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월 11일 화요일 저녁 7시

장소 : 빈연구소 3층

참가자 : 윤명, 석중, 나루, 시금치, 지음, 오디, 우더, 멍니, 러니

발제 : 4장-우더, 5장-오디, 6장-지음


책이 너무 어렵다는 얘기가 많았지만... 

그래도 한발한발 가고 있습니다.ㅎㅎ

다음주에는 7,8,9,10 장을 마저 다 하고 책을 끝내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관용>을 볼 지... 아니면 다른 책을 볼지 고민을 해 오기로 했구요. 


다음주 세미나는 화요일 18일 저녁 7시입니다. 

많은 참여 바래요. 


발제문 첨부합니다. 4장과 5장은 뒷부분이 좀 미완입니다.


=======================================


 4- 자본주의적 장소 탈출법


 나를(깁슨-그레엄)포합하여 지리학자들은 현대 사회이론에서 공간에 대한 언급이 급증하는 현상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에 잠긴다.

오늘날 공간적 은유는 현저하게 증가했다. 담론공간은 '점령되고', 화자는 '특정한 위치를 갖거나' '상황안에 존재하며', '경계'는 '횡단되고', 정체성은 '탈영역화' 되거나 '유목적이다'. 이론은 '지도화'되어야 하는 개념적 '경관'과 그 주변은 부유하면서 욕망의 '지도'화 발화의 '공간'을 생산하고 있다. 

이론담론의 공간화는 어느정도 구조주의 덕분이다. 구조주의 이론은 언어적, 사회적 요소들이 '공시적'절합을 통해 관계적으로 규정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것은 '포스트 구조주의자', '포스트 구조주의 이전의 이론가들', 그리고 이들이 속한 맑스주의의 전통이다.

맑스주의든 포스트 구조주의든 이 두 유형의 담론은 모두 공간을 '대문자 정체성' - 궁극적 정의를 요구하거나, 기표(청각/시각 이미지인 시니피앙(記票, 의미하는 것))를 기의(단어의 의미 또는 개념인 시니피에(記意, 의미 되는 것))에 고정시킬것을 요구하는 상징영역에 존재한다. - 이나, 형상에 의해, 또는 이들과의 관계속에서 재현한다. 즉 포스트 구조주의 이론이 대문자 정체성을 고정시키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다중적이고 유동적인 정체성들의 수행 공간을 추척하는데 관심을 갖는다면, 통상 맑스주의 이론은 한 유형의 형상에 의해 구성되는 공간, 즉 생산양식이나,  자본주의가 수행되는 공간에 초점을 맞추었다.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은 이 세상 모든 것이 불안정하게 흔들린다는 것을 기본 개념으로 깔고 있다. 이것은 소쉬르의 구조 언어학에서 출발되었다. 현대철학의 출발점은 언어학이다. 언어학을 중심으로 학문이 재분류되고 재배치되었다. ‘인간을 연구하는 과학’으로 격상된 언어학은 현대의 지식 체계를 바꾸었다.

소쉬르는 단 하나의 덩어리로 생각했던 단어가 실은 두 겹으로 나뉜 두 요소의 겹침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청각/시각 이미지인 시니피앙(記票, 의미하는 것)과 단어의 의미 또는 개념인 시니피에(記意, 의미 되는 것)이다.

언어가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로 분리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그것이 언어의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記號에도 적용되는 원리임을 깨닫게 되었다. 언어가 대표적인 기호일 뿐 유일한 기호는 아니다. 사람들의 얼굴 표정, 몸놀림, 동물의 발자취 등이모두 기호이다. 세상 모든 것이 기호 아닌 것이 없다. 한 사회를 지배하는 편견 또는 이데올로기가 일상생활 속에 교묘하게스며들어 있음을 비판한 롤랑 바르트의 ‘신화학’도 구조 언어학에서 파생되었다.

 

포스트구조주의는 구조주의에서 나왔고, 구조주의는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시작되었다. 구조주의는 기표와 기의를 1:1로대응한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포스트구조주의는 기표와 기의가 다양하게 결합될 수 있으며 , 기표와 기의의 분리도 확고한것이 아니라 기표 자체가 얼마든지 기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기표와 기의의 대칭성과 안정성에의문을 품는 사람들이다. 


매시(Massey)는 공간용어의 은유적 활용이 확대될수록, 자칫 공안이 지닌 상이한 의미들간의 중요한 구분이 모호해질 수 있음을 우려한다.

