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사람들에게는 슬쩍 내비치긴 했는데, 

빈집에 대한 내 관찰과 생각을 "이론"화하는 작업을 무모하게 시작해보려합니다. 


이곳에 머물게 되는 모든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곳을 이해하기 위해 비슷한 어려운 시간들을 겪어내야 하고 

빈집/빈마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은 언제나 수많은 질문에 맞닥뜨리고 있는데,

그 질문들은 정답이 없고, 차선의 답(합의점)을 구하는 과정에서 너무나도 많은 변수와 그것들의 복잡한 관계를 감안하려니 늘 힘이 듭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모든 "빈집 사람들"의 경험과 고민과 생각을 정리해서, 이후에 기존/신규 투숙객들이 조금 덜 피곤하게 한 걸음 더 나아간 고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여러번 여러 자리에서 여러 형식으로 다양한 방법들을 제안해왔지만, 실제로 추진된 건 거의 없네요. 결국, 저 혼자서 평소에 하던 생각을, 개인적 스타일로, 과학적인양 한번 써보려 합니다. 


우리가 품고 있는 질문, 답을 구하려 애썼던 질문들. 그 중엔 부분적으로 풀린 것도 있고, 풀지 못해 묻어 둔채로 다시 꺼내기 두려워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하려는 작업은 그 질문에 모두 답을 내어 놓으려는 것이 아니고 (그게 어디 말이 되나요) 여러 사람들을 자극해서 다시금 그 질문들을 꺼내고 모두 함께 얘기하는 계기가 되려함입니다. 


맛보기로, 첫번째 질문 : '빈집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을때, 노동 분담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빈집/빈마을에서 영원히 지속될 질문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말씀드린대로 이건 답이 아니고, 얘기를 새롭게 풀어나가기 위한 이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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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이 공동생활을 하는 빈집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3요소는 재정, 노동, 소통(활동)이다. 손님과 주인이 전혀 구분되지 않는 '이상적인 상태'의 빈집에서, 개인적 차이를 무시하면 모든 사람이 이 세 가지 요소를 균등하게 분담하게 된다. 상황을 단순화시키고 많은 것을 무시했을때, 한 빈집을 유지하기 위한 재정, 총노동량, 총소통량이 일정한 경우,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이 N이면 각각 1/N의 비율로 재정과 노동, 소통을 부담하게 될 것이다. N명에서 한 명이 늘어나면 한 사람당 부담은 1/(N²+N) 만큼 감소한다. 이 경우, 한 집이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만큼 지속적으로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롭다. 


실제로는 어떨까? 빈집 유지를 위해 요구되는 전체 노동량은 거주하는 사람이 늘어날때마다 어떻게 변화할까


상태1 : 독거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재생산 노동을 자신이 온전히 다 하는 경우이다. 요리, 설거지, 빨래, 청소, 시설 보수, 목욕 등의 모든 활동은 그 사람의 몫이다. 집 유지를 위해 요구되는 총 노동량과 개인이 부담해야 할 노동량은 같다. 

노동의 성격을 보면 한국의 문화적 특성에 따라 보편적인 방식으로 수행하며, 대체로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 기본 노동(A:설거지 등)과 그 사람만의 스타일이 반영된,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노동(B:개인 짐 정리 등)로 구분해보자. 

빈집역학1.png 


상태2 : 동거 시작

투숙객이 한 명 늘어 두 명이 한 집에서 산다. 각자 살아온/갈 생활 방식의 차이로 노동의 방식과 양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사이가 별로 안 좋아 교류가 거의 없다면 재정 부담을 1/2로 나누는 것부터 시작하고, 노동의 변화는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이후에 보겠지만 실제로 이미 여기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빈집역학2.png


