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아이들 데리고 다 내려와야겠다.”
꽃이 피어야할 3월에 눈이 많이 내려 고속도로에 차들이 갇혀있던 해, 봄날 아침에 고향의 누나로부터 온 전화였다. 얼마 전 설 명절 때만 해도 건강하셨던 어머니께서 갑작스레 돌아가셨다는 연락에 가슴이 철렁 내려않는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가까이 하지 못함에 대한 죄책감과 함께, 장례를 어떻게 치러야 할지를 몰라 앞이 캄캄해졌다. 일평생을 자식 걱정만 하면서 살아오신 분인데 말이다.

부랴부랴 달려간 고향집에는 이미 마을 사람들이 모여 방안에는 빈소를 마련하고, 부엌에서는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고향마을의 경조사는 마을에서 힘을 모아 함께 치르는 마을공동체의 풍습이 남아있다. 고향에서 함께 자란 동무들도 이럴 때를 대비해 계를 모아, 멀리 떨어져 살고 바쁜 생활에서도 경조사에 함께 하고 있다. 미리 준비하지도 못하고 앞이 캄캄했던 어머니의 장례는 마을과, 동무들이 함께하여 순조롭게 치룰 수 있었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농촌은 말할 것도 없고, 도시에서도 90년대 까지는 아파트에서 장례를 치르면서 상갓집임을 알리는 등을 밝힌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공동체 파괴와 함께 장례문화가 급격히 바뀌어 이제는 병원이나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고 있다. 변해가는 장례식에서는 두레 품앗이 계 같은 우리의 공동체성은 간데없고, 상업주의와 국적불명의 장례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의 상복이 검은색도 아니었고, 병원에 장례식장이 있는 나라도 우리나라뿐이라고 한다. 사람은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 신세를 지면서 살다가 병원에서 일생을 마감하고 있다.

요즘 장례식을 치러주는 상조회사가 우후죽순처럼 영업을 하고 있다. 회원들로부터 회비를 받아 운영하면서도 제대로 된 장례식을 해주지 않고, 상주의 처지를 이용하여 추가로 뒷돈을 받아 폭리를 취하고 있다. 다단계 불법영업으로 부실하게 운영하여 부도가 나거나, 돈을 빼돌려 회원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자주 보게 된다. 우리는 예로부터 동고동락하면서 생사고락을 함께 하고 죽음까지 함께하는 삶을 살았는데, 이제는 죽음이 장사꾼의 돈벌이 수단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가족의 죽음으로 힘들어하는 상주들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장례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한겨레두레공제조합’을 찾아 박승옥 공동대표를 만났다. 불교귀농학교에 강의도 오시는 박 대표께서 장례 현실에 대해 지적을 해준다. 장례 산업은 “매장과 화장(공원묘지와 납골당), 장례식장(음식), 장사물품과 서비스로 나눌 수 있다.”고 하면서 곳곳에 뒷돈과 폭리가 만연해 있다고 한다. “30만 원짜리 수의의 원가가 4만원으로 알려졌고, 고급이라고 권하는 50만, 70만 원짜리 수의도 별 차이가 없으면서 상주의 심리를 이용하여 터무니없는 값을 받고 있다.” “공원묘지나 납골당도 조성 원가의 수십 배, 그 이상의 폭리를 취하고 있다.” “장례식장의 주 수입원인 음식도 낭비가 심하고, 음식쓰레기 문제도 심각하다.”

장례문화를 바로 잡아 보고자 한겨레신문사와 협약을 맺어 한겨레두레공제조합을 결성하고 ‘상포계’를 조직하여 상부상조하는 정신을 되살려 장례를 치르고 있다. 공제조합의 장례식에서는 “폭리와 뒷돈(리베이트)을 일체 받지 않고”, 투명하게 장례를 치르고 있다. 장례용품은 원가로 공동구매하여 사용하고, 미리 수의를 준비해 놓았으면 새로 구입하지 않아도 되는 “맞춤형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식량이 턱없이 부족한 나라에서 장례식장의 음식 낭비도 줄이고, “1회용 그릇이나 물품을 줄이며 환경도 생각하는 장례”를 치르도록 노력하고 있다.

공제조합의 조합원은 월 3만원의 상포 계돈을 납입하면서, 조합원 교육을 통해 장례에 임하는 자세와 절차에 대해서 미리 알게 된다. 상을 당하면 장례일꾼(지도사)이 방문하여 전체 장례진행을 상담하여 진행해 준다. 보통의 장례식에서는 비용 중에서 20~40%는 뒷돈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장례비용을 원가로 계산하다보니 최소 몇 백 만원은 절약되고 있다. 장례 진행에서 장례지도사의 역할이 절대적인데, 뜻을 함께 하는 장례지도사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가능하다. 상주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사례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뿌리칠 수 없을 때는 받아두었다 출자금으로 돌려주고 있다.

지난해 우리 모두의 스승이신 이영희 선생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선생님의 장례식을 한겨레두레공제조합이 맡아서 치루면서 선생님을 편안하게 모셨다. 공제조합은 연합회와 지역조합, 공제운동연구소와 물품을 구매하는 법인이 설립되어 한겨레신문사와 협력하면서 공제조합을 꾸려나가고 있다. 김종철 녹색평론발행인 명진스님 문규현신부 박승옥대표 등 시민사회에서 신망이 두터운 분들이 함께 하고 있다.

서울 공제조합 일꾼 지음은 “지역 조합 아래 10~20명 정도로 ‘상포계’를 모아, 평소에 부조금을 모으고 교류하면서 예전 ‘계’의 모습으로 활동하도록 하려한다.” “계원 중에 상을 당하면 계원들이 힘을 합해 상을 치르면서, 슬픔을 함께 나누고 고인을 추모하게 된다.”고 하면서 “죽음까지 장사꾼에게 넘겨 줄 수 없다.”고 말한다. 공제조합에 지역과 직능 노동 종교 등의 공동체들이 결합하여 상부상조하는 협동운동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앞으로 돌잔치나 결혼식 회갑 칠순잔치도 준비하고 있다. 상포계돈을 적립하여 어려운 사람들에게 교육비를 마련해 주고, 집을 지을 수 있는 활동까지도 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로 무너져가는 공동체 문화가 되살아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인드라망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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