울 중심가에 위치한 깨끗한 원룸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스패니쉬 아파트먼트>를 생각하고 인터뷰에 나섰다가, 좀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인터뷰이들은 1인주거의 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방이 작고, 청결할 리 없는 관리에, 햇볓이 드는 창은 몇 만원을 더 지불해야 얻을 수 있으며, 방음같은 프라이버시는 비싼 원룸이 아니면 호강치레고, 이런 것을 제외하고도 위험이 닥쳐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1인주거의 근본적인 공포(원룸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안에서 문이 잠겼다고 생각해 봐라), 1인 단위로 공간을 분배하는 낭비에 따른 지출의 증가 등 1인주거에 드는 경제적, 심리적 부담이 높은 것은 인터뷰이나 나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쯤 미리 준비해 간 이야기, 그러니까 플랏 형태로 모여살면 돈도 덜 들고 덜 외롭지 않겠냐고 내가 좀 성가시게 묻자 몇 명이 못 이기는 체 그럴 수 있음 좋겠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그래도 다른 사람과 사는 것보단 혼자 살고 싶다는 대답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공간을 공유하는 심리적 부담이 더 크기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1인주거를 선택하는 이유를 두 부류로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현재의 20대에게는 앞으로 평생 개인의 공간이 필요하다. 가족을 꾸리거나 기타 공동생활을 하게 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나누어진 개인공간을 중심으로 활동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라는 근대적 개인의 생활관에 기반을 두는 경우가 그 첫번째,
20대가 1인주거를 원하는 까닭은 한시적인 필요에 의해서다. 지금의 공간과 생활형태가 자신이 오랫동안 유지하고자 하는 형태가 아닌, 지나쳐가고 싶은 도약을 준비하는 곳이기 떄문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가족 등을 통해 안정된 공동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한시적 상황이라는 게 그 두번째.
결론을 정리하면서 어쩌면 처음부터 결론은 나뉘어진 게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타인과 같이 살고 싶은 사람들과, 또 타인과 떨어져서 살고 싶은 인간은 원래 다른 족속들은 아닐까?
solidarity란 말을 돌아온 유행처럼 쓴 지도 몇 년 된 것 같다.
근데 이게 좀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요새 들어 이야기하는 연대는 전통적 유대, 즉 부족이나 혈통 또는 국가를 기반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또 물론 여전히 계급 꼬뮨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20세기 초처럼 계급적(경제적) 연대를 강조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요즈음의 연대는 원자화된 개인들이 같은 location이 아니라 비슷한 처지에 있다는 recognition을 통해 뭉쳐야 한다는, 우리가 서로 다르긴 하지만 도울 순 있다, 류의 찰스 테일러 스타일의 연대인 건 맞는 것 같은 데, 이 인정이라는 게 완전 자기중심적이라서 가끔 뭣도 모르고 연대했다가 중간에 가서 어? 이건 아니잖아 하면서 발을 빼게 되는.. 특히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이런 현상이 더 잘 일어나는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불편해요.
바로 요 한마디.
개중에 나은 사람들은 그래도 부딪쳐보자며 뭔가 해보기는 하는데, 얼마 안 가서 역시 내 길이 아닌가벼... 그래서 실상 부딪쳐서 '함께의 필요'를 배우는 사람들은 아주 뚜렷하게 특화된 location 안에 있는 사람들 뿐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recognition, 오 그거 정말 어려운 것이도다, 하고 퇴장하는 게 다반사.
대안은 사실 없지만, 위치의 정치에서 인정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은 어딘지 계몽주의 같고, 아마 시간이 훨씬 더 흘러야 힘을 얻게 되지 않을까.. 이런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불편하다는것을 알게 되면서 문제는 시작된다. 그 불편함이라는 문제를 파고 드는 것은 세계와 자기의 본질을 대면하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그 대면을 너무 쉽게 선택하고,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나나 또래의 젊은 사람들이 갖는 문제의식은 해결을 위한 첫걸음이 아니라, 무한한 호기심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풀지 말지 선택하기 위한 경험으로, 아니 경력으로 문제에 다가서는 것은 아닐까. 뼛속까지 신자유주의, 답이 어려운 것은 아니고, 모델이 없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뺑뺑이 도는 이유는 아마 여기 있는 것이 아닌지.
20대 주거권 문제, 아마 풀면 풀수록 미궁에 빠질 것 같다.
*위에 링크한 리뷰에서처럼 두리반도 중요하지만 20대 주거권 문제는 해방촌의 빈집에서 하는 게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큼.
*플랏(영국에선 아파트를 뜻함)을 얘기하는 까닭은 스패니쉬 아파트먼트의 낭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만은 아님. 부동산버블이 터져 큰평수의 아파트들이 비게 되면, 여러명이 모여 요런 집들을 스퀏하거나 시당국을 압박해서 공공주택으로 사게 하는 자는 것임. 이미 지어진 큰 아파트를 부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아파트들을 돈없는 젊은 녀석들이 같이 쓰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더 건설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