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 선고를 받고 반말이 들리는 삭막한 옆방으로 들어가서 포승줄에 묶인채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에 평온함을느낍니다. 법원 옆 검찰청 대기실에서 한 시간쯤… 까맣게코팅된 법무부 버스를 타고 공덕오거리, 마포대교, 여의도공원, 영등포, 문래동, 구영등포구치소 등 익숙한 거리들을 지나 면회하러만 왔던 남부구치소 안으로 들어옵니다. 오는 내내 괜스레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판사가 1년 6월형의 선고를 내렸을 때 저도 모르게 마이크에 대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던게 떠올라서입니다. 물론 여러가지로 저를 배려해준 판사이지만1년 6월을 선고 받는 마당에 “감사합니다”라는 고객성 발언을 할 이유는 아무리 따져봐도 없는 것같았습니다. 오히려 진짜로 인사를 드렸어야 할 분들, 방청석에서저를 응원해주셨던 분들 얼굴들 한 명 한 명 바라봤어야 하는 건데 말이죠. 늦었지만 세 번에 걸쳐 법정에와 주신 분들, 후원파티나 각종 세미나에 오신 분들, 멀리서여러가지로 지지와 후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호의적이지 않는 공간, 때로는 적대적이기까지 한 공간에 오니 저에게 표현해주신 응원과 격려가 더욱 든든하게 떠오릅니다.
어제가 선거였으니 들어온 지 일주일을 넘어섰네요. 정신없이 지난한 주였습니다. 구치소로 들어와 이틀간 신입방에서 자면서 교육도 받고 검사도 받으며 이곳 생활을 배웠습니다. 적어도 시설만큼은 제가 살던 자취방보다 좋았고 매끼니마다 갖춰져 나오는 밥은 자취생의 식단보다 알찹니다. 신입방에는 주로‘지하경제 양성화’로오신 분들이 많아 친절하고 간식도 풍부한데다 첫날밤에는 튀니지와의 축구경기도 생방송으로 보면서 놀러 온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금요일부터는 ‘기타초범’들이모여있는 본방으로 왔습니다. 여기는 대부분 재판이 진행되는 분들 입곱 명이 있습니다. 좁은 방에 꽉끼어 살다보니 서열에 따라 역할이 정해져 있고 저는 설거지와 온수를 비롯한 잡다한 일을 맡는 ‘막내’입니다. 한마디로시집살이 온 새댁 같은 처지죠. 정신없네요.
제가 들어온 후로 유독 휴일이 많습니다. 이곳이 직장인 교도관들이쉬기 때문에 이곳에 사는 수감자들에게는 할 일도 없고 일처리도 안됩니다. 덕분에 편지지도, 우표도 바로 바로 구하질 못해서 소식 전하는 게 늦었습니다.
이곳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됐지만 처지가 다르니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몇 있었습니다. 수감생활을 준비하면서 안에 들어가면 의료혜택 받는 게 열악하다 해서 치료받을걸 미리미리 챙겨 받았는데요. 이곳에 오시는 분들 중에는 오히려 안에 들어오면 이런저런 검사도 받고 약도 재깍재깍 챙겨먹는 등 밖에서보다의료혜택을 더 받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저부터도 밖보다 더 꼬박꼬박 밥도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좁은 모래 운동장에 갇혀서지만) 하루 30분씩 운동을 하니 더 건강해진 모습으로 나갈 것 같습니다.이곳사람들은 매일 유병언 추적 뉴스를 보면서도 ‘단속이 심해져 구치소가 바글바글 해지겠구나’ 하기도 하는데 정말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남부구치소가 꽉 찼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저는 아마 다음주쯤 다른 교도소로 이감이 될지 아니면 이곳 구치소에서 출역(일)을 할지 결정될 듯한데 그게 결정되면 또 한번 방을 옮기고, 그때어느 방을 가는지가 여기서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에 큰 영향을 끼칠 것 같습니다. 그때까진 매우 한정된공간에서 적은 자원으로 최대한 청결하게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는 삶을 배우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부디너무 힘들지 않은 새 공간에서 다시 소식을 전하길 바라며 뒤죽박죽인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라고 안부를 전합니다.