스미스와 카츠 역시 현대 사회학과 문화연구-전부 포스트구조주의적인건 아니다.-에 나타나는 공간은유를 경계한다. 이 이론들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공간을 주체나 대상이 '위치하거나''점유한' 텅빈 용기나 장소로 여긴다는 것이다.스미스와 카츠가 보기에 사회현장이나 발화위치를 공간은유를 통해 맥락화, 상대화, 탈보편화하는 이 시도들은, 사실상 한세트의 조표로 표기되는 위치, 즉 사회와 무관하며 자연적이라 여겨지는 '절대'공간의 지점따위를 다룬다.

하지만 절대공간이라는 개념 자체야 말로 사회적으로 생산되며, 역사적으로 특수한 것이다. 공간이 무한하고 선험적이며 중립적인 용기나 격자라는 생각,

그 공간에서 개별 실체들이 서로 무관하게 혹은 공간자체로부터 독립적으로 작동한다는 생각은 뉴턴, 데카르트, 칸트로부터 비록되어, 17~19세기의 자본주의의 등장과 더불어'완전의 자연화'되었다(스미스와 카츠). 이 공간을 문제 삼지 않은 채 공간적 은유를 확장함으로서, 일부 사회학자들은 "현재적 의미뿐 아니라 역사적 기원에도 그 정치적 책임이 있는" 공간관을 재생산 한다. 르페르트를 인용하면서 스미스와 카츠는 "공간이 사회지배의 기획에 적절한 것으로 개념화"된다. 즉 이러한 공간관은 "매우 특수란 권력의 폭압을 표현하는" 기획을 조장한다. 스미스와 카츠는"절대공간과 관련된 공간은유가 퇴행적인 것은 절대공간이 현재의 사회공간이나 이론상태를 동결시키고 이에 제재를 가하는 데 활용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상의 맑스주의자들과 지리학자들은 공통적으로, 공간은유들을 그리도 잽싸게 차용했던 몇몇 포스트구조주의 이론가들이 정작 공간의 물질성과 사회성, 또 공간은 생산된 것이라는 특성따위를 무시하였다는데 관심을 기울인다. 이들의 이와 같은 관심은 '실재'를 무시하는 모든 태도에 담긴 정치적 함의를 우려하는데 까지 소급된다.-로즈가 보기에, 이 모든 지리학자들은"은유에 적합한 실재적 공간과 이에 적합하지 않은 비실재적 공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의아해 하면서 다은과 같이 질문한다. 물질적 사회적 세계속에 참으로 뿌리내리지 않고서 도대체 어떻게 공간적 재현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를 수 있겠는가? 이것은 정치를 퇴행시키는 것이 아닌가?


비유 대 물질성, 담론 대 실재 간의 전투가 우리 안과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적들이' 지리학의 경계을 침범하고 있는 바로 이 시기야 말로 공간으로 뛰어들기에 적절한 시기 아닌가? 공간의 문제에 몰두하게 될 때 우리는 모던 및 포스토모던 여성주의 담론과 도시담론들 사이의 충돌에서 발생한 담론성, 물질성, 정치 사이의 관계에 대한 몇몇 정치적 인식론적 관심들과 대면할 수 있게 된다. 공간의 문제를 다루면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사유할 가능성이 열린다. 우리는 지리학의 은신처를 들여다 볼 것이며, 무형식의 공간에서 형상의 공간을 들여다 볼 것이다.

"외부는 사고에 슬며시 스며든다. 외부는 지식을 그 외부, 예상밖의 것으로 인도하며, 자신이 들어가 거주할 분지를 생산한다. 이것이 바로 내부로서의 외부 혹은 내부안에 있는 외부이다"



=======================================


5장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 산업정책 담론과 몸의 경제학

경제는 점점 더 사회정책을 규제하고 지배하는 책심적인 장이 되고 있다. (다양한 사회정책들에 대한 논의는 얼마나 시장 명제에 부합하느냐로 귀결된다)
좌파와 우파의 경제는 동일한 '경제담론'안에서 작동한다. 
대안적인 경제 담론을 육성하려면 대안적 경제지식을 찾아내 거기에 위치한 후에 기존의 공식을 설명해내는 작업을 한다.

