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나무를 읽지 않았었다면
나는 다른 생각과 다른 마음으로 희망 버스를 탔을지 모른다.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는 게 누구고
왜 그래야만 했는지,
어떻게 살아 왔고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라는 말이 갖는 의미와 그들의 삶이 어떤 건지
몰랐다면
이렇게 아프지도 않았겠지만
알게 돼서 다행이다.
우리들은. 노동자다.
아마,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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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
목소리를 잃었다. 목이 좀 아프다.
하지만 그 뿐.
최루액이 닿아서 쓰리던 자리들. 아프다.
하지만 그 뿐.
물에 절은 신발을 2틀이나 신어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그 뿐.
우리는 노래하고 요구하고 웃고 박수치고 응원한다.
잦아지거나 거세어진다. 다만 멈추지 않는다.
실감이 난다.
우리는 이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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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했다. 폭우가 쏟아지고 신발이 푹 젖고 두드려 맞는 듯한 볕이 내려쬐고 하루가 지나도 최루액 때문에 살이 맵다.
두려웠다. 맞을까봐 두려웠고 다칠까봐 두려웠고 아플까봐 두려웠다. 끌려갈까봐 두려웠고 아무도 날 기억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절망했다. 듣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악을 쓰는 일밖에 할 수 없는 그 상황에.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문제의 원인이나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에.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에.
하지만 그 모든 불편함과 두려움과 절망 앞에서 여전히 희망을 놓지 않은 사람.
단 한 번 겪는 일도 두려운, 매질과 감시와 납치와 수감, 벼랑끝에 내몰림을
몇 번씩이나 당하고도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나도 믿게 된다.
우리는 꽃이고, 우리는 희망이고, 우리는 아름다움이고
우리는
이기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6개월을 그 허허 벌판 크레인 위에서 살았을 사람을 생각한다.
이마저도 안 되면 죽어버리겠다,가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서 내려가겠다,고 말하는 사람.
억울하게 죽은 친구들 혼을 안고 반드시 살아 내려가겠다, 말하는
그 사람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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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볕을 피해 은행 출금기 코너에 꾸겨져 쉬고 있는 우리를 보고
지나가던 아저씨 한 분이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내가 뭐 하나 물어도 되겠소? 대체 왜 이 난리들인 거요?
나는 영도 살고 있는 사람인데 아주 불편하고 죽겠소.
한진 벌써 다 협상 끝났다는데 왜들 이러는 거요?"
아니에요 아저씨. 그건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야 하는 노조가 회사 편을 들어서
아무렇게나, 회사가 시키는 대로 협상해 버린 거래요.
애들은 크고 등록금도 오르고 옷값도 오르는데
회사는 자꾸 10만원 주던 걸 9만원만 주려고 하고, 잠자코 9만원 받으면 또 8만원만 주려고 해요.
그래서 애들 키우고 먹고 살아야 된다고 얘기하는데, 그럼 너 나가, 그러고 쫓아내요.
아저씨도 어디선가 일하는 분이실 거 아니에요. 그런데 십 몇년을 일한 회사가 어느날 갑자기
너 나가, 그러면
아 예, 저는 직원이니까 회사가 그만두라면 그만둬야죠, 하고 마실 수 있으시겠어요?
지금 그런 사람들 다시 복직시키라고 어떤 사람이 크레인 위에 올라가서 반년 넘게 살고 있어요.
저희는 그 사람한테 인사하러 온 거예요. 무기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우비 하나 들고, 이런 학생들이, 그냥 인사하러 온 거예요. 응원하러 온 거예요.
절대로 죽지 말고, 살아서 내려오시라고. 웃으면서 다시 보자고. 그 인사하러 온 거예요.
근데 경찰이 이렇게 우릴 막고서 최루액 쏘고 잡아가고 그러는 거예요.
그렇게 비가 오고 이렇게 날이 더운데, 경찰이 저렇게 버티고 있는데
그래서 차마 갈 수 없는 거예요.
"그래, 그렇다고 치소. 그럼 이렇게 하면 뭐가 달라지오?"
이제 저희가 얘기해서 아저씨가 아셨잖아요. 그럼 아저씨가 또 다른 누군가한테 얘기해 주실 수 있잖아요.
우리 욕하는 이웃 분 계시면 '그게 사실 그런 게 아니라데. 저 회사랑 경찰이 나쁜 거라데.' 하실 수 있잖아요.
그렇게 점점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회사가 나쁘다 얘기하면, 언젠가 달라질 거예요.
그죠?
"그래.. 알겠소."
내깟게 씨부린 몇마디 말에 아저씨 눈빛이 금세 순해지신다.
어쩌면 우리한테 "대체 왜들 이 난리냐" 물었던 그때부터, 아저씬 그런 얘길 듣고 싶었던 게 아닐까?
