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

조회 수 2542 추천 수 0 2016.06.04 09:08:56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 - 데이비드 그레이버

 

 

사회적 현실을 발견한다는 것은 개혁 정권이나 혁명 정권마저 바꾸거나 제거할 수 없는 인간의 모든 끈질기고 완강한 사회적 삶의 요소들을 발견한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바로 이런 의미에서 사회 이론은 사회를 변혁시키는 기획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 언제나 이데올로기적 일치를 요구하고 보통은 몹시 권위주의적인 의사 결정 구조와 결합하는 마르크스주의 정당과 달리, 아나키스트의 영향을 받은 혁명 네트워크집합체는 이데올로기적 합일이 가능하지 않고, 또 가능해서도 안 된다고 전제하는 의사 결정 과정을 채택한다. 이런 의사 결정 과정은 다양성과 통약불가능성을 다루는 방식이기도 하다.

... 다시 말해, 아나키스트의 영향을 받은 집단은 다른 사람의 관점을 내 관점으로 완전히 바꿀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전제 아래 운영된다. 아나키스트 의사 결정 구조는 현재 당면한 행동의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그 과정에서 평등주의를 굳게 지키며, 이 모든 과정 자체가 공정한 사회라는 이상의 주요 모델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 오늘날의 이론은 무수히 많은 통약불가능한 관점들로 조각나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통약불가능성은 그 자체로 가치다. 우리는 공유된 행동계획을 통해 실천적 통합을 이룰 수 있다.

... 경제지상주의 헤게모니에 맞서는 다양한 사회사상의 가닥들을 합치려면, 먼저 이 유해한 전위주의 역사를 넘어 사회적 현실에 접근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결집해야 한다.

... 이 책은 그런 이론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고민하며 만든 첫 결과물이다.

 

 

 

아나키즘:

정부가 없다고 상상된 사회의 삶과 행동에 관한 원리에 붙인 이름. 이러한 사회는 법에 굴복하거나 권위에 복종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 다양한 필요와 열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유롭게 형성된 다양한 영토 집단과 직업 집단의 자유로운 합의를 통해 조화를 이룬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 일반적인 설명에서 아나키즘은 흔히 이론적으로는 한발 뒤처지지만 열정과 성실로 두뇌를 벌충하는 마르크스주의의 가난한 사촌쯤으로 여겨졌다...ㅋㅋㅋㅋ

... (19세기의 아나키스트)들은 자기조직화, 자발적 결사, 상호부조와 같은 아나키즘의 기본 원리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유구한 인간 행동 양식이라고 생각했다. 국가 및 모든 형식의 구조적 폭력과 불평등과 지배를 거부해야 하며 이 모든 형식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서로를 강화한다는 가정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중 깜짝 놀랄 만큼 새로운 교의는 없었다.

... 여기서는 일련의 이론보다 누군가는 신념이라고까지 부를 하나의 태도를 중점적으로 다루기로 하겠다. 바로 특정 유형의 사회관계를 거부하고,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더 좋은 사회관계가 있다고 확신하며, 마지막으로 그런 사회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다.

 

아나키즘은 주로 실천의 형식과 관계되어 있다. 아나키즘은 무엇보다 수단과 목적이 일치해야 하고, 권위주의적 수단으로는 자유를 창조할 수 없으며, 실제 자신이 희망하는 사회를 친구 및 동지와의 관계 속에 최대한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아나키즘은 낡은 사회의 껍질 안에새로운 사회제도를 만들어나가는 기획이기도 하다. 지배 구조를 폭로하고 전복하고 무너뜨리는 중에도 그런 구조가 불필요함을 스스로 입증하는 민주적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런 기획에는 분명 지적 분석과 이해를 돕는 도구가 필요하다. ... 확실히 단 하나의 아나키스트 고급 이론따위는 필요치 않다.