몸의 경제학

 여러 질병들, 하나의 처방
 - 거식증 : 정맥주사로 영양분 공급, 가족치료.
 - 탈산업화 : 쇠락하는 산업지역들에는 투자를 유치, 임금상승과 노동력 감축협상. (생명력의 기본으로 상태를 회복시킬 조건을 조성하기 위한 시도)
 - 70년대 이후 탈산업화라는 이상증상을 고치겠다는 처치의 성과는 미미할 뿐이지만 치료의 근거인 경제담론을 점검하려는 시도의 거의 없었다.
 - 반면, 인간의 몸은 급진적인 사유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의로적 심리적 거식증 치료법은거식증을 조장하는 조건을 구성하는 모순된 실천들의 극히일부만 조명한것으로 치료법으로서 제한적인 가능성만있다.
 - 여성주의 이론가들은 몸에 대한 인식을 면밀히 탐구하면서 떄로는 인식을 폐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제 이론가들은 근거로 하는 담론적 존재의 본질을 문제 삼지 않는다.
 - 그들은 지식의 대상을 인식함으로 스스로 그 지식 담론의 추체가 된다. 즉 인간은 경제에 복종하면서도 그것을 조종하는 존재이다.
 - 여성들이 육체를 탈자연화 했듯이 경제를 낯설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유기체의 탄생: 총체성과 경제의 메타포들 (은유, 암유)
 - 위계적으로 질서정연한 부분들의 합이며 내재된 생명력으로 에너지를얻는 자기완결적인 총체이므로 경제는 유기체이다.
 - 노동의 분업과 그로인한 노동의 전문화는 노동의 통합을 필요로 한다. 역사가 전진할 수록 복수였던 경제는 단일한 것이 된다.
 - 유기체라는 개념은 인간이나 동물의 몸을 특징짓는 필연적이거나 자연스러운 개념이 아니며 따라서 그것을 이와 유사한 다른 총체적 존재들에 적용시킬 수 없다.
 - 푸코에 의하면 총체성이라는 헤게모니적 은유는 혼합된 은유에 불과하다.

 메타포와 권위, 유기체와 개입
 - 근대적 젠더체제에 따르면, 인간의 특징 등이 이분법적인 담론 틀로 분해되는데 한쪽은 지배하는  것이고 다른 쪽은 종속되고 가치절하된 것이다. 양쪽은 상호연과되어 존재하지만, 젠더체제는 이러한 의존의 상호성을 망각하도록 만든다. 이렇게 지배하는 쪽은 독립적인 것이 된다. 반면 지배되는 쪽은 상대방 없이는 존재할 수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 이러한 젠더화체제는 식민화 체제다.
 - 남성과 경제와의  관계 : 남성/경제 남성이 경제과정의 지배자가 된다. 경제/남성 남성은 경제를 신으로 섬기게 된다. (..정신/몸, 신/인간……)
 - 남성의 담론적 구성에서 남성적 인간의 특징은 보편적인것으로 재현되는 반면 여성적 특징은 외부화되거나 억압당한다. 남성/여성(자연,비남성)
 - 경제는 스스로에게 결정하는 자의 지위를 부여하면서 외부의 결정당하는 자에 대해서 결정권을 행사한다.
 - 경제는 남성의 주인인 동시에 남성의 지배가 작동하는 장이다.
 - 이러한 역설은 남성존재의 이중성에도 반영되며,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젠더체제의 특징이다.
 - 남성은 경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대신 경제적 개입에 관한 담론과 실천을 통해 경제를 쥐락펴락한다.

 혈과우회수술: 심장 만지작거리기
 - 안정적인 재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혈액의 양과 흐름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순환기오 ㅏ심장의 역할에 대한 비유는 일련의 특수한 개입과 조작을 정당화한다.
 - 유기적 총체가 내부적으로 연결되고 위계적으로 조직되며 인간의 정신에서 이성적으로 복제가능한 운동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면 전략가는 치료할 적소를 파악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곧 전체가 건강해진다.
 - 경제 기능의 위계체제에 대한 유기론자들의 인식. 하나 내지 몇개의 부분이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며 나머지 부분은 주변적이거나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ㄹ으ㅗ 경제개입의 방향을 제시하고 그 한계를 설정한다.
 - 경제적 개입은 예측가능하며 모순되지 않는 결과를 산출할 수 다. 결제가 전반적으로 건강한 상태가 되려면 임금삭감이 필요하다는 희한한 결론에 쉽게 도달하고, 신격화된 형상과 결부시킴으로 전국의 임금노동자와 경제추종자들에게 당위성을 설파한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
 - 삶과 죽음의 대조는 정치적개입이 단순한 이분법 형태로 진행되도록 유도한다. 
 - 자본주의의 대안을 바라지만 그 비슷한 가능성 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단일한 경제 인식에 갇혀있다. 할 수 있는 선택은 자본주의 경제가 건강하게 기능하도록 하는 것, 아니면 노동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점점 더 주변화되고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지켜보는 일 뿐이다.

