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침대와 관계의 미학
‘옆집’ 큰방에 이층침대를 2개 설치했다.
이렇게 지낸 지 한 달쯤 된 것 같다. 우리는 이층침대 4개를 마련했다. 2개는 ‘옆집’에, 2개는 ‘아랫집’에 넣어두고 사람과 물건의 대대적인 재배치를 감행했다.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이층침대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아랫집에는 지금 방 한 칸에 많게는 5명, 적게는 3명이 장기투숙을 하고 있다. 한 집에 10여 명이 모여 살고 게다가 마루에는 작업실 공간을 꾸며 유동인구 또한 서넛이 된다. 아무리 집이 넓어도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 버거운 인구밀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다보니 이층침대는 ‘방 안의 방’으로서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해주는 효과를 갖는다. 특히 커튼을 달아두어 때로는 사방이 막힌 독방처럼 될 수도 있고, 커튼을 말아 올리면 다른 투숙객들과 대면하는 거실의 소파가 된다. 거실에 있는 소파가 사방으로 열려있어 좀 더 외부와의 접촉면이 넓다는 것, 혼자 소파에서 잠이라도 잘라 치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어서 자는 이도, 보는 이도 이래 저래 편치만은 않았지만, 때때로 쇼파로 이용하는 이층침대는 좀 더 독립적 공간을 구성하기에 적절하다. 이층침대는 원할 때는 남들이 소파처럼 써도 좋은 공간이지만 심지어 커튼을 치지 않고 있더라도 좀 더 아늑한, 서로 적당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의 거리를 확보해준다. 그래서 다른 손님과 한 방에서 공존하면서도 분리될 수 있는 배치를 만들어낸다. 그 때문에 커플들에게 더 인기가 많은지도 모른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커플이 섞여 잠을 자는 것이 수월해지고, 커플들이 방 한 칸을 쓰게 되었을 때 제기되던 문제, 즉 공간 활용의 비효율성을 최대한 보강할 수 있다.
손님, 오늘은 제 침대에서
커튼을 말아 올린 상태. 침대는 소파로, 가운데의 수납장은 테이블로 쓰인다.
빈 공간에 손님들이 더 들어와 함께 살고 있지만 손님들은 손님방, 커플들은 커플 방에 머무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빈 공간은 모두가 활용하는 공간이다. 커플들은 빈 공간을 필요로 한다. 커플이 아니어도 물론 빈 공간은 필요하다.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고 집에서 세미나나 워크숍을 하기 위해 빈 공간을 활용하기도 한다. 현재 ‘옆집’에서는 3개의 세미나 및 워크숍이 진행 중이다. 마루를 활용하기도 하지만, 방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가장 논의가 많이 되는 경우는 역시 잠을 자야 할 때이다. 무엇보다도 낮에는 사람들이 일보러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지만 밤이 되면 모두 들어오고 일정한 시간 동안 서로 불편 없이 잘 자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이층침대에 커튼을 친 것으로는 소리를 차단할 수가 없기 때문에 내밀한 대화나 섹스를 즐기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쓰는 방법은 침대를 내어주는 것이다. 이층침대는 한편으로 장기투숙객들에게 각자의 사적인 공간처럼 쓰이다가도 잠자는 시간에는 모든 손님들이 잘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하게 된다. 반대로 손님방은 잠자는 시간에는 장기투숙객들도 잘 수 있다. 밤마다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펼쳐진다.
“오늘은 우리 어디서 잘까?”
“A야, 너 오늘 손님방 쓸 거?”
“글쎄, B랑 이야기해보고.”
“나랑 C는 오늘 여기서 잘까 하는데.”
“혹시, D 오늘 이쪽에서 잘 수 있어요?”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의 잠자리는 일주일에도 몇 번 바뀐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 침대에서 저 침대로. 협의하는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번거롭게 느껴지지 않게 되는 어떤 순간의 만남이 반갑고 즐겁다. 자고 일어나 커튼을 말아 올리면 서로 부스스한 얼굴로 마주 앉아 침대 사이에 놓인 탁자에 차를 내놓고 수다를 떨거나 바느질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아직 누군가 커튼을 내리기 전에는 이 방은 응접실처럼 되어 옆방 아기가 놀러와 누구의 침대 위에서 뒹굴고, 오늘밤은 손님방에서 잘 누군가도 맥주 한 잔 마시며 한참 놀다 간다. 커플방일 때, 사람들이 괜히 들어오기 힘들다는 말을 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 두 커플이나 살고 있는 침실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제 방처럼 드나드는 곳으로 탈바꿈하였다.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던가! 하여간 빈 마을에선 조만간 이층침대를 몇 개 더 구입할지도 모른다.
어디에서 누구랑 어떻게 살까? ‘아랫집’의 개편 구상도
트랜스포머 빈 마을
어떻게 하면 서울 한복판에 살면서 가난한 가운데 풍요롭고 지속가능하게 살 수 있는가를 작당 모의하는 빈 마을은 진화하고 있다. 이 글을 연재하는 기간 중에는 온갖 일들, 그러니까 두 번째 빈집이었던 ‘윗집’의 해체와 ‘아랫집’의 ‘아랫마을’로의 변화(설명하려면 이 글만큼의 지면이 더 필요하니 생략. 빈집 홈페이지를 참조.), 몇몇 장기투숙객의 분리 독립, 성폭력사태, H일보 사태, 동물 집의 탄생 등 굵직굵직한 악재와 쾌재가 벌어졌다. ‘자전거면 충분하다’고 외치는 가운데에도 일명 ‘빈다마’라 불리는 자동차를 마련하기도 했고, 매주 모여 장보고 반찬 만드는 반찬 팀은 2기를 출범해 ‘직장인도 할 수 있다’는 기치를 내걸고 새로이 멤버들을 충원하고 있다. 아직 현실화되지는 못했지만 마을 차원에서 조만간 ‘가게’를 낼 거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지금 해방촌에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밤낮없이 출몰하는 일군의 무리가 있다. 이들이 가는 길에 앞으로 무슨 일이 펼쳐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랫집’ 한 달 전 모습. 거실에 침대를 놓고 회의가 한창 중이다.
재밌네. 사람들이 갈수록 당황해할 거 같지만... ㅋㅋㅋ 나도 모르는 옆집 분위기가 신기하기도 하고... ㅎㅎ 애쓰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