 

모두가 마땅히 동의해야만 하는 원칙이 있다. 타인이 완전히 나와 같은 관점을 갖도록 강요해서는 안 되며 그런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토론은 구체적인 행동의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누구나 수용 가능하고 자신의 원칙에 근본적으로 위반된다고 느끼지 않는 계획을 도출해야 한다. ... 아나키스트 이론은 다른 사람의 기본 가정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대신 서로를 강화하는 기획을 찾으려 한다. ... 유일무이하고 통약불가능한 세계관을 가진 개인들이라 해서 친구나 연인, 공통의 기획에 힘쓰는 동료가 되지 말란 법은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아나키즘에 필요한 이론은 고급 이론보다 오히려 낮은 이론이라 부를 만한 것일지 모른다. 변혁을 위한 기획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론 말이다. 주류 사회과학은 사실상 이런 문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주류 사회과학에서 이런 종류의 사안은 일반적으로 정책 문제로 분류되는데, 자부심을 가진 아나키스트라면 정책 문제 따위에 관심을 기울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작은 선언 하나. 정책에 반대한다

정책이라는 개념은 타인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 국가나 통치장치를 전제로 한다. ‘정책은 정치의 부정이다. 정책은 사람들의 문제를 처리할 방법을 사람들 자신보다 더 잘 안다고 여기는 특정 엘리트 계층의 산물로 정의된다. ... 그 전제 자체가 사람들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관념에 반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긴다. 자기 삶을 자유롭게 통치하는 세상을 이룩하려는 이들이 정말로 관심을 가질 만한 사회 이론은 무엇인가?

이것이 이 책의 핵심 주제다.

 

... 첫째, 그 이론은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전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국가, 자본주의, 인종차별, 남성 지배와 같은 제도는 불가피한 것이 아니며 이런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사는 세계가 가능하다는 전제 말이다.

 

작은 선언 둘. ()유토피아주의에 반대한다.

... 스탈린주의자와 같은 이들은 위대한 이상을 꿈꿨기 때문에 사람들을 죽인 것이 아니다. (사실 스탈린주의자들은 오히려 상상력 부족으로 악명 높았다) 문제는 이들이 자신의 이상을 과학적 확실성으로 착각한 데 있다. 따라서 이들은 폭력기구를 통해 자신의 상상을 강요할 권리가 믿었다. 아나키스트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하지 않는다. 아나키스트는 역사의 필연적 과정을 상정하지 않으며, 새로운 형태의 강압을 창조하여서는 결코 자유의 실현을 앞당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둘째 명제, 아나키스트 사회 이론은 의식적으로 모든 전위주의의 흔적을 거부해야 한다.지식인의 역할은 ... 대중을 이끄는 엘리트 집단을 형성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 다시 말해 사람들의 습관과 행동에 감춰져 있어 이들 스스로 완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의미를 발견하려 하는 것이다. ... 지식인은 실현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관찰해 그들이 (이미) 하고 있는 일의 더 큰 함축적 의미를 찾아낸 뒤, 그 이념을 처방이 아닌 기여로, 가능성으로, 곧 선물로 되돌려주어야 한다.

 

 

 

 

마르셀 모스가 대안적 도덕률에 관심을 가진 덕분에 국가와 시장 없는 사회는 사회 구성원들이 그렇게 살기를 적극적으로 원했기에 그런 모습이 되었다는 사고가 가능해졌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이라는 것이 이미,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 대부분은 모스에서 유래한다.

모스 이전에 화폐나 시장 없는 경제는 물물교환으로 작동한다는 가정이 보편적이었다. ... 그러나 모스는 이런 경제가 실제로는 선물경제였음을 증명했다. 선물경제는 이해타산이 아니라 이해타산의 거부에 기초한 경제며, 대개 경제의 기본 원리로 간주하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윤리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선물경제 사회의 구성원들은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적은 아닌 누군가와 경제적 거래를 하는 목적이 최대 이윤이라는 전제 자체가 이들에게는 큰 거부감을 주었을 것이다.

 

보통 선물경제에도 야심 있는 개인들이 설 자리는 있다. 그러나 이런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부의 영구한 불평등을 낳는 발판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배치된다.

 

아나키스트 사회는 인간의 탐욕이나 허영에 무지하지 않다. 다만 이것이 자신들 문명의 기반으로 하나같이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실제로 아나키스트 사회는 이런 현상을 대단히 심각한 도덕적 위험으로 인식하기에 대개 이것들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사회생활을 조직하게 된다.

 

대항권력은 국가와 자본에 반대하는 사회제도를 통칭했다. ... 대항권력은 영주나 국왕이나 금권정치가 ... (라는) 유형의 인물이 등장할 가능성을 아예 차단해버리는 제도로 구체화된다. 이때 대항의 대상은 사회 내부의 가능성, 잠재적 측면이다.