 삶과 죽음을 넘어서
 - 열린 미래는 총체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필요로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유기체 개념을 포기하는 것이어야한다.
  우리의 사고의 고고학이 명백히 보여주듯이 인간은 최근의 발명품이다, 그리고 아마도 인간은 종말에 다가가고 있다. 이러한 사고의 배열이 한때 나타났던 것처럼 이제는 사라져야 할 운명이라면, 우리가 현재로서는 고작 가능성을 감지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 어떤 사건이, - 그것이 나중에 어떤 형태를 지닐지 또는 무엇을 약속할지 알지 못한 채 - 마치18세기 말 고전사상의 근거가 그러했듯, 그러한 사고의 배열을 산산조각 낸다면, 해변의 모래밭에 그려놓은 얼굴이 파도에 지워지듯 이제 인간도 사라지리라고 장담할 수 있다. (푸코)

 진화의 사다리
 자본주의의 계보학, 유기적발달의 은유
 - 사다리 은유와 회화적 묘사는 진화 단계가 끊어지지 않는 연속선을 이룬다는 듯 표현한다.
 - 역사를 연속적인 사다리로 재현하면 생물 및 경제적 다양성은 감소되고 만다.
 - 경제적 총체성을 재사유하기 위해서는 지배라는 헤게모니 개념을 포기해야할지도 모른다. 또한 각 구조는 생존과 적응 투쟁에서 승리한 것으로 보는 역사 서사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유기적인 몸의 경제학을 포기하고 '상호영향력을 행사하는 총체성이라는 새로운 유기체 개념'이나 이와 유사한사회적 개념을 찾아야할지도 모른다.
 - ...

 유기체가 아니라면 보장도 없다
 - 일부 여성주의 이론가들은 경제가 단일하고 통인된자본주의적 실체라는 가면을 버리고, 가정이야말로 이른바 발전되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서 비자본주의적 새산의 주요 현장임을 강조해왔다.
 - 이들은 가정에서 일어나늠ㄴ 생산의 종류와 가구 구성원들에 의해 잉여노동이 생산되고 전유되는 방ㅎ식, 이 두 가지 측면에서 가정을 차이와 변화의 현장으로 재현했다.
 - 이러한 접근은 경제 이론의 또 다른 중심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서도 경제담론을 자본주의로부터 효과적으로 분리시킨다.
 - 가정경제의 다양성과 착취에 대한 강조는 가정 이외의 분야에서의 계급다양성을 이론화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준다.


======================================

6장 지구화 따져보기


순서 

도입

강간 스크립트와 지구화 스크립트

주체되기, 희생자 되지 않기

성적 정체성과 경제적 정체성의 각인

지구화의 퀴어화/교류의 보편성

결론 : 지구화와 그것의 ‘타자’ 혹은 ‘타자’로서의 지구화



강간스크립트와 지구화스크립트


강간

지구화

삽입

침투

남근

자본

남성

자본주의 / 다국적기업

여성

자본주의의 타자 / 비자본주의 경제 및 지역

여성주의투쟁

노동자투쟁

강간의 언어

자본주의 지구화 담론

강간 공포와 복종

자본이탈 두려움, 노동조건개선요구 스스로 제한

강간의 정상화

자본주의 왕국

강간을 일상의 현실로 의심없이 받아들이면 강간 방지를 위한 여성주의적 행동의 정치적 실효성도 제한되어 버린다.

자본주의적 지구화를 하나의 ‘사실’로 수용했던 1970년대 산업계 운동의 실태. 일국적 노동운동에만 매달리던 어떤 노동조합들은 지구화 행위에 적극 가담하여 자기 몫을 챙기려는 유혹

강간 스크립트, 다시말해 한 여성과 잠재적 폭행자 간의 언어적 육체적 상호작용에 관한 기록은, 잠재적 강간범에게는 권력을 느끼게 하고 여성에게는 공포와 마비의 감각을 연상시키는 언어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바로 그 언어를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 구체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주체됨을 경험하기도 한다.

지구화 스크립트, 자기 얘기랑 비슷

남성은 본질적으로 여자보다 힘이 세며, 그들은 생물학적으로 강간을 자행할 만한 완력을 부여받았다. 남성은 폭력과 공격의 주체다. 남성의 몸은 단단하고 꽉 찬 발사체같다.

