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칠 하느라 못가는데 속기록이 올라왔네요. 라론님께 감사
근데 제로보드에는 답글을 달거나 트랙백 보내는 기능이 없네..
ㅋㅋ (ㅅㅇ)
링크: http://blog.jinbo.net/picotera/?pid=404
두리반.
2010. 05. 05. 19:20
*프랑스 옛 영화에 나오는 것 처럼 어둑한 조명, 후덥한 분위기, 다양한 젊은이들이 모여 공간을 팽팽하게 만든 상태.
노회찬, 모두발언
오늘 주제가 주거문제 관련. 나도 서울에서 산 지 40년. 이사만 18번. 내 소유의 집이 없기 때문에, 해결책을 제시 못할
것. 편안하게 산다는 개념의 주거, 집이라는 개념, 쓰라린 경험이 많기에 여러분의 의견을 수렴하고 나누는 자리가 될 것.
감사하다.
유채림
고맙다. 오늘로서 130일째 농성 중. 철거농성 오래 하다 보니 분이 쌓이고 해소하고 싶어 말이 많아진다. 시간제한 2~3분.
어제 제가 버라이어티 토크쇼라는 성폭력 피해자 다큐물을 보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철거민이 성폭력 피해자와 다름없다는, 교차되는
아픔을 느꼈다. 철거싸움 당시 밟아오는 고통을 느꼈다. 떼쓰는 이로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 내막을 모르면서 버티는 모습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을까 하는 것 때문에 외출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버텨가며 한 사람, 두 사람 힘을 합해가며 오늘까지
힘을 얻어왔다. 주거문제 때문에 생기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 제도화된 기존 틀을 깨고 모든 것을 상상 할 때 주거문제의
돌파구가 생기고 철거싸움이 없는 세상이 온다. 오신 젊은 분들의 상상력으로 메워지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 영화 2편 상영 - 방 있어요, 자기만의 방 =
우석훈, 한윤형, 심민경(<자기만의 방> 감독), 이택광, 석보경(<방 있어요?> 감독)
이택광
다큐를 좋아한다. <방 있어요> 감독 특유의 쉬크한 느낌, 절박함이 느껴져. <자기만의 방>과 대비.
<자기만의 방> 디테일하게 20대의 요구 반영. <방 있어요> 대안을 주려고 함. '방'이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 <자기만의 방> 버지나아 울프 소설 제목. 그가 쓴 글에 보면 '나를 정립한다는 것은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당시 여성들은 방이 없었다. 두 개의 다큐를 보며, 한국은 아직 19세기를 벗어나지 못해. 자기만의
정체성을 가질 조건을 찾는 것이 근대국가의 이념인데, 국가가 그런 것을 정확히는, 그런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다른 것을 이해하지
못해.
인도를 가 보았다. 인도에서 교수를 하는 이들은 대저택에서 산다. 낭만적인 인도는 없다. 인도는 개판이다. 가난하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부촌으로 간다. 부촌으로 가서 골목골목에 산다. 뭐 하나 주어 먹으려고. 교수가 "요새 동네 인심이 박해져서 그렇다"고
하기에 "공공투자를 안하고 주거환경을 마련 안하니 그런 것 아닌가"라고 이야기 했다. 개인적으로 인도는 막가는 상태라 생각.
우리나라에서 이런 문제는 우파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사회가 불안하고 전복하게 하는 것을 왜 좌파가 고민해야 하는가?
이상이다.
신민경, <자기만의 방>
더운데 영화 봐주셔서 감사하고 반갑다. 처음 기획 당시 '방'에 대한 이야기를 주변 친구들과 이런 식으로는 나누지는 못해. 이런
이야기 나누고 있어. 서울로 상경해서 유학을 했는데, 방을 계속 옮기면서 부유하는 느낌이 많이 남아 있어서 이것을 다른 이들과,
스크린에 걸어서 같이 공감하고 싶었다. 우리가 느끼는 감수성을 엮고 싶어 만들었다.
석보경, <방 있어요>
미디액트에서 독립다큐 제작과정을 들은 세 명이서 같이 만든 작품. 수료작을 만들며 생각 한 것이, 20대와 불안이라는 키워드로
만들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이 되니 주제가 방으로 꽃히게 되. 방을 주제로 친구들을 만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작품이 되었다.