이렇게 보면 적어도 겉으로 이상해 보이는 사실들을 설명할 길이 열린다. 특히 평등주의 사회가 흔히 극심한 내적 갈등이나 상징적 폭력의 극단적 형태로 인해 분열되는 경향 등에 대해 말이다.

... 공동의 합의를 이루고 유지하는 것을 몹시 강조하는 평등주의 사회에서 이런 경향은 흔히 ... 온갖 무서운 것들이 살고 있는 어둠의 세계를 촉발한다. ... 이 사회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세계는 말 그대로 전쟁터니, 합의를 구하려는 끝없는 노력이 계속되는 내부 폭력을 감추고 있는 것과 같다. 아니 실은 이 노력 자체가 내부 폭력을 측정하고 억제하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클라스트르는 역사적으로 아나키스트 사회의 정치제도로부터 국가제도가 나오기는 불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아나키스트 사회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지속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마다가스카르에 주어진 것은 아주 깨지기 쉽고 허약한 자유였다. ... 하지만 어떤 영토는 살아남았고, 새로운 영토는 항상 생겨나는 중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이런 아나키 상태의 공간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 공간이 성공적이면 성공적일수록 소식을 들을 가능성은 더욱더 적어진다. 외부인은 이런 공간이 폭력으로 붕괴될 때가 되어서야 그 존재를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대항권력은 우선 무엇보다 상상력에 뿌리박고 있다. 이는 모든 사회체제가 모순으로 얽혀 있어 항상 어느 정도 자신과의 전쟁 중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 대항권력은 합의에 기초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실천적 상상력과, 그 변함없고 아마도 불가피한 귀결로 보이는 유령 폭력 사이의 관계에 뿌리를 박고 있다. 이때 실천적 상상력이란 타인과 상상적 동일시를 이룸으로써 타인을 이해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이른다.

2)평등주의 사회의 대항권력은 사회적 힘의 지배적 형식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때 대항권력은 사회 내부의 두려운 권력을 감시하며 특히 정치적,경제적 지배의 체계적 형식이 출현하는 것을 경계한다.

 

 

이제부터는 더 나아가 미래 언젠가 존재하게 될 사회에 대한 이론을 상상해보려 한다.

 

눈에 띄는 비판

이런 기획에 대한 통상의 비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정말로 존재하는 아나키스트 사회에 대한 연구는 현대 세계와 무관하다는 비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 봤자 원시인들 얘기 아냐?”

 

... 회의론자: 그래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그건 모두 소규모의 고립된 운동들 아냐. 나는 사회 전체에 대해 묻고 있다고.

아나키스트: 사회 전체의 변혁을 시도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야. 파리 코뮨이나 스페인 혁명만 해도.....

회의론자: 그래,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를 보라고! 다 죽었잖아!

 

무슨 수를 써도 결과는 똑같다. 이 말싸움에서는 이길 재간이 없다. 회의론자가 사회라고 말할 때 정말로 의미하는 것은 국가내지 국민국가이기 때문이다. ... 회의론자가 정말로 요구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근대 국민국가에서 정부가 떨어져나간 사례다. ... 물론 이런 일은 결코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조금이라도 이런 일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면 인접한 거의 모든 국가의 정치인들이 대립을 멈추고 이런 변화를 꾀하는 이들을 체포해 총살하는 데 힘을 합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결책이 있다. 아나키스트 조직 형태가 국가와 전혀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나키스트 조직 형태는 가능한 모든 규모의 무수한 공동체, 연합, 네트워크, 기획을 포함하며, 이들은 일부는 상상 가능하지만 대개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방식으로 겹쳐지고 교차한다.

... 이 과정은 점진적이며, 세계적 규모의 대안 조직 형태와 새로운 소통 형식, 삶을 조직하는 새롭고 덜 소외된 방식을 창조해 궁극적으로 현존하는 권력 형태의 어리석음과 부적절함을 밝히려 한다. 곧 실행 가능한 아나키즘의 예가 무수히 많다는 의미다.