오직 자본주의만이 확장자와 침략자의 위세를 누렸다. 자본주의는 타고난 공간형태라고, 또 그 어떤 비자본주의적 경제형태들보다 근본적으로 강력하다.

여성은 강간을 피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해 감정에 호소하거나 묵인, 설득하는 전략을 펼 수는 있지만, 물리적으로 강간을 멈출수는 없다. 여성은 두려움의 주체다. 여성의 몸은 보들보들 텅 비어 있고 약하며 열려있다.

비자본주의적 경제형태(전통경제, 3세계경제, 사회주의경제, 꼬뮨들의 실험)은 폭력을 당하고 파괴되고 살해된다. 반항은 가능하나 복수는 불가능한 현장들로 자본에 대한 협력이 요청되고 결국 그런 협력을 얻게되는 현장들.

남성의 성기는 여성의 몸에 침투하거나 침략할 수 있지만, 여성은 대문자 인간에게 흔적을 남기지도 침략도 침투도 할 수 없다.

지구화는 자본주의 단독의 특권이다. 역은 성립할 수 없다. 모든 비자본주의의 형태들은 상처입고, 폭력에 희생되고, 추락한 뒤, 자본에 종속된다.

침투, 침략, 처녀지 등 용어

동일

강간

근대성에 대한 가장 적절한 은유는 강간이다 .문자 그대로든 은유로서든 여성 강간 만큼이나 자연 강간, 몸의 정치 강간, 유약한 소수자들 강간이 내게 벌어지고 있고 난 강간당한 기분이 든다. (Banuri)

여성은 기억해야 한다. 발기라는 게 얼마나 취약하고 일시적인지, 남성의 고환은 여성의 니킥 앞에 결코 힘을 쓸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지구화의 발기능력을 어떻게 잠재울 수 있을까?

초국적투자의 주요 원천국가 4개국 중 3개국(일본을 뺀 미국, 영국, 독일)은 해외직접투자의 주요 유치국이기도 하며, 전세계 다국적기업 중 4~5%만이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라 할만하다. 기껏 두 나라에서 네 나라 정도.

반칙에 시달리기 십상, 글로벌시대의 흑기사들인 기업 사냥꾼의 먹이가 될 가능성 증가. 단 하루만에 거대 다국적기업의 주인이 바뀔수도 있다.

난 그 놈의 성기를 부여잡고 그걸 부러뜨리려고 그랬지. 그런데 놈은 있는 힘을 다해 내 머리에 주먹질을 해댔어. 나 역시 참을 수 없다 싶어서, 아예 성기를 뿌리뽑아 버리겠다고 이를 악물었지. 그러나 놈의 성기가 힘을 잃었고... 놈은 날 밀어내고 코트를 집어든 채도망쳐버리더군.

전미금속노련, 헤지펀드 개인투자자의 약점을 밝혀내고 국제적으로 이용하는 것. 국제주의에 국제주의로 대항하고 승리.

강간이 희생자에게 미치는 효과들의 스크립트를 다시 쓰는 일. 강간을 도둑질, 빼앗김, 죽음으로 재현하는 방식을 문제삼아야 한다. 강간이 자아에게 행한 상처라는 측면에서 결정적이고 지속적인 사건이라고 여겨진다는 것이다.

지구화가 비자본주의적 장소들 특히 ‘제3세계’로부터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것이라 재현하는 엇비슷한 움직에 우리는 과연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


역설. 강간은 죽음이다. 그런데 강간이 벌어졌을 때 죽음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강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국적기업은 토착 경제를 훼손하여 자력 발전의 능력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미래의 가임가능성도 없애 불모화해버린다. 다국적기업의 개입은 곧 죽음이 된다.

남자가 여자보다 더 힘이 세니까 강간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믿음은 그들이 지닌 힘에 대한 추정 이상으로 면밀하게 분석되어야 한다. 그 믿음으로 인해 강간의 원인처럼 보이는 남성권력이라는 효과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Marcus

조직된 자본주의라는 신화는 통제력을 지닌 심급의 권력을 지나치게 과도하게 만들고 나아가 온갖 종류의 거친 전망들로까지 나아가게 한다. 현재 우리는 ㅐ로운 신화를 만들어낼 위험을 자초하고 있다. 즉 무한대의 의사결정 역량을 지닌 독점기업들의 신화 말이다. Laclau

여성이 더 이상 두려움의 주체이자 폭력의 대상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폭력의 주체가 될 수도 있다는 식으로 표준적인 강간 스크립트를 다시 쓰기. 강간이 차지하는 강력한 이미지 중 하나는 그것이 여성의 성적 정체성에 새겨진 하나의 중요한 각인으로 표상된다는 점. 강간은 섹슈얼리티를 갖춘 여성의 몸을 만든다.

