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이 하나...

조회 수 2878 추천 수 0 2011.05.06 07:47:34

마을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제가 요즘 팔당에 집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한 달, 혹은 두 달... 언제일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빈집에서 떠나 다른 마을에서 또 열심히 살아가겠지요.

여튼 요즘, 그간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잘 한 것, 잘 못한 것, 아쉬운 것, 성취한 것들을 하나 둘 마음 속에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좋고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들이 많아요. 저 스스로도

이 공간을 통해 많이 성장하고 폭을 넓힐 수 있어서 정말 함께 살기 잘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 새로운 상황에서 문제들을 풀고, 또 남겨진 숙제들을 맘 속에 담으며 그렇게 3년여 시간을 보내니

정도 많이 들었고요.

아직도 스스로 잘 안 되는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실은, 빈집의 생활을 정리하기 전에 한 가지,

저 스스로 다짐했던 일들 중에 어쩌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살면서 왜 잘 하지 못했던가.. 싶은 그런 게 있거든요.

혼자서 해결할 부분들도 있는데, 여기에 글을 쓰는 건

다 같이 한 번쯤 다시 고민해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그건,

빈집/빈마을에서 성폭력, 성희롱의 문제를 깊게 고민하고 또

일상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예방, 해결의 방식을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에요.

갑자기 아주 뜬금없게 생각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언제나 이 문제만큼은 어떻게든 정립을 해야하는 부분이 아닌가- 하고 늘 생각하던 것이라서요.

 

작년에 한 번,

반성폭력 내규 같은 걸 만들자고 회의에 제안하고,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지지해주셔서

같이 진행해볼 기회가 있었어요.

저 스스로 힘이 빠져서 미처 마무리짓지 못했지만요.

작년에 함께 계셨던 분들은 다들 기억하실 듯.

빈집에 워낙 좋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서로 믿고 의지하고 산대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떠나고, 한 공간에서 먹고 놀고 하는 공간에는 언제나 벌어져왔고 또 벌어질 수 있어서

우리 모두가 서로 조심하고, 혹 문제가 발생하면 가급적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함께 노력해야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문제들보다도

처음 온 사람들과 이런 문제를 원활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고

막상 문제가 터지면 그 피해를 감당하는 게 모두에게 힘든 일이고

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제안하기도 어색한 일이니까요.

그래서 더더욱, 함께 얘기하고 뭔가 우리들의 다짐 혹은 선언 같은 것이 명확한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필요한 일임에는, 적어도 빈집에 살고계신 분들은 다들 동의하시리라 믿어요.

 

해서, 새로 재배치가 이루어지는 이 시점에

우리 모두 한 번쯤 다시 고민하고 다짐할 수 있는 기회로

반성폭력 내규를 만들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예전에 올렸던 내용들이 있긴 한데, 다시 검토를 해야할 것 같고요.

지금이 5월 5일이니까... 마을회의까지 3주쯤 남았는데,

중간 중간 게시판을 통해 글을 올릴게요.

 

내규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거나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씀해주셨으면...

또 함께 내규를 만들어보고 싶으신 분들도 적극적으로 제게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글이 길었네요.

아, 정말 잘 해보고 싶네요.

 


손님

2011.05.06 21:04:21

디온의 제안이 반갑고 또 고맙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많은 빈집이라고 해서 예외의 공간은 아닐터... 사실 요즘 많이 방심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목격한 일도 있고... 다 같이 환기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듣기로는 당사자들끼리 사과도 하고 잘 해결됐다고 하는데 (그래서 일단은 다행이다 싶지만)

당사자들끼리만 해결되면 끝난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어떤 해명도 듣지 못한 저는 거실에서 그 친구 웃는 소리만 들어도 짜증이 확 밀려오는 것이...

여전히 불편한 마음이 가시질 않네요.

확실하게 풀기 위해서는 이렇게 게시판을 이용해 에둘러 가기 보단, 다이렉트로 대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은 그런 마음이 쉬이 먹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에게도 이야기를 꺼낼 용기를 내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건지 모른다고.. 애써 위안을 삼으면서요.

 

아무튼 성폭력 내규가 만들어진다면,

그것이 단순히 어떤 행동을 제한하고 누군가를 징계하는 규율로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성)폭력에 대해 그리고 권력에 대해 경계해야 할 우리들의 약속이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건강하게 공론화될 수 있는 중요한 매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 이름을 밝히는 건 상관 없으나, 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연관되어 있는 일이라 익명으로 글 올립니다. )

손님

2011.05.06 21:11:06

전적으로 찬성하고. 지지합니다. jr

손님

2011.05.07 00:43:41

디온의 글과 달린 댓글을 보니 빈집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나보군요.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의 행간에서 느껴지는 것이 대강 짐작은 갑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빈집 회의 시간에 사람사는 곳에서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인,  성(性)을 매개로 신체나 언어, 심리적인 폭행 등에 대해서 이야기가 되지 않았던 것이 의아스럽습니다.

 

관련 내규를 만드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내규를 만들면서 성폭력처럼 쉽게 꺼내기 힘든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나눌 것이고, 빈집 사람들간에 공감대도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내규를 통해서 문제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물론 발생한 사건에 따라서는 빈집 내규로 안되는 경우도 있겠지요. 그럴 땐 빈집 내규로 풀 수 있는 것과 대한민국 민법으로 풀어야 하는 판단을 명정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을 올립니다.