우석훈
제가 보는 다큐가 1시간에서 2시간 짜리 재미없는 다큐들이 많은데, 10분짜리 다큐를 보고 무척이나 놀라. 제대로 볼 준비를
했더니 그냥 끝나버려. 20대 방살이 등 여러 고민을 했는데, 영화 자체를 놓고 보면 <방 있어요>는 너무 직설적이지
않은가 했다. 그냥 재미있게는 보았는데, 직설법을 쓰지 않고 우회적으로 돌렸으면 좋지 않았을까. 이런 기획들이 이어져서
다각적으로 비추었으면 하는 계기가 되는 다큐가 되었으면, 시제품을 본 느낌.
<자기만의 방> 한나라당 민주당 아주 나쁜놈들. 50세 넘은 할아버지들 너무한 것이다. 2년전에 본 빠리에서 벌어진
일. 부동산 가격이 한창 올라갈 때 학생들이 교육부장관에게 달려가 학생아파트를 요구했었다. 우리는 이런 상상도 못한다. 문제가
어디서 만들어 진 것인가 하는 것과, 누구에게 이야기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우리끼리 얼굴 봐야 술만 먹게 될 듯. 보고나서 술
땡기는 다큐 보다는 보고 나서 돌이라도 들고 싶어지는, 그런 미학적 고민을 했으면.
한윤형
더운데 저희만 물 마셔서 죄송하다. 개인적으로 다큐 두개 다 재미있게 보았다. 별다른 코멘트 할 것은 없다. <방
있어요>의 경우 20대 일반의 불안을 이야기 하려다 방으로 축소되었다 했는데, 그래서인지 왜 20대가 정치에 관심을 안
가지느냐라는 질문에 제가 핑계를 했던 느낌과 비슷하다. 우리가 대답을 안 가진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보여주고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계층적으로 생각 할 때 <방 있어요>의 등장인물이 더 많이 떠도는 상황이었고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각자의 상황이 있는 것인데 이런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이야기 안하고 본능적으로 위아래로 판별하면서 지내는 것 같아.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나오지 않았다.
대전에서 올라와 살았다. 처음 올라올 때 좋았다. 부모님이 보증금 대 줘 거기서 살아. 집이랑 연락을 안 하고 지낸 2년간...
비교는 하기 힘들듯. 지금은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굉장히 잘 살고 있는 편. 어머니가 하이마트에 데려 가실 때 '아.
거미줄에 걸렸구나.' 자본에 걸리면 댓가를 치러야 한다. 동생은 “우리집이 가난해서 못살겠다”라고 라고 한다. 지방학생들이 더
잘산다고 한다. 같이 커피를 마시면 밥을 못먹으니 ...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끼리끼리 나뉘어서 잘 못 보는 부분들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가 고민.
신민경
일단 우석훈 선생님 평에 감사드린다. 집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집이 주는 감정들을 이미지로 담아보고 싶었다. 방 있어요, 와,
자기만의 방이 이런 식으로 읽힌다는 것에 놀랐다. 자취라는 시간을 통해 등장인물들이 자신을 정리했고 그것을 담았을 뿐이다. 저는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부산으로 가서 영상작업중. 어쨌든 서울에 있다 다른 곳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것이 한 숨 돌리게 되는
것인지, 서울의 삶이 배어 든 채로 살게 될 것인지... 저 자신과 등장인물을 지켜 볼 예정.
우석훈
우리가 보는 문제의 기원이 제 생각에는 DJ마지막 해에서 노무현 초기에 논쟁이 있었다. 서울시에서 계획을 할 때,
2005~6년에 인구가 줄 것이라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집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의 대답은 '주상인구'였다. 서울시에
낮에 상주하는 인구가 많으므로 집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래서 노무현 초기에 건물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핵가족화가
진행될수록 그래서 집이 늘 것이라는 거다. 그런데 핵가족화 되는데 왜 40평 아파트를 늘리는가? 앞으로 20대는 점점 더 가난해
질 텐데. 서울시는 한 두명이 살 집은 다 사라지고, 하숙집도 많이 사라졌다. 집은 많이 지었지만 여러분을 위한 집은 없다.
강남을 제외한 몇 군데는 슬럼으로 바뀔 것이다. 부동산 자본들은 그냥 이를 풀어주지도 않을 것.