자본주의의 신체를 다르게 이해할 방법에 대한 어렴풋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가령 자본주의를 단단하고 무엇이든 감싸버리며 침투력 있고 반드시 넘치는 힘을 지닌게 아니라 열려 있는 것, 침투가능한 것, 틈이 있어 내부의 것이 새어나오거나 유출될 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방식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정액의 분출이 주기적으로 끊어지는 거처럼... 통제불능. 아무데나 분출, 자기파괴, 몽정,

금융자본(보다 직접적으로는 돈)은 으레 경제 시스템의 생명의 핏줄이라고, 즉 자유로운 순환을 통해 자본주의의 신체의 건강과 성장을 보장하는 것으로 재현되어 왔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혈액이 아니라 정액이라 상상해보면 어떨까? 주식시장 붕괴. 숫자로 존재하던 자산의 증발. 거품의 터짐.

남성성이 사정 그 자체를 혐오하는 건 아니다. 혐오의 대상은 사정이 양방향으로나 정해지지 않은 방향을 뿜어진다는 생각,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정 행위의 적극적 행위자면서 동시에 수동적으로 사정을 받아들이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가령 동성 간의 성애에서 queen의 역할을 맡는 것]는 가능성이 공포를 자아내는 것이다.

어쩌면 자본의 정체성을 확인시키는 주체이기도 한 금융자본 자체가, 신용의 확산과 금융시장의 탈규제 덕분에 자본주의적 계급관계뿐만 아니라 비자본주의적 계급관계뜰 또한 더 자라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소비자 신용의 증가, 소비자신용의 상당수가 실은 생산자 신용이기도 하다. 소규모사업의 증가에 기여, 소규모 사업장은 개인이나 공동의 잉여 전유와 같은 비자본주의적 계급과정이 이루어지는 장이다.

강간스크립트가 여성의 몸에 새겨넣은 고정된 성적 정체성을 거부하자. Marcus 강간의 합리화에 도전하는 것은 이성애의 규범성 그 자체에 도전하는 것.

만약 자본주의의 정체성이 유동적이라면, 즉 침투하거나 침투당하는 것이 모두 가능하다면, 지구화의 과정을 필연적인 자본주의적 발전으로서의 경제발전으로 구성하거나 의미를 고정시킬 필요가 없다.

많은 게이남성들은 정액을 뿜어내는 것을 넘어 받아낼 준비도 되어 있고, 그러면서 남근의 기능으로만 환원되지 않은 다른 신체부위들도 긍정한다. 침투할 수 있는 몸, 하나의 회로 안에서 발산하는 몸, 스스로를 걸어 잠그기보다는 열어젖히는 몸, 먼저 시작하기만 하는게 아니라 기다렸다 반응하기도 하는 몸, 자신의 남성성을 폄훼하지도 않고... 정력으로만 환원하지도 않는 몸, 이런 몸은 남성 성애의 형태학을 아주 급진적으로 재성찰할 수 있게 해준다.

자본주의를 열려 있는, 즉 침입할 수도 침입당할 수도 있다고 인식하는 다른 방법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가정을 비자본주의의 장, 즉 수많은 비자본주의적 계급과정이 발생하는 장으로 이론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가정을 이론화하면, 단단하고 침투가 불가능한 것으로 추정되던 자본주의적 경제는 이미 그 내부에 비자본주의적 경제 정체성을 지니고 있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

가족이란 하나의 성, 같은 집, 법적단위, 혈연관계, 지역사회 종교활동의 기본단위, 동반자들 사이 보살핌의 체계, 한쌍으로 이루어진 부부, 경제와 문화소비의 기본단위, 아이를 낳고 보살피고 양육하는 매커니즘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서로 안성맞춤으로 정렬된 어떤 것이라고 여겨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일해 보이는 구성체들 속에서 불협화음을 드러내고 밝혀 보이는 일이 아주 생산적일 수 있다.

자본주의라는 덩어리의 핵심적 융합체는 ‘상품화’와 ‘시장’


자본은 추상의 바이러스다. 자본은 모든 사회적 관계에 들어와 이를 오염시키고 보다 추상적인 관계들을 제조해 낸다. 자본은 양날을 가진 바이러스성 관계의 한 형태이다. 자본은 모든 질적이고 특수한 관계들을 양적이며 보편적인 것으로 변화시킨다. Wark.