 

빈집에서 지나는 동안 몇몇 모습과 들리는 이야기에 놀란 적이 있습니다. 잘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남녀가 한 방에서 같이 잔다거나, 커플들이 남자방 혹은 여자방에서 자는 것이 그것입니다. 저는 이런 상황들의 반복이 빈집 각 구성원의 성 관념을 흐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누구도 이런 상황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개이치 않는 분들도 있을 수 있고 제가 예민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분위기가 각 개인에 따라선 예민한 주제들 '분담금을 않낸다던지', '집 내부의 일정 공간을 개인의 것으로 사용한다던지', '집안일을 돕지 않는다던지 등'을 공론하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제 과도한 해석일까요?)

 

일부 빈집 사람들의 행동이 최소한의 사회 상식을 좋지 않은 방향으로 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야기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서로 불편하겠지만, 이 단계를 넘을 수 있다면 지금보다 행복한 빈집이 분명히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각생

2011.05.07 01:08:38

"성 관념을 흐린다"는 표현에서 약간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네요. "사회 상식을 좋지 않은 방향으로 넘는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제 섣부른 오해일 수 있습니다만.. 성 담론에 대해서 심도 있는 얘기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반성폭력 내규를 정하는 것에 저도 동의하지만 자칫 성적 보수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경계하거든요. 

손님

2011.05.07 20:12:45

성을 바라보는 것이 보수적든 진보적이든 모여 툭 터놓고 이야기해봐요. 빈집 구성원들이 성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본래 정해진 해답이 따로 있는 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빈집은 구성원들이 만들어가는 곳이니까 성에 대해서도 서로 모여 이야기하고, 그런 후에 정해지는 것이 빈집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해답일 것 같아요.

지각생

2011.05.07 01:02:06

반성폭력 내규 이번엔 꼭 만들어봅시다. 작년 초에 어디였더라 거기 내규를 디온이 가져와서 함께 읽은 기억이 나는데, 우리 상황에 맞게 조금 바꿔서 채택하기로 해요. 집사회의에서도 얘기해봅시다

손님

2011.05.07 04:45:04

성폭력 뿐만 아니라 성적 억압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 등등에 관해서 정기적으로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정했으면 좋겠습니다. 회의 한번을 통으로 활용한다든가.

 

그리고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나머지 구성원들이 방관자가 되지 않도록(그게 의도적이지 않아도, 이를테면 2차 가해를 두려워해서 방관자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어떻게 지지를 하면 좋을지,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위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두면 참 좋을 거 같아요. 전 그게 제일 힘들었거든요.

 

어떤 사례를 가지고 서로 토론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실제 일어났던 일도 좋고 가상의 일도 좋고...대체로 그런 자리가 아니면 그냥 얘기를 안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거든요.

 

토를 달자면 남자방/여자방이란 분류 자체에도 문제제기가 있었던 걸로 압니다. 실제로 이름을 바꿔 단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런 것들도 이번 기회에 함께 얘기해 보는 기회였으면 좋겠습니다(동성애 비하 멘션 때문에 빈가게 트윗을  완전히 끊던 날이 생각나는군요. 짜증나.....)

 

'(누군가 생각에)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지 않으면' 방관자가 될 수 밖에 없는, 방관자가 너무도 되기 쉬운 현실에 답답하고 속상합니다만  디온이 이것을 하겠다고 하니 응원과 지지를 보냅니다. 학교 보다는 주거용 공동체의 내규라든가를 찾아보는 게 더 도움이 될 듯 합니다. 주변에 한번 탐문해 보겠습니다. 

 

맞다 이번에 성폭력상담소에서 나온 책을 두권 추천합니다!  <성폭력 뒤집기>, 그리고 <보통의 경험>

 

지음

2011.05.07 22:06:41

좋은 생각입니다. 잘 해 보면 좋겠군요.

손님

2011.05.08 05:16:15

돌리지 않고 말할게요. 내가 가해자의 입장이거나 피해자의 입장일수 있고 방관자가 될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부지불식간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잠재적가해자 등등의 입장에 설수도 있고 이미 그랫을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 난 어떻게 하면 좋은지. 어떤게 폭력이고 어떤게 폭력이 아닌지 나름의 판단기준이나 상식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명료하지 않거든요 그 모든 개개인의 상황이나 사례를 떠나 나는 이런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jr (개인적으로 난 분명하지 않아 혼란스럽고 어렵고 불편하거든요) 이런 필요성에 대해 불편하다고 느끼기도해요 그렇기때문에 더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구요 jr

디온

2011.05.11 01:38:41

많은 분들의 지지와 공감의 댓글 감사드립니다. 이 문제 말고도 빈집에서 살면서 여러 힘겨운 일들이 있을 때, 좀더 편히 아무하고나 마구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만 쉽지 않죠. 모든 걸 한꺼번에 명확하게 해결할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쉽게 포기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용기와 배려가 필요한 일인만큼 모두 다 함께 신경쓰고 힘을 내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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