상태 3 : 노동 반감기

A 노동의 경우는 두 사람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점이 많고, 공통적으로 반복된다. 두 사람은 곧 A 노동을 함께 하는 것이 이롭다는 것을 알게 되고, 반복되는 부분을 줄이기 위해 서로의 노동을 함께 해줌으로써 전체 노동량을 줄인다. 누군가에겐 A노동인것이 다른 사람에겐 B일 수 있지만 점점 "서로 A"로 확인 하는 노동의 범위가 드러나고 역할을 나눠 다른 사람의 몫을 덜어준다. 합의에 의해 빨래를 모아서 한다던지, 청소 구역을 나눠 각자 마루와 옥상 중 한 곳만 청소하면 되게끔 만든다. 혹은 누군가 청소를 할때, 누군가는 식사 준비를 하거나 쓰레기를 갖다 내놓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한 집을 유지하기 위한 전체 노동량 중 개인 부담 비중"은 크게 감소한다. (여기서 이미 한 사람이 두 사람 몫의 식사를 준비한다던지 하는 "추가 노동"이 발생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보자)

빈집역학3.png

상태 4 : 노동 안정기

위에서 살짝 얘기했듯, 다른 사람과 같이 살면서 요구되는 추가적인 노동 부담이 발생한다.(C 노동) A노동을 분담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이 두 사람 몫을 맡는 것이 첫번째인데, 이것은 두 노동이 한 번에 이뤄지면서 반복되는 부분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어서 전체적으로 큰 이익이기 때문에 이것 자체로 큰 부담은 아니다. 의미있는 추가 노동 중 가장 첫번째는 "소통 노동"이다. 서로의 상태를 알고, 욕구를 표현하고 노동 분담 과정을 설계하며, 집 유지와 관련한 여러 의사결정 과정에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한다. 소통 노동이 원활하지 않거나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발생하는 "감정 노동"도 두 번째로 꼽을 만큼 의미 있는 추가 노동이다. 

빈집역학4.png

그 밖에 "대체노동"이 있다. 한 사람의 부재시 일시적으로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의 몫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행위로 인해 내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서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많아지는데, "방어노동"이라고 하면 어떨까. 

이 밖에 다양한 "추가 노동"이 발생하며, 그것들은 사실 서로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결국 C의 증가분이 A의 감소분(A~)보다 크지 않는 상태가 오래 지속될때(노동분담 안정 상태) 동거 상태는 유지될 수 있다. C > A~ 인 경우에는 재정 부담 등 다른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겠지. 오래는 못 갈듯. 



상태 5 : 노동 팽창기

시간이 지나며 서로를 알게 될수록 A의 감소분은 어느 정도 계속 늘일 수 있으며, C의 비중은 그것보다는 적게 늘어난다. (늘어나긴 계속 늘어난다) 두 명의 재정, 노동 분담이 한 집을 유지하기에 충분할 경우, 상태는 "안정"되고 단기간 투숙하는 사람에게는 최적의 조건이 된다. ('긍정적 안정화'라고 하자) 이 경우에 단기투숙객이 장기투숙을 원하게 되거나, 두 명의 분담이 집을 유지하는데 부족해 "불안정"한 상태일때 장기투숙객을 받아들이게 된다. (안정 상태에도 새로운 사람이 장기투숙을 원할때 집의 최대수용인원이 넘지 않는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인 "공동주거"형태와 다른 빈집의 특수성이다. 이 점은 이후에 다른 주제로 다룬다)


빈집의 특성상 최대수용인원한도에 미치지 않는한 지속적으로 거주인(장기투숙객)이 늘어나게 된다. 이 경우 A노동의 분담은 더욱 활발히 일어나서, 소통이 원활할 경우 N명에서 한 명이 늘어나면 한 사람당 부담은 1/(N²+N) 만큼 감소한다. 


C노동의 비중은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소통/감정 노동의 경우에 한정해보자. 빈집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발언권을 가지며, 다른 사람을 통해 소통하지 않고 직접 소통한다. 네트워크 도식으로 보면, 모든 노드(원)는 균일하고, 각 노드는 모든 노드와 직접 연결(링크)되어 있다. 노드(사람)의 숫자가 변할때 링크(관계)의 총 개수를 소통/감정노동의 정도라고 하자.

사람의 수가 N에서 N+1이 될때마다, 관계망은(링크) 1개가 아닌 N개씩 늘어난다. 