 

 

짧은 선언. 혁명이라는 개념

혁명이라는 단어는 일상에서 지나치게 남발되어 지금은 거의 아무 의미도 갖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매주 혁명과 만난다. 금융 혁명, 사이버 혁명 ... 이런 일은 혁명의 일반적 정의가 늘 패러다임 전환과 유사한 무엇을 함축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분명한 단절, 즉 그 이후로 모든 것이 다르게 작동하기에 이전 범주들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사회현실의 근본적 균열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 실제 세계는 우리의 기대에 부응할 의무가 없다. ... 특히 총체성은 언제나 상상의 산물이다. 민족, 사회, 이데올로기, 닫힌계 등등 ... 무엇보다 세계나 사회를 총체적 체계로 규정하는 사고습관은 거의 필연적으로 혁명을 지각변동적 균열로 바라보게 만든다. 지각변동적 균열이 아니고는 하나의 총체적 체계가 완전히 다른 체계로 대체되는 과정을 설명할 길이 없는 까닭이다.

... 이 글의 목적은 이러한 상상적 총체성을 완전히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다. ... 상상적 총체성이야말로 인간의 사고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다. 오히려 나는 이것이 단지 사고의 도구임을 늘 잊지 말자고 주장하고 싶다.

 

그렇다면 혁명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세계적 규모의 혁명은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난다. 그러나 혁명을 이미 일어나기 시작한 것으로 인식하는 방법도 있다. 가장 쉬운 길은 혁명을 사건으로, 대혁명이나 지각변동적 단절로 생각하는 대신 혁명적 행동은 무엇일까?”하고 자문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답할 수 있다. 혁명적 행동은 특정한 권력 또는 지배 형태를 거부하고 그에 맞서 사회관계를 (그 집단 내부에서까지) 재구성하는 모든 집단행동을 일컫는다. 혁명적 행동의 목표가 반드시 정권 전복일 필요는 없다. 예컨대 권력에 맞서 (스스로를 구성하며, 공동으로 규칙이나 운영 원리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재검토하는) 자율 공동체를 창조하려는 시도는 거의 혁명에 근접한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인류학계에서) 점점 분명해지는 사실은 대부분의 인간 역사가 끊임없는 사회변혁으로 특징지어진다는 것이다. 시간을 초월한 집단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에 수천 년 동안 머물러 사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마다 새로운 집단이 생성되고 오래된 집단은 소멸한다. 우리가 부족, 민족, 종족이라 생각하는 집단의 대부분은 본래 어떤 집단적 기획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 여기서 혁명적이란 어떤 지배적인 정치권력 형태를 의식적으로 거부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적 상호관계를 재검토하고 재편하게 하는 힘을 말한다. 어떤 기획은 평등주의적이고 어떤 기획은 권위나 위계에 입각한 특정 시각을 강조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기획은 혁명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회운동이라 생각하는 것과 매우 유사한 무엇을 다루는 기획이 있다. 다만 전단도, 집회도, 선언문도 없기에, 다른 가치 형태를 추구하기 위한 사회생활, 경제생활, 정치생활의 새로운 형식을 전혀 다른 매체를 통해 창조하고 요청할 뿐이다.

이러한 기획에 참여한 집단은 ... 말 그대로, 혹은 비유적인 의미로 새로운 육체를 빚어야 했다.

 

 

탈주 이론은 우리는 직접 대결이 아니라 참여적 철수라 불리는 수단을 통해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국가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참여적 철수란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집단 이탈을 일컫는다. 가장 성공한 민중 저항이 바로 이런 형태였다는 사실은 역사 기록을 한번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한 이들은 대개 학살되거나 처음 도전했던 권력과 (때로는 더 추악하게) 닮은 또 다른 권력으로 변질되었다. 성공 사례는 권력의 손아귀를 벗어나기 위한 이런저런 전략들, 도주하고 이탈해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전략들로부터 나왔다.

 

여기서 우리는 직접 대결하는 정치체제 없이 어떻게 국가장치를 무효화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봉착한다. ... (그러나) 파괴할 수 없다 해도, 우회하고 동결하고 변형해 점차 그 실체를 박탈할 수는 있다. 이때 국가의 실체란 결국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능력이다. ... (국가장치들은) 점차 쇼윈도의 장식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미디어 스펙터클에 의한 통치는 그야말로 그냥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 신자유주의 국가들이 새로운 봉건제로 나아가며 빗장 공동체 주위로 점점 더 많은 무기를 배치하는 동안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반란의 공간이 열리고 있다.