뉴타운 개발 시 시민들이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최종 결정은 지주들만 한다. 입주자에게 공영개발에 대한 투표권은
있지만, 의사결정권은 없다. 세입자는 없는 것으로 치는 것이다. 핵가족화되어 나온 20대에게 누가 묻는가? 쓸데없는 집은 많이
지어지고 사회적 집은 없는 것이다. 머지않아 우리나라에 전세는 없어지고 전세가 일반화 될 것이다. 월세는 전세보다 비싸다. 총
소득이 없는 경우 유럽에서는 월세보조금을 준다. 우리도 사회적 집과 월세보조금으로 나가야 한다. 여러분들이 방어선을 치지 않으면
계속 빼앗길 것. 여러분들이 취직하면 주급제가 될 것. 어디서 방어선을 쳐야 하는가? 제가 보기에 3년째 밀리고 있다. 스쾃 -
빈 집 무단점유, 유럽에서는 인권 차원에서 한 달 정도 스쾃하면 인권 차원에서 전기 정도는 넣어준다. 구로에서 예술가 스쾃이
있었다. 예술가들이 전위적으로 스쾃을 하며 문제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막든 못막든 이런 식으로 밀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택광
20대... 20대라고 다 20대가 아니다. 보증금을 받을 20대와 아닌 20대가 있다. 한국에서 집구하기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홍세화 선생님이 2년 반만에 전세 갔다 하는데, 나는 6년 걸려 변두리에 갔다. 20대가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믿는 구석이 있어서 하는 것. 강남에 가면 쪽방이 엄청 많다. 강남에는 강남에서 일하는 분들이 산다. 출퇴근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강남의 수많은 쪽방, 고시원에서 사는 것이다. 20대들은 보이지만, 그런 사람들은 한국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런 주거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유일한 20대. 중산층 이하의 자식들.
왜 한국의 우파들은 그렇게 압박하는가?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피땀흘려 그 돈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생각은 정말 무섭다. '난 성공한거야' 그래서 우리같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우리들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
이것을 완전히 거부하고 대판 싸운 것이 80년대 386이다. 그들의 운동이 굉장한 운동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대학생의 특권을
버리려 했었다. 대단한 결심이다. 의지적 활동이었다. 이런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가 이 지경이라는 것은, 곧
386이 급진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래들을 만나면 증권과 부동산 이야기 했었다. 요새는 침체라 그저 교육, 자식이야기 한다. 386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기업
현장 노조도 마찬가지다. 회의 10분이면 끝나고 자식이야기 뿐이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왜 그렇게 자식에 투여하는가. 한윤형이
이야기 한 대로 '자본이 투여 한 대로 댓가를 치러야 한다'이것이 푸코가 이야기 한 자본주의, 인적 자본주의의다. 이 담론을
우파들이 믿고 경쟁에서 이겼다고 생각하고 이를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예정이다. 외부에서 충격이 없는 한 성공할 것이라고
우파들은 믿고 있다.
한윤형
집이라는 단어가 주는 감정... 그 이야기를 들으니 모든 이야기를 군대 이야기로 환원시키는 더러운 예비역의 본성이 올라온다.
군인들은 습관적으로 '집에 가고 싶다'라고 말한다. 초반에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집에 가기 싫어서. 그런데 나도 상병이
되니 그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집은 어디에 있는 집인가? 돌아갈 내 집인가? 그래서 병장달고 물어봤다. 집의 상이
그려지는 경우가 있고 아닌 경우가 있었다. 군이란 것은 자식을 2년간 빌려다가 몸 건강히 돌려주는 것이지, 데려가는 사람에게 뭘
해준다는 말은 없다. 천안함도 그래서 부모에게 쩔쩔매는 것. 부모-자식 관계가 성인이 되어 얻게 되는 시민적 권리와 다르게
강력한 관계. 부모와의 관계가 어떠냐에 따라 집에 대한 상이 달라져.
세대론으로 주거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해. 자본주의 체제가 성장없는 고용으로 들어간 이상, 장년 세대들이 집값을
유지하면서 젋은 세대들이 막차를 못다고 피해를 보고 있다. 핵심은 부동산 가격이 조금씩 하락하기 시작 했을 때, 새로운 다른
합의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부동산이라는 체제는 지속 유지가 불가능하고, 한계점에 다다랐을 때 변혁의 지점들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신민경
20대 세대끼리 묶이는 담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 영화 가편집을 30대에 보여주었다. 30대 그분이 "귀엽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20대로써 이야기 하는 말들이, 다른 분들에게는 엄살로 들리거나 정확하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여러 문제들에 대해 서로
통하는 부분이 다르기 떄문에 집 문제도 20대의 문제로 바라보는데 일정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20대 시기를 임시적인 시기로
생각하는데, 삶이란 그렇지 않다. 삶에 임시적인 시기는 없다. 자기가 누리고 싶은 삶의 조건들을 적극적으로 이야기 해야.