우리를 '분란을 조장하는 빨갱이들'로 생각하거나 '돈 받고 와서 지랄해주는 시위쟁이들'로 생각하는 일은
도무지 이상해서.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아서 그들도 괴롭기만 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 싸움 승산이 있는 것 아닐까?
부산 시민들도, 경찰도, 전경도, 의경도,
그들도 제발 납득할 수 있는, 말이 되는, 진짜 진실이 듣고 싶은 건 아닐까?
누군가가 아저씨 곁의 손녀를 가리키며 말했었다.
"저 아이들이 자랐을 때 더 나은 세상을 살게 하려고 이러는 거예요."
어쩌면 아저씨는 그 말에 흔들리셨을지도 모른다.
그거라도 좋다.
모두가 모두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되어 주면 되니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순한 눈빛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돌아가셨던 아저씨는
뜨거운 물이 가득 든 작은 노란주전자와
커피가루가 담긴 종이컵을 검은 봉다리에 그득 들고 오셨다.
그 커피가 무척 달고 맛있어서
그 뜨거운 날, 뜨거운 물 주전자를 들고 오신 아저씨 마음이
무척이나 따뜻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했다. 해도해도 모자라서 몇 번이나 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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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저녁을 먹기 위해 들른 휴게소.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을 만났다.
전국에서 불려 왔던 전경인지 의경인지 경찰 특공대인지,
아무튼 그들도 사람이었고 배가 고팠고 저녁은 먹어야 했던 거다.
간밤엔 영도 한복판에서 마주보고 밤을 새우더니
이번엔 소세지와 떡볶이와 알감자 앞에서 나란히 줄을 선다.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대체 우리 어제 뭐 한거니?!"
대체 우린 지난 밤, 뭘 한 걸까.
내가 한 사람의 경찰만 설득할 수 있다면,
내가 한 사람의 부산시민만 설득할 수 있다면,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소금꽃나무를 꺼내 들고
제발 한 번만 읽어 봐 달라고, 우리가 '왜' '누구를' 만나러 온 건지.
제발 한 번만 읽어 달라고 꺼이꺼이 울어댔던 밤.
그들이 나처럼 구운 오징어 앞에 줄을 서 있어서
두 마리를 따로 담아달라고 말하거나 저희가 먼저 왔는데요 하고 말해서
어쩌면 기뻤다.
경찰도 군인도 노동자라는 걸 그들이 알면 좋을 텐데.
고된 밤샘야간노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지갑을 꺼내 들고
천원짜리 지폐를 세고 있는 당신들을 깨달으면 좋을 텐데.
이런 무력진압 하기 싫다고 다 같이 파업하고 그러면 좋을 텐데.
하고 싶으면 대통령, 서장님, 총장님, 너네들이 나와서
최루액 쏘고 방패 들고 사람들 패라고 그러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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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
집에 도착한지 꼬박 24시간이 지났다.
어젯밤엔 박경림 목소리였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내기 쉽지 않다.
그래서 새로운 목소리를 발굴했더니 다들 웃는다. 도라에몽 같다고도, 귀,귀엽-_-다고도 한다.
감자팩 2회와 마스크시트 2매, 크림 한 통을 다 퍼부어도
화상 입은 팔과 이마는 낫질 않는다.
쓰리고 아프다. 감자를 처덕처덕 바르고 있는 모습을 사진 찍혔다.
뭔가, 모자이크 효과를 준 것 같다고도 하고, 인간 감자전, 감자맨 같다고도 한다.
사람들이 웃으니 좋다.
손님
연두의 감상적인 글, 좋은데요. 뭘.. ㅎ
누구는 이번에 절망을 더 많이 보았다고 하지만,
이번 희망버스에서 우리가 발견한 작지만 큰 희망들.. 분명히 있잖아요.
흔한 시비로 끝나버릴수도 있었던 어르신의 한마디에,
눈물번진 눈으로, 떨리는 손으로, 한마디 한마디 의미를 나누었던 연두,
덕분에 우리 달달한 커피와 함께 희망, 나눌 수 있었잖아요.
목욕탕 아주머니의 의미없이 툭 던졌을 그말에
한마디, 한마디 열심히 보태었을 잔잔 덕분에
여름과 희사는 아침 국밥 거르지 않고 따뜻하게 먹을 수 있었잖아요.
그냥.. 그런것들요.
그런것들이 우리가 발견해야 할, 또 찾아내야할 희망인것 같아서..요
여튼 민중가요 스터디 해요.( -.+)
안그럴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감상적으로밖에 안 써질까.
아무리 여기 저기 만져 봐도 점점 모양이 어그러지기만 해서
두서 없지만 첫 번째 버젼으로. 에라 모르겠다. 감자나 붙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