그러나 자본 자체는 침입과 감염으로부터 자유로운가? 국제 이주의 엄청난 증가. 대규모 이주자 극빈층. 자영업이나 공동체적 가족 기반 기업으로 구성된 이민자 경제는 자체의 노동 및 자본시장을 운영. 그 범위가 지구적 수준에 이르기도.


자본주의적 지구화가 전염병이라면 이는 다른 여러 유형의 전염병들과 공존한다고 여겨질 수 있다.

강간을 단순하게 … 여성의 삶을 에워싼 현실 중 하나로 취급하는 것은 겁에 질려 강간을 차마 말하거나 표현할 수 없는 것, 우리의 통제력 밖에 있으므로 그저 그것이 우리를 덮칠 때문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다국적기업이 노동자와 공동체들에 비해 더 큰 권력을 갖는게 불가피하고 현실이라는 생각을 거부하는 것.



강간 스크립트와 지구화 스크립트

마커스의 스크립트는, 반응을 불러냄으로써, 또 큐 사인에 반응함으로써, 사회적 역할들이 꾸준히 거듭하여 만들어지고 조정된다는 개념이다. 그래서 그녀는 모든 스크립트들이 자기모순적인 속성을 안고 있다고, 여러 방식으로 자기 내부로부터의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표준적인 강간스크립트는 다음과 같다.

<위 표>

근대성에 대한 가장 적절한 은유는 강간이다 .문자 그대로든 은유로서든 여성 강간 만큼이나 자연 강간, 몸의 정치 강간, 유약한 소수자들 강간이 내게 벌어지고 있고 난 강간당한 기분이 든다. (Banuri)

마커스는 강간스크립트에 도전하기 위해 상당히 다른 두 개의 행동 경로를 제시한다.

하나는 스크립트 자체를 내부로부터 변화시키는 것, 즉 희생자 역할을 거부함으로써 스크립트의 전형성에 도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강간 스크립트에 각인된 섹슈얼리티 담론과 거기에서 도출되는 합법성과 자연스러움에 도전하는 것이다.

두 방법 모두 지구화에 대한 대안적 대응을 고려할 때도 도움이 된다.



주체되기, 희생자 되지 않기

강간범들이 득세하는 건, 그들이 남자로서 실제로, 생물학적으로, 또 불가피하게 여성보다 힘이 세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 명의 강간범은 어떤 사회적 스크립트를 따라, 관습적이고 젠더화된 정서의 구조, 행동의 구조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이 구조들은 강간의 표적(즉 여성들)을 그녀들에게 불리하게 왜곡되어 있는 대화 속으로 끌고 들어가려 한다. (Marcus)

지구화로 인한 프롤레타리아트화가 수많은 제3세계 여성들에게 안긴 것은 압도적으로 자본주의적이거나 오로지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한층 복잡한 사회구성체였다. 전통적인 성역할의 재규정, 가정에서의 착취로부터 벗어남, 독립 가계 경제 꾸리기, 여성이 유일한 수입원이 되는 경우, 여성들이 생산한 잉여노동을 전유하는 남성가장이 부재한 조건에서 독립적인 가내 계급과정 참여. 다른 여성들에게 계급 변혁을 위해 싸우라고 부추기기. 새로운 가정을 형성하기 위해 시댁식구 혹은 남편에게 집을 나가라 요구. 가족 모두가 공동으로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전유하는 공동체적 성격의 가정 출현 등. 중층 결정.



성적 정체성과 경제적 정체성의 각인

자본주의의 유형학을 재사유하자는 프로젝트는 참으로 급진적이다. 이미 퀴어이론가들이.

어떤이의 젠더 혹은 섹슈얼리티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단일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혹은 만들어낼 수 없다고 한다면, ‘퀴어’라는 용어는 의미의 가능성과 간극, 중첩, 불협화음과 화음, 일탈과 과잉 등이 뒤섞인 열린 그물망일수도 있다. Sedgwick

가족이란 하나의 성, 같은 집, 법적단위, 혈연관계, 지역사회 종교활동의 기본단위, 동반자들 사이 보살핌의 체계, 한쌍으로 이루어진 부부, 경제와 문화소비의 기본단위, 아이를 낳고 보살피고 양육하는 매커니즘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서로 안성맞춤으로 정렬된 어떤 것이라고 여겨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일해 보이는 구성체들 속에서 불협화음을 드러내고 밝혀 보이는 일이 아주 생산적일 수 있다.