우석훈
제가 만난 대학생과 20대는 당을 싫어한다. 여하간 당을 다 싫어해. 한나라당 열성 당원을 만나고 싶어했는데 그들은 나를
피했다. 민주당 대학생 위원회 비슷한 것이 있는데, 여러번 만나고 일도 해보았다. 정서는 진보신당이고 지도부와 갈등이 있는데,
선거판 꼬붕같은 것. 진보신당도 솔직히 말하자면 비슷해 보인다. 대부분의 경우 학생들은 꼬붕인 형태가 많아.
스위 스에 농민당, 운전자당이 있었다. 한국에서 '청년당'이 가능한가? 녹색당보다는 가능할 것. 농민당이나 운전자당은 나중에
극우파가 되었는데, 청년당이 만들어진다면 민족주의나 붉은악마 만나서 극우파 갈 우려가 높아. 만들면 재미있겠지만 위험할수도
있다. 형태가 어떠하든 이야기 하고 싶다. 한나라당 사람 만나 20대 안무섭냐 해도 무섭지 않다 한다. 만민공동회 같은 20대
버전을 하고 싶다.
일정규모 이상의 대학생 모임도 다 꼬붕같은 것이다. 자기들끼리 하면 서로 불신하고, 큰데서 하면 꼬붕같아서 하지 않으려 한다.
역사적으로 적절한 예를 찾지 못했다. 내가 20대라면 진보신당 가입 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꼰대를 보고 싶으면 진보신당 게시판을
보면 되. 협동하고 연대할 이유는 충분하지만 문화적 이질감을 못 넘고 있다. 청년유니온과 민주노총이 서로 만나도 용어/눈빛이
다르다. 20대가 진보신당을 이해하기는 힘들 것. 20대가 진보신당의 게스트인데 진보신당 호스트가 꼰대질 한다.
노회찬
20대의 주거문제는 30대가 된다고 해결되거나 피해지지 않는다. 30대의 주거문제로 40대의 주거문제로 다가온다. 이 이야기는
결국 10대도 주거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늘 다른 방식으로 고통받게 되는 문제이다. 20대 특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숙사-원룸-고시원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의 뿌리를 들여다 봐야 한다. 주거문제의 뿌리로 거슬러 가 보면 교육문제 등
여러 문제들이 자리잡고 있어.
우리보다 앞서서 이 문제를 고민한 나라들이 해결을 어떻게 하는가? 1. 교육, 2. 의료, 3. 주택의 순서로 접근하고 있다.
주택까지 해결하는 앞선 사례가 스톡홀름의 사례가 있다. 시에서 지속적으로 부동산을 매입해서 현재 스톡홀름의 주택 50%가 시
소유, 공영주택. 이렇게 되면 주택값의 안정은 당연한 것. 이 문제를 시장이 해결 해 줄 것인가? 교육, 의료 마찬가지이다. 이
개념이 넓혀져가면 주택문제가 나오는 것이다. 헌법 35조, 주거권은 국민의 기본권이다. 교육을 의료를 주택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 그것을 시장의 상품으로 바라보는 순간 동물의 왕국으로 가는 것이다. 이것은 상품이 아닌, 상품이더라도 극 소수의 사람들이
예외적으로 사용하는 상품이며 대부분은 공공재로서 이를 바라봐야 문제의 해결이 있다 생각한다.
이택광
아까 인적자본이라는 말을 했다. 한국사회는 왜 이런 당연한 것들이 되지 않는가? 이 기점이 1997년 금융위기. 이 위기가
대단히 중요했다. 한국에서는 독일식-유럽식 자유주의가 경쟁했었다고 생각했다. 유럽식이 진보-민주세력이었고, 극우파가 물러난 다음
미국식 세력이 등장한 것. 1997년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우리의 생활방식으로 자리잡게되었다. 갑자기 나온 것이 자기개발담론이고
상황이 바뀌게 되었다.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사회와 시장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이 시장의 논리로
돌아간다. 해리포터, 호그와트 - 사교육 시장 들어가자 붕붕 날아다닌다. 이런 담론이 한국시장에서 완전하게 빨아들인다.