사람의 수가 N일 때 링크의 총 개수는 N*(N-1)/2 이다.  ( '/'는 나누기) 즉 C노동의 비중은 사람 수의 제곱에 비례하는 수준으로 증가한다. 단순히 양적 비교만 했지만 질적인 측면은 더욱 복잡하고 강도가 높을 것이다.

완전 연결된 네트워크.GIF

하여, 장기투숙객이 늘어날수록, 공동 노동 A의 꾸준한 감소와 추가 노동 C의 점차 가파른 증가가 지속되며, 보통의 상황에서는 C가 A~보다 커지기 직전, A~와 C가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안정화"되려는 경향이 발생한다. 빈집에서 이것은 기존의 장기투숙객이 추가 장기투숙객을 받는 것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 되는 상황이다.('부정적 안정화'라고 하자). 부정적 안정화가 이뤄지거나 집의 최대수용인원이 찬 경우, 빈집은 "새로운 빈집"을 내는 것으로 부정적 안정 상태를 해소하거나, A 노동의 감소 폭을 늘이고 C 증가 폭을 둔화시키는 작업을 하게 된다. 



상태 6 : 성숙기


새로운 빈집을 내는 것이 여의치 않은 경우 (축적해둔 돈이 부족하거나 한 집의 최대수용인원한도에 못 미치는 상태에서 '부정적 안정화'가 이뤄진 경우) 노동 분담 상태를 조정해서 '긍정적 안정화' 상태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이것은 두 가지로 가능한데, 첫째는 A 노동의 감소폭을 한계치까지 늘이고, B 노동의 일부분을 문화적 교류를 통해 A 노동부문으로 편입시켜 역시 효율적 감소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생긴 여력은 늘어난 C 노동량을 감당하는데 쓰인다. 평소에 소통이 잘 안돼 어려운 상황에서 공동 노동에 대해 강조하고 효율성을 높이려는 것은 심리적인 면 외에도 이런 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개별적으로 B 노동의 변화가 요구되므로, 높은 자유도를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또다른 불만 요소가 된다. 


두번째 과정은 C 노동부문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소통을 보조할 수 있는 도구,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회의 및 의사결정 과정을 개선한다. 상세한 기록을 게시판에 올려 누구나 직접 찾아 볼 수 있게 한다. 또한, "교육" 시스템을 가동해서 C 노동부문중 반복되는 공통 부문에 대한 효율적 공유로 전체적인 노동량을 감소시킨다. (당연히, 빈집이 지향하는 "교육"이란 한국의 전통적인 일방적 주입식 "교육"은 아니다) '멘토' 제도를 통해 신규 장기투숙객이 빠르게 전체적인 소통과정에 참여하도록 지원할 수도 있다. 이런 작업은 새로운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약간의 노력을 요구하지만, 가장 좋은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방식으로만 '표현, 기록, 공유'하게 하거나 "교육" 시스템이 일방적으로 흐를 경우, 역시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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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적응도와 피로도


지속적으로 노동하면 피로가 쌓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에 따라 특정 노동에 대해 피로도가 적게 (혹은 늦게) 올라가는 정도가 있는데, 이걸 '노동 적응도'라 부르자 (흔히 쓰이는 보편적인 표현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좀 좁다) 여러 사람이 "집 유지에 필요한 총노동"을 분담할때, 대체로 노동적응도가 높은 노동을 더 많이 분담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요리를 좋아하거나 주방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청소, 빨래 등 다른 일의 비중을 조금 낮추고 식사 준비에 더 많은 참여를 하는 경우 등이다. 혹은 새롭게 배운 일에 빠르게 익숙해질 경우, 다른 일보다 그 일을 계속하려는 경향도 있다. 