... 가끔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척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따금씩 관공서에 방문해 서류를 작성하고 국가의 공식 대리인들이 위엄을 유지하도록 내버려두면서, 그 밖의 시간에는 무시한 그만인 셈이다.

 

 

국가는 독특한 이중성을 지닌다. 국가는 제도화된 침략 내지 강탈의 형식임과 동시에 유토피아적 기획이다. ... 어떤 의미에서 국가는 대표적인 상상적 총체성이다. ... 국가는 결국 이념이며, 사회 질서를 파악 가능한 무엇이자 통제 모델로 상상하는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겐 또 다른 자본주의 이론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왜냐하면 결국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임금노동에 종사하느라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낭비하며, 또 바로 그 이유로 비참해지기 때문이다.

... 조너선 프리드먼 같은 인류학자는 고대 노예제는 자본주의의 오래된 형태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그만큼 간단히, 아니 실은 훨씬 더 간단히 현대 자본주의는 노예제의 새로운 형태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사람들이 우리를 매매하거나 임.대하는 대신, 이제는 우리가 직접 스스로를 임.대한다는 점이다. 근본적으로 이 둘의 방식은 같다.

 

 

곤봉을 든 남자는 우리가 사는 세계 어디나 침투해 있다. ... 산더미처럼 음식이 쌓여 있고, 그 몇 발자국 옆에 굶주린 여인이 서 있는 광격을 보았다고 하자. ... 그러나 당신은 여인에게 음식을 집어줄 수 없다. 그랬다간 십중팔구 곤봉을 든 남자가 나타나 당신을 때릴 것이기 때문이다.

대조적으로 아나키스트는 항상 곤봉을 든 남자의 존재를 상기시키려 한다. 버려진 군사기지를 무단 점거해 살고 있는 덴마크의 크리스티아니아 공동체에서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벌이는 의식이 좋은 예다. 크리스티아니아 사람들은 산타클로스 분장을 하고 백화점에서 장난감을 훔쳐 거리의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모두에게 경찰이 산타클로스를 때려눕히고 울부짖는 아이들에게서 장난감을 낚아채는 광경을 보여주기 위해서다.ㅋㅋㅋ

 

폭력, 특히 권력이 한쪽에 일방적으로 쏠린 구조적 폭력은 무지를 생산한다. 만일 우리에게 마음 내킬 때마다 다른 사람의 머리를 때릴 수 있는 권력이 생긴다고 해보자.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아내느라 애쓸 필요가 없으며, 아마 일반적으로는 애쓰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 인간 삶을 구성하는 여러 관점과 열정, 통찰과 욕망, 상호이해 간의 엄청나게 복잡한 작용들을 무시하고 사회체계를 단순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규칙을 만들어 누구든 그것을 위반하면 폭력을 가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그래서 폭력은 언제나 어리석은 자들의 좋은 의지가 된다. 폭력은 지성적으로 대응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어리석음의 한 형태며, 이것이 바로 국가의 기초다.

 

관료제는 어리석음을 생산하지 않는다. 관료제는 이미 본질적으로 어리석은 상황을 다루는 방식이다. 관료제는 폭력의 자의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논의는 폭력과 상상력의 관계를 다루는 이론으로 이어져야 한다. 왜 꼭대기에 있는 사람(구조적 폭력의 수혜자)의 삶을 상상하는 일은 항상 밑바닥에 있는 사람의 몫일까?

 

 

아나키스트, 자율주의자, 상황주의자를 비롯한 여러 새로운 혁명가 집단이 공통으로 알고 있는 상식이 있다. 바로 냉혹하고 단호하고 자기희생적인 혁명가, 세계를 단지 고통의 측면에서만 보는 이 낡은 유형의 혁명가는 결국 스스로 더 많은 고통을 생산할 뿐이라는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기쁨과 축제에 힘쓰며, 그 안에서 우리 모두 이미 자유인 것처럼 살아가는 일시적 자율 공간을 창출하는 데 힘써야 한다.