대형교회, 부동산 등 이 모든 것이 실현되었다.
여러분들은 인적자본이다. 여러분들의 부모는 여러분들에게 엄청나게 자본을 투여했다. 이른바 치맛바람이라는 것이 신자유주의 교육에
있어서 엄청 중요하다. 이 이데올로기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른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왜 이것을 따라가는가? 왜
나자신을 상품으로 내 놓아야 하는가? 시장 논리로 나 자신을 자꾸 측정하는가? 즐거움이 없다. 다른 가치체계를 만들지 않으면
안되고, 그래서 이데올로기 투쟁을 해야 한다. 한국사회가 이념적으로 보이지만, 굉장히 이념적이지 않은 것이다. 천안함을 보라,
정서적으로 20~30대는 우파들에게 등을 돌렸다. 재미가 없다. 조선일보가 미디어법 통과 시켰지만 누가 보겠는가? 재미가 없다.
시장이 주는 즐거움에 너무 매료당하지 말자. 상품이 되자는 강박을 넘어서자. 급진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데올로기 투쟁도 가능.
여러분들이 달라져야 한다.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주거권이 중요한 것이다. 20대는 왜
방치되는가? 가공이 덜 된 상품이라는 생각을 바꾸어줘야 한다.
석보경
영화를 찍으면서 고시원 거주자의 방을 한 시간동안 구석구석 찍었다. 많이 미안했다. 방의 주인은 '여기가 내 방이라는 것만
모르면 돼'라는 태도를 가졌기에 오히려 방에 대한 접근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누구도 불행한 것을 자랑하고 싶지는 않아.
누구나 독립은 생각하기에 이것은 불행의 자랑이 아닌 공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방이 아닌 너와-나의 함께 쓰는 방을 내가 할
수 있을까? 쉽다고 생각한다. 내 방에는 늘 사람들이 와서 술을 마시고 늘 그런다. 내가 주체가 될 필요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방 하나 집에 친구와 둘이 산다. 삶의 방식이 다른데 같이 사는건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살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신민경
방의 삶이란 공유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 또한 영상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20대들 스스로 우리가 너무 내몰리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동료나 다른 것으로 대치하고 무마하지 말고, 매일 집에 누워있으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불안감. 이 불안감을
기만하는 착각과 기만을 고백하고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 누군가 이런 질문은 굉장이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개인적이고 말랑말랑한 부분들을 서로 나누는 것은 스스로 겪고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라 우선은 생각한다.
우석훈
투표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를 보고 놀랐다. 사람들이 미쳐서 자신에게 손해보는 행위를
하는 것. 계급이라는 용어를 분석 할 때 잘 안쓰는 것이 50%의 사람들이 자기의 이익을 반하는데 어떻게 계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가. 세대가 70~80%, 여성/남성이라는 개념이 60%정도 설명 해 주는 것 같다. 여성의 주거독립과 20대의 주거독립
이야기가 같이 나왔다가 20대 주거독립 문제는 남아있다.
현재 서울시의 구상은 결혼한, 아이를 낳을 20대에 대해서만 정책이 있다. 집 없는 사람들도 한나라당, 민주당 찍는다.
5~60대는 이상한데 찍기라고 하면서 간다. 이야기를 해 보다는 것은 투표가 1차적인 목표고 2차가 정책적인 이야기. 지금까지
선거국면 보면 6월 선거에서도 별다른 이야기는 안 나올 것 같다. 역시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우려가
든다.
개인적 평가
a. 대안과 의견은 없이 절망만 나누는가?
"자 나의 의견은 이렇다.", "웃기지 마라. 뭘 어쩔 것인가?", "진보신당? 그렇다면 그대들의 대안은 무엇인가?", "자 나는 여기까지 내 의견을 내 놓는다. 더 나은 대안을 이야기 하던가 돌을 들던가."