지구화의 퀴어화/교류의 보편성

바비는 딜도가 아니고 남성 성기의 대체물도 아니다. 하지만 레즈비언 에로티시즘을 위한 인형, 즉 여성의 손바닥 안에 놓인 여성일 수는 있다. 사실 바비와 켄을 가지고 놀면서 소녀들은 레즈비언 커플 안의 남성/여성 역할을 배우곤 한다. 사춘기에 가지고 노는 인형은 레즈비언 욕망의 견본이 될 수 있다. Gossy

나는 바비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동성애 성향의 문화 비평가나 정치적 운동가로 변화시켰는지에 관한 얘기를 놀랍도록 자주 들었다. Rand



결론 : 지구화와 그것의 ‘타자’ 혹은 ‘타자’로서의 지구화



강간을 단순하게 … 여성의 삶을 에워싼 현실 중 하나로 취급하는 것은 겁에 질려 강간을 차마 말하거나 표현할 수 없는 것, 우리의 통제력 밖에 있으므로 그저 그것이 우리를 덮칠 때문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마커스의 첫번째 전략. 지구화 스크립트를 내부에서부터 다시 쓰는 것.

두번째 전략에는 지구적 자본주의에 현실성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경제적 정체성과 발전에 관한 보다 큰 담론을 식별해내는 일, 그리고 자본주의의 헤게모니의 정체성으로서의 지구화 스크립트가 세계 경제의 신체 위에 새겨놓은 각인을 탐색하는 일.

마지막으로 경제적 정체성을 퀴어화하고, 자본주의와 시장/상품/자본을 한 덩어리로 의미화하던 걸 해체하고, 다양한 경제적 존재와 실천들을 해방시킴으로써, 고정된 자본주의적 정체성에서 지구화를 떼어내는 일이 가능해진다.

지구화를 복수의 형태이자, 그 자신에 대한 타자, 상이한 발전 경로와 경제적 정체성들을 새겨놓는 것으로 생각해볼 공간도 만들어질 수 있다. (이미 내부의 타자인) 지방에만 의존해서 지구화에 저항할 필요는 없다. 지구화는 담론적으로 재 규정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일련의 대안 스크립트 쓰기의 여지가 생겨나고, 또 그에 따라 경제적 차이들을 듬뿍 새겨넣을 수도 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6 연구소 이제 게시판에 글을 쓰실 수 있습니다. [1] 성재 2014-04-30 4732
25 연구소 잠깐만. 연구소에 글이 써지던가...? 성재 2014-04-30 4691
24 연구소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 7,8 장 발제문 file [1] 지음 2014-02-21 5134
» 연구소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 4,5,6장 발제문 file 지음 2014-02-12 5176
22 연구소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 1,2,3장 발제문 file [1] 지음 2014-02-08 4961
21 연구소 같이 읽을 사람!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21] 지음 2014-01-17 7205
20 연구소 140112_학숙 회의록 [7] 정민 2014-01-13 4901
19 연구소 140105_학숙 회의록 [7] 정민 2014-01-06 5045
18 연구소 131229_학숙 회의록 [7] 정민 2013-12-30 4811
17 연구소 12/15(일) 빈 연구소 회의록 나마스떼 2013-12-20 4710
16 연구소 12/8(일) 빈 연구소 회의 [1] 나마스떼 2013-12-09 4781
15 연구소 11/3(일) 해방촌 빈 연구소 회의 나마스떼 2013-11-10 5075
14 연구소 행사 안내 <추석연휴의 해커톤!> [2] 성재 2013-09-17 7723
13 연구소 하루는 버스를 타고 오다가... [2] 성재 2013-09-09 8578
12 연구소 빈가게와 해방촌민박에서 <<자율운동과 주거공동체>> 1박2일 북콘서트 지음 2013-07-09 7922
11 연구소 나는 연구원이었지만, 연구를 하지 않고 있지... [1] 스바 2013-07-08 7271
10 연구소 현재 넓은집 단투중... [7] 성재 2013-06-30 6451
9 연구소 컴퓨터 설계 강좌를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2] 성재 2013-06-17 7498
8 연구소 주중에 급한 일들이 있어서 신경을 못 쓰고 있었습니다. [6] 성재 2013-06-02 8823
7 연구소 스팸이 눈에 띄게 줄고 있네요... [5] 성재 2013-05-25 9116