 

우리는 모든 행동 형식을 더 크고 전체적인 권력 불평등의 형식을 재생산하는 기능을 통해서만 바라보려 한다. 이런 고집을 버리는 순간, 우리 주변에 있는 아나키스트의 사회관계와 소외되지 않은 행동 형식이 눈에 띄게 될 것이다. 이런 깨달음이 중요한 이유는 아나키즘이 이미 인간 상호작용의 주요 토대 중 하나임을, 그리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항상 그래 왔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스스로를 조직하며 상호부조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항상 그래왔다.

 

일에 반대하는 투쟁은 언제나 아나키스트 조직의 핵심 주제였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투쟁은 더 나은 근로 조건이나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투쟁이 아니라 지배관계로서의 일 자체를 완전히 철폐하려는 투쟁이다.

 

새로운 운동의 핵심 용어는 과정이다. 여기서 과정은 의사 결정 과정을 뜻한다.

... 모든 바람직한 합의 과정은 타인의 관점 전체를 나와 똑같은 관점으로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합의 과정의 목적은 한 집단의 공동 행동 방침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안을 표결로 수락 또는 거부하기보다, 다듬고 또 다듬고, 폐기하거나 다시 고쳐 최종적으로 모두가 승인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의 마지막 단계, 즉 실제 합의를 구하는단계에서는 두 가지 수준의 반대가 가능하다. 먼저 한쪽으로 비켜서기가 있다. ‘나는 이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고, 참여하고 싶은 마음도 없으나, 다른 사람이 참여하는 것까지 막지는 않겠다는 태도다. 또 다른 하나로 거부가 있으며 이것은 거부권의 효과를 갖는다. 거부를 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어떤 제안이 집단을 구성하는 기본 원리나 근거에 위배된다고 느낄 때만이다. ... 원칙 없는 거부에 이의를 제기할 방법도 물론 마련되어야 한다.

 

표결이란 곧 지는 것처럼 보일 사람을 뽑는 공개 경연인 까닭이다. 표결은 굴욕과 분노, 증오, 마침내는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가장 큰 수단이다. 반대로 합의를 구하는 과정은 겉으로는 까다롭고 복잡해 보이나, 실제로는 자신의 견해가 전적으로 무시된다고 느끼고 떠나는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한 기나긴 과정이다.

 

 

모든 사람이 개인으로든 집단으로든 자신이 속하고 싶은 공동체와 취하고 싶은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하는 세계에 살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상상계의 해방이라고 하는 것의 의미다.

 

 

이들(사파티스타)은 혁명 전략 자체를 혁명화하려 한다. 방법은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전위당 개념을 버리고, 그 대신 투쟁을 통해 자율적인 자치 정부의 모델이 되어줄 자유 고립 영토들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멕시코 사회 전반을 자율관리 집단들이 복잡하게 중첩된 네트워크로 재조직하는 일이 가능해지면 정치 사회의 재창안에 대한 논의 역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아나키즘은 대부분의 정치철학과 매우 다르다. 대개 정치철학의 주된 임무는 자신들이 내세우는 사회적 전망이 바람직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 사람들은 대개 경찰이나 보스 없는 비무장 세계에서 살고 싶어 한다. 그곳에서 공동체는 자신들의 일을 민주적으로 처리하고, 기본적 필요를 확보한 모든 사람은 스스로 가장 중요하다고 결정한 일들을 자유롭게 추구할 것이다. 사람들은 단지 이런 세계가 정말로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뿐이다. 분명한 사실은 불평등이 넘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자들이 가장 앞장서서, ‘이런 세계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미치광이가 틀림없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아나키즘이 한낱 미친 소리가 아니라고 믿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아나키스트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인은 경찰과 국가 권력이 사라지면 틀림없이 혼란이 발생할 거라고 믿는다. 사람들은 서로 죽고 죽이기 시작하리라. 그러나 인류학자는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음을 증명해 보인다. 인류학은 국가 없는 사회에서, 또는 국가는 존재하지만 경찰이 뚜렷한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 사회에서 눈에 띄는 수준의 상호 학살이 일어나지 않은 사례를 무수히 제시한다. ... 소말리아 전역에서는 국가가 붕괴하는 사례가 십여 차례나 있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는 어떤 극적인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정부 아래 감옥과 경찰이 있는 세상에서 살며, 감옥과 경찰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행동하게 되는가? ... 앞의 질문에 대한 아나키스트의 대답은 매우 간단하다. 사실상 모든 아나키스트 사상의 기본 전제라고 할 수 있는 이 대답은 바로 어린아이 취급을 받은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진짜 민주주의란 정확히 이런 사람들이(군인, 경찰, 정부)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뜻임을 이해하는 데서 아나키즘은 출발한다. 아나키즘은 성인 대접을 받은 사람은 빠른 시간 내에 성인처럼 행동하기 시작할 거라고 가정한다.