모여있는 공간/인간들의 팽팽함에 비해 그닥 영양가는 없었다. 한윤형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고, 다른 패널들은 각종 미디어와 SNS에서 뻔질나게 볼 수 있는 "먼나라 남의나라"이야기를 또 반복했다. 우석훈은 자신의 관점과 방향과 진단을 전달하기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진지함이 느껴졌다. 소주 댓병 마시며 이야기 하고 싶었다. 이택광은 '인문좌파' 어쩌구로 좀 씹힐 만 하지만, 씹힐만 한 것은 책 제목일 뿐 Creative하고 소탈한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일정 '끕'이 아닌 이상에야 책 제목이야 출판사 편집자 맘 아니겠는가. 기실 발언에서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온라인 게임에서 자신의 게임 플레이 동영상을 찍고 올리면 굉장한 수의 악플과 욕설이 달린다. "그것밖에 못하냐?"부터 "너이새끼 그 서버에서 니가 한 짓을 안다"라는 식의 발언까지. 그럴 때 "자. 난 이만큼 했어. 니가 만약 나를 욕하고 그렇게 잘났다면 키보드 워리어가 아니라 너의 실력을 나처럼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여줘"라고 하는 정서가 있다. 적어도 사회문제를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몇가지는 찍고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b. 다큐 두 편
주거와 관련된 20대가 처한 벽들을 보여주려고 했으나 놓친 점은, 20대는 굉장한 소비주체라는 것. 더욱이 20대가 원하는 주거는 단자(monad)적인 공간이다. 즉 '외부와의 창'이 없는 공간을 20대는 원한다. 스스로 소비하고 안락할 수 있는 공간. 그런 점에서 오히려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측면을 다루었으면 했다.
'우리집에서 늘 친구들이 술먹고 뻗는다. 남들과 뭔가를 공유하는 것은 굉장히 쉽다'라는 류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연인과 섹스도 해야 하고, 자위행위도 해야 하고, 샤워하고 알몸으로 나와 기분좋게 몸을 털기도 해야 한다. 가끔은 혼자 고요히 책도 읽어야 하고 동시에 비싼 술값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과 오붓이 모여 삶과 예술도 나눠야 한다. 문제는 굉장히 복잡하다. 더욱이 그들은 왜 서울에 집착하는가? 라는 질문을 쉬이 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교육, 문화, 관계망 등 결코 서울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무엇에 대한 시선도 필요하다.
c. 진보신당
조직체, 당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민주노동당에서 5년간 꼬붕노릇을 해 본 입장에서 은은한 진보신당 홍보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조금은 회의적이다. 노회찬이 "10대에게도 주택문제는 있다"라고 한 것은 공허한 정치적 수사일 뿐이라는 생각. "나도 자네들만큼 진보적일세"
d. 흠...
그런 면에서 사실 '빈집' 사람들을 불러다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 집에 대한 고민, 사적/공동체적 공간의 구분, 그 안에서의 갈등등을 들려주어야 하지 않았는가. 돈은 어떻게 하는지. 소유관계는 어떠한지.
20대는 유의미하고 굉장한 소비주체이다. 집을 위해 저축을 하지는 않지만, 문화와 자아를 위해 투자하고 또 소비한다. 이것이 사회의 욕망조작인지 자아의 향유인지를 내가 구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지점이 지적되지 아니하고 주택문제만 이야기 하는 것은 떼쓰는 것 처럼 보인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고시공부를 하고 대학을 다닌다. 그 굴레를 보여주어야 한다.
"옆집에 사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것은 20대가 처한 상황이자 동시에 20대가 원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웃이란 귀찮고 피곤한 것이지만, 내 공간 안에서 나는 monad가 되어 나의 의지를 실현하고 싶어한다. 여기에 갈등이 있고 파열지점이 있다. 이것을 물고 흔들어야 하지 않을까.
e. 마치며.
좋았다. 분위기가. 무너진 창문을 넘어오는 바람들이 가득찬 젊은이들을 아주 조금씩만 식혀주었다. 할 말 못할말 다 해버리고 머리끄댕이 잡아가며 싸우는 개판 5분전의 파국은 언제야 올 것인가!
* 아! 두리반에 WiFi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채팅방을 열어 토론회의 발언을 전달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트윗도 현장에서 바로바로 하고. 나의 집담회 속기록도 바로 올릴 수 있었을 텐데. 두리반에서 수십개의 WiFi가 잡혔지만 전부 막혀있었다. 자물쇠로 걸어 잠근 자기만의 '우리집'만의 WiFi를 보며 이것을 열지도 못하는 이들이 어떻게 집 문제를 함께 고민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리반에 이웃해 있는 그들이 조금만 열면 두리반은 더 멀리멀리 퍼져 나갈 수 있을 텐데. WiFi를 보안이니 어쩌니 하면서 잠궈놓는 이들을 보면 한심하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불안감만을 신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