2014. 6. 5.들깨(성민) 드림
방을 옮기는 것을 전방이라 합니다. 지난주 목요일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방 한 켠에 있는 스피커에서 “김성민씨, 조금 이따 전방이니까 준비하세요”라고 합니다. 짐이 많지도 않고 정든 공간도 아닌데 그렇게 한 시간도 채 남기지 않고 통보를 합니다. 전방 통보가 오자 ‘막내’의역할은 끝납니다. 하던 설거지도 손에서 놓고 방 사람들이 앞다투어 짐을 모포로 보자기 싸듯 싸주고 덕담한마디씩을 건냅니다. 빡빡한 막내 노릇을 끝내고 새로운 공간으로 가게돼서 시원섭섭 합니다.
이곳에 들어와 첫 두 밤은 신입방에서 이어서 이 주 동안은 미결수들의방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형이 확정돼서 기결수가 됐고 여기서 이감이 되거나(다른 교도소로 가는 것) 아니면 여기서 출역(일)을 하게 됩니다. 출역이정해지면 또 전방을 갑니다. 그때가 돼서야 좀 적응하며 살 방이 정해지지요. 두근두근.
지금 있는 방은 임시로 머물다 가는 곳이긴 하지만 매우 좋습니다. 4명이 쓰는 조그만 방인데 제가 온지 하루 뒤에 한 명은 다른 교도소로 가셨고 한 분은 형이 만기되어 출소하셨습니다. 출소하시는 어르신께서는 저보고 운이 좋다며 자신이 쓰던 푹신한 이불, 여름이불, 평상복 바지, 시계 등을 주고 나가셨습니다. 단번에 잠자리가 편안해졌습니다. 그리고 한 3일간은, 그러니까 주말동안은 셋이서 너르게 방을 썼습니다. 월요일엔 새로 한 분이 오셔서 정원을 채웠는데 저는 어느새 방 서열 두 번째가 됐습니다.
지난 2주간 막내로구박과 하대를 당하며 잔일을 도맡아 했던 것과 달리 깍듯한 존댓말을 듣습니다. 제가 무슨 일을 하려고해도 새로 오신 분이 빼앗듯이 일을 하십니다. 그것이 이곳의 ‘질서’이고 ‘예의’라고 합니다. 먹기 싫은 간식을 강요하는 사람도, 트집 잡아 혼내는 사람도 없는하루는 얼마나 달콤하던지요. 며칠을 살다 갈 지 모르지만 며칠 조용히 쉬다가 전방을 갈 것 같습니다.
저보다 한달 먼저 수감되신 상민씨를 이주에 한번은 봅니다. 상민씨는 수감자들의 머리를 깎는 재리 출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전 2주 전에 머리를 바짝 깎았지만 얼굴도 볼 겸 머리를 깎으러 나갔습니다. 지지난 주엔 머리를 상민씨가 깎아 주시게 돼서 머리를 깎는 동안 도란도란 얘기도 나눴는데 오늘은 아쉽게도 다른분에게 당첨돼서 그저 눈으로만 이야기하고 손만 슬쩍 잡고 방에 돌아왔습니다. 이제 세 번째 마주치는거긴 하지만 지난번보다 한층 여유로와진 표정이라서 제 기분이 좋더군요.
이제 장마가 시작된다더군요. 그나마하루에 30분간, 테니스 코트만한 모래운동장에서 20~30명이 북적이며 햇빛을 쪼이고 뜀박질을 하는 날이 줄어들겠군요. 언제떠날지 모르는 이 조그만 방에서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냅니다. 몇 권의 책과 오고가는 편지가 소소한낙입니다.
러시아와 한국의 축구경기를 생방송으로 보여준다는 소식에 기쁨이넘치는 곳에서 안부를 전합니다 아마도 다음 전방 후에 소식 전하겠습니다 그 때까지 건강히.
2014. 6. 16. 월요일밤
들깨 드림
이감 소식입니다. "서울구치소 3723 김성민"
들깨(성민)에게 보낼 손편지는 '서울 금천우체국 사서함 164호 2827번 김성민'으로 보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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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깨, 몸 상하지 않고 맘 편하게 지내기를. 방이 정해지면, 수학책을 보내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