 

자본주의가 아닌 환경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경제학자가 말하는 목표 소득만큼 일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과 그 물건을 사야 할 때를 알기에 적당한 시간에 일을 마치고 휴식과 여가를 즐긴다.

... 자본주의는 전 세계 인구의 상당수가 주변 사람들이 모두 완전히 병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 셈이다.

 

 

20세기는 전쟁의 세기가 되었고,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나키스트보다 훈련된 대규모 부대를 조직하는 데 능했기에 결국 마르크스주의 정당이 ... 인구 대부분을 흡수하게 되었다. 이 사실은 국가 공산주의의 모순 대부분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마르크스주의 정권은 생산주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혔다. 오로지 경제 성장, 즉 전년도에 비해 얼마나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했느냐에 입각해 사회적 성공을 측정했던 것이다.

 

1989, 2년 동안 현장연구를 하러 찾은 마다가스카르에서 지역 정부가 완전히 기능을 멈춘 아리보니마모라는 작은 시골 마을을 발견했다. ... 그곳에서 6개월 이상을 사는 동안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이 자율적인 고립 영토에 사는 것처럼 말하지 않았다. 대신 항상 정부에 불평을 늘어놓으며 마치 정부가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 어느 날은 1980년대 초반 마을을 공포에 떨게 했던 앙리라는 거구의 남자 얘기를 들었다. 앙리는 난폭했고, 끊임없이 시비를 걸었으며, 사람들을 위협하고, 여자를 폭행하고, 가게에서 마음대로 물건을 훔쳤다. 결국 마을 젊은이들이 일어섰다. ... 다음 날 앙리가 또다시 시비를 걸자 젊은이 여남은 명이 농기구로 무장하고 심판에 나섰다.

... 마다가스카르의 독특한 의사 결정 방식은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이 방식은 대체로 어떤 공식적인 제도적 구조 없이 작동했다. 누구나 집단이 대체적으로 동의한 내용에 더 이상 동의하지 않음을 선포하기만 하면 언제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처음에는 몹시 당황했다. 동의 여부를 물은 사람도 없는데 갑자기 누군가 불쑥 나는 반대예요!”라고 외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머지는 즉시 모든 일을 중단하고 반대자와 다시 합의할 길을 찾아야 했다. 파장이 무척 컸기에 반대가 자주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고전적인 아나키스트 의사 결정 과정임은 분명했다.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이는 누구나 반대할 권한을 갖는다. , 성인답게 행동하지 않을 수 없는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1990년대의 새로운) 이 아나키스트 운동은 예시적 정치’, 즉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형식의 사회성을 창출하여 이미 자유로운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직접행동의 원리를 철저히 따랐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듣기이해하기합당성의 역량을 기르는 것이었다. 이는 ... 폭력적인 제도 자체를 철저히 거부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자율 거품을 만들어 마치 자유로운 사회 안에서 행동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곳에서 정치는 자신이 정말 생각하는 것만을 말하고, 옳다고 믿는 것만을 행하며, 어떤 타협도 없이 이 거품의 형태를 유지함을 의미했다. 더 주목할 점은 이 운동이 실천 기법들을 발전시켰다는 사실이다.

 

아나키스트 운동과 하나가 되는 과정은 놀랍도록 빠를 수 있다. 몸을 던질 시간만 있다면 말이다. 처음 참석한 자리에서는 이방인처럼 당황해 허둥지둥할지 모른다. 그러나 두 번째엔 벌써 누구와 무슨 일을 할지를 다 파악하게 된다. 세 번째 모임에서는 어느새 조직책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

 

내가 꿈꾸는 것은 명령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는 지적 실천의 형식이며, 이 책은 그것의 실현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쓰였다.



후지이 다케시 - 관료제 유토피아』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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