공동생활과 노동분담이 지속될 경우 노동적응도, 피로도와 관련한 "위험 상황"이 발생한다. 한 사람이 한 분야의 노동에 대해 노동적응도가 상대적으로 지나치게 높을 경우, 그 한 사람이 특정한 노동을 계속 전담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상황이 종종 만들어진다. 이렇게 되면 "손님과 주인이 전혀 구분되지 않는" 빈집의 이상 상태의 한 요건인 "구성 요소의 평등성"이 위협받게 된다. 적당한 용어를 제안하기 어려운데, 저 평등성은 "역할 대체/교환 가능성"이 담보되어야 가능하다. ("빈집의 이상 상태"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른 주제로 다루자) 특정한 사람의 역할은 다른 사람에 의해 부분적, 한시적으로라도 대체가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빈집에서는 자율적으로 역할을 돌아가면서 맡거나,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활동/노동에 관심을 갖는 자세가 요구된다.


빈집역학5.png

노동 피로도가 높아질 경우에는 기존의 노동 감소 효과가 둔화되면서, 연쇄적으로 다른 노동에 대한 강도를 높인다. 피로에 의해 A 노동에 투여하는 개인의 에너지가 다시 증가할 경우, B노동과 C노동에 투여할 에너지는 상대적으로 부족해진다.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소통이 잘 안되서 A 노동의 효율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 상태로 된다. 


노동 피로도는 대개 서서히 증가하다가 임계점(S1)을 지나며 급격히 피부로 느껴지는데 피로도가 급격히 올라가는 상황에서 개인적 삶과 공동 생활이 모두 지장을 받게 된다. 집단이 이 상황을 방치하고 개인적인 해소가 실패할 경우 또 다른 임계점(S2)을 통과하면 공동 생활을 위한 개인의 삶 체계는 붕괴하기 시작하고.. 도피 혹은 이탈을 하게 되겠지.. 혹은 전혀 다른 부문에 피로를 "전가"하면서 새롭게 안정되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대체로 공동체들은 정기적으로 노동 피로를 "집단적으로" 해소하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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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집의 두 강아지가 짖어대길래 진압하러 나갔더니 밖이 훤하다.. 이게 뭐임?? -_-

정신노동 피로를 풀기 위해 여기서 끊음. 확실히 뒷부분으로 갈수록 재미는 없어지고.. -_-


이런 식의 글을 내 멋대로 앞으로 몇 번 올려보려 해요. 이런 식의 연구/분석 작업에 관심 있는 분은 함께 해봅시다려~



우마

2011.04.06 08:38:25

뭐 어떻든 적당히 이해는 되는데, 명확하진 않아, 이해가. 암튼 이 작업이 뭔가 빈집 공동생활을 정의/정리하고, 같이 살아가는데에 필요한 이야기들을 잘 집어낼 수 있는 작업들이 되면 좋겠네. 밤새 해가 안드는 방에서 작업을 했구랴. 판쵸&맥스 ㅋㅋ

지각생

2011.04.06 12:26:07

이후에 쓰일 여러 개념들을 제안하는 첫 단계이고, 추상적인 얘기를 하고 있으니 말한 나 말고는 명확히 이해될 턱이 없겠지. 몇 번 더 올라오는 거 일단 지켜봐주삼. 


이번 글에서 제대로 마무리를 안 지었는데

1. 고안한 개념들

* 빈집의 "긍정적 안정화"(단기투숙객에게 최적의 조건), "부정적 안정화"(장기투숙객의 위기감 고조로 인한 동결 상태)

* 빈집에 사는 사람들의 재생산 노동을 A, B, C 부문으로 나눠본 것

* 노동 적응도 (숙련도와 다른 개념) 


2. 기대효과

* 같이 사는 개인간의 문화적 교류가, 경제적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을 공유하고픔 (B -> A) 

* 잘 드러나지 않는 (흔히 노동이라 인식하지 않는) C 노동부문에 대해 신규/기존 장기투숙객들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 빈집내 노동으로 인한 개인의 피로감을 집단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노력의 중요성, 당위성 제기

* 그 밖에..


아.. 오늘 이어서 쓸라 했는데 될라나 모르겠다

지음

2011.04.06 14:36:50

세상에나~~~~ 기대되는 '저작'이군요.

낭낭

2011.04.23 20:20:49

으음 저 '망'의 정체가 궁금. 응원하고 지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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